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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거창, 함평의 민간인학살지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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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5-03 08:34 조회1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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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공원은 박산골에서 학살된 719명과 청연마을에서 학살된 84명. 그리고 탄양골에서 학살된 100명을 3계단을 이루어 마치 제주 4.3희생자들 처럼 열을 지어 생년월일과 학살일자 그리고 살아 있는 유족들의 이름을 비문에 새겨놓고 있었다. 5.16전에 세워진 구묘에 남자묘, 여자묘, 어린애묘를 써놓고 위령비를 세워놓았는데 구테타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묘비를 파괴하고 유족회 임원들을 소위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감옥에 넣어 고난의 형극을 겪기도 했다."

김영승 선생이 일행과 함께 거창을 방문하면서 리승만 정권 시절에 일어난 거창민간인학살 현장을 방문한 소식과 함께 함평민간인학살 위령지를 찾아 추모한 소식을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칼럼] 거창, 함평의 민간인학살지를 방문하다




2021. 4/30-5/2까지 거창 남하면 산골에 살고 있는 정경모 박창숙 동지 부부가 우리선생들 5명을 초청해서 김지아님 차를 타고 거창 신원면 민간인학살지와 위패가 모신 평화공원을 둘러보았다.

평화공원은 박산골에서 학살된 719명과 청연마을에서 학살된 84명. 그리고 탄양골에서 학살된 100명을 3계단을 이루어 마치 제주 4.3희생자들 처럼 열을 지어 생년월일과 학살일자 그리고 살아 있는 유족들의 이름을 비문에 새겨놓고 있었다.

5.16전에 세워진 구묘에 남자묘, 여자묘, 어린애묘를 써놓고 위령비를 세워놓았는데 구테타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묘비를 파괴하고 유족회 임원들을 소위 국가보안법을 악용하여 감옥에 넣어 고난의 형극을 겪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저질은 참극이었다. 이들에 대해 악화된 여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 등을 극형에서 10년까지 때렸으나 얼마후에 다 풀어주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역대정권들은 여론의 무마를 위해 평화공원을 만들어 추모해 오고 있으나 배후에서 직간접으로 학살을 사촉한 미제의 범죄에 대해서는 입도 빵긋하지 않는 예속정권임을 우리 모두는 똑똑히 알고, 단결된 힘으로 미제의 범죄행위를 단죄하고 정당한 배상을 받아내도록 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미제를 하루라도 빨리 몰아내는 반미자주화 통일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지는 현장 기행이었다.

특히 719명을 무참하게 학살한 박산골 현장에는 주위 바위에 총탄구멍이 많이 나 있는 것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날의 참상을 증명해주었다.

거창 생명문화연구소를 경영하고 있는 한대수 거창 무용문화 지부장의 초청으로 점심을 대접받고 유명한 명승지도 둘러보았다 . 고맙게 생각한다.




2021. 5/2일 거창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서 광주 운암동 한국병원에 입원중인 박동기선생을 문병했다. 박동기선생은 비오는 날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다리뼈가 부서젔다. 조선대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한국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하고 있다

일요일인데 응급실로 들어가 어렵게 만나보았다. 아마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들것 같아 많은 염려를 낳고 있다.

일정상 오랜시간을 끌수 없어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화순 춘양면에 살고 계신 94세의 이영복선생집을 찾았다.

이영복선생은 1951년 화학산 전투때 화순군 지구당 1불럭에서 2불럭간 통신사업을 했으며 부친이 남여단 부대에 있다가 51년 3/18일에 남여단부대가 희생당할 때 생포되었다가 적들에게 학살을 당했다고 했다. 그래서 남여단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본인은 화학산 전투에서 생포되어 광주포로 수용소에 있다가 무기를 받고 김천으로 이감되어 살다가 4.19때 15년으로 감형 되어 대구에서 62년도에 출옥했다 한다. 출옥후 오늘에 이르기 까지 은둔생활을 해온 것이다

읍에사는 양득승 선생은 93세인데 화순 유격대 문화부 중대장하다가 화학산 전투때 체포되었으나 외가 친척 중에 검사출신이 있어서 아예 공안족보에서 제외 돼 순수한 민간인 신분으로 지끔껏 살아오고 있다. 이 두분과 읍 모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정상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점심을 함께 들고가라고 권유를 뿌리치고 함평 월야로 달렸다.

오늘 기행은 마침 황의민 님의 봉사정신에 의한 수고의 덕택으로 가능했다. 운전에 많은 신경을 쓰면서 서울까지 무사히 도착한 수고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양윤식선생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모 가든식당에 들어가 한우 불고기와 장어불고기 대접을 받았다. 




함평군 일대에서 희생된 민간인 위패를 한군데에 모신 위령지를 찾아 추모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여 상경길에 올라 무사히 귀가했다. 그리고 이 위령지는 함평 각면에서 적들에게 학살된 사인이 확인된 민간인 1,818명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위령제를 올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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