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신]고 왕용운 선생 장례 진지하게 진행/한국 권오헌선생 화상 추모사, 재미동포들 조사/<솔아 푸르른 솔아>합창단 추모노래 선물(동영상 제작해 게재) > 사회,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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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고 왕용운 선생 장례 진지하게 진행/한국 권오헌선생 화상 추모사, 재미동포들 조사/<솔아 푸르른 솔아>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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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0-02-17 05:23 조회84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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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티어 로즈힐 채플=김백호 민족통신 기자]2020년 2월16일 오후5시 (고) 왕용운 선생 장례식은 딸과 사위 등 유가족과 로스엔젤레스 지역 민족민주운동 단체들 회원들, 그리고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지하게 진행되었다.

장례식장에는 15개의 조화들(미주양심수후원회, 민족통신, 진보의 벗, 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임춘성회장, 송학삼 범민련 미주본부 부의장, 이태선, 내일을 여는 사람들, 김시환회장, 6.15LA위원회, 우리문화나눔회, 김준섭,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리준무 등)이 놓여 있었다. 

이날 추모식은 김시환 미주양심수후원회 회장의 사회로 개식, 유가족인사 및 추모묵념, 약력소개, 추모시낭송(양희철 선생-비번향강기수 2차 송환대기자), 추모영상, 추모사(한국 양심수후원회 권오헌이사장, 민족통신 노길남박사, 이인숙여사, 김현환목사-정신화목사 대독), 추모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합창, 참석자들 왕용운 선생과의 작별인사, 그리고 폐식되었다. 

참석자들 대부분은 장례식 이후 유가족이 마련한 부페식당에서 저녁을 나누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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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용운 선행의 생애를 조명하는 동영상이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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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용운선생 장례식은 김시환 미주양심수후원회 회장에 의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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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영정에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순간 고인의 딸은 눈물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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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단체회원들과 유가족, 친지들이 장례식 이후 고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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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배 목사, 홍순호장로와 그의 사위,정경배 선생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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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앞줄 오른쪽에 딸과 사위, 그리고 미주양심수후원회 회원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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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 조화들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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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중창단이 <솔아 푸르른 솔아>를 추모곡을 택해 고인에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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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대표들과 회원들 50여명이 장례식에 참가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미주통일운동 진영의 원로이신 왕용운선생이 지난 7일 운명하셔서 후배들이 2월16일(일요일) 오후5시에 로스힐 메모리얼 채플에서 장례식을 진행합니다. 마지막 고별인사 자리에 친지들의 참석을 바랍니다. <고>왕용운 선생 장례준비위원회 김시환회장(미주양심수후원회)이 알려왔습니다.[민족통신 편집실] 




통일 애국 인사 고 왕용운 선생님 장례일정 



                          때: 2월 16일 일요일 오후 5시 
  
                 곳: Rose Hills Memorial Park - Memorial Chapel 
                    3888 Workman Mill Rd. Whittier, CA 90601


Memorial Chapel 은 바닥에 그려져 있는 Blue Line 을 따라가면 됩니다.



image.png




저 세상으로 가신 왕용운 형을 생각합니다.


*글: 노길남(민족통신 논설위원)



이 세상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80년을 사시다가 영원한 저 세상으로 가신  왕용운 형을 생각합니다. 


왕용운 형의 생애 마지막 몇년은 고통스러운 하루 하루였습니다. 피를 넣고 나쁜 피를 뽑아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투석하면서 고통을 느끼던 아픔도 사라졌습니다. 페암말기로 고통받던 그 통증도 사라졌습니다. 이 세상 삶속에서 일어난 일들 때문에 고심하던 고민들도 사라졌습니다. 


