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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승 칼럼] 과거를 회고한다 8. 화학산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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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11 10:34 조회446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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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고 한다 8. 화학산은 말한다



김영승 선생 (비전향장기수, 통일운동가)


화학산은 전남 화순군 도암면과 이양면 장흥 장평면 유치면 나주 다도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계절은 겨을 잠을 깬 수목과 풀입들이 새파랗게 피어나고 있는 4월이었다.

화학산은 역사적으로 임진 조국전쟁, 갑오농민전쟁, 광복 후 조국전쟁 전후에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로서 수많은 혁명 전사들의 피가 어린 전적지중의 하나이다.

때는 1951년 4월 20일 화학산 전투에서 적들에 의해 수백명이 전사하고 수백명이 체포당하는 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긴 학살지이기도 했다.

1949년도에 전남 빨찌산 총사령관이었던 최현장군이 희생된 곳이며 1951년 3월에 인민군 남여단이 9,28 후퇴 후 북상 도중에 화학산에서 전멸을 고하는 아픈 역사가 서린 곳임을 상기한다.

사실 화학산은 지형지세가 마치 소쿠리 속과 같아 빨찌산이 진지를 갖고 투쟁할 지역은 못된다.

그래서 상행연락선(도당을 오고가는 연락진지)이 오가는 일시적 잠복루트로 활용해 온 것이다.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적의 공세를 피해 일시적으로 잠복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럼 왜 화학산 전투가 벌어진 것일까

1951년 2월 20일은 불갑산 2.0작전에서 1500-2000여명이 학살되는 비운을 겪은 불갑산을 투쟁진지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어 살아남은 불갑지구당 산하 모든 당 단체성원들이 장흥 유치내산으로 이동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기존의 전남 도당산하 유치지구당과 불갑지구당이 합쳐 전남도당 제3지구당으로 결성하기 위하여 1951년 4월 20일 화학산 각슈바위 능선에서 양 지구당 지도부가 회합하는 날이었다.

당시 발찌산의 무력은 전남 총사령부 산하 기동연대인 1연대, 15연대. 민청연대. 지구사 14연대 와 장흥유격대 등이 화학산 원능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나주 군당산하 단체와 유격대는 나주 국사봉에 잠복하여 한사람의 피해도 없었다. 그것은 적들이 화학산으로 집중 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지도부 회합을 하고 있는데 9.28 후퇴 후 유치내산으로 입산한 각 군당 산하 단체 성원들이 무장부대의 엄호를 받기위해 화학산 골짜기에 집중해 산상 대기하고 있었다.

적들은 이들이 화학산에 집중해 있다는 것을 알고 화학산을 포위하고 조여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전투는 시작되었다

우리 15연대 기관포는 원능선을 점령한 적들을 향해 불을 품었다. 위력은 대단했다.

적아간에 밀치고 미는 격전속에서 적들은 오후 2시경부터는 이양철도를 통해 소위 학도병들이 떼전으로 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리 아군부대들은 실탄도 거의 떨어지고 원능선 한군데서 구멍이 뚫리기 시작해 겉잡을 수 없이 전선이 밀리기 시작했다.

밀린 전선에서는 분산 후퇴하기 시작하여 오후 4시경에는 적들이 모든 능선을 완전히 장악했다.

골짝에 있는 각 기관 성원들은 거의 비무장 성원들이었다.

당시 우리 지구당의 김용우 위원장 동지는 회합에 참석했다가 보위대의 엄호하에 무사히 후퇴했다.

그러나 류석우 부위원장동지가 인솔하는 당부성원들은 골짝에 산상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이라도 살아나가기 위해서 배낭은 낙엽속에 다 묻고 빈몸으로 적의 집중사격을 피해 지형지세를 이용해 후퇴하기 시작했다.

적아간의 거리는 직탄거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삼대처럼 쓰러지는 와중에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다.

결국 골짝에 대기하고 있던 우리 지구당 27명의 성원 중 필자 혼자만이 살아남았다.

그럼 필자는 어떻게 살아나오게 되었는가

부위원장 동지의 “집중해 있다가 다 폭살당하니 각자가 알아서 한 사람이라도 살아나가야 하니 민첩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배낭을 묻고 요령껏 적들의 집중사격을 피해 나가야 한다”는 지시를 받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골짝에서 소능선만 넘으면 집중사격을 피해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뛰기 시작했다.

