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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등불로 영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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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20-04-30 12:28 조회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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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등불로 영생하리라

[박해전 대표 추도사] 민족언론의 큰별 고 노길남 박사를 추도하며

민족언론의 큰별 고 노길남 박사의 서거를 애도하며, 동지의 영전에 이 추도문을 올립니다.


민족자주와 민족통일을 위해 한생을 바친 노길남 선생의 숭고한 삶에 경의를 표하며, 슬픔에 잠겨 있는 부인 노경숙 여사와 딸 진과 영, 손자 손녀 유가족들에게 깊은 조의를 보냅니다.


노길남 선생의 동지들인 <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유태영 박사님과 손세영 선생님, 운영위원 김백호 강산 리동백 선생을 비롯한 성원들, 동지를 아껴주고 후원해주신 현준기 선생님과 양은식 박사님을 비롯한 미국동포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조의를 전합니다.


지금 해내외동포들은 조국과 민족의 부름 앞에 민족언론인으로서 통일운동가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노길남 선생의 한생은 우리들의 모범이며 목표라고 추모하며 그 헌신과 노력을 잊지 않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계승할 것이라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6.15공동선언실천미국위원회(대표위원장 신필영), 6.15공동실천일본위원회(의장 손형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의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의장 이규재),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상임대표의장 이창복)는 추도문을 내어 조국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헌신한 동지를 기리며 조의를 표했고, 해내외 인사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생과 함께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선생과의 인연은 조국통일 3대원칙에 기초해 남북해외 3자연대로 전개된 1990년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운동이 맺어주었습니다. 선생은 1999년 12월말경 한겨레신문사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범민련 탄압 중지를 요구하며 농성하던 나를 찾아와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해 한겨레 현직기자로서 투옥을 각오하고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제10차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 남측추진본부 대변인을 맡아 당국의 원천봉쇄를 뚫고 대회를 성사시키는 데 함께했습니다. 대회를 마치고 신문사로 피신해 김양무 본부장이 명동성당 노숙농성 중 지병이 악화돼 2000년 1월 26일 서거하기까지 장기농성을 벌였습니다.


민족통신 특파원으로서 당시 마지막 남은 핏방울까지 조국통일 성전에 바친 김양무 열사의 투쟁을 취재하려고 서울에 왔던 선생이 1990년 8월 15일 백두산에서 출발한 제1차범민족대회에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사실을 알고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습니다.


범민련운동을 승리로 결속한 제10차범민족대회를 회상하면 언제나 민족언론인 고 이창기 기자의 모습도 가슴 저리게 떠오릅니다. 이창기 기자는 1999년 어느 늦은 봄날 나를 찾아와 언론사업을 하겠다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나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해 8월 15일 제10차범민족대회를 기념하여 <자주민보>(창간준비호)를 펴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하여 노길남 박사가 창간한 <민족통신>과 이창기 기자가 집필한 <자주시보>(이전 자주민보),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3주년을 기념하여 발족한 <사람일보>(이전 참말로)는 그동안 자매지로서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연대연합의 길을 걸었습니다.


엊그제 저녁 서울에서 고 노길남 박사 추모모임을 열었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미국 현지에서 장례식이 어려운 조건에서 서울추모모임은 남녘동포들의 마음 속의 장례이었습니다.


자주시보는 이날 추모모임에서 고 노길남 박사를 ‘명예대기자’로 삼가 모시겠다고 밝혔습니다.


황선 시인은 추도시 ‘벗이여, 안녕히 다시 만나요’를 올려


“벗이여,
나는 행복했습니다.
이역만리 낯선 병상에서 경황없이 이별을 고하게 됐지만
나는
넓고 깊은 민족의 품을 떠난 날이 없었습니다.


...


조국을 사랑하게 된 후로
나는 진실을 알리는 기자였고,
위대한 민족을 탐구하는 학자였고,
유쾌한 늙은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근면한 통일운동가였고, 낙관의 철학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청년이었고 벗들의 동지입니다.


...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겨레의 웃음 속에 겨레의 눈물과 함께.
작별인사는 하지 맙시다.
나는 ‘다시 만납시다’라는 인사만 기억하렵니다.
벗이여,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만납시다.
부디 안녕히 다시 만납시다.”


라고 인사했습니다.


노래패 우리나라 백자 가수는 추모곡 ‘영원한 청춘’을 창작해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죽는 법이 없지
영원할 민족을 사랑하기에
영원히 청춘을 살지”


라고 노래했습니다.


추모시가 낭송되고 추모곡이 울리고 동지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참석자들의 결의가 넘쳐난 소박한 서울추모모임을 동지는 우리 민족의 따뜻한 인정으로 소중히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선생은 <미주동포 민족운동 100년사>(공저)에서 재미동포 진보언론의 역사와 진보운동단체 활동을 기록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직 우리 민족의 염원인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위한 언론의 사명을 다하려고 분투해왔습니다.


일신의 안락을 버리고 가시밭길을 걸으며 온갖 고난과 시련에 굴함 없이 청춘, 청년의 열정으로 투쟁한 선생의 한생은 이제 민족언론과 통일운동의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오늘 분단 세월에 못다한 이야기는 민족자주와 조국통일, 인류자주 위업을 이루는 승리의 그날 동지를 모시고 위대한 우리 민족의 장엄한 서사시로 풀어놓을 것입니다.


민족언론의 사표 노길남 선생의 몸은 갔으나 동지의 조국사랑정신은 민족언론인 고 이창기 기자와 함께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을 밝히는 등불로 영생할 것입니다.


2020년 4월 30일


자주통일평화번영운동연대 상임대표
사람일보 회장
박해전
서울



사람일보 기사 노길남 박사.jpg
▲ 생전의 노길남 민족통신 대표 모습.     ©사람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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