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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3]코리아전쟁과 미국의 대외정책 문제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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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5-06-24 01:52 조회64,448회 댓글1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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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그림은 경향신문에 나온 풍자만화


언제까지 미제국주의 세력이 도발한 코리아전쟁을 놓고 남침타령만 하다가 또다른 코리아전쟁을 불러오려고 하는가.  코리아전쟁이 본격화 된지가 어언 65주년이 된다. 조국의 해방이 선포된지 70돌이 가까와 진다.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이 암살된지도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도 역사의 교훈들을 깨닫지 못하고 남녘 정치권과 남녘 보수언론들은 우리민족의 진로를 방해하고 가로막고 있는 것이 오늘의 남한사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민족통신 편집실]

 

 

[기획-3]코리아전쟁과 미국의 대외정책 문제많다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지난 150 역사에서 미제와 일제는 우리민족에게는 피맺힌 악의 세력이며 백년숙적이 아닐 없다.

지긋지긋한 일제 36년의 고통을 돌이켜 보면 아직도 참을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게다가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로 희생된 20만여 조선여성들이 제대로 사죄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원한을 가지고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일본 당국은 지금까지도 역사를 왜곡하며 심지어는 독도까지 자기 땅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판국이다.

그런데 요즘 박근혜정권은 미국과 관련된 '메르스'병균과의 문제를 삽시간에 접고, 미지배세력의 공작인 -- 3각군사동맹을 조작하기 위해 -일외교의 굴욕적인 불평등 조약을 은폐하고 수교50 행사 교차참석이라는 명목으로 -일간의 외교관계를 또다시 엉뚱한데로 몰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역사만이라도 돌이켜 보자. 코리아전쟁이 본격적으로 돌발한된지가 어언 65주년이 된다. 조국의 해방이 선포된지 70돌이 가까와 진다. 민족주의자 김구 선생이 암살된지도 6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아직도 역사의 교훈들을 깨닫지 못하고 남녘 정치권과 남녘 보수언론들은 우리민족의 진로를 방해하고 가로막고 있는 것이 오늘의 남한사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정권과 주변세력인 새누리당 정치인들과 이들의 하수인 노릇하기에 급급한 , , 같은족벌언론들과 종편방송들은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 역사 왜곡문제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불평등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과 도꾜에서  박근혜는 주한일본대사관 행사를 찿아가  한일 신뢰 가장중요, 올해가 역사적 기회라고 떠벌리는가 하면  일본의 아베는 주일한국대사관 행사에 참석해  앞으로 50년을 위해 손잡고 새시대 열자라고 외치고 있어 이를 바라보는 양식있는 해내외 동포들은 조소를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박근혜 정권은 최근에  '유엔의 북한인권사무소' 남녘 땅에 유치하여  남북갈등을 조장하고 왜곡하려는 악질적인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미당국이 북조선의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박근혜정권이 어떻게 북의 인권을 말할 염치가 있는가. 남녘의 사대매국 언론들이 북의 인권을 거론할 처지와 입장이 되는가.

남한은 나라의 가장 기본권이 되는 군사주권 하나 챙기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식민지에 불과하다. 정치, 군사, 외교, 사회 전반이 미국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처지에 어떻게 주권을 생명으로 여겨온 북조선을 향해 '인권타령' 노래부를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국제사회에서 가장 인권을 짓밟으며 잔인무도하게 자기보다 약한 나라들 국민들의 인권을 야비하게 유린해 나라가 미국인데 나라에 의해 북한인권사무소를 남한에 설치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한다.

더군다나 문제 때문에 오는 8 광주에서 열릴 청년대학생들의 국제체육행사(U대회) 북조선 선수단이 불참을 통고해 왔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지 않은가.

 

조국광복 70년을 맞고 민족분단 70년을 맞는다면 남한 정부 당국은 미당국의 대코리아반도 정책에 대해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미정부는 지금 아무 쓸모없는 싸드 정통성없는 박근혜정권에 얼렁뚱땅 넘겨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터무니 없는 이익을 넘겨주려고 한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 당국은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안다. 경제를 생각하면 미국과 일본과의 교역량 보다 많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없고, 친미사대주의 노선을 생각하면 미국의 비위를 벗어날 수도 없는 식민지 남한의 노예신세를 어떻게 해야 강대국으로부터 미움을 사지않고 있을까. 이것이 박근혜정권의 내부 고민일 것이다.

