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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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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2-13 10:18 조회1,2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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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 선생의 일대기에 관하여 조선의 오늘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연재하였다. 과학으로 조국의 존엄을 떨친 계응상 선생은 과연 어떤 분인가. 이어진 기사를 그대로 게재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 (5)

태양의 품속에서 태여난 공화국의 첫 박사


계응상선생이 그처럼 바라던 누에육종연구의 소원은 마침내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실현되게 되였다.

일제의 식민지기반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해방후 나라의 민족간부양성기지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세워주시고 여러곳에 흩어져있던 지식인들에게 위촉장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에게도 위촉장을 보내주시고 그가 그동안 연구해온 백수십종의 누에알이며 과학론문, 미완성원고들까지 모두 가지고올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의하여 계응상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 농학부에서 교편을 잡게 되였고 북조선 국립잠업시험장 장장으로 사업하게 되였으며 살림집을 비롯한 모든 살림살이조건이 갖추어진 속에서 과학연구활동과 후대교육사업에 전심전력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농학부가 따로 떨어져나와 원산농업대학으로 개편되자 그에게 이 대학 잠학부 학부장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그리고 1948년 2월 계응상선생에게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발급한 박사증 제1호를 수여해주시였으며 새 조선의 누에품종을 개량하는 특출한 공로를 세운데 대해 높이 평가하시면서 은정어린 선물을 안겨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시적인 전략적후퇴의 엄혹한 시기에 계응상선생의 신변안전을 위한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1952년 12월 과학원이 창립되던 때에는 그에게 농업과학연구소 소장의 임무를 맡겨주시였다. 그리고 준엄한 전쟁시기에도 과학연구사업에서 자기가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애써 노력한 그의 공로를 평가하시여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시였다.

해방전에는 이역땅에서 쫓기우며 불우한 길을 걷던 계응상선생은 이처럼 운명의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삶의 닻을 내리고 주체적방법론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 생물학을 발전시켜나가는 참된 과학자로 성장하게 되였다. (계속)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 (6)

과학적신념이 투철한 과학자




주체35(1946)년 10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계응상선생을 만나시여 우리 나라 잠업발전의 원대한 구상을 펼쳐주시고 잠업을 우리 자체의 힘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방도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때로부터 계응상선생은 과학연구사업에 모든 지혜와 열정을 다 바치였다.


그러나 계응상선생의 연구사업은 순탄하게만 진행된것이 아니였다.

당시 이전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나라들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무시하면서 《환경유전설》이나 《혼합유전설》을 《공인된 학설》로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의 학계에도 영향을 미치고있었다.

일부 편협한자들은 계응상선생을 모해하던 나머지 반동학자로 까지 몰아갔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이미 자기의 신념에 의하여 새로운 누에품종을 만들어냈는데 무엇을 시비할것이 있겠는가고 엄하게 지적하시면서 연구사업을 계속하게 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계응상선생은 어버이수령님의 그 믿음에 기어이 보답할 맹세밑에 과학연구사업에 온갖 열정을 다 바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전통유전학을 발전시켜 여러가지 뽕누에품종들과 피마주누에를 육성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연구성과는 세계 여러 나라 과학자들의 경탄을 불러일으켰다.

1957년 어느 한 나라 농업과학원의 초청으로 그 나라에 가서 과학연구경험을 나누고 돌아오던 길에 계응상선생은 모스크바에 들려 쏘련과학계의 최고의 권위자와 론쟁을 하게 되였다.

계응상선생은 《신유전학》에 대한 비판으로서 생물체일반에 존재하는 현상을 기본으로 하는 12가지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는 어느 하나도 부인하지 못하였으며 계응상선생의 과학적인 론증앞에 자기의 리론이 부당한것이라는것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세계는 주체가 확고히 선 유전학설 즉 모든 생물유기체들에서 환경의 변화에 의해 나타난 특성들은 후대에 유전되지 않으며 오직 유전자에 의해서 나타난 특성만이 유전된다는 조선의 계응상선생의 유전학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였다.

