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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green>[대선기획]궁금증 풀어본다⑧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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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2-09-21 00:00 조회2,2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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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선부터 민족민주 진영이 자신들의 정치세력인 <민중정치세력화>를 이루지 못하고 비판적 지지론 등에 매몰되어 환상을 갖고 보수당 인물에 기대하게 되면 또다시 실망할 뿐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대표적 정당인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단합을 이룰때 노동자도 농민도 청년학생도,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대선논쟁들과 관련한 궁금증을 연재기획으로 다루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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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민족통신이 지난 4.13총선 시기와 이번 대선과 관련하여 연재물을 통해 열심히 계몽하고 있는 글들을 읽어 왔다. 그런데 민중들 중에 농민들은 특히 지난 시기 두 김씨(김영삼과 김대중)에게 무척 기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이 두 김씨가 집권하고서 농민들에게 농가부채와 쌀 시장 개방으로 혹독한 고통을 안겨주었을 뿐인데 농민들 상당수와 민민진영 일부는 아직도 이들과 같은 보수정당 출신에 기대하며 환상을 갖고 있는 현상이 있는데 이런 것이 민민진영에게 얼마나 해를 주고 있는가에 대하여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여 답답한 마음에서 질문을 보내오니 답변해 주기 바란다.

[답] 님의 질문에 아주 적합한 글이 전국연합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민>지 2002년 9월호에 <<농민을 위한 쪽지 이야기>>에서 잘 설명되어 있어 이 글을 여러분들에게 필독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글은 한국 지성인중의 한 분인 박세길씨(40)가 쓴 글이다. 박씨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한 인물로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1과 2"(1989.6.30 돌베게 출판) 저자로 현재 <민>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언론인이다.

그는 8쪽에 달하는 글을 통하여 한국농민들이 당해 온 문제점들을 쉽게 설명해 주면서 한국의 보수당 출신 집권자들이 농민들의 힘을 업고 표를 얻어서 당선해 놓고 농민들을 얼마나 교활하게 탄압하여 왔는가를 알기 쉽게 설명해 준 글이다. 이 글 중 민주당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었는지 줄거리만 소개함으로서 님의 질문에 답하려고 한다.

1992년 14 대선에서 김대중씨는 3번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낙선직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고민 끝에 어떻게 하면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보수세력과 손잡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디제이피 연합을 하게되었다. 그 다음에 미국을 등에 업는 목적으로 미국의 세계를 잡아먹는 수단이었던 이른바 신자유주의를 자기 정책의 무기로 받아 안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란 자유화, 개방화,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것으로써 미국의 자본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아무런 제약 없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따블유티오(WTO), 즉 개방농정을 강요하는 것도 신자유주의의 일부였다.

김대중씨는 이 교리를 배우려고 영국 옥스포드대학으로 유학을 갔고 그곳에서 신자유주의를 확실히 배운다음에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때가 1997년 대선시기 몇 년 전이었다. 당시 그가 설교하는 신자유주의 교리에 미국재벌들이나 정객들이 혹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과격한 이미지 때문에 미국 유명인사들 만날 때마다 주한미군문제가 등장되어 그는 통일후에도 주한미군은 남아 있어야 하며 또 그렇게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며 미국을 등에 업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귀국직후 그가 한 일은 요즘 비리에 관련되어 시끌벅적하게 떠들고 있는 부패와 연루된 <아태평화재단>을 설립하게 되었다. 거액이 드는 사업인데 이상하게도 큰돈들이 어렵지 않게 모아지게 되었다. 그가 정계은퇴를 하여 그에게 아쉬운 마음으로 훗날을 생각하여 재벌들이 미리 손을 쓸 필요도 없는 상황인데 거금들이 모아져 아태재단이 설립되었다. 이 배후에 미중앙정보국이 톡톡히 한몫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미정보부 측이 왜 이렇게 하였는가는 당시로서는 궁금증 중의 하나였다.

그러던 중 15대 대선이 임박해 왔다 .바로 그때 한나라당이 북측에 요청하기를 판문점에서 무력소동을 피워주기를 요청한 사건이 터졌다. 그러면 보수층 표들이 한나라당에 쏠릴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사실을 언론에 흘린 사람은 박재서란 인물로 드러났지만 이상한 것은 이 인물이 버젓이 언론과 대담도하는 등 거리낌 없이 행동한 것이었다. 안기부는 그 박해서에 대해 손을 대지 못했다. 엉뚱하게도 안기부장이었던 권영해가 자신의 배를 가르는 자해행위를 하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판문점 소동이 터져 표를 몰아주기를 기대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일 뿐이었다. 박재서란 인물이 미정보부 고위간부라는 일각의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숨은 그림 찾기는 해결된다. 왜냐하면 이 사건 때문에 덕을 본 것은 김대중씨였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대개 이렇게 만들어 졌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아엠에프에 코가 꿰이면서 외국의 투기꾼들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고 그 결과 한국의 주식시장은 외국재벌들이 거의 장악하게 될 정도였다. 실질적으로 60~70% 정도가 외국인 몫일 정도로 되었다니 알만한 것이다 .그래서 외국인 투기꾼들이 이를 기반으로 한국정부나, 은행, 재벌, 기업들을 갖고 놀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만약 이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돈 보따리를 가지고 다른 나라로 가버린다. 그러면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당장에 달러 위기를 맞게 된다.

농가부채를 방치하고 농업시장을 개방해 버린 것은 외국기업들이 한국의 농축산물 시장을 모두 꿀꺽 삼켜버리려는 그들의 압력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성정치인들은 더 이상 믿을 게 못된다. 그러면 농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는 더러운 것이니까 관심을 끊어버리는 것이 상책인가. 사실 농민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농사짓기 바쁜데 정치는 무슨 정치냐고 귀찮게 여겨왔다. 정치 이야기만 하면 농민들이 신물을 낸다. 하지만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의 손에 쥐어져 있는 한, 우리 농민의 장래는 보장될 수 없다. 이 나라 정부가 미국의 손이 아닌 농민들 자신의 손, 나아가서 민중의 손에 쥐어질 수 있어야 농민의 고통, 민중의 고통이 사라지기에 그 길을 찾아야 한다.

기성정치인들은 선거때만 되면 간 쓸개 다 빼 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다가도 선거가 끝나고 나면 도리어 간 쓸개 빼먹으려든다. 그래도 그들에게 기대할 것인가. 이제 농민들, 민중들은 남의 집 앞에 줄을 설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집 앞에 이 사람 저 사람이 줄을 서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진정한 농민정치요 민중정치이다.

쌀 전면 개방으로 치닫는 지금 시기는 농민이 진정으로 세상의 주인이 되지 않는 한 살길이 없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과연 주인이 되어 살길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종이 되어 끝내 죽음의 길을 택할 것인가.(민지 9월호 박세길 편집인의 글을 복사하여 전 농민이 돌려볼 것을 권장하고 싶습니다)

*질문이 계신분은 minjok@minjok.com으로 알려주기 바랍니다. 다음 글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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