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11신=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이번 66번째 방북취재기간에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북녘동포들은 한마디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역사전문가들’ 혹은 인테리들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발견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자기문화를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사회도 조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자가 머무르는 3주동안 만나는 사람들마다 항일투쟁역사와 민족분단사, 그리고 조미(북미) 대결사와 주체사회주의 건설역사에 대해 질문해 보면서 김일성주석이 직접 집필하여 펴낸 8권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어 보았느냐고 질문해 보았다.
청소하는 호텔의 아주머니들을 비롯하여 청량음료수 봉사원 여성들,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농장에서 일하는 농장원, 그리고 청소년들과 청년대학생들, 인민군들, 공무원들, 교원들, 의사들과 간호원들, 음악예술인들, 그리스도교 신자들 및 종교인들 및 각계 각층의 북녘동포들 모두가 평균 3번 읽었고, 여기에 학습 및 독보회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설명하는 것, 그리고 방송을 통해 회고록 8권을 방송원이 낭독하는 기회까지 합치면 5번내지 10번정도가 될 것으로 파악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기자가 이 글을 컴퓨터에 입력하여 정리하는 시간이 우리민족 명절중의 하나인 정월대보름날(양력2월22일 , 음력1월15일)이다. 공휴일이라서 아침7시가 되었는데 조용한 거리 분위기이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이곳에서 지내는 우리민족 문화의 한 부분을 소개하고 싶다. 왜냐하면 어제부터 이곳에는 식당마다 손님들이 국수들만 주문하여 먹는 모습들을 보았다. 왜그런가 물어 보니 “오늘이 작은 대보름날이 아닙니까?”라고 대답하며 이날은 ‘명길이 국수’를 먹는 것이 풍습으로 되어 왔다고 한다. 그리고 대보름날인 오늘은 아침에 집집마다 성인남자들은 ‘귀밝기 찬술’을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주로 9가지 마른(혹은 검은) 나물들(고사리, 고비, 고추 잎파리, 말린 호박, 말린 가지, 말린 고구마순, 말린 더덕, 말린 양배추, 말린 미역줄거리 등)이 식탁에 오른다는 것이다. 잠시 후 호텔 식사에도 그런 메뉴가 준비될 것이라고 한다.
나는 다시 그동안 취재한 북녘동포들의 독서열과 역사의식에 관한 취재자료들을 펼쳐보며, 그리고 녹음한 내용들을 들으며 이들이 얼마나 역사의식이 높고 박식하다는 사실들을 소개한다.
-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김창순 여성(회계일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은 기자의 질문에 “수령님(김일성주석을 호칭하는 말)의 그 회고록은 읽지 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나는 그 책이 1992년에 6권이 먼저 나오고 그후 계승본 7권이 1996년에 나오고 마지막 계승본 8권이 1998년에 나왔는데 그 책들이 통속적인 표현들로 씌여졌고, 아주 재미가 있어 우리 인민들 누구를 막론하고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글쎄 5번정도 읽었을까, 아마 다른 사람들이 읽은 걸 들은것까지 하면 한 10번은 읽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여성의 말을 듣고 한층 더 호기심이 생겼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 했다. 취재하면서도 취재제목과 상관없는 ‘세기와 더불어’를 몇번 정도 읽었느냐고 묻고 소감도 함께 물어보곤 하였다.
-봉수교회 전도사로 일해 온 김영숙 전도사(65)는 이 교회일을 위해 지난 1988년부터 그리스도교계에서 일해왔다고 소개하면서 “글쎄 몇번 읽었는지 헤아릴 수 없다”고 대답하면서 그 책들이 나온지 20여년이 넘었는데 그는 매해 회고록을 읽고 또 읽어 왔다고 반응하면서 “그런데 요즘에 방송에 나오는 회고록도 다시 듣고 다시듣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어 “수령님께서는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지만 회고록에서 보면 손정도 목사님을 포함하여 천도교 등 종교인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리고 언젠가 미국의 홍동근목사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만나 그 회고록을 읽으면 느낀 소감을 이야기 할때 저희들도 감명을 받았습니다.’라고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에 얽힌 이러저런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다.
-봉수교회 예배를 보고 나오면서 송철민 담임목사와 한명국 부목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부목사께서는 “한 10번정도는 될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송철민 담임목사는 “글쎄 딱 몇번이나 읽었다고 말하기는 그런데 저희 교회에서 수령님의 회고록 8권이 비치되어 있어 무슨 문제들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 회고록에 나온 목차를 찾아 수시로 읽어 왔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인민들 속에 들어가 사업하시면서 인민들 속에서 답을 얻지 않았습니까”라고 대답하면서 신앙생활 속에서 그 회고록에 담겨 있는 사업작풍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업상의 교훈들과 지혜들을 배워왔습니다. 특히 그 회고록은 알기쉽게 통속적으로 써서 누구든 그것을 읽으면 감흥을 받았다고 말합니다.”라고 대답해 준다.
-청소하는 호텔의 아주머니들(오창복,김신월 관리원들)에 다가가서도 물어보았다. 여러번 읽었다고 하면서 “우리는 어려서부터 혁명역사를 공부하기 때문에 유치원 시절에는 선생님들이 읽은 것을 말해주어 알게 되었고, 커서는 그 회고록이 통속적으로 되어 있고 감흥이 깊어 우리 인민들은 누구나 다 읽고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호텔서 일하는 아주머니들도 주간학습, 월간학습시간에도 회고록을 공부해 왔다고 설명해 준다.
