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돕는 교사》,김은주 박사의 25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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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8-01-08 14:18 조회9,171회 댓글4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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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은 뉴욕에 체류중 한 소학교 교사의 25시 생활을 취재했다. 그 주인공은 김은주박사. 그는 2018년 무술년 1월7일(일요일) 오후 2시 에디슨에 소재한 <H 마트> 입구에서<세월호 진상 규명하라>는 구호를 영어로 써가지고 다른 시위대원들가 함께 시위를 했다. 그는 사회정의 운동에 참여하여 <약자을 돕는 교사>로서 활동하는 교육자이다. 그의 삶을 조명한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약자돕는 교사》,김은주박사의 25시 활동
[뉴져지 에디슨=민족통신 노길남편집인]하루가 24시간인데 25시 활동하는 재미동포여성교사가 있어 주변 동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 교사는 뉴져지주 <포트리> 근교에 거주하면서 뉴욕의 할렘가에 있는 한 학교 교사(유치원 전학년도 4살짜리 아동부터 14살인 8학년 사이 담당)로 일하면서 주말을 포함하여 주중에도 수업강의하는 시간 이외에 진행하는 시민운동 활동, 조국통일운동 활동에 참여하고 있고, 짬만 있으면 페이스북 글과 사진 올리기, 단체들 행사 초청받으면 가능한 한 모든 단체들 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김은주박사이다.
기자는 김은주박사가 2018년 무술년 1월7일(일요일) 오후 2시 에디슨에 소재한 <H 마트> 입구에서 <세월호 진상 규명하라>는 구호를 영어로 써가지고 다른 시위대원들가 함께 이곳 동포들이 자주 출입하는 이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역시 애국적인 교육자라고 생각했다.
이날 시위현장에는 나경환선생(61)을 위시하여 김은주박사 및 2명의 어머니들 4명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면서 <416해외연대>의 활동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자료집과 <세월호 사건>을 상징하는 노랑색 뱃지를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2014년부터 시위를 지속적으로 해 오면서 한국의 <세월호 피해자>가족들과도 연계하여 4년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밝힌다. 이들은 처음부터 한국에서 시작된 시위와 연대하여 시위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대통령만 바뀌었지 해수부라든지 실무선이나 일선 공무원들은 박근혜정권 시기의 그사람들이라서 전혀 바뀐것이 없는 실정이라서 아직도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노한다.
이들은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으로 탄생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그 진상을 밝혀주리라고 기대는 하고 있지만 어떤 사연인지는 잘 모르지만 이 사건의 진상이 뜻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의혹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 추운 겨울날에도 시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이날 시위참석자들은 <세월호 사건>이 터진것 때문에 역사의식에 한층 더 눈을 뜨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마치도 1980년 광주민중항쟁 시기에 역사에 눈을 뜬 동포들과도 유사한 모습들을 보인다.
김은주박사 그는 누구인가?
나는 이날 시위를 마치고 김은주박사와 대담을 통하여 그의 삶의 족적을 살펴보았다.
우선 17살 된 쌍둥이 딸들을 두고 있는 김박사가 이렇게 바쁜 생활을 하면서도 사회정의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그 배경과 무엇이 계기가 되었가가 궁금했고, 그의 생활철학과 인생의 가치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무척 알고싶었다. 왜냐하면 그는 교육자로서 그토록 바쁜 일정에도 크고 작은 시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왔고, 사회의 부정부패나 나라의 부조리한 모순들을 그냥 눈감고 넘어가지 못하는 성품을 지녀온 탓으로 그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서도 그 누구보다 당당한 자세를 보여왔다는 점이 주변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들이다.
김은주박사는 경기도 수원태생으로 10살되던 시기에 한국에서 소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온 1.5세 동포로 분류되는 재미동포이지만 자신은 1.5세라기 보다 2세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라고 자신의 세대별 분류기준을 자신이 설정하여 밝힌다.
그는 동생이 셋이나 되는데 딸이지만 장녀가 되어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기둥역할을 해 왔다. 한국에서는 어머니가 할머니로부터 하도 구박을 많이 받아온 것을 보고 자라나면서 언제나 할머니한테 야단맞아 온 어머니를 위해 옹위병 노릇을 해 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집안 일 모든것들을 다하시며 부엌살림이니, 집안 일 대부분을 도맡아 하고서도 할머니한테 욕을 먹어 온 어머니가 너무나 애처러웠기 때문에 언제나 어머니 편에서서 할머니에게 도전해 왔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어려서부터 약자편에 서서 생활해 왔다.
