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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칼럼] 나의 죄수복 한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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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3-03 21:28 조회2,8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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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 반미, 자주통일을 외치며 맥아더 동상에 불을 붙인 이유로 2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마친 통일운동가 이적 목사가 다시 투쟁의 현장에 나섰다. 이적 목사는 동지들과 함께 펼쳐나가는 통일운동을 페이스북을 통하여 널리 알리고 있다. 시인이기도 한 이적 목사의 글을 거의 원문 그대로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이적 칼럼] 나의 죄수복 한벌 외



이적 목사 (통일운동가)



나의 죄수복 한벌

감옥에서 입었던 죄수복을 가지고 나왔다 이제는 서재에 걸어놓고 매일 만난다 내죄수번호는 5032번이다 앞자리 5라는 숫자는 정치범 공안수에게 부여된 고유번호라고 한다 박근혜 번호도 503번으로 내번호 하고 비슷하다며 면회 온 동지들이 면회실에서 공범이냐며 놀려댔다

죄수복을 보면 1년8개월 동안 복역했던 폐쇄독방의

고독이 늘 눈에 일렁거린다

아침에 일어나 참선 하고 신문보고 독서와 글쓰기를 반복했던 그 폐쇄된 단조로운 일상, 그러나 그속에서 혁명적 낙관으로 저항의 의지를 꺾지 말자고 다짐했던 그 결기도 동시에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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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과거에 투영되어 행동한다 구금세월이 공포스럽고 겁먹은 시간 이었다면 앞으로의 투쟁의 강도도 약해질것이다 그러나 약 2년 가까운 세월의 독방에서 이빨 깨물었던 그 결기가 더 단단한 의기가 된다 내나이 60대 중반,

앞으로 산다면 얼마나 더 살것인가? 남은 세월 난곡의 항미로 생을 마무리 하는것이

낚시하며 호가호위하며 말년을 보내는것보다 더 사람다운 삶일것이다

투쟁은 젊을때도 하지만

흰머리 휘끗 휘끗한 장,노년기에 하는것도 좋다

가정등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이제는 감옥에 그만가고 편히 쉬라고 한다

세상에 감옥 가고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고 싶은 말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하면

잡아가니까 가는것이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고 행동하는 집단이 없다면 세상은 발전 할수 있을까?

그래도 이나마 민주화의 열매를 따먹고 살고 있는것도

7.80년대 수많은 민주투사,열사들이 있었기에 양키들이 길을 열고 요만큼이라도 사는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아직도 자주가 없는

노예적 굴종의 국가를 갖고 있지만 투쟁의 결기로 기필코 극복해내야 한다

5032번,

조국의 자주화와 통일이 이루어질때까지 평생 가슴에 붙이고 다닐 숫자다 예속과 굴종의 시대가 나에게 준 선물로 생각한다 종미시대에 나태함으로 느슨해질때 각성제 처럼

바라보고 삼키며 살일이다ㆍ

내 혼자 배부르다고 종미와 굴종의 부끄러운 예속의 국가체제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ㆍ

해방과 통합의 그날까지ㆍ




감옥에서 나온지 겨우 한달

감옥밖에 나와도 여전히 할일이 많다 토요일 어제는

서울 중랑구에서 삼청교육대 피해자 모임이 있었다 40년전에 나와같이 피의 학살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진상규명은 커녕 배,보상도 없이 1년에서 3년 이상씩 갇혀 주검을 강요 받던 그 억울한 한을 가슴에 간직한 사람들,

그들이 삼청피해자 조직을 꾸려 싸우자고 했다 앞서서 싸우는것을 두려워하며 대신 내게 조직의 대표를 맡아 투쟁조직을 이끌어 달라고 부탁 한다 기꺼히 맡아주기로 했다 나 또한 가슴에 울분에 찬 역사의피해자니까ᆢ

4만여명의 눈물이 응고 되어 있는 이 처절한 과거사를 어찌 외면하랴 (삼청피해자 연합회)란 이름으로 함께 싸우자고 결의 하고 늦은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민통선으로 돌아왔다

눈을 잠깐 붙이니 또 아침이다 오늘은 미대사관 현장 으로 나가야 한다 오후 2시에 903차 미군나가라 시국기도회가 기다리고 있다

미군놈들이 이땅에 있는 이상

우리는 발뻗고 살수 없다

자주와 통일을 가로 막고 우리 민족의 피땀을 갈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일은 과거사진상규명 사무실에 나가 80년대에 있었던 우리가족 간첩조작 고문 사건 진상규명을 또 요구해야 한다

아버지가 남파한 사촌형을 만났다고 해서 아버지 어머니 고모 고종형 친누나가 영장도 없이 끌려가 한달동안 고문받다 고모와 사촌형은 풀려 나오자말자 죽고 내아버지도 시름시름 앓다가 중풍등 휴유증으로 죽었다 10년후 어머니도 병명없는 병으로 죽었다 가족들은 아직도 두려워하며 입을 닫고 살자 한다 그럴수 없다 누구 좋으라고 입닫고 산단 말인가

역사의 가해자들을 잡아내야 한다 참는다는것은 비겁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역의 역사 앞에 움추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말을 해야 반복의 처절한 역사가 종식된다ㆍ

싸워야 살수 있는 나라

우리는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이나라의 밑바탕에 신식민지 백성의 삶으로 존재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한이 많은 민족이다 일본과 미국의 침략이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욱 그렇다 피곤한 몸을 다시 일으킨다

사랑하는 동족이 있고 동지들이 있기에 힘을 낸다 함께 싸우자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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