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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청의 <국가보안법 내사종결>통보와 김광수 박사의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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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동백 기자 작성일21-02-09 02:38 조회2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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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이후 조국통일방침분석과 민간통일운동의 진로}라는 주제로 지난 6일 (2021년 2월 6일 동부시간 오후 8시, 서울 2월 7일 오전 10시)에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가 주최한 대동포 강연회의 초청강연자 김광수 박사가 강연 이후 같은날 저녁(서울 시긴 2월 7일 저녁 7시 6분)에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강연 이틀전인 (서울시간) 2월 5일, 부산광역시 경찰청 안보수사과로부터 [국가보안법 내사종결]이라는 등기우편을 받고 김광수 박사는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모든 이메일이 "털렸다"(도둑맞았다)고 하며 이로 인하여 강연의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토로하였다.

"...국가보안법에 굴종하고, 그 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보안법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다시한번 미력하나마 힘을 더 보태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본다..."는 김광수 박사의 페북글을 옮긴다.[민족통신 편집실]





김광수 박사

(북 정치학 박사/[수령국가] 저자/부경대 외래교수/평화통일센터 하나 이사장)



[국가보안법과 나];

국가보안법이 2021년 2월 7일 나의 강연를 포박했다.

하지만.... 본인은 어제(2/7, 한국시간) 6.15미주위원회에서 개최한 줌 강연에서 초청 강사로서의 강연를 하였다. 아주 중요한 강연이었다. 시기적으로나 주제자체가 매우 시의적절한 강연주제였고, 민간통일운동진영의 새로운 통일운동 진로모색이라는 측면에서 제법 묵직한 주제였던 것이다.

강연제목은 ‘조선로동당 제 8차 대회의 조국통일방침 분석과 민간통일운동의 진로’였고, 부제가 [변화된’ 통일정세와 요구된 ‘시대높이’에 걸맞는 자주통일운동을 새롭게 정립하자]였다.

그런데 그날 평소와는 달리, 내 스스로 강연내용의 전달력에 있어 좀 불만족 서러웠다. 왜 그러했는지는 아래에서 좀 살펴보고, 우선은 그날 강연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을 다시한번 상기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기간 통일운동이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상정해 왔다면, 북의 제8차 당대회 이후부터는 ‘결과로서의 통일’도 인식해야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둘째가,
기간 통일운동이 남북관계 개선에 중점둔 통일운동이었다면, [향후에는 자주에 기반한 통일운동]이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또한 나의 결론이었다.즉,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지향’ 방식에서 통일의 근본문제해결우선의 원칙에 의거해 미국의 대한반도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관점에서 통일운동을 그 본령에 맞게 전개해야 된다는 것이 강조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셋째는,
기간 통일운동의 담론체계가 선평화담론체계였다면, 이후부터는 그 평화담론체계를 통일담론체계로 전환해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단, 경계해야 것은 이 담론체계의 변화를 선평화,후통일이냐. 아니면 선통일,후평화냐의 이분법을 경계하면서 평화의 문제를 통일담론체계안에서 풀어나가야 하는, 즉 ‘통일로 평화를 추동하는’그런 통일과 평화의 관계를 정립시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결과적으로 그 내용전달이 잘되지 않았고, 그것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이다. 어제 강연(2/7)은 분명 그랬다. 왜냐하면 강연 도중 내 페이스가 흐트려진 측면을 내 스스로가 느꼈기 때문이다.

사달은 이렇게 발생했다.
2월 5일 퇴근길에 부산광역시경찰청으로부터 등기우편으로 받아 든 [국가보안법 내사종결]이라는 한통의 우편이었다.

비록 내사종결이 되어 다행이기는 했지만, 근 3년동안 난 나도 모르게 내사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끔찍하고 무서웠다. 그것도 촛불정부임을 자임하는 이 정부하에서...사족같지만, 내 아내는 내앞으로 온 우편물은 절대 뜯어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내 아내는 나의 우편물을 먼저 뜯어봤다. 왜냐하면 난 퇴근후에나 그 사실을 알았으니...

왈, '보안수사대에서 왔는데, 어찌 안 뜯어 볼 수 있느냐'는 것이 아내의 항변이었다. 2번의 국가보안법 구속 이력이 있는 남편을 둔 아내의 트라우마가 그렇게 작동하였던 것이다.

그 일이 있었지만, 난 강연준비를 나름 착실히 했다. 주제가 주제였던 만큼, 하지만 문제는 당일 발생했다.국가보안법의 악령이 강연 도중 ‘무력통일’ 운운할 때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순간 난 강연 스텝을 잃어버렸다.

