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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보는 3월 1일 독립혁명선언 102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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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동백 기자 작성일21-03-01 20:11 조회2,5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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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독립혁명선언 102주년을 맞이하여, 제주케이블방송(KCTV)의 오승학선생은 “4.3특집방송ㅡ4.3이전을말하다.”라는주제로, 3.1시위 안덕면 관련자인 당시민청(조선민주청년동맹) 안덕면위원장 장진봉선생을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를 마친 오승학 선생은 다음과 같이 심경을 토로하였다.

“…오늘은 3월 1일 독립혁명선언 102주년 기념일입니다. 그리고 제주학살(1947. 3. 1-1954. 9. 24)이 시작된 관덕정학살이 일어난지 74년이 되는 가슴아픈 날입니다.

제28주년 3·1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나온 시위행렬을 구경하던 제주도민들을 향해 육지에서 온 미군정 산하 경찰은 무차별 총질을 했습니다. 6명이 죽고 6명이 다쳤습니다. 관덕정학살을 당하게 되자 제주도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분노하였습니다. 그뒤 도민들은 민관총파업으로 맞섰으나 미군정은 대량검거와 고문, 강제연행, 불법체포를 자행했습니다. 그리고 수만명의 제주학살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2월 26일 대한민국 제21대 국회는 역사상 처음으로 보상금 성격의 위자료 지급 등의 내용을 담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4·3법 제정 21년만에 전부개정했습니다.

인권신장과 이행기 정의 확립을 위한 획기적 개정입니다. 그러나 이 4·3법은 명실상부한 제주학살 피해배상법으로 재개정하기 위한 징검다리법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국회와 정부는 더욱 확실하게 제주학살 피해회복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4·3정신계승과 기억, 재발방지와 사회적 치유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오늘 관덕정학살 74주년을 맞아 모든 4·3영령들께 4·3법 전부개정 소식을 고하며 깊은 애도의 인사를 삼가 올립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오승학 선생이 진행한 장진봉선생과의 인터뷰 전문을 실는다.


오승학선생 질문: 47년 3.1절 안덕 등 전도에서 일어난 평화적 시위로 아픈 가족사를 겪게된 데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장진봉선생 답변: 저희 외조부님은 일제시대 1931년 4월17일 호세불납동맹을 결성하여 면사무소에 4차례 항의하고 납세고지서를 되돌리는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힘없고 가난한 농민에게만 과한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일제경찰에 잡혀가서 온갖 고초를 치러야 했습니다.

또 외조부는 지역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고취키는 노래를 교육하는 등 일제하 민족교육과 계몽에도 많이 노력하였습니다.

8·15해방이후 항일 운동가들이 중심이된 민청에 참가했고 안덕면 민청위원장으로 1947년 안덕면 3.1집회를 주도하였습니다.

미군정하였지만 정당한 민주주의의 기본권리인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통해 주민의 의사를 표출하였습니다.

민족분단을 원치 않았던 제주민중들의 신탁통치 반대와 더불어 당시 미군정이 지역사정과 흉년을 고려하지 않은 보리공출의 부당함과 전직 일제경찰의 등용으로 이반된 민심등이 어울어져 제주도에서 먼세가 가자약하다는 안덕지역에 1200명이라는 주민이 모였고 부면장도 공동으로 참여 하였습니다.

집회는 평화적으로 이뤄졌고 마을별 씨름대회를 하는 등 축제분위기 속에 3·1기념집회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관덕정 앞에서 일어난 3.1미군정산하 경찰 발포로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관덕정학살사건에 대해 민심 수습은 하지 않고 미군정과 경찰은 주동자 색출이라는 강경책으로 일관했습니다. 더구나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안덕면 3.1기념시위 관련자를 무리하게 잡아드렸습니다. 여기서 외조부님은 일반재판을 받아 1947년 4월 28일 8개월 징역형을 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되어 48년 1월 1일 출소합니다.

이후 신변에 위기를 느껴 4.3직전 일본으로 도피하였는데, 4.3발발 후 경찰은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외조부집을 임시수용시설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조부를 데려오라고 하면서 창자가 나오기 까지 온갖 폭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저 어머니의 할아버지, 저 어머니의 어머니. 저 어머니의 고모. 저 어머니의 언니가 경찰에 집혀갔고. 며칠후 모두 학살당하였습니다. 당시 6세의 어머니는 4명의 시신이 여러날 외양간에 방치된 것을 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두려움과 정신적 고통과 트라우마를 당해야 했습니다. 2살의 동생은 젖동냥을 하다 굶어 죽었고. 숙부. 고모, 아버지도 돌아가시거나 행방불명자가 되었습니다.

지역의 덕망있는 항일운동가요 민중의 열망을 표출한 평화적 3.1시위를 한 것때문에 8개월의 징역을 살아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남아 있는 가족을 무참히 살해하고 두 살의 아기까지 굶어죽게한 경찰과 군정 당국은 지탄 받아 마땅합니다.

