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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칼럼] 한일공조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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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6-02 20:05 조회1,2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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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칼럼] 한일공조의 뿌리

[민족통신 편집실]


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정권 차원의 한일관계가 급진전되는군요. 노동자와 위안부 등 일제 강제동원 문제부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출과 욱일기 게양한 일본군함 입항까지 걸릴 게 전혀 없듯 찰떡 공조가 이뤄지는 모양새입니다. 머지않아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를 인정하고 독도를 한국과 일본이 공동 운영하거나 소유한다는 소식까지 듣게 될지 모르겠어요. 60여년 전 미국의 제안이었거든요. 미국과 일본에 굴종과 일방적 양보의 사대 외교를 펼치며 오히려 경제손실과 안보위기를 불러오는데도 윤석열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진다니 나라가 어찌 될지 아찔해집니다.

여기서 한일공조 뿌리에 관한 역사 한 토막 되돌아보며 한일관계 미래를 내다보면 어떨까요? 어제의 적을 오늘의 친구로 만들고 오늘의 친구를 내일의 적으로 삼는 미국의 ‘실리’외교와 불미스러운 한미관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지난 3월 썼던 “윤석열의 친일 매국과 미국 방문”이라는 글과 좀 겹칩니다만, 요즘 여기저기서 강연하며 밝히는 내용이라 다시 정리해봅니다.

미국은 1941-45년 일본과 전쟁하면서 소련에 애걸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다. 1945년 미국의 핵무기 사용과 소련의 참전으로 일본이 항복해 전쟁이 끝났다. 1947년 소련의 영향력 확장을 미국이 견제.봉쇄하면서 냉전이 시작됐다. 미국은 국가안보법 (National Security Act)을 만들고, 이에 따라 국가안보위원회 (National Security Council)와 중앙정보국 (Central Intelligence Agency)을 설립했다. 전쟁부와 해군부를 국방부로 합치고 공군부를 국방부 산하에 창설하는 등 군사조직도 개편했다.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확산을 막겠다는 트루먼 방침 (Truman Doctrine)과 유럽의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원조하겠다는 마샬 계획 (Marshall Plan)도 발표했다.

1949년 4월엔 미국이 영국과 주도해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를 창립했다. 1949년 7월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10월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자, 미국은 1949년 12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란 제목의 ‘NSC 48/2’ 비밀보고서를 만들었다.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 전범국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신생 중국이 소련과 손잡지 못하도록 정치.심리.경제 수단을 동원해 공식적으로든 은밀하게든 소련과 중국 사이의 분열을 조장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미국은 이미 1949년 1월 중국 내전에서 밀리던 장제스 국민당이 마오쩌둥 공산당과의 평화협상을 중재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데 이어, 공산당에 은밀히 접근해 소련과 동맹을 맺지 않으면 대만을 포기하고 중국을 인정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던 터였다. 1949년 12월 마오쩌둥이 소련을 방문하자 이에 충격 받은 미국은 다급해졌다. 1950년 1월 트루먼 대통령이 미국이 대만에 더 이상 군장비를 지원하지 않고 중국에 위협을 가하지 않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애치슨 (Dean Acheson) 국무부장관은 “아시아의 위기”라는 제목으로 신문기자협회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알류샨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이라며 대만을 제외했다. 여기서 한국도 빠져 일부 한국전쟁 연구자들은 이른바 ‘애치슨 선언’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고 주장해왔는데, 이 선언은 미국이 김일성에게 남한을 침공해보라는 미끼가 아니라 마오쩌둥에게 대만을 침공해도 괜찮다는 암시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비밀 해제한 1940-50년대 외교문서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1950년 2월 중국이 소련과 동맹조약을 체결하자 미국은 중국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안보정책을 재검토하며 소련에 대한 더 효과적 억제정책을 1950년 4월 마련했다. 흔히 ‘NSC-68’로 불리는 “국가안보를 위한 미국 목표와 프로그램”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소련의 세계팽창을 막을 방법은 미국 군사력 밖에 없기에, 국방비를 대폭 증가해 수소폭탄 개발을 포함한 핵전력과 재래식전력을 대대적으로 증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와 아울러 미국은 일본의 정치.경제 복구에 힘썼다. 전범국 일본을 ‘처벌’하지 않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점령정책을 펼치며 일본을 반소.반공 핵심동맹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엔 소련을 끌어들여 일본과 싸웠지만, 세계대전이 끝난 뒤엔 친구였던 소련을 적으로 삼으며 적이었던 일본을 핵심동맹으로 만든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을 미일동맹에 포함시키려 힘썼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0월 한일 예비회담을 주선했다. 1952년 2월 1차 한일회담도 주선했지만, 이승만이 한 달 전 발표한 '대한민국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에 대한 한일 갈등으로 결렬됐다. 이승만은 한국어업과 대륙붕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평화선' 또는 '이승만 라인'이라 불리는 해양경계선을 일방적으로 그어놓고 이를 침범하는 일본어선을 격침하거나 나포하고 어부들을 구속하도록 했다. 미국이 1953년 1월 이승만을 일본으로 초청하기도 하고, 국무부관리들이 4개월간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중재했지만 한일 간 불신과 갈등을 좁히지 못해 1953년 4월 2차 한일회담과 1953년 10월 3차 회담도 결렬됐다.

