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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신선생 아들 최인국선생 북부조국에 영주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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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7-07 12:15 조회1,71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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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신, 류미영 전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선생이 영주하기 위해 북부조국을 도착해 도착소김을 발표했다. <우리민족끼리>가 보도한 기사 2개를 여기에 동시에 게재하여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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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국.jpg

 

주체108(2019)년 7월 6일 《우리 민족끼리》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선생 평양 도착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7월 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리명철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관계부문 일군들이 동포애의 정을 안고 맞이하였다.


그는 비행장에서 도착소감을 발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자기 가문에 베풀어주신 사랑은 3대를 이어 끊임없이 계속되고있다고 하면서 그는 가문이 대대로 안겨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며 또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는 끝으로 부모님들의 유지대로 조국통일위업에 남은 여생을 깡그리 바칠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주체108(2019)년 7월 6일 《우리 민족끼리》

 

평양에 도착한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선생 도착소감 발표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평양에 도착한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선생이 비행장에서 도착소감을 발표하였다.

최인국선생이 발표한 도착소감발언은 다음과 같다.

 

저는 오늘 선친들의 유해가 있는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평양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 가문의 애국의 넋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평양의 애국렬사릉에는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이모할머니 이렇게 다섯분의 유해가 안치되여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장군님, 김정은국무위원장님께서 저의 가정에 베풀어주신 대해같은 사랑과 배려는 저의 할아버지대에서부터 시작되였으며 오늘까지 3대째 변함없이 이어져오고있습니다.


민족의 한울님, 구세제민의 태양이신 절세위인들의 품에 안기였기에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세상 만복을 다 누리며 통일애국성업에 여생을 바쳐올수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 가문이 대대로 안겨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였습니다.


제 나이 일흔고개를 넘었지만 저의 인생은 이제 첫 시작이라는 각오와 결심을 안고 부모님들의 간곡한 유지대로 경애하는김정은국무위원장님의 령도를 받들어 조국통일위업실현에 저의 남은 여생을 다 바치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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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홍준님의 댓글

박홍준 작성일

위키피디어에 벌써 최인덕의 월북에 대하여 입력이 되어있네요. 
https://ko.wikipedia.org/wiki/최덕신

"김일성이 다니던 만주의 화성의숙 교장이었던 최동오의 아들이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이다.
일제강점기 중국 중앙군관학교를 졸업하고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1946년 귀국하여 최동오와 장인 류동열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 1947년 봄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특별반 3기생으로 입학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소위로 임관하였다. 최덕신은 소위 임관 뒤 소령으로 특별 진급하였다. 최덕신은 대전의 2연대 연대장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중령으로 승진했다. 2연대 연대장직을 수행하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3] 국방부는 1948년 12월 15일,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던 최덕신 등 8명의 중령을 대령으로 특진발령하였다.[4] 1949년 미국 포트 라일리(Fort Riley) 육군포병학교를 졸업(초등군사반), 1950년 미국 포트 베닝(Fort Benning) 보병학교를 졸업(고등군사반)하였다. 또한 제3사단장(1949년 5월 12일~)[5] 과 국군 제1군단장을 거쳐 육군중장으로 예편하여 5.16 직후 외무부 장관을 거쳐 1963년 8월 9일, 서독주재 대사로 임명되었다.[6][7] 서독 대사 이후 67년부터 천도교 교령으로 활동했다. 또 통일원 고문, 주 베트남 공사, 한중일보 사장(1972년) 등을 지내다가[8] 1976년 미국으로 망명했다.[9]
이후 1986년 4월 아내 류미영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갔다.[10] 86년 9월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에 영구 귀국하겠다고 발표했다. 차남 인덕씨를 포함 당시 성인이었던 자녀 다섯은 남한에 놔둔 채였다..[1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청우당 당수 외에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의 여러 직위를 맡았으며, 조국통일상도 수상했다. 2007년 기준으로 유해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어 있다.[12]
북한의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 중 첫 부분인 1부부터 4부까지의 모델이 최덕신이다.[13]
최덕신.류미영 부부는 2남 3녀를 뒀는데, 장남은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거주해온 차남 최인국은 부모의 월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왔으나 북한에 영구 거주하기 위해 2019년 7월 6일 평양에 도착했다.[14] 막내딸 순애 등 세 딸은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최덕신
최덕신(崔德新, 1914년 9월 17일 ~ 1989년 11월 16일)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가이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거창양민학살사건 관계자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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