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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영생하는 삶 - 김사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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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10-24 08:56 조회9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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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찾아 만주광야를 방황하다 드디어 해방후에야 빛을 만나게 되자 창작가 종군작가가 되어 짧은 한생을 강렬한 빛으로 살았던 김사량. 치열한 전쟁 가운데서도 김사량이 양심적이고 정의감과 신념이 있는 인물이라시며 그의 생사를 애타게 찾던 김일성 주석, 그리고 그의 작품집을 출판하도록 하며 그의 한생이 조선대백과사전에 오를 수 있도록 하였던 김정일 장군, 그가 전사한 지 6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에게 공화국의 영웅칭호를 수여한 김정은 위원장의 뜨거운 사랑에 대한 글을 조선의 오늘에서 전재한다. [민족통신 강산 기자]



빛과 영생하는 삶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소설가 김사량은 참군을 결심하고 만주광야를 헤매다가 우리 부대를 종시 찾아내지 못하고 연안에 가서 장편기행문 〈노마만리〉를 썼다.》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잊혀지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참다운 생과 그 생을 안겨준 은혜로운 품에 대해 더욱 깊이 새겨보게 하는 한 작가가 있다.

김사량.

그를 공화국인민들은 물론 남조선과 해외의 동포들도 잘 알고있다.





세상에 태여나 서른일곱해밖에 살지 못한 김사량이 세상을 떠난지도 어언 70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일곱번이나 흐른 오늘에 와서 파란많았던 한 인간의 운명과 삶을 재조명해보게 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그것은 운명의 태양의 밝은 빛을 떠나 인간의 참된 삶을 생각할수 없다는 철리를 사람들에게 깊이 심어준 사람이 바로 작가 김사량이여서일것이다.

《…빛을 찾아 방황하고 빛을 그리던 나에게 그 빛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의 생도 없었을것이다.》

김사량이 남긴 이 말에는 그가 한생을 두고 품고있던 진심이 담겨져있고 그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하고싶었던 심장의 토로가 비껴있다.

김사량은 해방전 부유한 가정에서 태여나 일본에 건너가서 대학까지 나온 지식인이였다.

하지만 남달리 의협심이 강하고 조국을 사랑하였던 김사량은 언제나 일제식민지통치라는 암흑의 장막속에서 신음하는 조국의 운명과 함께 참다운 삶의 빛을 찾아 모대기였다.

우리 인민과 남조선, 해외의 동포들속에 널리 알려진 단편소설 《빛속에》를 비롯하여 그가 해방전에 창작한 작품들은 삶의 해빛에 대한 강렬한 지향, 그 빛을 향해 한시바삐 마중가고싶은 김사량의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있다.

김사량이 그리도 열렬히 희망한 그 빛은 항일의 빨찌산대장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김사량은 일제의 백만대군을 쥐락펴락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위인상에 매혹되여 빛을 찾아 보천보로, 연안으로, 베이징으로 방황하며 죽을 고비를 열두번도 더 넘기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갈 결심을 품고 일본을 떠난 그는 중국의 연안지구에서 김일성장군 빨찌산부대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를 전해듣고 애용하던 회중시계까지 팔아 마련한 두권의 편지용지에 깨알같은 문자로 기행문을 썼다.

이렇게 완성한 장편기행문이 우리 수령님을 태양으로 우러르며 조선인민혁명군을 태양부대로 칭송한 《노마만리》였다.

해방후 조국에 돌아와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뵙게 된 그는 태양의 위업을 받들어 한생을 빛내일 신념의 맹세를 가다듬었다.

1946년 8월 그가 창작하여 무대에 올린 연극 《뢰성》은 력사적인 보천보전투의 승리를 실감있게 재현한것으로서 우리 문학예술사상 처음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형상하여 무대에 올린 작품이였다.

그가 창작, 창조한 수령칭송문학과 수령형상작품에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의 마음과 더불어 살아도 죽어도 오직 위대한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따르려는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가 세차게 맥박치고있었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으로 탄원한 김사량은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는 땅크를 타고 남진하면서 수많은 종군기를 써냈으며 대전해방전투가 벌어지는 가렬처절한 시가전장을 취재하여 종군기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를 집필완성하여 평양으로 올려보냈다.

《서울서 수원으로》, 《락동강반의 전호속에서》, 《바다가 보인다》 등 그가 남긴 종군기들은 당과 수령에 대한 그의 무한한 충실성을 잘 보여주고있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심장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그는 자기의 당원증과 함께 다음과 같은 구절이 담긴 마지막편지를 동지들에게 전달하고 적후에 남았다.

《… 나의 당원증은 당중앙위원회에, 종군수첩은 작가동맹에 전해다오.

승리를 위하여, 희망을 위하여.

김일성장군 만세!

