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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20. 지리산 피아골 제 5지구당 아지트 습격당한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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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18 07:04 조회1,0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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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선생은 이번 글에서 지리산 피아골의 제 5지구당 땅굴 아지트가 습격당하면서 입었던 큰 아픔을 기록하며 후세에 역사적인 교훈으로 남긴다. [민족통신 편집실]


[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20.

지리산 피아골 제 5지구당 아지트 습격당한 교훈


김영승 선생 (비전향 장기수, 통일운동가)


지리산 피아골은 전남유격대 투쟁 지역이다.

필자는 51년 동기공세를 섬진강 건너 백운산에 겪고 52년 4월에 지리산 전투지구당부가 건설되어 지리산에서 투쟁하다가 53년 1월에 전남 도당부 산하 지리산 전투 지구당부가 해체되어 다시 백운산 도당부로 오게 되었다.

지리산 지구당부는 51년 적들의 동기공세 때 거의 마사져서 1952년 제1차 적들의 대대적인 공세가 끝나 잠시 숨 고르는 기간에 새롭게 지리산 전투지구당부가 조직되었던 것이다.

당시 당부 소속인원은 20-30여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자세한 것은 다음에 소개하기로 하고 우선 피아골 기행 참고 정도로 소개한다면

오늘 기행목표인 제 5지구당부 지상 아지트는 52년 10월에 뱀사골에서 삼도봉 바로 밑 피아골에 아지트를 쓰고 있을 때였다

당시 지구당트는 구례군당 제1트 진지에 있을 때였다.

52년 10월 중순경 삼도봉 근처에서 새벽에 총소리가 바글바글해서 어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걱정이 되어서 박찬봉 위원장 동지를 보위하고 둘이서 5지구당 아지트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도중 (지금 대피소 부근)에 5지구당 조직부장이었던 조병화 동지 일행과 조우되었다.

당시 조병화 동지는 엉크러진 머리에 양말만 신고 골짝 숲을 헤치며 후퇴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조병화 동지는 합법 때 공화국에서 내려와 전북도당 부위원장을 하다 1952년 10월에 제 5지구당(전남 전북 경남도당들)이 결성 될 때에 조직부장으로 투쟁하였다. 그후 제 5지구당 해체와 함께 경남 도당위원장으로 갔었다.

1953년 11월경에 지리산 조계골 땅굴 아지트에 있다가 적들의 수색전에 발견되어 생포를 당했다.

당시 남원 소위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남원 이동고등 군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대구 감옥에 있다가 1954년 12월 24일 다른 사형수 동지들과 함게 총살 집행을 당하였다.

그 후 알게 된 것은 적들의 새벽기습으로 선전부장을 비롯한 4명이 희생 되었고 이현상 동지는 부관 연락병 동지의 영웅적인 투쟁으로 무사히 구출되었었다.

사건발단은 당 지도부와 연락부가 한 골짝에 아지트를 썼던 것이 큰 잘 못이었다.

적들은 당시 삼도봉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연락원은 경남도당으로 가는 도중 삼도봉 근처에서 체포되어 끌고 들어와 새벽 기습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이 사고는 기본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고를 면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기었다.

연락원은 적들의 그물망을 뚫고 나가는 생사의 갈림 길에서 사업하기 때문에 당성이 강한 동지만 할 수 있는 사업이다.

그러나 만일의 경우 체포될 수도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끝까지 당성을 고수하는 동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동지도 있기 때문에 연락원은 당 지도부 아지트를 알지 못하고 연락부장만 알고 레포 연락사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항일 빨찌산 투쟁에서 제시된 원칙인데 이 원칙을 5지구당부는 안일하게 생각한데서 오는 결과였다. 이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그 이후로는 당부와 연락부는 따로 트를 쓰고 투쟁하다가 제 5지구당부는 53년 8월에 해체되고 말았다.

그 당시 투쟁했던 간부들과 동지들은 지리산 유격투쟁사에 그렇게도 처절했던 조국의 자유와 자주독립 쟁취를 위한 투쟁속에서 한줌의 흙으로 산화하여 간 것이다.

생사를 같이 했던 간부동지들의 모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조국 광복을 맞은지 75년이 되고 있지만 현재도 진행형이다,

수많은 동지들의 거룩한 희생정신을 한시도 잊을 수 없다. 역사는 기억이고 기억은 기록되어 살아 숨쉬는 산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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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월 18일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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