 

남한 정치권의 여야는 모두 코리아반도 정세를 똑바로 읽어야 한다. 코리아반도 식민지와  해방이후 분단의 원흉들인 미국과 일본은 남한 당국을 끌어들여 이른바 ,, 3각군사동맹을 엮어 아시아지역은 물론 코리아반도 전체를 긴장의 수렁으로 몰고가면서 여차하면 코리아반도를 또다시 침략하여 강점하려는 2 가쯔라-태프트 음모가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미당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도우려하고 있다는 것은 공개된 비밀로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의 처지는 진퇴양난의 식민지 노예신세가 되어 - 양국의 압박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미국의 대코리아정책은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대코리아정책 또한 국제윤리도 없이 막가파식 대외정책을 전개해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접수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민족 백년대계를 위해 수정할 것인가하는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 남한 당국의 현주소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국제관계는 힘의 대결에 의해 강제될 가능성이 높다. 힘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주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주권이 담보되지 못하면 제국주의자들을 포함하여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이용만 당하게 된다. 이것은 인류역사의 교훈이며 우리민족사에서 뼈저리게 느껴온 교훈이다.

 

2 코리아전쟁을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우리민족의 운명을 우리민족 스스로 결정하는 주권국가로 거듭나는 것을 원하는가.  도대체 언제까지 미제국주의 세력이 도발한 코리아전쟁을 놓고 남침타령만 하다가 또다른 코리아전쟁을 불러오려고 하는가. (다음에 계속~)

 

 

 

 

[기획-2]코리아전쟁과미국의 대외정책문제많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internation&wr_id=5642

 

 

[기획-1]코리아전쟁과미국의 대외정책문제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internation&wr_id=5636



[참고 자료]

전쟁의 나라 미국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 
기사입력: 2015/06/22 [23: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연재서문]

우리사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침략에 대비해 우리를 지켜주러 왔다고 하지만 실상은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은 북-미 관계개선을 거부하고 대북압박을 지속합니다. 한반도 평화보다 군사적 긴장이 미국에게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언제나 한국독재정권의 편이었습니다. 미국은 이승만 정권을 뿌리내리게 한 산파였으며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찰떡공조를 과시했습니다. 대북정책을 두고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불편했던 미국은 다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보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망국세력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습니까? 바로 미국이 이들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국민들께서는 한국보수를 보면 혀를 끌끌 차면서도 미국 행정부의 정책결정만은 객관적, 내지는 합리적이라고 믿곤 합니다. 우리 생활 전반에 미국식 사고방식이 만연해 미국식 자유와 미국식 인권이 보편적 가치이며 미국식 정치가 그나마 나은 정치라는 착각에 빠져든 것입니다.

미국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사회연구소는 우리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쳐왔고 지금도 끼치고 있는 미국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2. 전쟁의 나라 미국

 

끊임없는 정복전쟁으로 국가의 산업과 자본을 키워가는 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속성입니다.

전쟁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규모 무력을 동원해 상대를 굴복시키는 방법입니다. 전쟁은 승전국이 자유무역이 아니라 무력으로 패전국의 경제력을 잠식하므로 무역보다 이윤이 훨씬 높습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전쟁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전쟁을 멈추지 않으며 산업과 자본을 끊임없이 살찌워 왔습니다. 미국이 지금까지 수행한 크고 작은 전쟁은 모두 200여 차례가 넘는데 이것은 1년에 평균 1번 가까운 전쟁을 수행한 꼴입니다. 200여 차례의 전쟁기록은 아마도 1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전쟁 횟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은 미국의 성격을 규정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인디언의 피로 세운 아메리카

 

미국은 국가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부터 인디언들과 전쟁을 벌여 왔습니다. 브라질, 멕시코 등 오늘날의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인디오’라 불리는 몽골계 원주민들과 이들의 백인 혼혈족인 ‘메스티소’족이 국민 구성의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유독 미국에서는 그 광활한 영토에서 생존하고 있는 인디언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원래 북미대륙에는 대략 1000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 영토 내에서 생존하고 있는 인디언은 고작 25만 명에 불과합니다. 단순 비교하더라도 지난 18세기, 19세기에 약 1000만 명이 넘는 인디언들이 미국 군대에 의해서 쫓기고 살해되고 집을 잃고 헤매다가 병들어 죽고 굶어죽고 얼어 죽은 것입니다. 

 

 

미 20달러 지폐에 인쇄된 앤드류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학살로 유명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출신이었는데, 1814년의 호스슈 벤드 전투에서 근 800명에 달하는 인디언 크릭 부족을 모조리 학살하였습니다. 잭슨은 죽인 인디언의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삼았으며 특히 여자를 살려두면 인디언의 인구가 늘어날 것을 우려해서, 여자와 소녀들을 철저히 죽일 것을 명령했다고 합니다.

 

인디언 토벌로 경력을 다진 잭슨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1830년 5월 26일, 잭슨 대통령은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에 서명하는데요, 이는 미국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인디언들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입니다.

인디언들은 걸어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특히 체로키 인디언 족은 15,000명의 부족 가운데 4,000명이 이동과정에서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길을 <눈물의 길>이라 부릅니다.

