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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13. 비트에서 살아남는 투쟁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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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29 09:19 조회1,1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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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선생은  이 글에서 빨찌산투쟁 시절에 비트에 들었다가 수색대에 발각되었지만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 경험을 회고한다. 필자는 위기에 처했을 때 포기하여 자결하는 것보다 끝까지 투쟁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민족통신 편집실]


과거를 회고한다 13.

비트에서 살아남는 투쟁의 깃발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때는 1952년 1월 27일 적들의 공세로 생사의 갈림길 위에 선 오후 4시였다.

백운산 옥룡골의 88도당지도부 아지트에서 선지골로 넘어가는 소 능선 중턱에 임시 파놓은 환자아지트에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1월 26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정공대장 조동만동지의 임시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인해서였다.

당시 눈은 쌓이고 그친 상태라 족적 때문에 보다 안전한 비트가 있었지만 할 수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에는 박영발 동지 비서인 이정태 동지와 주치의인 이행렬동지, 정공대장인 조동만동지, 필자 등 4명이 들어가 있었다.

총은 정태동지와 필자 두 사람이 칼빈 투를 가지고 실탄은 전날에 기습으로 로획한 칼빈탄을 100여발씩 소지하고 있었다.

88도당지도부 아지트 주변에 박영발 동지 비트가 여러 군데 있었다. 그래서 공세기간에 정태 동지는 박영발 동지 비트 주위를 떠나지 않고 그날그날의 적정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도당 각 부서에 전달하고, 들어오는 소식들을 가지고 위원장동지 비트를 찾아 보고하면서 제 1차 적들의 대대적인 공세를 승리로 마감한 공로를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비트에 새벽 2시경에 들어가면서 정공대장 동지는 부부대장인 서기주 동지를 불러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부대를 봉강능선 넘어 봉강골로 이동시키라고 신신당부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비트에 들어가는 문이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납작한 돌을 이고 들어가면 밖에서 위장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4사람이 겨우 앉아 있을 정도로 비좁았고 비트 높이는 앉으면 머리가 간신히 닿지 않을 정도였다.

안에 앉은 순서는 필자와 정태동지가 입구를 향해 양쪽으로 앉아 있고 그다음 행련 동지이고 조동만 동지는 맨 안쪽에 앉아 있었다.

물론 임시 환자아지트이니 허술함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리고 이곳까지 수색작전이 펼쳐질지도 예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당시 적들은 박영발동지가 비트에 있다는 것을 생포자들을 통해 알고 비트를 발견하려고 셰프더까지 동원해서 수색작전을 빈틈없이 펼치기도 하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적들의 수색작전에 비트는 발견되고 말았다.

비트에 가까이 와서 비트 발견이라고 소리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비트문은 납작한 돌이었는데 그돌을 들어내고 입구를 향해 사격하며 손들고 나오라고 위협하고 있었다. 이 때 이정태동지는 정공대장동지에게 우리 수류탄으로 자결합시다 라고 말했다. 만일 하자고 동의했으면 우리4인은 그만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단호하게 무슨 소리하느냐며 싸우라고 명령을 내렸다 싸움에서 죽더라도 최후까지 싸워야 하며 한사람이라도 살아나간다면 다행이다.

수류탄을 문밖으로 내던지고 우리 둘은 문밖을 향해 연발로 갈겨대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둘이 비트문을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한참 있다가 수류탄을 내던지고 먼저 튀어나가 방어하고 차례로 뛰어나가라고 지시하였다.

제일먼저 정태동지가 수류탄을 먼저 던지고 뛰어나가고 그다음 행련동지가 나가고 세 번째로 필자가 나오고 마지막에 조동만동지가 나왔다.

적들은 안에서 자동소총으로 연발로 쏘아대고 수류탄까지 던져 터뜨리니 접근을 못하고 주위에서만 엎드려 총탄을 쏟고 있었다.

필자가 나와 보니 앞서 나간 두 동지는 죽었는지 눈에 띄지 않고 주위에 적들은 사격만가하고 있었다. 그때 필자는 맨발로 뛰어나와 엎드려 갈겨대면서 순식간에 생각하기를 이 소 능선을 무사히 넘으면 살 것이라 생각하고 30-40m거리 능선에 중화기를 걸고 쏟고 있는 능선을 택하고 여기에 집중사격을 가하여 잠재우고 무사히 능선을 넘었다. 그러나 조동만 동지는 비트에서 10m거리에서 적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바로 내 뒤를 따르다 희생되는 아픔을 남겼다. 책임을 진 보위 대원으로서 옳게 보위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지고 투쟁했었다.

능선을 무사히 넘어 선지골 갓바른 비탈길을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저 내려가는데 좌편에서 눈밭을 타고 내려오는 정태동지와 극적인 만남을 가졌다. 행련 동지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우리 둘은 남은 실탄을 점검해보니 정태 동지는 2발 나는 3발이 남았다. 그 때 나는 정태동지에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남자고 맹세했다.

