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송기뢰 박사, 6월2일 지병으로 향년89세로 운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6-05 22:55 조회12,083회 댓글6건관련링크
본문
그는 1965년에 도미하여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8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해 혈육을 만났다. 그는 그 때부터 뭔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국에 돌아가 도서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북부조국에 1만5천 여권의 과학도서들을 기증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북에서 김일성 회고록 8권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감수하는 편수관 역할도 했고, 컴퓨터 시스템 관계 도서 16권을 번역한 것을 교열하며 교정해 준 일도 있었다고 설명해준바 있었다.
송 박사는 그런 일을 하면서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그동안 재미동포도서기증회 회장, 그리고 재미동포과학기술자협회 회장 일을 맡고 활동하ㅇ 왔고,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직도 맡은바 있고,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으로 활약해 왔다.
그는 재미동포로서 이북의 고향을 방문한 것은 미국 온 이후 20년만인 1985년 6월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과 그의 남편을 만났지만 그 때의 순간과 그 추억은 “그저 일주일 동안 울다가 온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고 송 박사는 회고한다. 그는 고향인 함흥에 혈육들이 많다. 친가와 외가 쪽 가족들을 합하면 모두 90여 명의 친척들이 있다.
그는 혈육을 만난 그 순간부터 고향을 위해 뭔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것이 도서기증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 와 곧 바로 <재미동포도서기증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1998년에 또 <재미동포 과학기술자협의회>를 만들어 두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회원들을 모집했었다. 그 결과 회원들이 모두 120여 명을 넘은 때도 있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 고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송 박사가 걸어 온 미국생활 수십년의 세월이이 궁금하여 민족통신 기자가 질문해 보았을때 그는 1965년 6월 미국에 와서 뉴욕에 거처를 정하고 뉴욕대학(NYU) 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고 69년 5월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계속해서 경영학 박사학위(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고 했다.
송 박사의 직장생활도 다양했다. 그는 미국생활 수십여년 동안 첫 5년은 대학원 생활을 했고, 졸업 후에는 5년 동안 화학제품회사에서 기술행정 감사 역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7월에는 체이스 맨하탄 은행서 감사 역으로 일했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13년 동안에는 메릴린치 증권회사의 증권분석가로 일했고, 그로부터 2003년까지는 연방정부의 컴퓨터 프로그램 자문관으로 일해 오다가 은퇴했다.
그 이후 은퇴생활을 통해서는 주로 이북을 돕는 일에 힘을 쏟아 왔다. 그의 자녀들은 이미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다. 50살 된 장남은 사업가이고, 둘째는 유전공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는 일본 도꾜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했다고 했다.
송기뢰 박사는 고향방문 수십여 차례나 되는 정도로 이북을 많이 방문했기에 기자는 그의 이북사회에 대한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북동포들 대부분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을 비롯하여 학생들과 학자들의 학구열이 불같이 끓고 있는 사회이고, 교육제도가 훌륭하고 특히 나라 방침이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것을 관찰해 왔다는 소감을 밝힌바 있다.
<재미동포 통일운동권에 관한 평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1)일반동포들의 통일관심이 무관심하지만 통일운동권 인사들은 그 관심이 대단히 높고 열심히 일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2)통일에 관한 연구활동이 높고, 그리고 (3)통일의 길이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그는 통일운동권에 대한 아쉬운 측면도 아울러 지적했다. 동지적 협력과 협조가 결핍된 점을 비롯하여 분파 성 잔재가 농후하며, 행세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북부조국에 도서기증에 열정적이었던 송기뢰박사(지팡이 짚고 있는 분)
송기뢰박사님께서
2018년 6월 2일 지병으로 운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기뢰박사님께서 2018년 6월 2일 지병으로 운명하셨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송기뢰박사님은 재미도서기증회장및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하시며 조국을위해 수많은 도서기증사업을 수십년동안 하셨습니다.
기증도서들중 특히 조국의 과학발전을 위한 많은 과학기술서적을 정열적인 그리고 헌신적인 힘을 기울여주셔서 오늘날 조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해주신 훌륭한 선생님이셨습니다.
