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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양정용 동지를 추모하며 부인 한현숙 선생의 추모사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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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3-02 17:27 조회5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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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운동가 고 양정용 동지의 49재를 맞아 미국과 남녘, 해외의 인사들이 2월 26일 온라인 Zoom 으로 추모식을 가졌다.  양정용 동지의 부인 한현숙 선생의 추모사와 뉴스로의 로창현 기자의 기사를 게재하며 운동가로서의 고인을 기린다. [민족통신 강산 기자]


사랑하는 당신 잘가요 내기억속 영원한 어린왕자



故양정용통일운동가 부인 한현숙




안녕하세요. 양정용씨 아내이고 양연정 양대원 양지웅의 엄마인 한현숙입니다.여기 줌(zoom)에 계신 분들과 처음 뵙는 분들도 있을것이고 아주 오랜 시간 저와 양정용을 기억하시는 분들 그리고 가장 안타깝게 지켜보실 가족 여러분들도 여기 계실 겁니다.고맙고 사랑합니다.이 자리를 통해 그와 함께 했던 추억을 몇가지 이야기 할까 합니다.즐겁게 들어주세요.이것은 저의 추억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을 살았던 우리들의 한켠의 추억이기도 합니다.

서울에 상경해 학원가방 매고 신설동 지하철 역을 왔다갔다 하던 학원생이었죠.어느날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 역 표검사하고 있는 양정용 당신.크고 둥굴고 하얀 얼굴이 무작위로 팡팡팡 튀어 나의 마음으로 들어오던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신선합니다….나의 첫사랑 양정용…. 36년이 지난 오늘도 그날의 그 장소.장면.그 상황은 너무도 생생합니다.그리고 아마87년 가을쯤?아님88년 늦봄?날짜 기억은 정확하지 않는데 긴팔과 짧은 팔의 윗도리를 입고 있었던것 같아요.신촌 어느 골목에서의 약속이 있어 만났어요,그런데 이상했어요.아직 최루개스가 남아있던 신촌역 근처 골목 어디였어요.그 하얗던 얼굴은 검게 그을렸고 다리를 쩔뚝거리며 엉거주춤 걸어왔지요.너무 놀라서 뛰어갔는데 모습을 보고 웃음 참느라고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왜 이래요?응 지랄탄이 다리를 지나가서 다쳤어….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죠.얼굴은 왜 이렇게 그을리고 탔어요?응 나도 정신이 없어서 쓰리고 아프네 헐…



지금 생각하면 병원부터 갔을것 같은데 우린 그렇게 얼굴을 보고 다리 상처난 곳을 보면서 병원에서는 꿰매는 수술은 안해주고 붕대만 매주고 말았냐고 물었더니 나보다 많이 다친 학우가 있어서 그냥 병원에서 붕대하나 붙이고 나왔다나???정말 황당했어요.저는 저녁이나 먹자하고 음식점에 들어 갔는데 사람들이 막 쳐다봐요..이상하게 하두 처다봐서 화장실에 가서 씻자고 갔는데 아파서 얼굴을 씻기가 어렵다고 했던 생각이 나요 하두 쳐다봐서 밥을 먹지 못하고 식당을 그냥 나왔던 기억납니다.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린데21.22살에 참으로 용기도 가상했다 생각해요.그리고 그날의 그 얼굴에 대해서는 결혼해서 가끔 놀려주곤 했어요.눈섶이 없어서 생각이 났거든요 그때 얼굴이 드라마 주인공 칠뜨기 얼굴이라고 이야기하면서요.그때 얼굴에 그으름이 벗겨지까지는 오래 걸렸죠 몇달동안 까맸어요,..몇개월동안 그 얼굴색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도 했구요 그 눈섶은30대 중반부터 조금씩 나서 항암치료후 눈섶의 숫자가 늘었다고 우리가 농담삼아 그 칠뜨기 이제야 눈섶이 생겼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답니다.




양정용씨가88년에 수배를 받고 체포되어서 서울구치소에 있다가 나왔어요.그곳에서 이부영선생님과 같은 방에 배정 되어 하늘같은 선생님을 뵈었다고 하더라구요.그때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구속되어 재판받고 풀려나던 시절이었습니다.서울구치소에서 나왔을때는 이미 겨울이었고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저희는 만났어요.너무도 비장한 모습으로 만났지요.참 긴 시간동안 못봤으니까요…다방이었는데 들어와서 앉아서 식사 주문을 하려 했는데 마실걸 주문하라고 하더군요.그러더니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키더니“현숙아 나는 조국과 결혼한다.너는 다른 사람 찾아봐라.”대뜸 하고서는 그냥 일어나 가버리더라구요..요즘 말로 헐!..완전 까인거죠…허탈하게 집에 왔는데 뭔 정신이었는지….지금 생각해보면 아니22살에 조국과 결혼한다는 이야기에 하늘이 무너질 일은 아닌것 같은데 전 하늘이 무너졌던 기억이 납니다.지금 생각하니 그런 열정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기도 하네요. 20대에 입지-자신의 뜻을 세웠으니까요.그런데 그런 의지를 미국에서 더 열심히 조국의 통일운동에 힘을 썼네요…