시간은 날이 어두워져 적들은 능선으로 철수하여 한재 골짝 물가에서 불을 지피고 밥을 해먹고 있었다. 살아남은 우리 둘은 하루 종일 굶었기 때문에 저녁을 해먹기 위해 골짝 여기저기에 한 되박식 쌀을 비장해 놓은 것을 찾아서 나는 보초만 보고 정태동지는 냄비에 밥을 하고 있었다.

정태동지는 팔로군출신이라 비상미를 골짝마다 한 움큼씩 바위틈에 비장해 놓은 것이었다. 적아 간에는 야간기습을 하지 않고 있었다. 무사히 밥을 지어 한술 뜨고 동만동지 희생지를 찾았다.

얼음판위에 내의만 입고 쓰러져 있었다 당시 미장교 사지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다 벗겨가고 신발은 삐삐통신과 아지트에 들아가는 입구에 있는 것을 필자가 맨발이어서 신고 제 1차공세를 겪었다.

시신은 얼음판이라 땅을 팔 수도 없어 낙옆송으로 임시 묻어주고 대 공세가 끝나면 다시찾아 매장하려고 했으나 희생지를 다시 찾지 못하고 체포되고 말았다.

40년이 지난 후에 찾았으나 산죽만 무성하게 자라있고 당시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주위 흙 한줌만 비닐봉지에 담아 왔다.

이날 비트에서 살아남은 우리 둘은 도당지도부 대열과 정공대 소식이 궁금했으나 알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정태 동지는 안전한 비트가 있으니 하루 더 비트에 잠복해 있다가 본 대렬과 선을 대자고 했다. 그 때 필자는 한번 곤혹을 치뤘으면 되지 두 번은 실탄도 없어 위험하니 지상에서 잠복하다 걸리면 싸우자고 했다. 그러나 안전한 이중 비트이니 발각될 위험은 없다고 해서 또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88트에서 살아 돌아오는 동지들을 기다리다가 새벽 3시경에 88보초선 능선의 소능선에 파놓은 박영발동지 비트에 들어갔다.

눈이 그친 상태라 족적을 내고 들어가 있다가 날이 새면 나와 눈이 와 족적을 매꾸워 있으면 다행이고 족적이 나 있으면 위장하려고 맘먹고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비트안은 이중으로 되어 있으나 일층에서 이중트로 들어가는 문이 허술함을 느꼈다 이중트는 평상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잠이 들다보니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10시경에 비트 발견 소리가 들렸다.

적들은 들어가는 비트 문을 활짝 열고 총탄을 퍼붓기 시작했다. 안에서는 아무반응이 없자 눈 족적은 틀림없이 나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눈이 오지 않아 발자국을 메꾸어야 하는데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 때 정태 동지는 비스듬이 누워있었고 나는 앉아 있으면서 총을 입구에 겨누고 격발기에 둘째 손가락을 넣고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움직이면 평상이라 소리가 나기 때문에 숨죽인채 촉각을 곤두세운 상태 속에 있는그대로 대응하지 않고 적들의 동태만 살피고 있었다.

적들은 아무리 총탄을 퍼부어도 기척이 없어 틀림없이 들어간 족적이 있으니 안에 들어 가 보라고 명령하는 놈이 있었다.

처음 들어오는 놈은 들어와서 주위를 살펴보고 나가면서 아무것도 없다고 보고하니 그러면 두놈을 지명해 들어가 있다가 자세히 동태를 살피라고 하면서 수색대는 아래로 내려가고 말았다.

들어온 두 놈은 말투를 들어보니 경상도 말투였다.

우리는 이중트에서 발견 소리만 하면 내 총으로 사살하고 뛰어나가 최후 결전을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두 놈은 총을 벽에 세우고 앉아서 신세타령만 하고 있었다. 한 놈은 이렇게 싸우다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도망가자고 하니까 도망가다 맞아죽는 다고 하면서 우리 여기 있다가 철수 신호나면 그때 나가자고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 둘과 거리는 이중트의 문을 사이두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적의 머리를 겨누고 있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 두 놈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 2시간 가까이 마주보고 앉아 있은 상태속에서 쏘겠다고 정태동지옆구리를 살짝 건드리면 더 참으라고 옷깃을 잡아당기는 찰라가 여러번 계속되는 가운데 철수의 호르라기 소리를 듣고 나감으로서 천행으로 살아남게 된 기쁨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었다.

밖에 있다가 비트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오래 있다 보면 주위상태를 알 수 있으나 놈들은 건성으로 보았는지 알고도 묵과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절대로 비트에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맹세했다.

그날 밤 본대와 선이 닿아 제1차 대대적인 적의 동기공세를 승리로 마감했다.

살아남은 동지들은 서로 얼싸안고 승리감을 만끽하면서 다음 적들의 공세에 대비했다.

지금껏 적들에게 발각된 지하비트에서 자살 아니면 생포이지 살아 남는 자는 없었다. 그러나 필자는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아 기록을 남기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우리 모두는 최후 결전에서 막다른 골목에 처했을 때 자결은 투쟁의 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보다 더 그 자결의 투지를 ******....

2020.11월 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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