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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26. 하동경찰서 전초기지 파출소 진격투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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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1-01-09 01:28 조회1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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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 한다 26.

하동경찰서 전초기지 파출소 진격투쟁에서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때는 1953년 7월 말경이었다.

파출소 위치는 구례쪽에서 하동읍으로 들어가는 섬진강 강가의 절벽 위에 있었는데 거기다 파출소 포대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포대 앞으로 도로가 나 있다.

지형지세로 보아 이 포대 앞 도로를 거치지 않고는 하동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때문에 하동읍 진격투쟁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자연요새 지대에 포대진지가 있었다.

그런데 9.28 후퇴 후 거기는 한번도 빨찌산 무장부대가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경찰대들은 태평세월을 구가하고 있었다. 따라서 경찰대들은 낮에는 포대진지에서 보초를 서지만 밤에는 모두 내려와 도로변에 보초 하나 세우고 도로가 평상 위에 총은 한군데다 세워두고 잠을 자는 것이 일상사였다.

주변 지세로는 하동읍을 둘러싸며 마을집들이 있고 마을 뒷산은 일종의 지리산 끝자락에 있는 야지였다.

이때 백운산 전남부대 소조는 섬진강을 무사히 건너서 도로따라 거리 보장을 하고서 하동읍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간은 캄캄한 초저녁 밤이었다.

가는 도중에 마주오는 한 젊은 청년과 조우하게 되었다

그를 붙들고 “우리는 국군이다 징병기피자들을 잡으려 한다”고 하면서 징병기피자자 아니고서 밤에 단신으로 지나갈 수 없지 않는가고 따져 물었다.

우리 소조의 복장은 군복에 부대장은 중위 계급장을 달고 나는 이등상사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그청년은 절대로 기피자가 아니라고 발뺌을 하고 있는 찰라 우리는 백운산 빨찌산이다. 오늘밤 하동경찰서를 치려고 하는 데 협조해 주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위협하면서 가지고 있던 칼빈 단도를 도로 복판에 꽂으면서 위협하였다.

그청년은 삼대독자 외아들로서 금정면에서 잘사는 집안인데 살려만 준다면 최대한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알고 보니 하동읍에서 살다가 이사갔기 때문에 주위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하동경찰서는 경비가 삼엄해서 습격할 수 없으나 포대진지는 무사히 때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도로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도로를 따라 밤에 들어오는 사람은 무조건 발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고 포대 뒤 마을 고삿길이 하동읍으로 들어가는 길로 나 있었는 데 지금도 있는지는 잘 모르나 자기가 길을 안내하겠다고 했다. 이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우리소조는 포대진지 기습작전을 할 것을 결정하고 내가 맨 선두에 서고 바로 그 청년은 내뒤를 따르며 길을 안내했다. 아니나다를가 산비탈을 타고 올라 마을에 들어서니 옛날 고삿길은 울타리친 데도 있었다. 그래서 요리 조리 마을 집을 돌아 드디어 하동읍내로 들어서 섬진강 강가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도로를 따라 포대진지를 향해 앞에 총하며 가는데 도로가 밑에 줄지어 있는 집들이 있는데 어느 집에서 장구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포대진지 진격을 잠시 멈추고 장구소리가 난 집을 덮쳤다. 방문을 열고 보니 기생이 장구를 치고 젊은 두 사람이 있었다.

우선 방안을 살펴보니 벽고리에 칼빈 한자루와 유엔구구식총 등 두자루가 걸려있어 우리는 백운산 빨찌산들이라고 하면서 꼼짝말고 앉아 있으라하고 총을 수거했다. 그들의 표정은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표정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두 사람을 불러내 파출소를 치는데 협조해 주면 절대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고 했다. 알고 보니 국군은 휴가나와서 파출소 순경과 함께 기생을 품고 술마시며 놀다가 우리에게 부닥친 것이다.

두 청년을 따로 분리하여 휴가온 국군은 우리 중대장이 책임지고 강가에 머무르며 하동경찰서에서 오는 통로를 방어하기로 하고 남은 청년은 잠간 신문하니 이 파출소 순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파출소를 때리려하니 무사하게 치면 당신의 목슴은 살려준다고 약속하니까 그러면 안전하게 칠수 있도록 하겠다 해서 앞세우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자는 경찰서 경찰대들이 순찰 나오는데 나오기 전에 치면 된다고 하면서 암호는 내가 알고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고 했다.

도로가 초소막에서 보초 선 놈이 누구냐고 소리치니까 나다하고 답변하는 과정에 초소에 다달았다. 그 보초 인상이 몸집이 좀 뚱뚱하고 키가 크며, 총은 앞에 총하지 않고 개머리판을 땅에 세우고 총신만 잡고 있었다.

그래 부닥치자마자 잠재우고 주위를 살피니 아까 말한대로 평상 귀에 총을 한데 세우고 잠을 자다 깨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집중 사격을 가하였다. 순식간에 총을 수거하고 협력한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이제 살려주니 경찰을 하더라도 절대로 민간인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도록 하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철수하려고 하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중에 한 사람이라도 산 사람이 있으면 자기는 못 산다고 해서 알았다고 했다.

자기는 이젠 감쪽같이 고향을 떠서 살겠다고 하면서 부디 성공하기 바란다고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기동성 있게 구례 쪽 도로를 향해 포대진지를 벗어났는데 그때사 하동경찰대들은 포를 쏘고 사격을 가하면서 전진해 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달리고 달려 섬진강 가에 도착해 밤을 새우며 적의 매복조가 철수한 직후 옷입은 채로 강을 무사히 건너 800고지 중간쯤에 다달으니 날이 훤히 새고 있었다.

그후 여론조사해 보니 그들은 태평세월처럼 여기고 밤이면 기생들과 술타령하다가 당한 것이라고 분분하였다는 소식도 듣게 되었다.

그후부터는 포대진지에서 밤에는 한발자국도 도로변에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후 40-50년 후에 찾았을 때는 지형지세가 개발붐으로 많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직도 기생마을 집 근처라는 것만 눈에 선할 뿐이다. 재산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다.

2021. 1/6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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