또한 송기뢰박사님은 언제나 정의로운 분이셨, 고, 항상 약자편에 서서 일하신 인자한 선생님이셨지요. 우리 후배들이 그길을 따라가야할텐데...
오래 오래 그리워할것입니다.
리금순드림
아래 사진들은 2016년 11월에 송박사님집이 있는 강화도에 동생 재화랑 함께
찾아가서 병치료를 하고 계시는 송박사님과 사모님을 찾아뵈어 기쁜 상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금년 5월 14일에 강화도 집을 찾아갔지만
대문이 잠겨있어서 못뵙고 온것이 못내 아쉽기도 했었지요.
동생 재화씨랑 2016년 강화도에서 요양받고 있던 송기뢰박사를 찿은 리금순선생 [사진]송기뢰박사가 요양받고 있던 강화도를 찿아 간 리금순 선생 [사진]2016년 11월 송기뢰박사 부부를 찿아가 위로했던 리금순선생과 동생 리재화씨 |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빕니다.
워싱턴 申 必 泳
6.15미국위원회 대표위원장
재미도서기증 창립 30주년기념( 2015. 6. 19.) |
존경하는 송기뢰박사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한때 자주 만나 이야기하시며 농담도 잘하시던 어른이
오래동안 소식이 없다가 이렇게 슬픈 소식을 접하니
가슴이 너무 허전합니다.
나도 건강이 좋지 않아 전화연락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운명하셨다는 비보를 듣고 멍한 기분입니다.
도서기증으로 북부조국을 돕는일에 앞장서시었던 송기뢰박사님의
애국적 업적은 우리 재미통일운동사에 영원히 아로새길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동시에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캘리포니아 컬버시티
양은식 |
송기뢰 박사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비오며 송 박사님의 가정에
하나님의 따뜻하신 사랑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 필주 드림 |
송기뢰 박사님 영전에 안타까움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읍니다.. 그동안 조국에 수만권의 과학도서를 기증하시고 과학발전에 기여를 많이하신걸 우리들은
뉴욕 최기봉 |
송기뢰 박사님 영전에
통일운동과 북부조국에 도서기증 활동으로 수십년의 노고를 바치신
송기뢰 박사님께서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신 것에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송기뢰 박사님께서 지난 수년간 한국에 나가 계셨는데
가서 찾아 뵙지 못한것 정말 죄송합니다.
송 박사님의 고귀한 한생은 후배들에게 귀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달라스에서 이태선 올림
|
유가족 여러분에게,
송기뢰박사께서 소천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가족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송박사께서는 생전에 도서기증으로
이북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나도 책들을 모아 송박사에게 줄때
고인은 무척 기뻐하시면서 평양에서 내가 보낸 도서들에 대해
기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비롯 우리 곁을 떠났지만
고인의 애국적 열정은 언제나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을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한편
유가족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뉴욕 오위고
강은홍 |
송기뢰박사님 비보를 듣고 10여년전 뉴욕에 갔을 때 윌체어를 타고 아들과 함께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시던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조선에 책을 많이 보내주신 애국자 송기뢰 박사님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캘리포니아 풀러톤 왕용운 |
송기뢰 박사
한동안 조용하여 건강이 회복되는 줄 알았는데
뒤늦게 비보를 접하게 되어 마음이 허전합니다.
누가 뭐래도 끈질긴 그 성격으로 오랜 세월
도서기증회를 맡아 북부조국에 크게 기여한
그 노력에 대하여 모두가 감탄하여 오지 않았습니까?
나 보다 한살 위의 나이이기에 형님으로
생각해 오며 짬 있을 때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던
그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내 아내도 하늘 나라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송기뢰 박사까지 떠나가니 이 마음 텅빈것 같소이다.
우리 만날 때까지 삼가 명복을 빕니다.
