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32. 백운산에 남겨진 동지의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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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2-18 21:53 조회1,04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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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 한다 32.
전남 빨찌산 전적지 중 도당 핵심기지인 백운산에 남겨진 이름들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백운산은 구례 광양 순천으로 둘러싸여 있다. 산은 접산으로 유격투쟁의 진지로서 다른 유격근거지에 비해 유리한 지형지세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임진 조국전쟁, 갑오 농민전쟁, 의병투쟁, 해방 전후 빨찌산투쟁의 핵심기지중의 하나다.
백운산의 빨찌산 투쟁은 1954년에 종막을 고하는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백운산 빨찌산 투쟁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동지들의 이름을 따서 봉우리 능선 골짝 아지트에 이르기 까지 이름을 붙여 길이길이 되새겨 보고 있는데 필자가 아는 것만 서술한다면 아래와 같다.
백운산은 당시 전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인 김백동 동지 이름을 따서 백동산이라 칭하였다.
김백동 동지는 일제 때부터 반일 운동을 전개했으며 조국전쟁전에 전남도 당위원장을 했으며 1950년 합법 때 전남도 인민위원장을 했고 1951년 덕유산 송치골 6개도당위원장 회의에 전남도당위원장 대신해 참여했으며 9.28후퇴 후 봉두산에서 희생되었다.
백운산 상봉은 전남도당 위원장인 김선우 동지 이름을 따서 선우봉이라 칭하였다.
김선우 위원장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일찌기 고향을 떠나 원산에서 노조운동을 전개했고 경기도당부위원장을 하다 1949년 전남도당 위원장을 하였다. 6.25합법 때 전남도당 부위원장을 했으며 9.28 후퇴 후 전남도 유격대 총사령관을하다 1953년 백운산에 박영발 위원장이 제 5지구당 상임 부위원장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 후임으로 도당위원장을 하다 1954년 4/5일에 백운산에서 희생되었다.
똬리봉은 전남도당 부위원장인 김인철동지 이름을 따서 인철봉이라 칭하였다.
김인철동지는 합법 때부터 전남도당 부위원장을 하다 1952년 적들의 대대적인 제 1차 공세 때 똬리봉 밑에서 희생되었다.
도슬봉은 백운산지구 사령관인 유몽윤동지 이름을 따서 몽윤봉이라 칭하였다.
유몽윤동지는 합법 때 여수군당위원장을 하다 9.28후퇴 후 백운산지구 사령관을 했으며 양순기 구례군당위원장과 교체되어 지리산을 가서 투쟁하다 희생되었다.
바구리봉은 광양군당 위원장인 박정기봉이라 칭하였다.
용계산은 여천군당 위원장이며 도당 정치공작대 대장인 조동만 동지 이름을 따서 동만산이라 칭하였다.
동만동지는 적들의 동기 공세 때 항일 빨찌산 기습전술로 100여명의 무장부대를 타생시킨 공로로 영웅칭호까지 받았다. 1952년 1/27일 전투 중 부상으로 지하아지트에 들어가 있다가 적들에게 발각돼 희생 당했다.
백운산 진상골은 유상기 도당 책임지도원 이름을 따서 유상기골이라 칭하였다.
유상기 동지는 광양출신으로 도당 책임지도원으로서 1952년에 전남연대 정치지도원도 했다. 1954년 진월 폐광 굴속에 위원장 일행과 함께 들어가 있다가 발각되어 탈출 전투중 보위병과 함께 전사하고 선우위원장은 허벅다리 관통상을 입고 구출되었다.
진상골 잣나무 전남부대 아지트를 부대장이었던 이봉삼동지 이름을 따서 이봉삼트라 칭하였다.
이봉삼동지는 전에 기술한바와 같이 전남연대 참모장하다 전남부대 부대장으로 위용을 떨쳤다 1953년 8월말에 남해 소조투쟁을 나갔다가 섬진강을 배로 건너다 적들에게 발견되어 익사했다.
옥용골은 도당 부위원장인 염형기동지 이름을 따서 염형기골이라 칭하였다.
