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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45. 전남빨찌산 투쟁에서 용맹을 떨친 군사간부동지들을 회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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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7-21 06:03 조회1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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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45

전남빨찌산 투쟁에서 용맹을 떨친 군사간부 동지들을 회고함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조국전쟁 시기에 영광 군유산 유격대 부대장인 강막동 동지를 꼽을 수 있다. 강막동 동지는 군유산 상봉인 수리봉을 차지한 적들과 깟봉을 차지한 막동부대와의 대치상태 가운데 수많은 인민들과 동지들을 보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지휘관으로서 용맹을 떨쳐 적들도 막동부대하면 벌벌 떨기도 했다 한다. 막동부대장이 희생된 후 적들은 목을 잘라 영광읍 사거리에 전시하는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장성 태청산 빨찌산투쟁에서 소위 16개 유엔군이 침략해 들어올 때에 나순석 장성 8중대의 용맹을 잊을 수 없다. 나순석 장성 8중대는 16개 침략군들이 침공해 들어올 때에 친입을 방어함으로 태청산에 입산한 피난민과 각 단체 성원들을 보호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불갑산 빨찌산투쟁에서 오대산 빨찌산 대대장이었던 불갑지구 무장부대 참모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불갑산 1951년 2.0작전에서 수배나 많은 적들과의 투쟁에서 작전을 지휘했던 참모장이다. 51년 3월 15일 불갑산 마지막 탈환작전에서 희생되고 만 그 참모장을 잊을 수 없다.

광주무등산 빨찌싼 투쟁에서 김팔중대장을 잊을 수없다. 광주 시내 돌입작전이나 무등산 지역에서 용맹을 떨치었기 때문이다.

화순 말봉산에서 빨찌산 투쟁에서 총사 1년대장이었던 남태준동지의 용맹을 회고 하게 된다. 남태준동지는 여수 애국병사 봉기 때 이등중사 였다. 구빨찌산 투쟁에서 용맹을 떨치었다. 9.28후퇴 후 적들이 침공해 들어올 때에 매복전으로 심대한 타격을 가해 무장부대 편성에 공로를 세운 동지이며 총사 부참모장이면서 백운산지구 사령관을 하다가 비트에서 생포되어 옥중 투쟁도 치열하게 전개했다. 결국 1954년 12월 24일 다른 동지들과 함께 대구 수색사형장에서 총살당했던 남태준동지를 잊을 수 없다. 적들은 남태준 부대가 나타났다하면 벌벌 떨 정도였었다.

화순백아산은 전남빨찌산 투쟁의 사령기지다. 총 4개 연대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총참모장이었던 박정현 동지를 잊을 수 없다. 박정현동지는 나주군당위원장을 했고 9.28 후퇴 후는 불갑지구사 사령관을 했고 제 3지구사 사령관을 하다가 백아산 총사령부 총참모장을 하던 중 백아산 전투에서 모후산으로 가는 한동산 지휘부 땅굴 속에서 작전토의 중 적의 포탄에 희생되고 말았다. 전남발찌산 투쟁사에 정치 군사 전략가의 자질을 갖춘 군사간부였었다.

백운산은 전남도당의 핵심 기지였다. 여기에 백운지구 유몽룡 사령관과 조갑수 부사령관은 당시 참모장으로서 51년 적들의 대대적인 동기공세 때 조갑수 부대는 살아남아 1954년까지 투쟁을 전개한 영웅이다.

도당 정치공작대 부대장인 조동만 동지는 여천군당 위원장으로서 51년 대공세 때 기습 매복작전으로 100명의 무장대를 결성한 공로를 남기어 영웅칭호를 받기도 한 정치 군사간부였다.

전남부대장이었던 이봉삼동지는 광양무장부대 부대장하다가 남태준부대 부참모장도 했다 그후 전남연대 참모장도 했고 마지막에 전남부대 부대장을 하다 투쟁 중에 하동 섬진강에서 희생되었다. 마지막까지 군사간부로서 지휘와 용맹을 떨쳤다.

전남 지리산부대에서 용맹을 떨친 1중대장 이선중 동지를 잊을 수 없다. 이동지는 인민군 출신으로서 투쟁에서 지휘와 용맹으로 이름나 있었다. 필자와 같이 지리산 지초봉 전투에서 팔 중상으로 외팔이 되었으나 끝까지 싸우다 지리산에서 한줌의 흙으로 산화해 간 그 동지를 잊을 수없다. 지금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아롱거린다.

지리산 전남 전투지구당 부 조직부 지도원인 김용철 외팔이 동지를 잊으수 없다. 김동지는 남태준 일연대에서 대대장을 하다 전투중 팔을 잃었다. 김동지는 빨찌산 용사다. 그는 지리산 전남도당 학교 학생으로 추천받아 공부하다가 적들의 대공세로 인하여 학업이 중단되어 대공세 때 살아남았다. 군당간부들이 도당학교에 왔다가 같은 학생신분으로 살아남아 지구당 조직부에서 활동했던 동지들 5명을 인솔하고 구례 광의면에 투쟁 나갔다가 외팔이 김용철 동지만 살아남아 아지트로 돌아왔다.

이 때 광의면 지서는 밤에 자위단을 꾸려 무장을 들고 마을에 들어오는 빨찌산을 잡는 임무를 맡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인근 산기슭에 잠복했다가 날이 새자 총을 거두어 지서로 가는 자위단 일행을 향해 발사하여 총을 수거하고 지리산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 반동들이 던지는 날창에 맞아 우리 일행중 4명은 전사하고 김용철 외팔이 동지만 살아 돌아온 가슴아픈 사실이 있었다.

그 때 우리는 칼빈 한자루만 무장하고 나머지는 비무장이었다. 전투경험을 가진 김용철동지의 뛰어난 용맹술도 보람없이 아까운 동지들만 희생되고 만 아픈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전남 노령 병단장 김병억 사령관을 잊을 수 없다. 노령지구는 영광 담양 장성군당을 지도하는 지구이다. 김병억노령병단 사령관은 담양 감악골에 진지를 쓰면서 전북유격대와 합동작전도 잘해 이름이 나 있다. 합법때 장성군당위원장을 하다 9.28후퇴후 노령지구 결성에 따라 사령관으로서 위용을 떨치기도 했다.

이상의 전남빨찌산투쟁에서 용맹을 떨친 군사지휘관 동지들을 회상하게 된다.

항일 빨찌산 혁명 전통을 이어 조국전쟁시기에 전남빨찌산 투쟁사는 위에 서술한 우수한 간부동지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도에 비하여 더욱 가열찬 투쟁을 전개한 빛나는 발자취를 남기었던 것이다. 그들 유능한 군사간부들로 인하여 용감한 부대원들의 투쟁은 더욱 빛났던 것이다.

지금은 그들 모두가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가렬차게 투쟁하다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여 갔지만 어쩌다 살아남은 당자의 한 사람으로서 끝까지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반제반미 자주화 투쟁전선에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바쳐 투쟁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참고@@ 서술한 간부들 외에도 많은 군사간부들이 있지만 기억나고 그 군사간부 밑에서 투쟁을 했거나 지켜본 사실이 있기에 기억에 남는 것만 여기 기록하였다는 점을 이해하기 바랍니다.

2021년 7월 16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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