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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그리스도교 여성운동과 민족통일-김애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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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4-02-08 00:00 조회2,4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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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제 논문은 2004년 2월7일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통일연대 학술연구특별위원회와 범민련재미본부, 재미동포서부연합회가 2004년 2월7일 공동주최하고 민족통신, 크리스천헤럴드, 민주노동당 미주후원회, 통일맞이나성포럼, 내일을 여는 사람들이 공동후원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심포지움"에서 발표된 내용이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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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동체를 향한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운동과 민족통일


김 애영(한신대 신학과 교수)
skay25@yahoo.co.kr


Ⅰ. 시작하는 말


tongilyondaesym-11.jpg 핵무기를 비롯한 첨단무기의 획기적 발전과 전쟁의 광기와 참상, 생태계 파괴와 오염, 자원의 고갈로 인한 위기에 직면해서 생명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대두하였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몰트만이 말했듯이, 우리는 1986년 "체르노빌"사건과 1991년 아버지 부시가 도발한 "걸프만 전쟁"에서 죽음에서 생명에로 전향할 것을 요구하는 재난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에 까지 이를 것처럼 보이는 21세기의 유전공학 생명공학의 무한 질주와 도전에서 나타난 과학기술의 발전은 생명에 대한 집중을 더욱 더 가속화시키고 있다. 1990년을 전후에서 일어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구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야기된 자본주의 단일체제, 한마디로 오늘의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를 맞아 빈부격차의 심화와 빈곤의 확산, 중산층의 붕괴와 사상초유의 실업률, 도덕적 기반의 붕괴, 공통 가치의 잠식, "폭력 문화의 급격한 확산"등 전세계가 앓고 있는 중병의 징후들은 인간 공동체 생명공동체의 파편화를 심화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관심은 결코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학의 장에서 특유하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에 집중하는 세계의 흐름에 그리스도교 교회와 신학도 함께 동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이 글에서 생명이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생명 개념에 대한 다양한 규정에 대한 이론적 모색을 논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나는 이제 지구화가 초래하는 세계 불평등과 빈곤, 사회적 차별과 배제, 생태계 파괴에 직면해서 벌어지고 있는 전세계의 힘겨운 고투를 고려하면서 오늘의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이 지향해야 할 민족통일의 과제를 요점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Ⅱ. 몸말

1. 생명 공동체를 위협하는 "문제들의 지구화" 현상


새로운 세상과 새 천년의 비전을 꿈꾸기에는 너무도 각박하고 혹독한 상황에 떨어져 있는 나라들이 전 세계에 널려 있지만 몇 년전 인류는 새 천년 맞이로 온통 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지금, 그 우울했던 전망이 전혀 근거 없는 비관론이 아니라 절박한 현실임이 하나둘씩 입증되고 있다. 2003년 여름 유럽은 일찍이 겪어 보지못한 살인적 폭염으로 수많은 사망자, 특히 홀로 사는 수많은 노약자들이 사망했는가하면, 우리나라는 거의 매 주말마다 끊이지 않은 비로 인하여 이제 한반도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를 낳고 있으며, 2004년 겨울 동구와 미 동북부에 불어닥친 한파와 그 지구 반대편을 휩쓴 폭우등 기상이변은 생태계 파괴를 일삼은 인류에 대한 자연의 보복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우리는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에 의해 한 주권국가가 어떻게 능멸 당하고 있으며, 그 소용돌이 속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민중들이 어떻게 뿌리째 뽑혀 힘겨운 생존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목격하고 있다. 한반도 핵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북미간의 공방과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적대적 태도는 우리 민족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지구촌 전체를 보면 인구 폭발이 전쟁보다 무서운 기세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선진국들을 뒤이어 남한도 저출산과 인구의 고령화로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에 의한 노동파업은 이제 옛말이 되었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됨에 따라 잉여노동력에 의한 각국의 실업문제는 "자본의 파업" 문제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이렇듯 지금 지구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멸절의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가 그 어떤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노력은 줄을 잇는 궁핍한 자들의 자살행렬과 인간의 탐욕에 의해 이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멸종의 위기에 처한 수많은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예의요 배려일 것이다.

