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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특집](4) 진보정당의 발자취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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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0-12-25 00:00 조회1,8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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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略史 진보당(1956년 창당, 조봉암의 검거로 인해 와해됨) → 제2공화국 혁신정당들(5·16쿠데타로 인해 소멸됨) → 군사정권 하의 암흑기 →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1988년 창당. 대중적인 정당건설에 실패) → 민중당(1990년 창당. 92년 총선에서 1.6% 득표로 해산됨) → 국민승리21(1997년 권영길 후보 대선출마) → 민주노동당

① 진보당 진보당은 1956년 1월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5.15 정.부통령 선거에서 조봉암 대통령후보가 216만표를 얻는 성공을 거둔 뒤 이를 바탕으로 1956년 11월 창당되었다. 중도좌익과 한민당계 그리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일부 우익 등 복잡한 인적 구성으로 출발하였으며 평화통일을 내세운 통일정책을 제외한다면 당시의 보수정당과 정책상 별차이를 갖지 않았다. 주로 조봉암 개인의 정치력에 바탕한 상층연합의 성격이 강했던 진보당은 대통령선거에서의 성과를 대중적 기반의 확대로 발전시키지 못하였으며 (진보당사건의 공판기록에 의하면 57년 말 현재 당원 수는 1천명이 안된다) 1958년 1월 이승만정권의 탄압으로 조봉암이 검거되자 두 달만에 와해되었다.

② 제2공화국의 혁신정당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사회혁신당, 통일사회당 등 1960년 4월 혁명 직후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나타난 4개의 혁신정당들도 급진적인 통일 정책 외에는 별다른 실천력을 보이지 못했으며 인물중심의 상층 정치활동과 고질적인 분파대립으로 일관하다가 7.29선거에서 참패하고 결국 5.16 쿠데타로 소멸되고 말았다. 그후 합법적인 활동공간을 잃은 이들 잔존 진보세력들은 분산고립 되거나 지하당 건설로 나섰으며 1,2차 인민혁명당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해방전략당 사건, 남민전 사건 등으로 불리우는 집중적인 탄압으로 전전(戰前)세대는 사라져 갔다.

③ 군사독재정권 하의 혁신정당 5.16 쿠데타 이후 87년 대투쟁까지의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1967년에 통일사회당, 1981년에 민주사회당, 1982년에 신정사회당, 1985년에 사회민주당 등이 혁신정당이라는 명분으로 건설되었으나 이들은 과거 진보정당운동의 맥과는 단절된 세력이었으며 군사독재 정권의 외교적 필요에 의해 배려된 정치적 장식물에 불과하였다.

④ 민중의 당, 한겨레민주당 1988년 3월 진보블럭은 제 13대 총선을 앞두고 민중의 당을 창당하였다. 민중의 당 창당은 수십년간 단절되었던 진보정치운동의 재개를 알리는 역사적 의미를 안고 있었다. 그러나 민중의 당은 당시 진보적인 정치역량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은 아니었다. 30개 지구당에 1천여명의 당원이 참가했을 뿐이었다. 민중의 당이 보다 급진적인 젊은 세대의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출신자로 이뤄진데 반해 거의 동시에 창당된 한겨레민주당에는 진보블럭의 보다 온건한 일부 세력들이 참가하였다. 민중의 당은 1988년의 총선에서 의석을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50여일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였지만 출마한 15개 지역구에서 평균 4.3%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연 것으로 평가되었다.

⑤ 민중당 90년 11월에는 민중당이 창당되었다. 51개 지구당에 2천여명의 당원이 참가하였다. 민중당은 1991년 지방선거에서 42명이 출마하여 1명의 당선자를 내었다. 적은 출마자와 더 적은 수의 당선자로 민중당은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13.27%라는 꽤 높은 출마지역 득표율도 그들을 위로할 수 없었다. 게다가 민중당은 좌로부터는 무원칙한 유연성으로 비판받고 있었으며 우로부터는 과격한 이미지로 경계 당하고 있었다. 1992년 1월 합법적인 노동자정당 건설을 목표로 한국노동당창당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5천여명의 노동운동가들이 결집한 이 세력은 민중당이 노동자 등 하층계급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별도의 정당을 만들고자 했으나 1992년 총선을 앞두고 결국 민중당과 통합하였다. 민중당은 1992년 3월 선거에서 51명이 출마하여 출마지역 평균 6.5%의 득표율을 기록하였으나 한 석의 의석도 내지 못한 채 법적으로 해산 당하였다. 제14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패배로 민중당이 해산된 후 4년만에 실시된 1996년 제 15대 총선에 이르기까지 진보정당은 재건되지 못했다.

⑥ 국민승리21 1996~97년 노동법 개악에 맞서 총파업을 벌였던 민주노총은 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선거를 발판으로 진보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선거에 민주진보진영의 독자후보를 내기로 결의한다. 전국연합, 정치연대 등 다른 정치세력도 민주진보진영의 독자후보를 결의하고 민주노총과 함께 대통령 선거를 위한 대책기구인 국민승리21을 결성한다. 국민승리21은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선출하여 선거에 참여하는데 30만 6천여표의 득표에 그친다. 진보정당 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선을 위해 급조된 정당인 국민승리21이 가지는 한계는 너무나 뚜렷했던 것이다. 대선에서의 작은 성과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정치활동을 펼쳐나가기 위해 국민승리21은 새로운 진보정당을 준비하는 조직으로 전화한다. 이후 98, 99년 진보정당 창당의 과정에 국민승리21 이외에도 민주노총, 전국빈민연합 등의 대중조직과 많은 정치조직들이 참여하여 오늘의 민주노동당에 이르게 된다.

[2000년 3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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