양정용씨의 청춘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던 시간이었고 오늘까지 미완의 시간으로 남겨두고 떠났네요 아름다운 세상,남과 북이 통일 된 세상이라 말했던 당신 양정용..잘가요 암투병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당신이 참으로 아름다웠어요.어떤 부분이든 수용이 먼저이고 양보와 인내가 미덕이었던 당신 참 힘들었던 이승에서의 삶이 저승에서는 편안하길 바랄께요..연정이 대원이 지웅이를 남겨주었고 당신과의 추억 그리고 작은것이 아름답다며 응원과 함께 용기를 낼수 있는 미소와 따뜻한 마음을 내게 남겨 주어서 고마워요.

사랑하는 당신 잘가요.내 기억속에 영원한 어린왕자로 그리고 내게 하늘을 보며 백조의 데네브자리를 나의 별로 만들어 주었던 추억을 간직한채 살아가겠죠 나와 함께 해주어서 감사했어요.사랑합니다.항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식사 맛있게 해주어서 고맙고 용기를 주었던 환한 웃음을 보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2022년2월26일 아내 한현숙




미주 양정용통일운동가 온라인추모 모임



미국 한국 유럽 각지서 고인의 뜻 기려


로창현 뉴스로 기자

故양정용 통일운동가의 49재를 맞아 미국과 한국 유럽 등지의 인사들이 모여 온라인 추모식을 가졌다.


26일Zoom을 통해 진행된 추모 모임은LA김미라 씨의 사회로 평생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한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다짐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은80년대 중반 전두환 군사독재의 서슬 퍼런 폭압(暴壓)에 항거하며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7년 연세대 이공대 학생회장으로6월 항쟁에 참가했고,이한열 열사 장례위원이었다. 1988년에는 연세대 조국통일촉진 특별위원회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였고 같은 해 수배,구속,및 선고유예를 받기도 했다.


2017년에는 이한열문화제, 6월항쟁30주년 기념 시민문화제 사회를 담당했으며, 2018년 미국 이주 후에는 필라세사모,흥사단 필라지부,한반도 평화를 위한 해외동포연대,진보당연대 재미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암과 싸우던 양정용 운동가는 지난해12월30일 국정농단 박근혜 사면복권에 분노한 미주동포들의 규탄 집회를 마치고 뇌출혈로 인해 쓰러졌고 끝내1월9일 펜실베이니아주 애빙턴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5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날 행사에서는 고인의 약력소개와 함께 최관호 진보당연대 재미위원회 위원장과 친구인 정명수씨,필라세사모의 장석근 씨가 추모사(追慕辭)를 했다.



이어 보스턴의 이금주 평화운동가와 필라델피아민주연합 김양일 대표,뉴욕의 이주연 통일운동가가 고인과의 특별한 기억을 공유하며 추모 나누기를 했다.특히 현재 암투병중인 필라델피아의 이현정 통일운동가가 추모의 글을 보내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현정 운동가는“그는 일생을 조국의 민주주의와 자주적 통일에 가치를 두고 행동하고 실천하는데 정성을 다했습니다.양정용 동지,지상에 있는 동안 당신의 열정과 겸손에 감사드립니다.남은 우리는 동지께서 걸어 왔던 평화,민주주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힘을 내보려 합니다.이제 자유롭게 편히 가십시오.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하고 애도했다.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김정웅 안무가는 진혼무(鎭魂舞)영상을 직접 만들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양정용 운동가의 부인 한현숙씨와 세 자녀(양연정 양대원 양지웅)도 각각 남편과 아빠에게 보내는 애끓는 편지를 보내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글로벌웹진NEWSROHwww.newsroh.com

<꼬리뉴스>

‘양정용 동지를 추모하며’이현정 운동가의 편지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좋은 친구이자 멘토이자 동지였던 그가 수 년간 암 투병 끝에 어제2022년1월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양정용 동지는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믿는 것을 지켜내는 용감한 사람이었습니다. 2021년12월30일,양정용 동지는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를 사면한 것에 대한 규탄 시위를 필라델피아에서 조직하고 이끌었습니다.



말수가 적으나 존재감이 큰 그는 힘든 암 투병 속에서도 항상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그는 일생을 조국의 민주주의와 자주적 통일에 가치를 두고 행동하고 실천하는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는 진보당연대 재미위원회의 사무국장이었습니다.

그에게는 그의 행동과 실천을 늘 함께 한 아내이자 소울메이트인 한현숙과 이쁜 세 자녀가 있습니다.

양정용 동지,지상에 있는 동안 당신의 열정과 겸손에 감사드립니다.남은 우리는 동지께서 걸어 왔던 평화,민주주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더 힘을 내보려 합니다.

이제 자유롭게 편히 가십시오.앞으로 우리가 가는 길에 함께 해 주시고 힘을 주시고 지켜봐 주십시오.


2022년1월10일 씀                 이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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