김은주선생은 어린 시절, 소학교, 중고등학교, 대학을 모두 뉴욕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대학에서는 처음에는 사회학을 전공하였는데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하던 중 한 지도교수가 제자인 나를 만나기 위해 맨하탄에 있는 아파트(동생과 함께 거주하는 주거지)로 자주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는 성폭행은 아니지만 일종의 성추행(Sexual Harrasement)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대학원 재학시절에 일어났기 때문에 그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결국 이 사건때문에 할수 없이 사회학 전공을 그만두고 다른 대학으로 옮겨 졸업하게 되었고, 그 후에 교육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학교선생을 천직으로 삼고 일해왔다고 소개해 준다.
김은주박사는 어린시절 미국에 와서 성장하였지만 미국에서 대학 졸업후 서울의 고려대학교 아시아문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학생들의 학생운동하는 과정과 민주화운동을 위해 활약하는 과정, 그리고 그들의 체험을 통하여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들을 인식할수 있었다고 회고해 준다.
그는 또한 대학원에 재학할 당시에 뉴욕시에서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낮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저녁에 대학원을 다니며 일하느라고 어려운 환경에서 학업을 지속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도 일찌기 깨닫게 되었다. 졸업후 가족들과 함께 할때에도 형제들과 가족들의 생계문제에서도 기둥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지난 시기의 경험들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그의 성격은 무척 솔직담백하여 대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매사에 당당하면서도 마음이 깊고 넓은 공간을 가진 인물이라고 기자는 생각하면서 그의 삶의 다른면들도 질문해 보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미국에 왔지만 어릴때부터 민족애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었다고 돌이켜 본다. 코리안아메리칸(재미동포)으로서 미국말도 확실하게 해야 하지만 우리말 코리언도 확실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의 자녀들은 3세나 다름없는데 아주 유창하지는 못하지만 비교적 우리말을 잘하고 있다. “쌍둥인데 큰 딸은 1분 언니지만 아버지를 많이 닮고, 작은딸은 나를 많이 닮았다.”고 소개한 김은주박사는 자식교육 지침은 간섭이나 잔소리보다는 스스로 할 있도록 교육시켜 온 것 같다. 모녀의 관계가 마치도 친구관계처럼 다정다감했고 어른이 아이들한데 자율성을 많이 강조해 온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말로 교육시키는 것보다는 행동이나 실천으로 보여주는 교육을 시켜 왔다고 말한다. “큰 아이는 아빠를 많이 닮고, 작은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고 귀띔해 준다.
김은주박사는 대화할때나 토론할때 그 어떤 형식이나 권위같은 것을 싫어한다. 우리말을 할때도 고상하고 젊잖은 어휘를 구사하기보다는 대중적이며 민중적인 용어들을 한층 더 선호하고 있다. 그는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면서도 다른 나라 문화들을 존중한다. 흑인들의 얼굴이 검다고 하여 그 어떤 인종차별이나 선입견들을 배제해 왔다는 것이다.
우리동포들 가운데 국제결혼한 여성들을 깔본다든지 무시하는 것보다는 한층 더 관심을 갖고 배려하면서 도와주려고 많이 노력해 온 결과 국제결혼한 아줌마들이 그를 무척 고맙게 생각하여 항상 따듯하게 맞이하여 준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이들을 위해 그는 많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대학교 교수는 아니지만 미국주류사회에서 인정받는 교육자로서 활동해 왔다. 뉴욕주에서 학생들 시험문제들을 새롭게 개정하여 실시하는데 이 문제집을 제작하는 25명의 위원들을 선정하는데 백인계 교수들이 23명이고 흑인계1명, 동양인계 1명이 배당되었는게 여기에 소학교 교사인 김은주박사가 선정된 사실에 대해 그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김은주박사는 시민운동이나 조국통일운동에 가담하게 된 것은 그 어떤 계기때문이라기 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나왔다고 말한다. 미국 대학시절에 공부한 역사지식이나 도서들을 통하여 1905년 가쯔라-태프트 비밀조약같은 사실들을 알게되어 분노하기 시작했고, <세월호 사건>, <천안함 사건> 등을 통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 뒤에 숨어 있는 원인들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역사의 진실을 알게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전 유럽배낭여행을 한적이 있는데 그때 학교 동료들이나 진보적 교수들이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고 기억을 떠올리면서 “여행을 다니면서 미국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미국 밖에 나가서 미국을 바라보면 미국이 얼마나 현실과 다른가를 마해주는 대목이다. <언론들>이 대부분 쓰레기 같다는 것이다. 안에서 보는것과 밖에서 보는것이 얼마나 다른가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미국언론들의 실체라는 것이다.