뉴저지 해링턴파크에서
유태영
|
[민족통신 대담]도서기증사업에 정열 쏟아 온 송기뢰 박사
재미도서기증회 뉴욕서 30돌기념행사 진행
댓글목록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참관기]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
작성자 민족통신) 2008-07-07 01:24 조회2,130회 댓글0건
재미도서기증회(회장:송기뢰 박사) 임원들은 최근 평양에서 개최한 평양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이번 방북한 재미동포들은 미주동포들로부터 모금하여 구입한 도서들과 모은 책들을 인민대학습당과
김책공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참관기와 관련 사진들을 리금순 재미도서기증회 부회장 겸 동부연합
사무국장이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했다. 그 내용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IMAGE##>
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 참관기
글: 리금순(재미도서기증회 부회장 겸 동부연합 사무국장)
<##IMAGE##> 우리 재미동포전국연합 동부지역연합회와 도서기증회는 조국의 경제강국건설 발전에 힘이되고져 그동안 회원들의 후원에 소기의 기금목적을 달성해 19 상자의 서적들을 마련해 재정적, 육체적으로 어려운 포장 및 항공운송을 감내하며 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도서 전람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전람회 개막식은 2008년 6월 23 평양시 3대혁명전시관에서 진행되였다.
개막식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최태복과 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인 문재철 대외문화연락위원회 위원장대리등, 교육, 출판부문 일군들, 과학자, 기술자들이 참가했다. 또한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 해외동포 대표단들, 주조 여러 나라 외교대표들, 대사관성원들, 국제기구대표부성원들이 참가했다.
문재철 조직위원회 위원장은 개막연설에서 이번 전람회가 나라와 민족들사이의 상호 이해와 신뢰, 친선과 협조를 도모하는데 기여하게 되리라는것을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개막식이 끝난 다음 참가자들은 조선과 중국, 러시아, 도이췰란드, 몽골, 인도네시아, 폴랜드 그리고 세계보건기구, 유엔아동기금을 비롯한 국제 기구들, 해외동포단체들에서 전시한 최신과학기술도서들과 자료들을 돌아보았다.
재미동포 도서기증 전시장은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 원래 전시장보다 두배나 큰 전시장을 주최측은 배려해주기도 했다. 우리가 전시한 책들은 최근의 새로운 출판 서적으로서, 우리 전시장은 구름처럼 밀려오는 가장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관심이 제일 많은, 최고로 인기있는 전시장이였다. 특히 김책공대, 김일성 종합대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과학원및 교육성 일군등, 전문일군들이 많이 모였다.
송기뢰 회장의 연설에 진지한 모습들
<##IMAGE##> 송기뢰회장의 연설에 귀기울이는 진지한 모습들, 그리고 너무 많은 인파에 밀려 제대로 보지못하는 분들에게 이책들이 전람회 끝난후 김책공대와 인민대학습당 재미동포기증실에 비치되기 때문에 그곳에서 이책들을 열람하길 바라는 공고를 해주기도 했다.
최태복비서와 문재철조직위원장, 김해룡인민대학습당부총장등 일행은 우리 재미동포도서기증관에서 제일 오랜시간을 할애, 30분이나 긴 담화를 하면서, 최대복비서는 어떻게 김정일위원장께서 좋아하는, 그분이 목표로한 부분의 책들만 선택하여 가져올 수 있었냐고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에 대한 송회장의 대답은 우리는 항상 조국의 경제지표를 함께 호흡하였음으로 미리 알고 있었다고 했더니 최태복 비서는 경탄의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어서 송회장은 IT, BT, NT가 장래의 과학기술의 주제가 될 것임으로 우리는 이것에 합당한 기술도서를 주로하여 551권을 이번에 기증한다고 했다. 미국의 “ The Future Society of America “의 2008년 예언에 의하면 남북이 통일이 되면 세계 제6위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할것이라는 소식도 전했더니 반가워하는 모습이다.
오후에 벌써 재미동포들이 기증한 서적들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는 즐거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과학원, 교육성등, 여러곳의 전문기관에서는 자기네들 기관에 보내져야한다는 호소가 있었지만 우리 재미동포연합 회원들과의 약속을 져버릴수 없다고 했다. 결국 우리의 의지대로 실행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해외동 일군들은 최고의 평가 소식을 듣고 기쁜마음으로 바로 이?날 전시장에 가서 관람했는데 제일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고 했다. 정말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위원장의 말대로 재미동포전국연합이 맏형 역할을 톡톡히 하는것이 아닐까하는 약간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 조직위원회와 대외문화연락위원회에서는 전람회 참가자들을 위하여 23일 인민문화궁전에서 연회를 마련해줬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독일참가자들과 자리를 함께 했는데 이들은 서울 독일 문화원에서 왔다고 했다. 이들과 농담도 즐겼는데 우리말도 유창하게 했고 그들은 재미 동포 도서전람회장이 제일 많은 사람이 붐비는것에 인상적이었고 그다음엔 자기네들 전시장이 붐볐다고 즐거워 했?
