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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대구감옥에서 옥사한 불굴의 애국투사들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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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0-11-01 07:42 조회8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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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향장기수 김영승 선생이 전국묘소답사반의 일원으로 대구 감옥에서 돌아가신 애국투사들의 묘소를 답사한 후  추모글을 페이스북을 통하여 알렸다. 남녘 당국이 이들 비전향장기수 애국자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했던 살인적인 구타와 고문과 탄압을 후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민족통신 편집실]


대구감옥에서 옥사한 불굴의 애국투사들을 추모하며 

김영승(통일운동가, 비전향장기수)


전국묘소 답사반은 2020년 10월 31에서 11월1일까지 대구지역 17명의 묘소를 찾았다. 그중 첫번째로 대구 감옥 공동 묘지에 묻혀 있는 4분을 먼저 올린다. 전국 감옥 중 공동묘지에 묘소가 있는 감옥은 대구가 유일하다.




불굴의 애국투사인 김영호 동지를 추모하면서


김영호 동지는 1908년 9월 21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다.

1955년 12월 20일에 소위 국방경비법 32조에 의에 20년 형을 받고 감옥생활을 하였다.

1960년 10월에 감형되어 만기 2년여를 남기고 있었다.

김영호 동지는 1973년 10월 17일에 솜이불을 찢어서 길이 80센치의 끈을 만들어 감방 변소뒤 창살에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김영호 동지는 보안과 간수들의 집단 폭력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더군다나 고혈압(130-210)의 위험한 수치에 이른 환자를 치료는 고사하고 전향강요를 위한 고문구타에 살아 나갈 수 없다고 판단했으며 자결하기 5일전에 13일에 걸쳐 1973년 10월 10일에서 22일까지 국군 1730부대에서 심문을 받기도 했으며 위장병으로 식기속에 밥을 짓이겨 밥물을 마시면서 근근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속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만기전에 정치적 생명을 끊어 내보내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태속에서 자결을 택하여 감옥의 비인간적이고 야수적인 만행으로 학살되는 기록을 남기었다.


김영호 동지는 마지막 자결직전에 “오늘도 당하고 왔다.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란 말을 남기고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과거사 위원회에서는 대구감옥에서 사망한 23명중 9명에 대하여 의사의 사망 소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중 자결이 6명이며 11명이 암질환으로 사망하였다. 나머지 6명은 신분장을 찾지 못해 각하 되었다.


불굴의 옥중 투사인 김영호 동지시여!

조국과 인민을 위한 투쟁의 길에서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인간이하의 처우속에 비전향말살을 위한 무지막대한 고문 구타속에서 희생되었는가를 회고할 때 인류역사상 가장 야수보다 잔인하였던 것이 소위 대한민국의 감옥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동지의 흘린 고귀한 피는 우리 후대들의 심장을 들끓게 하고 훨훨 불꽃으로 타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픔과 시름을 내려놓으시고 반미 자주통일의 길위에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0년 11월 1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송순영 동지를 기리면서


송순영 동지는 충남 대덕군 동면에서 출생했다.

1969년에 소위 국가보안법으로 무기형을 받고 대전, 대구 감옥 등에서 복역했다.

순영 동지는 비전향을 고수한채 1982년 5월 26일에 대구감옥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송순영 동지는 비전향말살책을 반대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단식으로 “전향강요 중단과 처우개선”을 요구하기도 했다.


적들은 아프다고 호소해도 치료는 고사하고 이를 빌미로 전향강요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드디어 다 죽게 되었을 때 1982년 1월 8일에 할 수 없이 외부병원에 진료 결과 위암이란 판정을 받고 5월 26일에 우리 모두의 곁을 떠나는 비참한 옥중 학살 기록을 남기었다.

송순영 동지를 맡은 전향담당자는 “비전향 악질분자”라고 까지 기재 한 것을 과거사 위에서 밝히기도 하였는데 그것으로도 송순영 동지가 옥중 투사임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불굴의 옥중 투사이신 송순영 동지시여!

동지가 가신지 38년이 다 되고 있지만 비전향 말살책을 반대하여 선두에서 싸우다 희생된 옥중 투쟁경험은 우리 후대들에게 거울처럼 비쳐주고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 그날까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늘 날 반미자주화 투쟁에 횃불이 되어 모범된 전형을 심어주고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송순영동지의 유해는 김영호 동지, 이연송 동지 한태갑 동지들과 함께 대구 감옥 공동 묘지에 안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평안히 잠드시며 조국통일의 길 위에 영생하기 바랍니다.


2020년 11월 1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한태갑 동지를 기리면서


한태갑 동지는 1914년 함남도 정평군 주의면에서 출생했다.


1961년 10월 12일에 소위 국가보안법으로 무기형을 받고 복역했다.


한태갑 동지 역시 다른 비전향 장기수 동지들과 마찬가지로 비전향 말살책을 반대하여 고문 구타를 비일비재하게 당하는 과정에서 고혈압 120-260이란 중증인데다 전간양이란 발작까지 일으키고 입병사까지 하여 다 죽게 되니 형집행정지까지 내릴정도로 임종직전 상황에 있었다.


이러한 상태속에서도 1967년 5월 8일에서 5월 15일 까지 군사 정보부대로부터 무려 18일간이나 정보 심문을 받기도 했다


전문의는 “비대상성 간경화증”이란 진단을 내렸는데도 전혀 진찰치료조차 해 주지 않고 전향강요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태갑 동지는 드디어 1972년 5월 15일에 운명하고마는 아픈 옥중사의 기록을 남기었다.

불굴의 옥중 투사이신 한태갑 동지시여!

동지의 옥중 투쟁사는 우리 후대들에게 반면교사가 되어 주고 있으며 마지막 생을 어떻게 마감해야 하는 가를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젠 모든 아픈 시름을 다 내려놓으시고 조국통일의 길 위에서 영생하기 바랍니다. 우리 참배단은 옥중동지들의 고귀한 희생을 잊지 않고 기리기리 기억하며 참배할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2020년 11월 1일 전국묘소 답사반 일동 드림



이 연송 동지를 기리면서


이연송 동지는 1930년 생이고 무기형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1972년 6월 19일에 사망한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이연송 동지역시 비전향 장기수로 생을 마감했다.


대구교도소 공동묘지에 다른 동지들과 함께 묻혀 있는데 전국 감옥 중에서 유일하게 동지 묘소에 이름(펫말)이 있는 곳은 대구 감옥뿐이다. 이곳 공동묘지에 묻혀 있던 두 동지(최 석기동지와 손윤규동지) 유골은 인척이 찾아가고 4동지만 남아 있다. 이 외에도 대구감옥에서 희생된 동지들 유골도 합장묘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이도 확인해야할 사항이다.


참고@@

1969년에 작고한 손순남, 최종천, 최한무, 하상혁, 황대연 동지들,

1972년에 작고한 고봉률동지, 한현수 동지들,

1974년에 작고한 김태원 동지.

1976년에 작고한 정영훈동지.1978년에 작고한 박정래동지.

1980년에 작고한 노천도동지 1988년에 작고한 신창일 동지 등이다. 이상 참고하기 바랍니다.


출옥후 사망한 대구 동지들에 대해서는 이 다음 기회로 미룬다..


2020년 11월 1일 밤 11시 15분 전국묘소답사반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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