-청량음료수 봉사원 여성들과 상점에서 일하는 봉사원들도 같은 말로 대답한다. 25살이라고 하는 김설향 봉사원은 혼자서 8권 모두 읽은 것은 두번되지만 학습이나 직장에서 독보로 공부한 것 합치면 5~6번은 된다고 대답하며 소학교때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준마’이야기인데 보통 충견애마라고 하는데 주석님께서는 ‘충마애견’이라고 하시면서 타고 다니시던 말이 자신한데 충성을 다해주었던 이야기가 어릴때 머리속에 많이 남아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 기업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대답고 마찬가지이다. 석충근씨(40)는 그 회고록이 처음 나올때 너도 나도 읽고 싶어 했는데 처음에 충분히 출판되지 못해 그 책을 가진 동무들이 직장에서 잠잘때 그 책을 밤새껏 읽었던 것이 출판 1년뒤인 1993년도로 기억됩니다. 직장에 회고록 공급이 원활 할때에는 읽고 또 읽은 것이 주석님의 회고록이었다고 대답한다.
-배구장에서 운동을 하던 한 아버지의 아들, 장광성(14,고급학교1학년)군은 기자의 접근에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을 짓자 불필요하게 기자자신의 경력을 설명해 주고 이름과 나이를 묻고 하나만 묻자고 하여 ‘세기와 더불어’를 읽었느냐고 질문하니 “읽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성격이 내성적인 것(?) 같아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어 고맙다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뭏든 미국이나 남녘의 고등학교 1학년에 해당하는 학생이지만 그도 읽었다는 것은 확인했다.
- 농장에서 일한다는 농장원, 장철남씨(37)는 농장원들도 읽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고 설명해 주면서 자신은 1938년 일제시기에 있었던 제1차고난의 행군시기에 주석님이 그 어려운 난관을 파헤치며 일주일 갈 거리를 한달이상 걸려 가야하는 고난의 행군 이야기가 잊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10대에 겪었던 “제2차고난의 행군시기(1995년 여름이후 몇년간)에도 우리 공화국이 그 난관을 극복하고 오늘날처럼 승리의 길로 달리는 있는 것도 대원수님들의 업적과 원수님(김정은 제1위원장을 가리킴)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풀이하여 준다.
-평양친선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원들, 소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 청년대학생들, 인민군들, 공무원들, 음악예술인들, 자동차 운전수들, 해외동포들을 아내하는 지도원들 그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기자가 만난 각계각층의 수십명 북녘동포들 가운데 그 회고록을 읽지 않은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식인들 중에 원로언론인들 2명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평양영화대학을 나와 방송계통에서 일하고 있는 리영남 선생은 1권부터 8권까지 전체를 읽어 본것은 4번가량되고 그 이후에 필요한 제목에 따라 읽고 다시 읽은 것까지 합치면 10번은 넘을 것이라고 대답했고, 김일성종합대학교 어문학과를 졸업하고 언론계에서 일해 온 1급기자인 정현숙 선생은 “열번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읽었고, 참고자료로 하기 위해 읽은 것들을 합치면 수십차례 될것같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김일성주석님이 회고록은 우리민족의 혁명역사이기 때문에 읽지않은 사람들은 축에 들지 못할 정도로 모두가 읽었다고 보면 틀림없다고 설명해 준다. 기자는 누구를 물어보아도 읽지 않은 사람들을 도저히 찿을 수 없었다. 다시말하면 유아들이나 유치원생을 제외한 북녘 동포들 전체가 ‘세기와 더불어’를 모두 읽은 것으로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놀람을 금치못했다.
-한편 일부 지식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은 남녘동포들이 조선의 도서들을 마음대로 볼 수 없도록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놓은 것은 납득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우리 도서들을 불온도서라고 규정하는 남측 당국자들의 자세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 중 한 북녘동포는 로동신문(2016년 2월20일 5페지)에 나온 보도자료를 인용하면서 얼마전 남측의 대법원이 학생들에게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읽게하였다는 죄아닌 ‘죄’를 운운하며 울산대학교의 한 교수를 ‘보안법’ 위반으로 몰아 징역형에 처한 사실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재미동포들이 남녘을 방문하여 ‘대동강맥주가 아주 맛있다”고 말한 것까지 제재하고 탄압하는 사회에 인권이 존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들은 그러면서 미국과 함께 일본, 남측 당국이 한패가 되어 조선의 인권타령을 하는 것은 한마디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노릇이라고 조소한다.
기자는 이번 방문을 통해서도 북녘동포들은 누구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아도 이들 모두는 ‘역사전문가들이며 동시에 애국자들이다”라는 사실을 다시한번 절감하며 이 세상에 이런 사회가 조선 말고 또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해외동포들과 남녘동포들도 북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세기와 더불어’ 8권(조문, 영문 등 외국어 번역본도 있음)과 영화 ‘조선의 별’ 10부작, 그리고 속편으로 나온 영화 ‘민족의 태양’을 읽고, 감상하면 북부조국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해외동포들 가운데 ‘세기와 더불어’를 읽어 본 사람들은 북부조국을 이해하려면 이것을 읽어보든지, 아니면 북조선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충언한다. 기자도 이 회고록을 읽어보았고, 영화 ‘조선의 별’, 그리고 ‘민족의 태양’을 감상하여 보았지만 북을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면 이 회고록과 함께 영화들을 반드시 감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십차례 북을 방문하여야 조선을 개괄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책방에 들려 알아본 결과 우리말로 된 회고록 8권의 구입가격은 모두 합쳐 56달러되고, 영문으로 번역된 회고록은 67달러가 된다. 그리고 우리말로 된 DVD는 2달려가 된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