염형기 동지는 합법 때 조선에서 내려와 전남도당 조직부 부부장으로 활동하다 9.28후퇴후 입산하여 도당 부위원장하다 변절자의 총탄에 희생되었다.
백암골은 백운산지구 유격대 참모장이며 마지막에 부령관인 조갑수동지 이름을 따서 조갑수골이라 칭하였다.
조갑수 동지는 백운산지구 유격대 참모장으로서 적들의 대대적인 공세 때 본인이 거느리던 부대는 희생도 없이 공세를 승리로 장식했으며 공세가 끝난 후 부사령관으로 투쟁하다 희생되었다. 영웅 칭호를 받았다.
용기동 골은 전남 총사령부 부참모장이며 백운산지구 사령관인 남태준동지 이름을 따서 남태준골이라 칭하였다.
남태준 동지는 여수 14연대 출신으로 용맹을 떨쳐 적들도 남태준부대 나타났다 하면 벌벌 떨 정도로 이름을 날렸다. 1953년에 정전 후 일선 정기군의 후방 빨찌산 토벌작전 때 지하 비트에 있다 생포되었다. 원래 유명하게 이름을 날린 동지라 남원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 시켜놓고 고등군법에서 사형을 받아 대구감옥으로 이송되었다가 1954년 12/24일 대구 수색사형장에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총살 집행을 당했다. 투쟁의 공로로 영웅 칭호를 받았다.
백운산 간전골은 전남도당 부위원장인 정기석동지 이름을 따서 정기석골이라 칭하였다
정기석 동지는 구빨찌로서 합법 때 전남 도당 간부부장을 했으며 9.28후퇴 후 도인민위 부위원장, 도당 부위원장을 하다 지리산으로 이동하여 지리산지구 당위원장으로 활동하다 1954년 2월에 희생을 당했다.
백운산 문척골은 마지막 전남부대 참모장인 최복삼 동지 이름을 따서 최복삼골이라 칭하였다.
최복삼 동지는 기본출신으로서 총사 1연대 부연대장 하다 1952년 4월에 지리산부대 부대장을 했다. 그후 백운산으로 이동해 우리 전남부대 참모장으로서 1954년 2월에 전남부대 3중대를 맡고 적의 포위망을 뚫다 중상 생포되어 필자와 같이 남원 이동 외과 병동에 있었다. 배꼽 밑을 관통당했는데 치료도 해주지 않아 발끝에서부터 신경이 마비되어 썩어 올라와 결국 병동에서 희생을 당하였다. 그때 나에게 남긴 말은 “동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나가 내가 이렇게 중상을 당하여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을 살아 있는 동지들에게 알려달라”는 유언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이 외에 많은 동지들의 이름이 명명되어 있지만 기억을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그리고 전남화순 말봉산은 전남 총사령부 사령관을 재직하다 1953년에 말봉산에서 전사한 오금일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오금일산이라 부른다.
또 하나는 지리산 남원 산내면 산내골은 김지회 골이라 명명되어 부르고 있다. 김지회 동지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14연대 지휘관으로서 봉기를 지도한 지휘관의 한사람이다.
김지회동지는 조국전쟁 전 남원 운봉에서 투쟁하고 달궁에서 의심마을로 들어오는 굽이굽이 돌아 주막집에 일시 휴식을 취하면서 후방보초를 세웠는데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든 사이 꼬리를 물고 따라 붙은 적에게 생포되어 결국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남은 동지들이 전사하고 마는 기록을 남기었다.
이현상 부대가 공세 후 두 개부대로 편성 될 때에 김지회동지 이름을 따서 김지회부대가 1953년 까지 존재해 있었다. 그는 조선에서 영웅칭호 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알고 있는 바를 기억을 살려 기록을 남기면서 남쪽 땅 각 산과 능선 골짜기 마다에 용감하게 싸우다 희생된 동지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는 문제도 살아 있는 출신들이 논의하여 해야할 본분임을 상기시킨다.
2021년 2월 17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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