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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 한다 9. 두 여성동무의 장렬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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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18 01:00 조회1,2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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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9.두 여성동무의 장렬한 죽음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홍경희 여성동무는 전남도당 산하의 불갑 지구당부 기요원으로 투쟁했다.

홍 여성동무는 수피아 여중 3학년생이었다. 그 때만 해도 여중생들은 3학년생이면 18-19세 처녀들이었다.

필자는 지구당부의 소환을 받고서야 알게 되었다.

1951년 4월 20일 화학산 전투에서 부위원장 동지 인솔하에 지구당 성원들이 한 골짝에 산상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2시경에 침공해 들어온 적들과 치열한 격전 끝에 무장부대들은 후퇴하게 되었다

골짝에 산상대기하고 있는 비무장성원들은 적들의 완전 포위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다.

지구당 성원들은 분산되어 한사람이라도 살아나가느냐의 위기에서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후퇴하는 과정에 비무장이었던 홍경희 여성동무는 부상을 당하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적들의 수색작전 속에서 생포가 되었다.

적들은 생포해가려고 시도했으나 완강히 거부했다 이때에 적들은 구슬러보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했으나 끝까지 저항하자 도저히 생포해 갈수 없다고 판단한 끝에 악질 빨갱이라고 욕설하며 여러 놈들이 총탄을 퍼부어 벌집을 만들다시피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말았다.

그 당시 만해도 적들은 여성동무들을 생포하면 그대로 놔 둔적이 없다 뭇놈들이 겁탈하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저질스런 미제의 고용병들이라고 지칭했다.

당시 유치내산에서 투쟁당시 적들은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는데 긴 머리 여성들만 악착같이 추격해 생포하려고 악을 쓰기도 했다.

당시는 모두가 비무장성원들이었기 때문에 적들은 아무리 추격해도 당할 위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서 유치내산에서 투쟁하는 여성동무들은 전부 남자들과 동일하게 머리를 하이칼라를 했다. 그 후 부터는 남성들과 동일한 뒷머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 구분을 못해 추격을 덜 받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동무는 완도군 여맹위원장인데 이름은 잊어버려 항상 아쉬운 생각을 갖고 있다. 이 여성동무는 뚱뚱한 몸매에 기운이 남성과 못지않았다.

당시 지구당 연락부 식사담당을 맡고 산상 대기할 때는 언제나 밥솥을 배낭에 넣고 부식등 소제품을 담아 짊어지면 집체덩이 같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아무리 위험에 처해도 다른 남성 동무들은 짊어진 배낭을 버리는 일이 있어도 이 여성 동무는 마자막 생을 다할 때까지 버리지 않고 연락부동지들의 식사를 보장해 정상적인 연락사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1951년 4월 20일 화학산 전투 때에도 밥이든 밥솥을 배낭에 넣고 후퇴하는 과정에 함께 만났다. 적들의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판국에 죽느냐 사느냐 하는 찰라에도 배낭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에 적들의 표적이 되어 집중사격을 더 받게 되니 살아나가기 위해서라도 배낭을 벗고 민첩한 행동으로 이 사격권을 피해야 되지 않느냐고 권고해도 듣지 않고 이 베낭을 벗어던지고 살아나간다면 오늘 밤 연략부 동지들의 식사보장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결국 벗지 않고 후퇴하다가 적들의 집중사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필자와 같이 업드려 있다가 집중사격이 좀 멈추자 빨리 뛰자고 옆구리를 흔들었는데 비그르 쓰러지고 마는 참상을 보면서 재 빨리 소능선을 넘어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 두 여성동무를 회고 할 때에 홍경희 여성동무는 미녀로서 여성의 정조는 생명과 같다는 생각을 굳은 신념으로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환장하게 달려드는 적들에게 저항으로 정조와 신념을 지킨 역사에 빛나는 여성상은 후대에 기리 빛날 것이다.

또 다른 여성동무는 어떠한 환경의 고난 속에서도 맡은바 과업은 실천으로 결과물을 내와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교양으로 심장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죽음으로 책임감에 대한 신념을 지킨 빨찌산 용사들의 전형을 창조한 여성동무임을 역사는 잊지 않고 새길 것이다.

지금까지도 유치내산 투쟁에서 두 여성동무를 잊지 않고 생각하면서,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는 것이 그 많은 여성동무들 중 특히 이 두동무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하는 것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과거를 회고하며 오늘을 보내고 있다.

2020. 필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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