김여수는 한 논문에서 여러 자료들을 동원하여 다음과 같이 "문제들의 지구화"(The Globalization of Problems)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물결에 예외 없이 포섭된 남한의 사회현상에도 거의 무리 없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 통제되지 않는 인류의 확산
* 사회적 혼돈과 분열
* 사회적 불의
* 기아와 영양실조
* 만연된 빈곤
*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
* 인플레이션
* 국제 무역과 금융 붕괴
* 보호무역주의
* 문맹과 시대착오적 교육
* 젊은이들의 반항
* 소외
* 통제되지 않는 도시의 만연 혹은 확장과 쇠퇴
* 범죄와 마약
* 고문과 테러리즘
* 법과 질서의 무시
* 원자핵의 어리석음
* 제도들에 있어서의 질병과 부적합성
* 부패
* 관료화
* 환경의 악화
* 도덕적 가치의 하락
* 신앙의 상실
* 이상의 문제들의 이해의 결핍과 이 문제들의 상호관련성 이해의 결핍

김여수가 소개한 저 "공통적인 지구적 문제들"의 목록들을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터이지만, 지구 경제 혹은 시장화가 초래한 바, 세계의 균질화를 지칭하는 "맥도널화"(Mcdoaldization)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김여수가 소개한 저 문제들의 나열된 목록들은 도대체 저러한 현상들이 왜 그리고 어떤 세력들에 의해 야기되었는가하는 것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지난 1백년 동안 지금처럼 높은 실업률을 기록한 적이 없었고 소득이 지금처럼 불평등하게 분배된 적도 없었으니, 이는 모든 경계를 넘어 지구촌을 대상으로 하는 무역과 외국투자는 엄청나게 증가하나 그 동안 세계의 빈부격차간 소득의 차이는 일찍이 인류가 전혀 경험한 적이 없는 극단적 방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를 초래한 "야만적 자본주의" "패권적 자본주의" 경제를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E. 볼딩(Kenneth E. Boulding)은 "카우보이 경제"(cowboy economy)라고 부른다. 오늘의 지구화를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와 본질을 논한 글에서 삐에르 브르디외(P. Bourdieu)는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목표란 한마디로 모든 공동체들(collectives)을 남김없이 말살하는 것이라고 핵심을 꿰뚫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철학의 기수이자 생물학적 진화론을 사회 진화에 그대로 적용한 오스트리아 출생의 프리디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1899-1992)는 근대 서구의 흐름에 있어서 사회주의와 복지주의의 물결을 차단하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앵글로색슨 원칙을 복권시키는 일을 자신의 일관된 과제로 삼았다. 사회를 계획적으로 건설하거나 변혁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오직 헛수고일 뿐이며, 인간 지식은 파편화된 개인의 지식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통합된 전체로 존재하는 지식이란 없으며, 사회적 진화과정에서의 불평등이란 자연스런 과정이므로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주장하면서, 심지어 가난한 자, 노동자, 후진국들은 부자, 자본가, 선진국에 대해 "생명을 빚지고 있다"고 강변할 정도로 그의 사회철학은 사회정의와 분배정의에 대한 노골적 부정으로써 애당초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반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는 이러한 하이에크를 영적 스승으로 삼아 "사회란 없다"고 주장하면서 탈규제와 사기업화 혹은 민영화라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정책을 관철시켰으며, 미국의 레이건 전 대통령 역시 하이에크의 대표적 추종자이다. 이들이 관철시킨 영국과 미국의 민영화된 전력산업 규제완화와 물공급 사기업화는 2003년 5천만명을 암흑으로 내몰았던 미 북동부와 캐나다 일부 지역의 정전사태라는 테러보다 무서운 재앙으로 극명하게 나타났다. 이런 폐해가 속출하는데도 지구 자본주의의 그물망에 포섭된 남한 역시 김대중정권과 현재의 노무현정권 신자유주의 정책 따라하기에 의해 민영화와 탈규제가 김대중 정권시절에 상당부분 완료되었고 현정권에 의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기초해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전쟁과 시장지배의 일차적 희생자들은 노동자, 특히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단순 노동자들, 경쟁력을 상실한 노인들, 장애자들, 빈민들등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과 소외자들이며, 지구화의 수혜자들은 각 나라의 정부안에 있는 초국적 기업들의 동맹자들, 그리고 새로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게된 WTO(세계무역기구), IMF(국제통화기금), IBRD(국제개발은행)과 같은 국제기구에 종사하는 세계 무역관료들이다. 충천하는 자본에 의한 새로운 계급전쟁 혹은 갈등의 격렬화 양상이 생명 공동체의 말살을 지구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보편적 진리와 합의를 추구하는 근대 계몽사상의 거대담론이 전체주의와 내적 연관을 맺고 있다고 하여 거대담론에 맞서서 "이질성" "차이"를 내세우는데 "총체성에 대한 전쟁을 걸어보자"라는 말로 거대담론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F. 리오타르 류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마가렛 대처와 같은 이유에서 전체로서의 사회라는 인식에 반대하며, 거대담론을 무의미한 것, 흘러간 낡은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 비인간성, 야만성에 대해 침묵한다. 이점에서 우리는 자본의 논리가 전지구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테리 이글턴과 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2. 생명공동체를 향한 지구적 "위대한 거부" 운동


