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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rown>[보도]미주지역 김양무열사 2주기 행사</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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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2-01-26 00:00 조회1,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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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무열사를 기리는 미주지역의 2주기 추모행사는 감동적인 순간들로 진행됐다. 우리 말이 서툴은 2세들을 비롯 이곳 민족민주운동 단체들의 대표들 및 사회단체 인사들 5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김양무 열사>에 대한 2주기 추모식과 함께 고인의 철학과 그가 미주땅에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는가에 대한 가슴 뜨거운 간증과 진지한 토론시간들로 알차게 진행됐다.

kym-09.jpg[사진은 백승배 미주추모사업회 회장(오른쪽)이 "2주기 추모사"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통일열사 김양무정신계승 2주기 미주추모의 밤>은 또 참석자들이 "청년 김양무"로 결의하는 뜻깊은 순간이기도 했다. 25일 밤 로스엔젤레스 남가주노동상담소에서 <김양무열사 정신계승미주추모사업회>(회장:백승배 목사) 주최로 개최된 이날 행사는 1부에서 개회사, 추모묵념, 추모사, 비데오상영(90년대 통일운동사와 "찬란한 통일조국의 품안에서 부활하라!-김양무 열사의 투병기), 2부에서 조지환(Jimmy Cho)씨(민족통신 영자기자, 2세)가 영어로 "김양무는 누구인가, 그의 철학은 무엇인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주제발표에 이어 비데오 감상에 대한 소감 및 토론순서로 이어졌다.

백승배 회장은 김양무열사 2주기추모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2000년 1월 26일 "나를 평양으로 보내주오"라는 말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난 김양무 선생을 기리며 여기 모였습니다. 생각하면 그가 육성으로 이 땅에 남긴 마지막 이 한 말 "나를 평양으로 보내주오" 라는 이 한 말은 그의 일생을 하나로 묶는 말과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이 말은 곧 김양무 선생이 발을 디디고 살던 이 땅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와 함께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집약한 말입니다. 이 말은 김양무 선생뿐 아니라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우리 모두 단군자손들의 실존과 모든 소원을 집약한 말이라 하겠습니다.

kym-10.jpg [사진은 참석자들이 개회에 이어 김양무열사 2주기를 기리며 모두 기립하여 묵념을 시작하는 모습]

"이말은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분단으로 인하여 남과 북을 마음대로 왕래할 수 없고, 북에서 그를 초청하였어도 <국가보안법>이란 틀에 묶이어 민초들은 마음대로 갈 수도 없는 ‘굴레’의 현실을 말해줍니다.

"이 말은 1000만 이산가족들의 꿈, 그리던 고향땅을 밟아보는 꿈이 무산되어, 많은 이산가족들이한을 품은채이 세상을 떠났고, 아직도 많은 이산가족들이 그리움과 고통속에 통일의 그날, 만남의 그날을 바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 말은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난지 57년이 가까워지도록 우리는 아직도 해방된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 분단된 땅 저 너머의 백성들도 우리 겨레이건만 마음대로 포옹할 수 없는 채, 우리는 빼앗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자주국가도 해방된 국가에서도 아닌 식민지의 백성처럼,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kym-08.jpg[사진은 추모행사장 뒷편에서 촬영에 몰두하는 청년들과 동시통역기를 귀에 부착하고 영어로 통역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경청하는 청년들의 모습]

"오늘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뜻은 김양무 선생께서 그 온 몸을 바쳐 우리 겨레를 껴안으려했고, 민족자주, 민족해방, 민족통일을 위해 사는 것이 이 땅에 살아있는 자들의 할 일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다짐하며, 그의 뒤를 따르고자 함입니다.

"김양무 선생은 말로 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북의 형제자매들을 포옹하고저 했고, 분단을 넘어 통일의 그날을 가져오고저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양에 가고자했던 뜻은 무엇입니까? 고문과 옥고로 얻은 불치의 병을 행여나 고쳐볼까하는 바램때문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마지막까지 원한 것은, 아직도 이 땅 일부에서 그토록 동족을 미워하며 종의 삶을 살며 자신의 영화를 누리고저 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우리를 갈라놓고 자신의 영욕을 구하는 자들에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평양에 가서 북조선의 형제자매들을포옹함으로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요 형제자매"라는 것을 증언하고자 함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범민련전사 그리고 통일의 일꾼 여러분, 한반도에 불던 찬바람이 클린턴대통령 집권시절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더니 부시정권에 이르러 다시 찬바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제나라 이익을 위하여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망각하고 저들은 그런다치더라도, 어찌 이 땅에 사는 자들 가운데 그들의 나팔소리 북소리에 맞춰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자들이 이다지도 많은 것인지! 그러나 역사는 깨어있는 자들의 것, 우리 일찍이 깨어 우리의 갈길을 밝힌 김양무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제2, 제3, 제1,000, 제10,000의 김양무로 일어나 6.15 공동선언을 실천하여 민족자주통일의 역사를 일구어 참다운 자유, 정의, 평등의 나라를 이룩합시다.