제6차 평양 국제과학기술 도서전람회가 25일 3대혁명전시관에서 페막되였다. 페막식에서는 이번 전람회에 출품하였던 도서들을 기증한 단체들에 기증증서와 단체상이 수여되였다. 우리 재미동포가 단연 일등이지만 이번에는 성적을 메기지 않았다. 아마 다른나라 참가자들의 사기를 고려해 그렇게 한것 같았다.
문재철위원장은 페막연설에서 제6차 평양 국제 과학 기술도서전람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된데 대하여 언급하고 전람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 협력해준 대표단들과 주조 여러 나라 외교대표들, 국제 기구 대표 들에게 사의를 표하였다.우리는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이념밑에 세계 여러 나라들과의 과학기술교류와 협조를 강화해나갈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제6차 평양국제과학기술도서전람회 참가자들과의 친선연환모임이 25일 김책공업종합대학 체육관에서 진행되였다. 모임에는 이번 전람회에 참가한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 해외동포대표단들이 초대되였다.
김책공대에서 도서기증식
<##IMAGE##> 송기뢰 회장과 나는 연환모임에 앞서서 김책공대에서 도서기증식을 가졌다. 학교측은 최근 출판된 책들을 지원해주고, 김책공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져줘서 대단히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않았다. 이책들은 전자도서관 4층 해외동포및 단체기증실과 함께 “재미동포기증실”에 비치된다고 했다.
친선연환모임에서 홍서헌 김책공업종합대학 총장은 제6차 평양 국제 과학 기술도서전람회 참가자들이 앞으로도 과학기술교류와 협조사업에서 보다 큰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송회장과 나에게 악수를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날 모임참가자들은 김책공업종합대학 학생들의 예술소품공연을 관람한 다음 《친선》팀과 《단결》팀으로 나뉘여 체육 유희 경기를 하면서 친선의 정을 두터이하였다.
인민대학습당에서도 도서기증식을 가졌다. 이자리에는 김해룡 부총장과 관계일군, 해외동 김 부국장, 영접사업국 석 지도원이 참석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조국의 강성부흥을 위하여 귀중한 도서를 기증한 재미동포전국연합 동부지역연합회의 애국적소행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 ”는 감사장과 기념품을 수여하기도 했다. 덧붙여 얘기하길 인민대학습당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방침에 의한 전자도서실을 꾸리는데 현재 15%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귀중한 책들을 인민대학습당에 기증하도록 해서 이 자료들이 전국적인 인트라넷 망을 통해 전국 각 지역 과학자, 기술자, 학생들이 학교및 도서관에서 볼 수 있게끔 만들라는 방침이라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인민대학습당에 기증하는것을 원칙으로 해야한다는 결심을 했다.
<##IMAGE##> 그리고 해외도서기증 게시판에 도서기증한 회원들의 개인 이름을 적어놓도록 했으며 재미동포도서기증책은 한군데로 몰아서 재미동포도서기증실에 비치하도록 약속했다. 왜냐하면 전문분야별로 해서 다른 단체들과 섞어놓게 되면 우리 회원들이 자신이 기증한 책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폐막식이 끝난 이?날 해외동포원호위원회 위원장, 부국장, 참사가 호텔 면담실 에서 우리 대표단과 자리를 함께하면서 이번에 정말 큰일을 했다는 위원장의 격려와 칭찬은 그동안 정신적, 육체적 고생을 바로 잊게해주는, 조국을 위해 조그마한 일을 했다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동포연합회원들의 조국애를 그대로 전달하는 이 도서기증사업을 계속 발전시켜 나라에 큰 도움이 되길 바라며, 공화국창건 60돐이 되는 뜻깊은 올해에 더 큰 발전을 이룩하고, 2012년에는 과학기술강국, 경제강국으로 일떠서길 바라는 마음이다.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작성자 (2001-11-18 00:00 조회669회 댓글0건
재미동포가 회고록 출판
(평양 11월 10일발 조선중앙통신)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부-항일혁명편 6권을 조선로동당창건 56돐에 즈음하여 재미동포전국련합회 과학기술분과위원회 위원장이며 뉴욕도서기증회 회장인 송기뢰동포가 영문으로 출판하였다.(끝)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대담]도서기증사업에 정열 쏟아 온 송기뢰 박사
작성자 민족통신 20 09-04-09 13:48 조회3,914회 댓글0건
자신의 철학과 이념이 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곳에 혈육이 있고, 우리 민족이니까 뜨겁게 지원해 온 인물이 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이북의 혈육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도서들을 이북의 교육기관들에 지원해 왔다. 이분은
그야말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 사상>을 실천해
온 인물 중 한 분인 송기뢰 박사(80)이다.