H. 마르쿠제가 1955년에 발표한 『에로스와 문명』에서 그는 유토피아와 저항과 보편 개념의 상관성을 설파했는데, 그는 1960년대 동안,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갈 경제 사회 체제와는 절대로 손잡지 말라는 명령의 의미로 "절대적 거부"라는 것을 주창했다. "절대적 거부"가 정치적 색채를 띠고 있지만, 그는 예술과 상상력의 세계에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는 것이다. 편협한 현실주의를 거부함으로써 상상과 환상의 세계에서 진리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분석의 결과를 "위대한 거부"라는 한마디로 요약하였다. 위대한 거부는 불필요한 억압에 대한 저항이요, 궁극적인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 마르쿠제는 "위대한 거부"라는 단어를 A. N. 화이트헤드로부터 빌려왔다. 화이트헤드는 예술과 비평에서 보편개념이 특수한 경우를 포괄하며 초월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별성과 다양성을 찬양하는 오늘의 포스트모던적 사고가 초래한 보편 개념과 거대 담론, 혹은 총체성에 대한 무분별한, 노골적인 거부와 불신이 지닌 함정을 지적하면서 화이트헤드와 마르쿠제의 "위대한 거부"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 러셀 자코비(Russell Jacoby)는 " "위대한 거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위대한 거부"를 본능적으로 저항의 역사적 근거로 받아들인다. 억압적인 사회와의 협조를 거부함으로써, "위대한 거부"는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신념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반대로 정치적으로 혁신을 주장하더라도 보편 개념을 제국주의적인 것으로 거부한다면, 그것은 다른 세계를 꿈꾸는 열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독일의 신학자 몰트만은 단테가 지옥의 입구에 써 붙인바, "이곳에 들어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리시오"라는 문구에 의거해서 지옥이란 바로 희망을 상실함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과연 우리는 거대한 맘몬적 지구화에 짓눌린 채 모든 희망을 상실하고 말 것인가?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의 지구화" 목록들을 매우 건조하게 제시한 김여수는 1970년대와 80년대 동안 내내 국제적인 컴뮤니티는 진전하고 있는 위기의 지구적 차원을 헤아리기 시작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이에 대한 국제적 노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공동적 지구적 문제들"로 대두한 지구화에 대항하는 보다 더 직접적이며 행동적인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 생명 공동체를 향한 "위대한 거부" 운동에 집중해 보자.
지구화에 반대하는 국제시민운동이 1999년 6월 70개국 대표들을 포함하여 약 1천여명이 참가한 파리에서 개최되었다. 1999년 11월 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전 인류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 WTO 에 대항하는 반대시위가 전세계에서 일어났다. 이 WTO회의에 앞서서 10월 22일 프랑스에서는 유명 영화배우 쥘리엣 비노슈, 이자벨 아자니, 미테랑 전 대통령 부인 다니엘 미테랑 등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WTO 에 반대하는, 브레이크 없는 지구화 과정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또한 11월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국제 민중행동"이라는 단체의 회원들이 "WTO 가 사람들을 죽인다, WTO를 해체시키자!(WTO Kills People, Kill The WTO!)라는 현수막을 건물 밖에 내걸고 WTO 본부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남한에서도 민노총, 사회진보연대, 민예총 등 20개 단체로 구성된 "투자협정 밀레니엄 라운드 반대 민중 행동"이 서울 명동 한 복판에서 제1차 대중 캠페인을 벌였으며, "밀레니엄 라운드 반대 행동주간" 을 선포하고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인바 있다.

