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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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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2012-05-13 20:22 조회1,9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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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박중기 4·9통일평화재단 이사, 추모전시회 열어

1974년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조직이 내란음모를 꾸며 인민혁명당을 재건하려 했다고 밝혔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이다. 주동자로 지목된 우홍선·서도원씨 등 8명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 18시간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이라고 발표했다.

인혁당 사건을 기리며 만든 4·9통일평화재단은 지난달 8일부터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인혁당 사건 추모전시회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를 열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12옥사를 전시실로 삼았다. 간수들이 지나다니던 복도에는 인혁당 희생자들의 사진과 초상화를 걸었다. 감방 안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모형 등을 전시했다.

서울 전시회 마지막 날인 13일 박중기 4·9통일평화재단 이사(78·사진)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박 이사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8인과는 동지 사이다. 그 역시 인혁당 사건 당시 연루될 뻔했다. 그는 “사건이 터진 1974년 4월 나는 내란음모죄로 구속수사를 받고 있었다”며 “구속 중이라는 알리바이가 있어 사건에 엮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1년 후인 1975년 4월8일 대법원은 인혁당 사건 주동자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튿날 새벽 사형이 집행됐다. 박 이사는 “사형선고가 났지만 정말로 그들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상황에 따라 감형이 돼 풀려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결 다음날 지인으로부터 “사형이 집행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 이사는 “유가족조차 사형 집행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사형 집행으로 희생자들은 변변한 유품이나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전시장에는 희생자들이 남긴 주민등록증과 영치금 봉투, 교사 발령장 등이 전시됐다.젊은 시절 희생자들이 찍은 가족사진이 몇 장씩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전시회에는 지난 한 달간 9만여명의 관객이 들었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 박 이사는 “이번 전시회가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 추모전시회는 오는 7월14일 부산에서 다시 열린다. 광주와 대구 전시 계획도 마련돼 있다.

글 남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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