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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 통일애국투사 기세문 동지 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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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0-22 07:59 조회5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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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비전향장기수로 복역하였고, 통일애국을 위해 헌신한 기세문 선생님이 통일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김영승 선생의 기세문 동지 조문을 싣는다 [민족통신 편집실]


[조문] 통일애국투사 기세문 동지 조문  <김영승>

통일애국투사 고 기세문 선생



광주 북구 구호전 장례예식장에 마련 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2020년 10월 22일)

기세문 동지는 1934년 1월 20일 광산구 임곡동에서 출생했다.

1953년에 광주사범을 졸업하고 교직생활을 했다.

1956년부터는 조국평화통일 동지회 조직건으로 2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58년에 출옥하여 농촌운동에 전념했다.

1961년에 민족자주통일 중앙회 대의원으로서 활동 중 5.16 박정희 군사 구테타로 말미암아 청소부로 가장하여 은신생활도 했다.

1971년 통일혁명당 재건위 건으로 구속되어 15년형을 받고 복역하다 1986년에 출옥해 계속 투쟁하다가 1990년부터는 자연건강교실 ,단식원을 개설하여 많은 사람들의 자연건강치료에 몰두하면서 조국통일 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고문으로 반미자주화 투쟁에 지도자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전남광주 양심수후원회 회장도 맡아 양심수 후원사업에 공적을 세우기도 했다.

2003년에는 백운산 전적비 건으로 책임을 지고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기세문 동지는 감옥생활에서 비전향 말살 책에 의한 고문구타를 많이 당해 그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투병생활을 하다 드디어 조국통일을 보지 못한 채 2020년 10월 21일 12시경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마는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광주 전남에서 남자 장기수 동지는 기세문동지를 마감으로 여성동지들만 몇 명 남았으나 흐르는 세월은 활동을 할 수 없는 할머니로 만들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으니 원한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다.

기세문 동지를 회고할 때 그는 우선 선비자세를 가지고 있으나 원칙성이 바르고 다정한 인간미가 풍기고 있는 다정다감한 성품을 가진 대중적인 투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후대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빈자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통일애국열사인 기세문동지시여!

동지의 생에는 우리민족사와 더불어 함께하고 있으며 동지가 투쟁에서 남긴 고귀한 경험과 교훈은 대를 이어가는 후대들에게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조국통일의 길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사모님이 생존해 있으며 2남의 자제를 두고 있으나 아들 하나는 1980년 5.18민중항쟁 때 의문의 죽임을 당하여 5.18민주ㅡ묘역에 묻혀 있고 남은 아들은 모대학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늘 8시에 추모식을 갖고 23일 화장해 5.18민주묘역에 안치된 아들 묘 옆에 안장한다고 했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일정 때문에 조문만하고 양희철 동지와 함께 상경길에 올랐다.

2020년 10월 22일 밤 11시 김영승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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