이처럼 세계 80여개국 1300 여개 단체가 뉴 라운드 혹은 밀레니엄 라운드에 대한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으며, 세계 자본주의 구조를 대표하고 있는 WTO에 맞서서 그 불의한 방향을 바꾸기를 촉구하는 세계민중들의 항거는 "우리의 조그마한 목소리가 한 곳으로 모아질 때, 밀레니엄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전세계 민중이 초국적 기업에 앞서 건널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1968년 5월 프랑스 학생운동에서 시작된 68혁명에 관한 연구자,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저는 21세기에는 68혁명보다 더 세계적이고 더 동시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장만능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전파의 일등공신인 세계화 혹은 지구화는 그것의 파열을 이룰 "혁명의 세계화 동시화"를 이루는 기제로도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의 세계화 동시화"의 표징들로 읽어 낼 수 있는 사건들을 좀 더 살펴보자. 프랑스 국경도시 에비앙에서 경제선진 8개국 연례 정상회의(G8)가 개막된 2003년 6월1일에 맞추어 에비앙에서 제네바에 이르는 길은 전세계에서 몰려든 약 10만명의 대규모 반 G8 시위대로 채워졌다. 이 집회는 이라크전 이후 이른바 "반지구화 반전"운동 진영이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한 첫 대규모 집회였다. 약 1천만명 이상이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 2003년 2월 15일 이라크전 반대시위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반 G8 시위 집회는 이라크전 이후 반지구화 반전운동의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2월15일 반전 시위가 "전쟁반대"를 기치로 내걸었다면, 이번 행사조직위원회는 "부시를 막아라"(Stop Bush)를 주된 구호로 채택하였다. 2001년까지 G8 반대집회의 최대 의제는 외채탕감이었으나 9.11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G8 회의는 경제 중심에서 대테러전쟁과 군사안보로 중심축이 기울었다. 또한 2003년 9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에 앞서서 이에 대응하는 전 세계 수 백개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개최한 여러 토론회에서 채택한 대표적 구호는 "부시를 막아라" 와 함께 "칸쿤을 탈선시켜라" (Derail Cancun)라는 구호였다.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시작된 제1회 세계사회포럼(WSF)는 2004년 1월 인도 뭄바이(전 봄베이)에서 제4차 WSF가 개최되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WSF의 공식 표어를 "부시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 "제국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변형된 구호를 내세운 132개국에서 온 1600여 NGO에 속한 약 10만여명이 참가하였다. 야만적 자본주의의 승리에 의해 인류는 이제 자본주의 이외의 다른 어떤 종류의 대안을 논하거나 상상할 수 없는 상태에 떨어져 있는 것 같으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구화에 대한 "위대한 거부"를 통하여 "혁명의 세계화 동시화"의 조짐을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행동으로 이를 관철시켜 나가고 있으니 이는 세계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세상 한복판에서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거가 아닌가!
16세기 이후의 세계사를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관점에서 고찰하여 세계체제론을 주창하는 미 뉴욕 주립대의 이매뉴엘 월러스틴 교수는 이익추구라는 경제 행위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자본의 전지구화는 자본주의의 태생적 특징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종말을 내다보는데 자본주의가 앞으로 50년을 넘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예견한 바 있다. 우리 역시 신자유주의 제국에 대한 세계공동체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과 특히 신자유주의 제국의 붕괴조짐의 조짐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3.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통일운동