식은땀이 흐르고, 강연 내내 자기감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내내 이 강연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강연 끝날 때 까지.....(정말 미안할 뿐이다.)

항변하자면, 나는 평소 늘 주변에 이렇게 입에 달고 다녔다. 2번의 국가보안법 구속 이력이 있는 나는, 내 스스로는 국가보안법에 절대 초연하다고.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번 강연을 통해.... 실제로 막상 국가보안법 내사종결이라는 수사쪼가리를 받아 든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향하고 있는 ‘실재하는’국가보안법의 위력에 엄청 놀란 것이다.

2번의 구속이 현상적으로는 국가보안법에 초연한 것처럼 만들었지만, 실상은 ‘이번 내사종결로 인해 언제든지 3번째 구속도 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가 내 마음속에 항상 내재되어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필 그것도 강연을 하루 앞두고 이 사실을 접했고, 강연주제가 주제인 만큼, 더더욱 더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비례해 그것이 강연 도중 무력통일 운운할 때 ‘자기검열’이라는 트라우마가 나의 강연 도중 인식장애를 주었다.

해서 그날 제 강연을 자세히 듣고 계셨던 분들은 강연 도중 논리가 좀 깨어지는 순간을 느꼈을 것이다. 그날은 분명 그랬다. 그것이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놈의 국가보안법 망령이 왜 하필 그때 내 뇌리를 스쳐가지고... 국가보안법 내사종결이 왜 하필 2월 5일에 통보되어 가지고 그렇게 강연에 영향을 미치게 했는지... 참으로 한편으로는 타이밍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또 분노서러웠다.내사를 받고 있는 줄 전혀 몰랐으니 그 충격은 더 큰 듯하였다.

그리고 아래 첨부된 사진자료에서 확인받듯이 [압수, 수색, 검증 집행대상의 범위]를 보면 그 기간이 무려 2012.1.1. ~ 2017. 10. 30일까지 나의 모든 메일 계정이 털렸다.

그리고 고발 접수된 시기가 2017년 10월 19일로 되어있었는데도 난 이 사실조차 까막케 모르고 있었다. 2021년 2월 5일 등기우편으로 받기까지 말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은 그렇게 무서운 세상이다. 늘 그러했지만, 이 사건으로부터 하루빨리 국가보안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졌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우리 모두의 조국, 북에 대해 양심적이고도 자유롭게, 내재적이면서 정직하게 마음껏 연구하고 실천하는 그런 대북전문가이자, 활동가이고 싶다.

그래서 강하게 다짐해본다. 비록 이번 사건이 나의 의지를 순간 흠칫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나의 국가보안법 철폐를 향한 전투력은 더 배가 되었음을.

이제까지 난 두 번 구속되었지만, 내 스스로는 단 한번도 국가보안법에 굴복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에 난 그걸 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음을.

그러니 앞으로도 국가보안법에 굴종하고, 그 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보안법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다시한번 미력하나마 힘을 더 보태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본다.

비례해 앞으로도 계속하여 내가 많은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북 정치학을 내재적 관점에서 전공한 만큼, 절대 흔들리지 않고 그 관점에서 북을 들여다보는데 결코 소홀히 하지 않음도 재차 다짐해본다.

늘 그러하더라도, 혹은 우연의 일치로 공교롭게도 2월 5일 국가보안법 내사 종결이라는 결정 통보받고, 2월 7일 강연 때 순간 흠칫했지만(흔들렸지만), 국가보안법이 결코 나의 양심과 지성을 이겨내지는 못할 것임을 다시한번 나는 확인한다.

해서 자평한다.
순간 논리가 좀 깨지고 흔들렸지만, 그래도 막판에는 정신을 좀 차려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다했다. 그날 강연이 그렇게 내용전달에 있어 좀 아쉬움이 남아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다시한번 나를 강건하게 다진 그런 강연이었기에, 여느 강연때보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운 강연이기도 했다.

또한 늘 그러해왔듯이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만들기 위해 혼신의 투쟁도 다해 낼 것이며, 굴하지 않고 대북전문가이자 실천활동가 답게 내재적 접근을 통한 북 바로알기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관점에서 조국의 완전한 자주적 통일을 향한 진전은 계속 될 것이다.
김광수라는 이름 석자를 분명 그렇게 새겨낼 것이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
그것을 난(김광수는) 그날(2월 7일)의 강연교훈으로 분명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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