김은주박사의 생활철학중 하나는 “이론과 실천이 일치하지 못하면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 큐바전문가였던 로버트 바흐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신을 돌아본다. 그는 또 남북간의 분단모순에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한다.
지역을 분열시키는 세력이 있는가 하면, 남과 북을 이념으로 분열시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호남지역과 영남지역을 분리하여 있지도 않은 차별성을 만들어 이간시키는 세력도 있고, 남과 북을 색깔로 분열시켜 이간시키는 세력도 있는데 이것은 한마디로 제국주의 세력의 분열하여 지배하는 전략에 의해 비롯되어 온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는 이미 사회모순과 분단모순의 본질과 근본을 꿰뚫고 있어 사회현상이나 나라와 사라사이의 모순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를 이미 이해하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은주박사는 아버지도 서울토박이고, 어머니도 경기도 사람이라고 지역이나 이념 및 색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하여 왔기 때문에 남북분단이나 호남-영남간의 지역갈등 같은 문제에 대해 영향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그 모순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그런데 이해하지 못하고 어이없는 질문들에 대하여 고개를 갸우뚱해 왔다는 것이다. 주면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당신은 서울사람이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인테리인데 어찌하여 호남사람들과 그렇게 많이 교류하느냐고 질문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받을 때는 아연실색한다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흑인 밀집지역으로 알려진 뉴욕 할렘가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대하여서도 백인지역에서 일하지 왜 흑인지역에서 일하느냐고 질문하는 어이없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고 밝힌 김은주박사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삶과 그 가치관이 무엇인지, 도대체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김은주박사는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동포사회 미주한국일보 같은 일간언론을 통해 <교육칼럼>을 집필해 온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이민사회의 많은 동포들이 그리고 주류사회에서도 그를 알고 있다. 그는 또한 주말의 우리말 학교에서 이민자녀들의 우리말 가르치기에도 기여해 왔다. 그래서 기자는 그의 생활을 <25시 활동>이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운동진영이나 진보운동진영 내부에서 새로 운동진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사업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푸락치>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을 배타시하는 경향들도 가끔 눈에 띄는데 이것은 극우세력의 횡포보다도 더 나쁜것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끝)
댓글목록
선군조선님의 댓글
선군조선 작성일
대단히 훌륭한 1.5세대입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이역만리 미국땅에서 혼자 억압받는자들, 침략당한 조국을 위하여 정의로운 진리를 깨닫고 날마다 싸워나가는 대단히 모범적인 분입니다.
좋은 여건 하에 살면서도 제 자신밖에 모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머리 숙여 부끄러움을 표해야 하며 따라 배워야 합니다.
김은주님의 댓글
김은주 작성일고맙습니다. 늘 배우면서 살아 가야지요. 또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로서 전 늘 배우면서 가르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기 해외에서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살 기 위해서는 우리 조상의 조국이 통일이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변해야 우리 해외동포들도 든든하게 당당하게 살 수 있겠지요. 제 후손을 위해...늘 열심히...통일을 위해 살아가고자 합니다.
미주청년님의 댓글
미주청년 작성일
김은주박사님의 비판의 소리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통일운동진영이나 진보운동진영 내부에서 새로 운동진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사업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푸락치>니 뭐니 하면서 사람들을 배타시하는 경향들도 가끔 눈에 띄는데 이것은 극우세력의 횡포보다도 더 나쁜것이라고 질타하기도 한다.>>>
맞습니다. 운동권 사람들중에 윤리도덕성이 없는 인간들이 좀 있습니다. 통일운동가랍시고 꺼덕대면서도 뒷구멍에서 호박씨 까는 리더가 있습니다. 그런 인간들이 껍적대는 꼴 눈꼴 사납습니다. 계기가 되면은 그런족속들 이름까 밝히려고 해요.
김은주님의 댓글
김은주 작성일저야 말로 정말 억울하게 "쁘락치" 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살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그 누가 진정한 사람이고 동지인지 알아서...함께 연대 하는 대상과 연대하지 못 할 대상을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제발 이렇게 서로를 어느 frame 에 갖히게 하는 "괴상하고 이기적인" 행동은 통일 운동한다는 사람들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