적들의 중경기와 소총이 불을 뿜어대어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몰려가는 곳에 집중사격을 한다는 것을 알고 단신으로 지형지세와 집중사격을 피해가면서 때로는 죽은 동지들의 시신옆에 쓰러저 죽은체 하다가 총소리가 조금 멈춘듯하면 있는 힘을 다하여 뛰고 또는 죽은체 시신 옆에 쓰러저 있다가 뜨문하면 뛰고해서 무사히 소능선을 막넘었는데, 적들은 소능선을 타고 내려오면서 동지들을 살상하고 생포해 가면서 파죽지세로 수색작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마침 어느 한 동지가 바위돌을 들어내고 몸을 돌맹이와 낙엽으로 위장하고 있는 찰라에 나를 보고서 내가 생포되면 자기도 죽든가 생포된다고 생각해서인지 털고 일어나 다른 곳으로 달려가다가 적들의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주위를 살피니 적들의 밀접한 포위 수색작전에 걸릴 위험이 많다는 것을 직감하고 할 수없이 그동지의 빈자리를 내가 들어가 바로 누워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돌맹이와 낙엽으로 위장하고 납작한 돌을 배위에 얹어놓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급한 숨이 쉴 때는 배위에 올려놓은 납작한 바위돌이 오르랑 내리랑 거리고 있었다.

그때 시간은 해는 서산에 걸터앉아 산속은 땅거미가 들고 있었다.

이 순간에 내머리 위에서 손을 들고 나오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나는 쏠대면 쏘아라 하고 숨죽인체 하고 있는데 사실은 나보고 손들고 나오라는 것이 아니고 내 옆에 쐐 밭이 있는데 지구사 병기과 동지가 잠복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들고 나오라고 큰소리 첬던 것이다 .

그 병기과 동지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아시보 장총을 가지고 있는데 실탄은 단 한발이 남은 것을 조준해 쏜 결과 그 토벌대가 내머리위에 거꾸러지자 마자 고지에서 울린 퇴각신호 소리를 듣고 토벌대들은 서로가 다투어 능선으로 퇴각해서 살아남았다.

이 때 털고 일어나 병기과 동지와 극적인 상봉을 하고 쓰러져 죽은 적의 총은 역시 아시보단총에 실탄은 15발 남았었다.

그래서 나는 맨발이어서 신발을 벗겨 내가 신었으며 총은 내가 메고 실탄은 절반씩 나누어 갖고 골짝으로 내려오니 살아남은 동지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모이기 시작했다.

(그 지아족 속에는 피가 고여 있어 걸으면 뻐걱버걱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이튼날 아침에 신을 벗으니 발등에 피가어려 있어서 물에 씻고 다시 신었었는데 여성 동무가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20-30여명이 모였다.

능선의 적들은 철수하지 않고 그대로 진지를 구축하고 주둔하면서 골짝에서 적탄에 맞아 움직이지 못한 동지들의 신음소리와 동지들만 살아나가느냐며 가냘픈 목소리가 나면 능선의 적들은 경기로 골짝을 향해 다닥닥 총소리를 내며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비참한 참상을 목격하면서 구출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마음은 무어라 표현할 길 없었다.

모인 동지들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한다는 의견과 나가다 죽으니 내일 하루 더 잠복했다가 적들이 빠저나가면 그 때 나가자는 의견으로 두패로 갈라젔다.

그 때 나는 적들이 빠져 나가지 않고 포위망을 치고 있는 것은 오늘 해가 져서 수색작전을 못했기 때문에 내일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벌리면 살아남을 자 한사람도 없을 것이니 오늘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뚫고 나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적들이 아무리 물샐틈 없이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해도 허점의 공간이 있으니 우선 살아나기 위해서도 나가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다수의 동지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빠저 나가야 한다는 판단아래 그러면 내가 앞장서 통로를 뚫을 테니 내 뒤를 따를 동지들은 따르라고 하면서 출발하니 병기과 동지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간다 나도 간다 하면서 따라나선 동지들이 10여명 가까이 되었다.

떨어진 동지들은 손가락질을 하면서 나가다 죽는다고 비꼬아 말하는 것을 보면서 각슈바위 능선 밑으로 정찰을 했는데 역시 그들은 몇군데 띄엄띄엄 모여 앉아 불을 지피고 있어 무사히 빠저나와 본대로 각자가 귀가했다.