그 같은 고통없이 생활할때는 고인은 참으로 남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왕용운 형과 지내 온 딸, 왕숙희와 사위, 손명천 및 유가족들과 왕용운형과 사귀어 온 동지들과 후배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왕용운 형은 솔직담백하고 근면하며, 검소하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제 막 50줄에 접어 든 딸 왕숙희씨는아버지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1)언제나 이웃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아왔다고 대답하면서 (2)아버지가 자수성가를 해야하는 남녘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언제나 삶에 있어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왔다고 대답해 주면서 (3)정의감이 많지만 정도 많고, 유모어를 잘 구사하여 주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아버지였다고 회고해 주었습니다. 딸하나 둔 왕용운 형은 자식교육도 자수성가를 가르쳤습니다. 딸의 하는 일에 일체 간섭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고 혼자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는 길을 가도록 교육시켰습니다. 그래서 그 딸은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하여 아리조나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사위 손명천씨도 착한 사람입니다. 장인어른이 위기에 처해 긴급입원실로 옮겨졌을 때 장인의 모습을 보고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사위를 맞이하였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용운 형께서는 4남1녀중 막내였습니다. 제일 큰형과 작은형은 이북에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고, 셋째 형은 미국에 이민와서 고생하시다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계시고,  누님 한분은 이북에 사시다가 몇년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잠간 사시다가 모두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법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 쯤 왕용운 형께서는 저 세상으로 먼저 간 재미동포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이 세상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는 왕용운 형의 부모님들과 형제들과 누님도 있을 것이고, 개성출신으로 친형처럼 지내던 전순태 형과 그 형수도 있을 것이고, 차상달선생을 비롯하여 선우학원박사, 홍동근 목사, 김병주선생, 서정균선생, 유상준선생 등이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80년을 살아 온 왕용운 형께서는 일제 말기인 1940년 3월17일 개성에서 태어나서 80년 세월을 산전수전 겪으며 사시다가 2020년 2월7일 낮 12시30분 향년 80세로 영원한 평화의  저 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10살때인 1950년 전쟁을 피해 잠시 다녀 온다는 것이 고향을 완전히 떠나버리게 되었습니다. 남녘에서 33년 사시다가  1983년 미국 이민와서 37년 살았습니다. 이민생활 처음에는 빵집을 경영하셨습니다. 초창기때 통일운동을 해 온 이곳 동포들은 대부분 왕용운 형이 만든 빵들을 그냥 먹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왕용운 형은 1992년 북부조국을 방문하여 그립고 그리던 가족상봉을 하게 되었고 그이후 20여차례 이북을 방문하는 한편 지난 28년 동안 꾸준히 조국통일 운동에 참여해 온 정열적인 애국자였습니다. 


조국통일북미주협회(통협)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범민련, 6.15미국위원회, 미주양심수후원회 등에 가담하여 조국통일운동에  적극 참여하던 그 정열적인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2년 전에는 로스엔젤레스 진보네트워크가 시상하는 <늘푸른 청년상>을 수상하고 기뻐하시면서 미소짓던 그 모습도 생생하게 떠 오릅니다. 


왕용운 형께서는 또한 자신의 딸과 동지들을 사랑한것처럼 그 누구보다 조국통일을 갈망했습니다. 그는 특히 자기운명을 자기 스스로 개척하기 위해 고난의 행군길을 멈추지 않고 지금 이순간도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는 북부조국을 사랑하셨습니다. 북부조국의 영도자들 뿐만 아니라 북녘의 동포들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형께서는 북녘의 노래도 사랑했고, 음악예술, 모든것들을 귀중히 여기면서 사랑했습니다.


왕용운 형께서는 저 세상에 가셔서 한층 더 바쁠 것입니다. 김구 선생도 방문하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김일성주석, 김정일 위원장 등 우리민족의 애국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해외동포로서 이 세상에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신 일본의 곽동의선생, 유럽의 윤이상선생, 미주의 림창영박사, 카나다의 전충림선생과 강원진 선생, 일본총련의 한덕수선생과 서만술선생 등 해외동포 통일운동 진영의 지도자였던 선열들을 만나느라고 지금 눈코 뜰 사이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왕용운 형을 생각하면서 그를 반겨 줄 저 세상의 많은 애국지사들을 함께 떠 올립니다. 


존경하는 왕용운 형, 이제 이 세상일은 저희들에게 맡겨 두시고 편하게 쉬세요. 남겨두고 간 딸과 사위 등 유가족들은 가족처럼 지낼 것입니다. 형님, 안녕히 가세요. 


2020년 2월16일


 


 

 
[알림]

민족통신 운영위원회는 민족통신의 세대교체 차원에서 민족통신 편집장에 김백호 기자를, 상임논설위원에 유태영박사, 논설위원에 노길남박사, 손세영선생, 그리고 3명의 기자들(강산, 이동백, 강성길)을 영입하여 재구성하였기에 애독자 여러분에게 이를 알려드립니다.

새로 조직된 편집진과 운영진도 제1기 2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편집방침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전임 편집진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아 앞으로도 민족자주의 원칙, 평화통일의 원칙, 민족단결과 단합의 원칙, 그리고 북부조국 바로알기 운동의 전통적 원칙들을 그대로 이어나가기로 하였습니다. 

2020년 2월16일

민족통신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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