이승만이 미군정을 따라 군대와 경찰을 친일파로 채웠어도, 그의 반일정책은 완고했다. 국무부장관이나 주한미국대사 등 국무부 고위관리들이 이승만과 회담할 때마다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요구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1954년 7월 아이젠하워-이승만 한미정상회담까지 결렬되기도 했다. 덜레스 (Allen Dulles) 국무부장관이 한미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한일 관계정상화에 있다며 한국의 안전보장과 경제발전을 위해 반일정책을 포기하라고 하자, 이승만은 변함없이 한국을 식민지처럼 간주하는 일본을 비난하며 반발했다. 아이젠하워가 이승만의 완고한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며 퇴장한 데 이어, 곧 재개된 회담에서는 이승만이 도중에 퇴장해버렸다.

한일협정에 관해 미국은 집요했다. 1959년 5월 ‘이승만 라인’에 항의하는 공식서한을 한국정부에 보내고, 1960년부터 한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압력을 서울과 도쿄 그리고 워싱턴에서 입체적으로 전개했다. 줄기찬 미국의 압력에 따라 1960년 4월 한일회담이 다시 열렸지만 4월혁명과 이승만의 하야로 중단됐다.

1960년 4월 이승만이 물러나자 미국의 압력은 더욱 다양해지고 강해졌다. 허정 과도정부 수반에게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고 미국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추구하도록 주문했다. 허정은 대통령대행이 되자마자 미국의 내정간섭을 자청하며, 한일 국교정상화에 ‘특별히’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의 ‘충고’에 따라 1960년 5월 ‘5대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 하나가 한일관계 정상화였다.

1961년 5월 박정희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자, 미국은 쿠데타를 승인하며 한일회담을 서두르도록 촉구했다. 박정희 정권은 즉각 일본과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조카사위이자 쿠데타 동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1962년 일본에 건너가 외무상과 수상을 만나며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한일협정에 장애가 된다면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 일본 외무상은 거절하고 미국 국무부장관이 지지했다. 미국은 독도를 한일 공동으로 운영하도록 제안하기도 했다. 박정희 역시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해 한일관계의 걸림돌인 독도를 폭파해 없앨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이런 굴종과 양보 끝에 1965년 6월 한일협정이 맺어졌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2015년 12월 박정희 딸 박근혜 정권이 일본과 ‘돌이킬 수 없는 위안부 협정’을 맺었다. 2016년 11월엔 일본과 군사정보협정 (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을 체결했다.

미국은 세계패권의 미국이익을 위해, 1950-60년대엔 소련을 봉쇄.저지하고, 2010-20년대엔 중국을 견제.압박하는 정책을 펴며 한일공조를 강요하는데, 박정희와 박근혜보다 훨씬 더 미국에 굴종하고 일본에 양보하며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윤석열의 매국외교를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손실과 전쟁위기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 교과서 인정과 독도의 한일 공유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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