오승학선생 질문: 당시를 기록한 여러 자료에 의해 47년 3.1 집회는 통일 조국을 위한 평화적 시위로 밝혀지고 있는데 미군정은 그 이후 왜 탄압에 이르게 됐다고 보십니까?

장진봉선생 답변: 최근 4.3평화재단에서 발간한 미국자료에서 보듯이 미군정은 3.1시위 발포로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관덕정학살사건을 폭동으로 왜곡하고 전직친일경찰을 옹호하는 문서가 발굴 되었습니다.

일정시대와 같은 곡물 강제공출과 일제경찰 등용 등 민심과 동떨어진 미군정의 정책실패와 부패, 그리고 이를 지적하는 자생적인 도민단체를 탄압하고 적대시 하였고. 합법적 3.1 시위를 불인정하였습니다.

3.1시위를 통해 제주도민의 민족통일과 자유 쟁취 의지가 엄청난 것을 현장에서 확인했지만, 미군정은 이승만정부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단독선거를 실시하는데 제주를 정부 정책의 큰 걸림돌이 되는 지역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리고 5.10 총선거에서 북제주군의 2개 선거구가 투표수 미달로 무효처리 된 것을 미군정에 대항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제주도민에 대한 탄압을 더 가혹하게 전개하였다고 봅니다.


오승학 선생 질문: 당시 미군정 당국에 의해 피해를 입었지만 여전히 미군정, 미국은 사과를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장진봉선생 답변: 당연히 미국정부는 미군정하에서 일어난 3만여명의 4.3제주학살에 대해 사과해야 합니다.

3.1시위 발포사건 이후 미 군정의 살인적인 탄압이 4.3항쟁을 낳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8.10. 4.3 70주년을 맞아 제주도민이 중심이된 국민 10만명이 미국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지를 미국대사관에 전달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습니다.

2018. 4. 시카고대 4.3 컨퍼런스에서 제주대 섬학회. 4.3도민연대가 미국에 사과를요구하는 발언도 했고 4.3수형인과 체험자들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였습니다.



2018년 4월 17일 시카고대학교 제주 4.3 컨퍼런스


또한 시민 사회단체에서 꾸준히 4.3제주학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답이 없습니다.

4.3개정안 국회 통과 등 4.3 해결에 대한 국민지지가 있고, 4.3군사재판 및 일반재판 무죄 판결이 잇다르는 만큼 이제 당시 국정최고 책임 위치에 있던 미군정의 과오에 대해 미국정부에 사과를 공식요청하고 미의회에 통해 4.3청원도 해야 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태평양 전쟁 시 미국거주 일본인 강제구금사건에 대해 지난 2월 19일 다시 사과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시절 일본계 미국인 코레마츠 등 강제구금사건을 치유하는 시민화해법이 제정되고 대통령 서명과 사과 배보상, 후세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최근 제주대 사회과학대 학생이 주축이 되어 미국의회 4.3인권법 제정 청원과 미국법원에 4.3재판을 청구하는 움직임이 있고, 미국 국토환경부 관리로 임명된 미 하워드대 교수 칼톤 워터하우스 변호사도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오승학선생 질문: 당시 3.1절 집회에서 드러난 도민들의 염원이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고, 대립과 갈등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진정한 화해와 상생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장진봉선생 답변: 정치인들과 종교계등 사회지도자들이 4.3을 이념적 잣대가 아닌 치유와 회복 의 관점에서 접근해야힌다고 봅니다.

서북청년단관 연관된 일부 종교지도자들과 극우단체의 4.3을 폄훼 왜곡하는 행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4.3특별법 개정을 통한 배보상도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4.3유족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언행은 없어야 할것입니다.

4.3치유와 회복을 위해 7년전 기독평신도들이 중심이된 치유와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 모임을 결성하여 어려운 4.3유족과 함께하며 4.3치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 등 종교계도 적극적으로 4.3치유에 동창하리라 생각합니다.


오승학선생 질문: 억울한 죄명으로 옥살이하셨던 외조부에 대해 명예회복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장진봉선생 답변: 국가는 4·3학살피해유족을 위해 이제는 피해회복을 해야 합니다.

4.3특별개정을 통해 3.1시위와 관련하여 일반재판으로 유죄를 받은 분들에 대해 법적회복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관련자 배보상과 함께 군사재판 수형인 등의 불법판결에 대햐 법률적회복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해방후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독립유공 서훈이 제외되고 있는것을 철회해야 합니다.

외조부에 대해서도 중앙지 신문기사. 검찰기록 등의 증거자료와 항일 노래와 교육을 받은 지역주민들의 증언이 있는 만큼 저희 조속히 독립운동가로 서훈하는 조처가 있어야 합니다.


-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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