[대담]도서기증사업에 정열 쏟아 온 송기뢰 박사
1985년부터시작해지금까지 이북에1만5천여 권 기증
<##IMAGE##>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 자신의 철학과 이념이 북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곳에 혈육이 있고, 우리 민족이니까 뜨겁게 지원해 온 인물이 있다. 그는 80년대 중반 이북의 혈육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도서들을 이북의 교육기관들에 지원해 왔다. 이분은 그야말로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이 다를지라도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야 한다는 <우리민족끼리 사상>을 실천해 온 인물 중 한 분인 송기뢰 박사(80)이다.
기자는 뉴욕에 거주하는 송 박사가 최근 로스엔젤레스를 방문한 기회에 그와 만나 대담시간을 갖고 그의 걸어온 80년의 생애를 들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송기뢰 박사도 민족분단의 피해자이다. 조국분단과 전쟁 때문에 혈육들이 생이별하여 헤어져 살아 온 이산가족들은 무려 1천만여 명이나 되었다. 송 박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1929년 7월25일 함흥에서 태어나 전쟁시기인 1950년 12월 21살의 나이로 단신으로 이남으로 넘어와 15년 동안 청장년 시절을 공군기술장교 후보생에서 시작하여 공군장교 생활로 장기 복무하다가 중령으로 전역하고 곧 1965년 초 도미했다. 그 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44년 동안 살고 있다.
그는 1965년에 도미하여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1985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이북을 방문해 혈육을 만났다. 그는 그 때부터 뭔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미국에 돌아가 도서들을 지원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북부조국에 1만5천 여권의 과학도서들을 기증하는 사업을 벌여왔다. 그는 한편으로는 이북에서 김일성 회고록 8권을 영문으로 번역한 것을 감수하는 편수관 역할도 했고, 컴퓨터 시스템 관계 도서 16권을 번역한 것을 교열하며 교정해 준 일도 있었다고 돌이켜 본다.
송 박사는 그런 일을 하면서도 통일운동에 참여해 왔다. 그는 지금 재미동포전국연합회(윤길상 회장)의 부회장이며 동시에 재미동포도서기증회 회장, 그리고 재미동포과학기술자협회 회장 일을 맡고 활동하고 있고, 6.15미국위원회 공동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IMAGE##>그는 재미동포로서 이북의 고향을 방문한 것은 미국 온 이후 20년만인 1985년 6월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는 이미 부모님들은 세상을 떠났다. 여동생과 그의 남편을 만났지만 그 때의 순간과 그 추억은 “그저 일주일 동안 울다가 온 생각 밖에 나지 않는다”고 송 박사는 회고한다. 그는 고향인 함흥에 혈육들이 많다. 친가와 외가 쪽 가족들을 합하면 모두 90여 명의 친척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혈육을 만난 그 순간부터 고향을 위해 뭔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것이 도서기증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미국에 돌아 와 곧 바로 <재미동포도서기증회>를 조직하였고, 그 후 1998년에 또 <재미동포 과학기술자협의회>를 만들어 두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회원들을 모집했었다. 그 결과 지금은 회원들이 모두 120여 명이나 늘어났다고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송 박사가 걸어 온 미국생활 44년이 궁금하여 질문해 보았다. 그는 1965년 6월 미국에 와서 뉴욕에 거처를 정하고 뉴욕대학(NYU) 대학원에 입학하여 경영학을 전공하고 69년 5월에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계속해서 경영학 박사학위(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을 마치고 학위를 취득했다고 한다. 그는 남녘에서 공군장교 생활을 할 때에도 제대할 무렵인 1962년부터 1964년까지 2년 동안 군에 있으면서 서울행정대학원을 다니며 석사학위(MA)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1953년에 1년, 1958년에 1년 동안 미국에 와서 군사교육을 받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에도 고향방문이 계기가 되어 이북을 40여 차례 오가며 지원사업을 하는 한편 컴퓨터 시스템관계 연구로 이북에서 2001년에 공학박사까지 받았다고 밝혀준다.