1950년 10월 1일 김사량》

그후 그는 지리산인민유격대에서 출판선전사업을 맡아보다가 1951년 6월 23일 적들의 포위속에 들게 되자 《김일성장군만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웨치며 장렬하게 자폭하였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지리산의 고립무원한 정황에서 마쳐진것으로 하여 오랜 세월 전해지지 않고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일가친척들의 마음속 한구석은 늘 무거웠고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그의 이름은 동지들과 벗들은 물론 혈육들의 기억속에서까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 김사량을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의 운명을 관심해주신분이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계속)



빛과 영생하는 삶 (2)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사량이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서 당원증과 편지를 보내온 이후 일체 소식이 없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퇴하는 인민군부대들의 지휘관들과 전선에 파견되였던 일군들에게 김사량과 관련한 소식을 알게 되면 즉시에 알려달라고 하시고 남조선혁명가들을 만나실 때면 먼저 김사량의 행적에 대해 아는것이 없는가고 물어보군 하시였다.

또한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적측지역에 나가는 정치공작대, 인민군정찰일군들에게 김사량의 생사여부를 알아보고 꼭 찾아내야 한다고 특별과업을 주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김사량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가지고있을 때에도 김사량은 정의감이 강하고 량심적이며 신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신념이 있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음어린 교시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김사량을 그토록 애타게 찾고계신다는것을 후날에 알게 된 한 이름있는 시인은 이렇게 격정을 터놓았다.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김일성장군님께서 한 인간의 생사여부를 놓고 그처럼 고심하고계신다는것을 알면 세계는 조선의 전승에 놀란것처럼 또 한번 놀랄것이다. 동서고금 전쟁사의 갈피들에는 대소전투가 매일과 같이 벌어지는 대전쟁속에서 국가의 최고사령관이 한 종군작가의 행처를 찾기 위해 할수 있는 대책을 다 취한 사실이 전혀 없다. 김사량! 당신은 살아있어도, 죽었어도 세상에 더없는 행복자이다.》

김사량을 잊지 못하시며 아끼고 믿어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받드시여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종군작가 김사량의 최후를 밝히기 위한 일에 커다란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이 땅에 생을 둔 모든 사람들에게는 한점의 마음속그늘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여기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사량의 최후를 밝혀내는 사업은 단순히 한 인간의 생사여부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끼고 믿어주시던 한 오랜 지식인의 정치적생명을 빛내여주기 위한 중대한 문제라고 하시며 김사량의 행적을 밝히기 위한 사업을 근기있게 밀고나가도록 하여주시였다.

그후 김사량의 전투적인 종군활동과 그 최후에 대한 조사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사량은 비록 일제시기에 고등교육을 받았으나 민족적량심을 지니고 문필활동을 벌렸다고 하시면서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우러러 칭송한 재능있는 작가였다고,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종군작가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다가 전사한 혁명적인 작가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재능있는 작가! 혁명적인 작가!

붓으로 조국과 인민에게 복무하는 작가들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영예롭고 고귀한 칭호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김사량과 그의 가족들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과 배려는 끝이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사량의 가족에게 거듭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고 그의 일흔세번째 생일을 맞는 1987년 3월 《김사량작품집》을 출판하도록 하여주시였으며 조선대백과사전에 김사량의 이름과 그의 한생이 오르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김사량작품집》이 발행되자마자 한 작가의 정치적생명을 끝까지 지켜주고 빛내여주신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도덕의리에 대한 해내외의 반향은 대단하였다.

김사량을 변함없이 믿어주고 가족들의 마음속그늘까지 깨끗이 가셔준 태양의 광휘로운 빛발앞에서 김사량의 《실종》과 《전향》, 《변절》에 대하여 함부로 떠들어대던 어중이떠중이들은 추풍의 락엽처럼 력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되였다.

김사량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들의 사랑과 은정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에 의하여 변함없이 이어졌다.

주체102(2013)년 6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신념이 있는 사람, 정의감이 강하고 량심이 있는 작가라고 크게 평가하여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재능있는 작가, 혁명적인 작가라고 하시면서 품들여 그 최후를 밝혀주신 김사량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며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종군작가가 전사하여 60여년세월이 흐른 뒤 수여된 공화국영웅칭호, 이는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지니신 가장 고귀한 혁명적의리와 믿음이 피운 영생의 꽃이였다.

이렇게 되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영웅홀과 석박산기슭의 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에 공화국영웅 김사량의 모습이 새겨져 조국의 력사와 후대들의 기억속에 빛나게 되였다.

절세위인들의 불보다 뜨거운 사랑과 고매한 은정, 고결한 의리에 떠받들리여 영생의 언덕에 오른 김사량.

위대한수령님들과경애하는김정은원수님의 넓고도 넓은 의리와 믿음의 품, 세대와 세대를 이어 변함없이 영원히 비쳐지는태양의 빛발속에서 김사량의 삶은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영원할것이다.


-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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