나는 여기서 남한의 통일운동 자체를 세세히 논의하지 않을 것이나 현재의 우리 상황을 논하고 조명하기 위하여 개괄적으로 제시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은 1920년대 이래로 항일투쟁 노선과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결렬을 극복하고자 했던 좌우합작운동에로 까지 소급될 수 있는데, 이는 우리의 해방된 온전한 민족국가 건설의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15 이후의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극심한 분열과 남북분단과 한국전쟁은 남한 사회에서 통일논의 자체를 오랫동안 봉쇄해 왔다. 1960년대 이래로 분출하기 시작한 남한 사회의 사회 경제적 모순, 특히 1970년대를 대표하는 바, 오랜 군사독재에 맞서는 반독재 민주화 인권 운동이 1980-90년대의 통일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남한 사회에서의 통일운동 세력의 명맥이 면면히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까지 줄곧 공세적 통일정책을 펼쳐온 북한에 비하면 남한의 통일운동은 "통일논의의 동면기" 에 빠져 있었다. 사회의 총체적 모순에 대한 인식, 특히 미국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을 수반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운동으로서의 통일운동이 남한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에 발생한 광주학살 사건과 전두환 정권의 제5 공화국의 출범이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하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계기로 민주화의 진전은 남한 사회의 이념적 정치적 공간에 숨통을 열어 놓았고, 1986년 초, 전국의 대학가를 휩쓴 반전 반핵 반미 투쟁은 1980년대 후반기(87-89년)의 학생운동권에 의한 88년 6월 "남북 대학생 판문점 회담" 추진 운동과 남북 공동 올림픽쟁취투쟁, 북한 바로 알기 운동들로 이어졌으며, 89년 문익환 목사,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방북과 전대협을 비롯한 민간 통일운동의 활성화는 반공 반북 의식에 사로잡혀있던 남한 사회에 큰 충격을 가하면서 통일문제를 전국민적 관심사로 확산시켰다. 이와같이 1980년 중반 이전 까지 민민진영에 의해 전개된 남한 통일운동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수세적 정책으로 일관해 온 남한 정권이 사회주의 체제와 탈냉전 시대라는 격변의 변화에 힘입어 노태우 정권에 이르면서 남북문제의 "창구 단일화" 명분을 내세워 민민진영을 무력화시키고 통일문제의 주도권을 강화시키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구 소련과 동구권의 소멸과 더불어 불어닥친 지구화는 남한 사회의 봉건적 낙후성, 근대적 경직성을 걷어내는데 있어서 일조를 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구화 물결은 이에 대한 잘못된 환상과 일방적 미국화 추종의 폐해와 혼란을 초래하였다. 예컨데 1996년 남한 경제전문기관에서 몇 년안에 남한이 G-7, G-8이라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을 예견할 정도였으나 IMF 사태를 맞아 이러한 장미 및 전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 주었다. 한편 90년대 북한 역시 "고난의 행군"을 벌이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았는데, 93년 북미간의 핵공방과 전쟁위기, 94년 김 주석의 갑작스런 서거와 대홍수, 자연재해, 식량위기로 인한 기아와 난민으로 인해 "북한 조기 붕괴론"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로 인해 김영삼 정권은 흡수통일론을 추진하게 되었으나 북한 붕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98년 북은 인공위성 사건으로 북미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에 이르러 북미간, 그리고 남북간의 관계 변화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며, 김대중 정권의 햇빛정책은 2000년 평양에서의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과 6.15 남북 공동선언으로 가시적 성과를 이루었다. 그러나 세계패권적 일방주의에 사로잡혀있는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한반도의 핵위기, 소위 "악의 축"으로 설정된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등 미국의 대북정책이 6.15 공동선언의 실현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면서, 이 시대의 남한 그리스도교의 통일운동을 살펴보면, 박정희 정권 이래의 군사정권들에 맞서 인권과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온 당시 남한 그리스도교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KNCC (한국 교회협의회)가 철옹성 같은 그리스도교의 오랜 반공의 한계를 지닌 채 1980년대의 통일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하였다. 남한 그리스도교는 통일문제에 대하여 1970년대 말까지 어떤 태도표명이나 논의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1년 서울에서 모인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를 계기로 82년 WCC (세계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 주최한 일본 도잔소에서의 모임이 남한 그리스도교 통일논의의 공식적 시발점으로 말해진다. 19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첫 모임을 시작으로, 수 차례 개최된 해외 인사들의 선구적 노력들이 남한 그리스도교회로 하여금 통일운동에 나서게 하는데 큰 자극과 도전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어쨌든 1980년대 KNCC를 중심으로 한 통일운동은 남한의 각 정권의 억압과 방해로 인하여 통일논의의 활성화 자체가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WCC 라는 국제기구와의 연대를 활용하여 해외에서의 남북 교회의 만남과 그리고 독일,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서방 그리스도교와 북한 교회, 더 나아가 북한 당국과의 만남을 이끌어 내었다. KNCC는 1981년 KNCC 산하의 통일문제 연구원 운영위원회의 조직, 1985년 이래로 수 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의회를 통하여 1988년 KNCC 제37차 총회에서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 선언" (2.29 선언)의 채택을 통해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포괄적 입장을 표명했으며, 1988년 세계기독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성협의회 개최, 1988년의 KNCC 2.