당시 지구당 아지트는 나주 다도면 도동리 도롱굴 마을에 있었다.

와 보니 위원장동지 일행만 와 있었다. 나는 즉시 상황보고를 했다. 위원장 동지는 듣고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혹시 살아 돌아오는 동지들이 있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갖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이튿날은 무지개재 능선에서 산상대기하고 있는데 화학산에서는 하루 종일 총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드디어 해가 서산에 기울어지자 총소리는 멎었다.

적들이 퇴각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쓰러져간 동지들 시체라도 묻어 주려고 우리 후방과 몇몇 동지들과 다시 화학산을 찾았다

무지개능선을 타고 가마테 고지를 거쳐 각슈바위 능선을 타고 오르는데 가마귀 때들은 꽉꽉하면서 이리나르고 저리나르고 하는 것을 보고 틀림없이 시신이나 분명 사람이 있음을 짐작케 하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능선을 타고 오르다 두 군데에 20-30명씩 무명베를 찢어 뒤로 묶어놓고 전부얼굴을 쏘고 날창으로 찔러 잔인하게 학살당한 피가 능선에서 골짝으로 4월에 돋아난 새 풀잎의 50-60센치 넓이로 흘러 이파리가 쓰러저 있는 참상을 목격하기도 했다.

시신은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이젠 어둠이 깔리고 있어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도 없어 우리 지구당 성원들이 쓰러진 장소를 향해 골짝을 내려가고 있었다.

휘영청 달빛에 박격포에 맞아 살점들이 소나무가지에 묻혀 반짝이는 것을 보면서 내려가는데 김영승이를 부르는 가냘픈 목소리를 듣고 소리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개울가 수풀속에 있는 부위원장 동지를 발견하고 우선 산 부위원장동지부터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동지들 생각은 접은 체 (사실 날이 어두어 늘번하게 쓰러진 동지들을 남겨둔채) 담가에 실어 도롱굴 마을 본트에 도착했다.

이튿날 파놓은 개울가 땅굴 아지트에서 약 한 달간 내가 직접간병도 했다.

다음은 부위원장 동지가 겪고 본 참상과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부위원장 동지는 다리 허벅지에 기관총을 맞아 뼈가 부러지고 부셔젔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고 숲속에 쓰러져 있는데 날이 새자 부상을 당한 동지들이 갈증을 참지 못하고 기어 내려와 개울물을 마시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간 동지들을 보면서 물먹으면 지혈이 되지 않아 죽는다고 해도 듣지 않고 마시다 동지들이 죽어갔다. 적들의 수색작전에서 죽은 시신도 일일이 확인 사살하고 대검을 찌르고 확인다음 자기 차례에 왔는데 그들의 말을 들을 때 다 죽었구만 하니까 옆에 한 놈이 그래도 확인해보라고 하니까 총대로 몸을 뒤집어보고 한발을 가슴에 쏘고 날창으로 목을 찌르고 다음차례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왜 개울가 길옆 숲속에 왔는가는 동지들이 한 사람이라도 살아 있다면 반드시 시체라도 묻으려 올 것이란 생각을 하고 두팔로 기어서 왔으며 목이 탈 때는 배낭을 적들이 다 해처놓았는데 비상미가 여기저기 흩어저 있어 한줌을 무명베를 찢어서 그속에 넣고 입으로 씹어 끈을 달아 누워서 개울물에 던저 넣고 부른 다음 끈을 당겨 목이 타 참을 수 없을 때 빨아 먹었다고 했다. 역시 구빨찌산 간부답게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는 교훈을 남겼던 것이다.

결국은 그날 밤 나온 사람은 살고 나오지 못한 사람은 다 학살당하고 말았다.

지금은 화학산 골짝 기슭이 저수지로 돼 있다.

저수지 만들 때 해골이 몇 트럭 나왔다고 한다.

화학산을 찾을 때마다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사랑도 청춘도 행복도 재산도 고귀한 생명까지도 다 바친 수많은 혁명전사들의 흘린 고귀한 피는 우리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열사정신을 이어받아 75년째 둥지를 틀고 있는 미제를 몰아내는 투쟁에 한사람처럼 떨쳐 일어나 가열차게 투쟁할 것을 다짐하곤 한다.


참고@@ 이 글이 화학산을 기행하는 데 참고 가 되기를 ******.....

2020년 10/24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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