"마지막으로 슬픔을 사명으로 승화시켜 새역사의 날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일하시는 양은찬여사와 진아, 진경 두 따님과 여기 김양무 선생을 추
모하며 통일의 일꾼되기를 다짐하는 여러분께 박수를 보내며 추모의 말을 마칩니다"라고 감동적인 추모사를 발표했다.

kym-03.jpg[사진은 우리 말이 서툴러 영어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조지환(Jimmy Cho)씨가 김양무열사의 민족철학과 그의 생애에서 배웠던 교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2부에서 영어로 주제발표를 한 조지환(영어 이름은 지미.조)씨는 <김양무열사 그는 누구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 다음 김양무 열사는 1950년 9월21일 태어나 2000년 1월26일 서거하신 분이라고 소개하고 그는 94년 7월5일 광주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지역조직을 꾸리려다가 구속된 이래 95년 11월29일, 97년 7월19일, 98년 8월15일 등 4차례에 걸쳐 투옥된바 있었다. 그는 99년 8월13일 검찰에 의해 체포령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단식투쟁, 농성투쟁을 벌이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했고 범민련과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 철회를 촉구하며 온몸으로 투쟁했다. 김양무열사는 서거전 자신이 옥중에서 얻은 암으로 치료석방이 되었으나 암투병을 하면서도 자주민주통일운동의 일선에서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실천해 온 분이라고 설명했다.

kym-04.jpg [영어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2세 조지환씨]

조씨는 둘째로 <김양무열사가 지녔던 민족철학은 무엇인가>에 대해 물은 다음 이에대해 답했다. 그는 1972년 7.4공동성명에서 남북당국자들이 밝혀놓았던 3대원칙을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강대국의 간섭이 없는 자주성의 실현,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통일추구, 그리고 남북 해외동포들이 <하나의 조국관>을 갖고 민족의 대단결로 극복하는 입장이 그의 철학이며 통일을 이루는 원칙들이라고 지적했다.

조씨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김양무열사의 생애에서 무엇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김양무열사의 말을 상기시켰다. "통일운동은 머리만으로만 하는것이 아니라 가슴과 발로 실천해야 한다". 김양무열사는 우리에게 투쟁과 원칙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가슴깊이 새겨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양무열사를 생각하는 한편 미국의 민권운동가 두사람을 떠올려 줬다. 후레데릭 더글라스는 투쟁없이 발전없다고 했고 마틴 루터 킹 2세는 해방은 지배자에 의해 으례히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 지배받고 탄압받는 자들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김양무열사의 교훈은 미국민권운동 인사들과의 맥락과도 유사한 점들이 있다고 분선하기도 했다.



한편 주제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참석자들의 소감과 토론도 감동적이었다. 참석자 가운데에는 전대협 4기대의원도 있었고 종교계인사들, 상공인, 미국서 어린시절 자라난 청년학생, 전문인, 평범한 주부 등의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kym-05.jpg옆자리에 앉아 토론시간에 진행되는 소감 및 토론발언을 진지하게 청취하고 있는 참석자들의 표정들]

김양무열사의 생애를 접하면서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참석자도 있었고 "머리로만 생각하던 통일의 문제를 가슴과 발로도 해야한다"는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참석자, <살신성인>의 삶을 맛보았다는 참석자, 이민온지 10년이 되어 고향에 무척 가고 싶었는데 반세기 이상 떨어진 이산가족의 아픔을 느끼고 살아온 실향민들의 아픔을 한층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며 눈물을 적시며 김양무열사의 투쟁은 이런 분들의 한을 풀어주자는 투쟁의 삶이었다고 말하는 참석자, 원칙과 실천투쟁을 강조한 깊은 뜻을 되새기게 된다며 김양무열사의 삶을 이어받아 청년 김양무가 되겠다고 결의하는 참석자, 전에는 김양무열사를 잘 몰랐는데 오늘 행사를 통해 김양무열사에 대해 알게되어 다행이라고 말하는 참석자 등 느끼는 소감과 의견들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이날 토론시간은 너무나 진진한 분위기였다. 마치 종교적 간증의 시간과도 같은 순간들로 이어져 토론참석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김양무 열사의 위대한 정신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는 모습들이었다. 필자 또한 이날 행사분위기에 흠뻑 빠져들기도 했다. 폐부에 와 닿는 숨소리와 맥박소리, 김양무열사는 부활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끝)

[민족통신 이용식 편집위원 1-26-2002 ysik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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