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1995년 희년 선포와 평화통일희년 운동을 전개하였다. KNCC 주도의 통일운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남한 그리스도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우익적 그리스도교 세력들은 특히 희년사상이 지닌 사회 변혁적 급진성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평화통일희년 운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러나 보수세력들은 사회주의권 붕괴에 편승하여 북한 선교를 목표로 하는 바 북조선 그리스도교와의 접촉 교류를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평화통일 희년운동, 평화군축운동이외에도 보수와 진보의 제휴로 이루어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나눔운동", 대중적 그리스도교 통일운동을 표방한 "남북인간 띠 잇기대회"가 전개되었으며, 북한 식량난의 악화로 촉발된 평화의 쌀 보내기를 전개한 그리스도교 여성운동을 비롯하여 교회여성연합회 주최의 북한 어린이돕기 걷기대회, 교단여신도회들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통일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온 기장 여신도회의 북한 돕기운동들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들은 그리스도교 신학과 교회의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구조와 정책수행의 문제들을 그대로 지닌 KNCC 주도의 통일운동의 문제들을 비판하면서도 KNCC와 더불어 또 독자적으로 통일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런데 이러한 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통일운동과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그리스도교 여성들은 주로 KNCC 산하의 여성위원회, 교회여성연합회의 통일위원회,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이하 여신협)를 무대로 하여 활동하였다. 그리스도교 여성들의 이러한 활동들은 당시의 민민진영과 KNCC 주도의 통일운동의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들의 통일운동에 끼친 박순경 교수의 영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통일운동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남한 사회의 통일운동 진영에서 현재까지 줄기차게 활동하고 있으며 통일신학을 주창하고 수많은 저서를 통해 이론작업을 전개 해오고 있다. 그는 1980년대의 교회여성연합회의 통일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당시의 교회여성연합회의 통일운동에 관여하였으며, 80년에 창립된 여신협 창립총회에서 초대회장 취임사에서 한국신학의 과제로서 민족통일의 과제를 제시하고 이를 여신협의 수많은 신학정립협의회들, 심포지움, 공개강좌들을 통하여 줄기차게 민족 민중 여성의 관점에서 관철해 나갈 뿐만 아니라 회원들로 하여금 이를 여신협과 한국 여성신학의 중심주제로 설정케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1990년 8.15부터 시도된 남 북 해외가 개최하려 했던 범민족 대회 관여와 또한 1991년 도쿄에서 행한 주제강연에서의 수령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이 문제가 되어 박순경 교수가 구속되었을 때, 주체사상 찬양이라는 그의 죄목으로 인하여 반공 그리스도교의 아무런 옹호도 얻지 못하리라고 여겼을 공안당국의 예상과는 달리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들은 사회 각계 각층을 동원하면서 그의 석방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함으로써 오히려 공안당국을 당황케 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 불어닥친 탈냉전의 흐름, 포스트모더니즘의 급속한 확산, 지구자본주의의 맹위가 남한 그리스도교 여성들에게도 예외 없이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다. 남한의 보수적 그리스도교 여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으로 분류되던 따라서 민족문제, 통일운동에 헌신해 온 그리스도교 여성들도 남한 사회에서 넘쳐나는 "차이"와 "다양성"을 내건 각종 포스트 담론들에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다양한 이슈들과 운동들에 관여하고 있다. 복잡다단해진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관여하고있다는 사실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각종 포스트주의가 주창하는 다양한 개체들의 자유와 해방은 현재 주어진 세계와 결부해서 고려되지 않는 한 단지 개체주의로 소진될 뿐 아니라 불의한 지구 자본주의 세계로 흡수되고 만다는 사실이 문제이다. 1970년대 민주화 인권운동과 1980-90년대 통일운동을 주도해온 KNCC가 국내외적 상황변화와 자체의 문제로 인하여 좌표를 상실한 채 대표적인 보수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의 통합문제를 타진하고 있으며 또한 1980-90년대 KNCC 통일운동에 적극 호응해왔던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여성연합단체인 한국 교회여성연합회도 오늘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이나 대응을 올바로 하지 못하고 있다.