이에 대해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을 친히 만나주시고 《환경유전설》제창자들과의 학술론쟁에서 승리한것은 장한 일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정녕 계응상선생에게 있어서 어버이수령님의 믿음은 곧 그의 과학적신념으로 굳게 자리잡고있었다.

하기에 계응상선생은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그처럼 훌륭한 과학연구성과를 거둘수 있은 비결이 어디에 있는가고 물었을 때 이렇게 긍지높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속에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기때문이다. 그분의 품은 우리 과학자들의 신념을 지켜주고 희망을 꽃피워줄뿐아니라 밝은 앞날까지도 담보해주는 진정한 삶의 보금자리이다.》(계속)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7)

예순이 지나 입당한 로학자


언제인가 계응상선생이 소장으로 사업하던 잠학연구소에서 한 연구사가 당원증을 수여받고 연구소로 돌아온적이 있었다.

그 연구사를 보며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계응상선생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은 해놓은 일도 많고 당당히 당대렬에 들어설수 있는데 왜 아직 입당청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계응상선생은 그에게 자기가 걸어온 생활로정을 이야기하며 《이 세상 제일 훌륭한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식이 그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좋은 일 못하고서도 난 그런 어머니의 자식이라고 자랑할수 있을가?》하고 말하는것이였다.

계응상선생에게 있어서 수령님은 곧 당이였고 당은 그대로 어머니의 품이였다.

나라의 잠업발전전망을 위한 계획을 세울 때에는 그의 의견을 들어주시고 중요한 국사를 토의결정하는 자리에도 꼭꼭 참가시키도록 해주신 어버이수령님.

이처럼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에 비해 너무도 한 일이 적다고 생각한 그였기에 그토록 많은 과학기술성과를 내놓았지만 품고있는 입당청원서를 선뜻 내놓지 못하였던것이다.

계응상선생은 고심어린 노력끝에 당시 열대지방에서만 할수 있고 계절이 있는 나라에서는 절대로 할수 없다던 피마주누에품종연구를 끝내 성공시켜 세계과학계를 끓게 하였다.

세계적인 유전학자, 육종학자가 다름아닌 조선의 과학자라는 긍지를 안은 그때에야 그는 자기의 조선로동당 입당을 청원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67살이였다. (계속)


일화를 통해 본 세계적인 유전학자 계응상(8)

영생하는 삶


주체59(1970)년 11월 2일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가 열리였을 때였다.

대회참가자들의 폭풍같은 환호를 받으시며 연탁앞에 나서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본대회에 앞서 조국과 혁명, 인민을 위하여 고귀한 생애를 마친 혁명동지들을 위해 묵상할것을 제의하시면서 계응상선생의 이름도 불러주시였다.

계응상선생이 생전에 받아안은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배려는 끝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이 쌓은 과학연구업적과 재능을 높이 평가하시여 주체46(1957)년 8월에 그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내세워주시였으며 주체49(1960)년 9월 9일에는 인민상을 수여해주시였다.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주체52(1963)년 12월 농업과학원(당시)을 찾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계응상선생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 자리에서 이동정치위원회를 열어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할것을 제의하시였으며 계응상선생의 선집을 빨리 내야 하겠다고, 그의 과학연구업적에 대해 널리 소개해야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그리하여 계응상선생은 생일 70돐을 맞으며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으며 그의 수십년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3권으로 된 《계응상선집》(1963-1973)이 출판되였다.

계응상선생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그가 우리곁을 떠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였으며 주체79(1990)년 10월에는 사리원농업대학을 계응상대학(오늘의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으로 부르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속에서 한생을 신념과 량심, 불타는 탐구와 창조로 수놓아온 계응상선생의 삶을 더욱 빛내여주시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원수님께서는 과학기술전당에 그의 모습을 랍상으로 세워주시였다.



로력영웅, 인민상계관인이며 원사, 교수, 공화국의 첫 박사인 계응상선생의 한생.

수난많은 불우한 식민지지식인으로부터 세계적인 이름있는 과학자로 영광의 절정에 오른 그의 한생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우리 조선의 과학자들에게는 사회주의조국이 있다는 진리를 인민들의 심장속에 깊이 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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