송 박사의 직장생활도 다양했다. 그는 미국생활 44년 중 첫 5년은 대학원 생활을 했고, 졸업 후에는 5년 동안 화학제품회사에서 기술행정 감사 역으로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로부터 5년 후인 1975년 7월에는 체이스 맨하탄 은행서 감사 역으로 일했고, 1980년부터 1993년까지 13년 동안에는 메릴린치 증권회사의 증권분석가로 일했고, 그로부터 2003년까지는 연방정부의 컴퓨터 프로그램 자문관으로 일해 오다가 은퇴했다.
그 이후 은퇴생활을 통해서는 주로 이북을 돕는 일에 힘을 쏟아 왔다. 그의 자녀들은 이미 독립해서 나가 살고 있다. 50살 된 장남은 사업가이고, 둘째는 유전공학자로 활동하고 있고, 막내는 일본 도꾜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유학 중이라고 한다.
송기뢰 박사는 고향방문 40여 차례나 되는 정도로 이북을 많이 방문했기에 기자는 그의 이북사회에 대한 인상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북동포들 대부분이 열심히 일한다는 점을 비롯하여 학생들과 학자들의 학구열이 불같이 끓고 있는 사회이고, 교육제도가 훌륭하고 특히 나라 방침이 과학자들을 우대하는 사회라는 것을 관찰해 왔다는 소감을 밝힌다.
<재미동포 통일운동권에 관한 평가>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1)일반동포들의 통일관심이 무관심하지만 통일운동권 인사들은 그 관심이 대단히 높고 열심히 일하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2)통일에 관한 연구활동이 높고, 그리고 (3)통일의 길이 어렵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열심히 추구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그는 통일운동권에 대한 아쉬운 측면도 아울러 지적한다. 동지적 협력과 협조가 결핍된 점을 비롯하여 분파 성 잔재가 농후하며, 행세주의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도서기증회 문의연락처: (718)357-8812)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뉴욕 송기뢰씨,이북서 박사학위
작성자 민족통신 2001-07-17 00:00 조회598회 댓글0건
이전글다음글수정삭제복사이동목록답변글쓰기
재미동포에게 공학박사학위 수여
(평양 7월 13일발 조선중앙통신)재미동포인 뉴욕도서기증회 회장 송기뢰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의식이 12일 만수대의사당에서 있었다.
수여식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위원장인 조창덕부총리 등 관계부문 일군들이 참가하였다.
국가학위학직수여위원회 결정이 랑독된 다음 송기뢰선생에게 공학박사학위가 수여되였다.(끝)
최기봉님의 댓글
최기봉 작성일
송기뢰 박사님 영전에
한국으로 이사가신후 가끔들리는 소식은 서울이 아닌 강화도에서 건강하게 생활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 결국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안타까움을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읍니다..
그동안 조국에 수만권의 과학도서를 기증하시고 과학발전에 기여를 많이하신걸 우리들은
결코 잊지않고 기억하곘습니다..
송기뢰박사님 영변하시고 가시는 길 명복을 기원합니다.
뉴욕에서 최기봉 올림
이태선님의 댓글
이태선 작성일
송기뢰 박사님 영전에
통일운동과 북부조국에 도서기증 활동으로 수십년의 노고를 바치신 송기뢰 박사님께서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으신 것에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송기뢰 박사님께서 지난 수년간 한국에 나가 계셨는데 가서 찾아 뵙지 못한것 정말 죄송합니다. 송 박사님의 고귀한 한생은 후배들에게 귀한 가르침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달라스에서 이태선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