4. 통일된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그리스도교의 책임

이미 앞에서 우리는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물결이 어떻게 생태계와 인류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가를 상론하였으며 남한에서 전개된 통일운동을 개괄적으로 훑어 보았다. 2000년 평양에서의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이후 남북관계에는 큰 진전이 있었으니, 남측은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으로 돌려보냈으며, 이산가족 교환방문, 경의선과 문산-개성간 도로 개설, 금강산 육로관광,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아진 당국간 회담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이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남북 사이의 신뢰 부족에서 오는 크고 작은 충돌, 한반도 주변정세의 뒤틀림,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및 동북아 정책의 영향, 남한내의 냉전적 수구세력의 반발들 또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는 이제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지구 자본주의 위세가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열망을 무너뜨리고 개인주의, 소비주의, 탈정치적 쾌락주의를 전지구적으로 유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포스트모더니즘의 범람이 한반도를 둘러싼 현 정세에 어떤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가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만해도 인종 민족 제국의 문제를 계급이라는 거대담론으로 관리해 오던 제3세계 민족주의는 이제 민족주의가 대대적으로 매판 부르주아와 결탁되어 있다는 혐의로 비판받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지구화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사이에, 초국적 자본을 등에 업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아리송하면서도 그럴듯한 이론을 내세워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제3세계 민족주의의 영토상실과 헤게머니 약화의 위험이라는 현상이 남한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예컨데 민족성이란 유전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며, 민족국가는 민족주의의 발명품이라는 Ernest Gellner 의 주장이 (단일) 민족으로서의 장구한 역사를 가진 남한 사회에서 다양한 계급적, 성적 차이에서 연유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논란을 가져왔다. 제3세계 페미니스트 비판가들이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서 어떻게 특정 내국인 집단이 희생양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민족 정체성과 민족주의 개념은 지배계급과 그 계급네 속한 "그들" 남자들에 의해 그들의 헤게머니를 공고히 하도록 정의되어 왔다는 문제제기가 남한 여성운동가들 사이에 거의 정설로 굳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많은 그리스도교 여성들도 이를 답습하고 있는 형세이다. (미완의 논문임)

[*이 논문의 주석달기는 복사가 안되어 빠져있습니다. 필요한 분은 발표자에 의뢰하여 참조하기 바랍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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