잭슨 정부는 이주를 반대한 인디언을 철저히 토벌하였습니다. 미국 남동부에서는 1832년에 “블랙 호크 전쟁”이 있었고 1836년에는 “제2차 크리크 전쟁”, 1835년부터 7년간 “제2차 세미놀 전쟁”이 발발하였다고 합니다.

 

생소한 미시시피 강 서부에서 인디언들이 살아갈 길은 막막하였습니다. 끝없는 이주와 토벌의 과정에서 그렇게 북미대륙의 인디언들은 눈물을 뿌리며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북미대륙의 인디언들이 20달러 지폐에 찍힌 잭슨 대통령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

 

 

2) 산업화로 본격화된 전쟁노선

 

미국은 산업화의 요구도 전쟁으로 해결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보다 훨씬 빠른 시일에 산업화를 이루었습니다. 미국의 산업화를 촉진시킨 전쟁은 바로 남북전쟁(1861-1865)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은 북부 산업자본과 남부 농업자본이 벌인 전쟁입니다. 미국은 북부가 승리하면서 남부 흑인노예들을 저임금 노동자로 편입시키며 제조업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켜가게 됩니다.

 

1863년에 노예해방선언으로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사라졌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을 두고 노예해방전쟁이라고 미화하지만, 남북전쟁의 빌미는 노예해방선언이 아니었습니다. 링컨이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노예해방선언은 1863년에 발표되었는데, 남북전쟁은 그보다 2년이 앞선 1861년에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세계 최대의 면화수출국이었다고 합니다. 직물소재의 거의 유일한 원료였던 면화는 미국에서 생산되었습니다. 미국은 유럽대륙이 소비하는 면화의 대부분을 공급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대대적으로 사냥해서 노예로 부렸습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즈는 대규모 흑인노예시장이 있었던 곳입니다. 오늘날 미국 인구의 8%를 차지하는 아프리카계 흑인들은 어쨌거나 그 당시 노예사냥꾼들에 끌려 대서양을 건넌 흑인노예들의 후손들입니다. 르브론 제임스 같은 스포츠 스타나 윌 스미스 같은 영화배우들도 예외일 수 없겠지요.

그런데 1860년대에 접어들어 미국 북부의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신흥 자본가들은 미국 남부의 면화농장에 끌려와 인간의 초보적 인권이 무시당한 채 무차별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아프리카계 흑인노예들을 자기네 공장의 노동자로 이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당연히 남부와 북부의 갈등은 전면화되었고 남부 11개주가 미합중국 연방을 탈퇴하고 결국 전쟁이 터졌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초기에는 전세가 남부군에 유리하였습니다. 링컨은 결국 남북전쟁의 불리한 전세를 극복하고자 전쟁에서 이기면 노예 신분을 해방시켜 준다는 노예해방선언을 하게 된 것입니다. 군대에 입대시킬 청년이 모자란 북부군은 노예해방선언을 통해 흑인들을 병력으로 활용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흑인 노예들을 농장에서 공장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었지,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를 불쌍히 여긴 전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흑인노예는 해방되었지만. 흑인들의 사회적 지위향상은 꿈도 꿀 수 없었으며 흑인의 인권은 무자비하게 짓밟혔습니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인종주의는 여전하였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 최초의 흑인야구선수가 등장한 것이 1947년입니다. 그 때에도 재키 로빈슨이 야구장에 들어서자 야유가 사방에서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미국 남부에서는 1960년대가 되어서야 흑인들의 목숨 건 인권운동을 통해 표면적으로라도 신장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까지도 인종문제, 인종에 따른 인권유린 행위는 미국의 대표적 사회문제로 남아있습니다.

 

 

3) 전쟁으로 패권을 구축하다

 

전쟁은 또한 미국의 영토를 무차별적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미국은 건국 당시에는 대서양 연안의 13개주로 출발하였지만 캐나다와의 전쟁(1812)으로 북부국경을 확정지었으며 멕시코와의 전쟁(1846)을 통해 오늘날의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멕시코 등의 광활한 서부지역을 점령하였습니다.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팽창할 만큼 팽창하자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렸습니다. 미국은 신미양요(1871)를 일으켜 조선으로까지 침략해 들어왔으며 스페인과의 전쟁(1898)으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장악하였습니다. 미국은 필리핀 지배를 위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하는 가쓰라-테프트 밀약(1905)을 맺기도 했습니다. 미 육군장관이었던 태프트는 이후 미국 대통령에도 당선됩니다.

 

미국의 전쟁은 20세기 초반에 있은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국가들의 군수기지로 기능하며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습니다.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전쟁특수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전쟁은 그 특성상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자됩니다. 미국의 산업자본들은 앞을 다투어 전쟁특수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미국의 성장을 떠받치는 산업은 점차로 군수공업화 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미국은 한시라도 전쟁을 멈출 수 없는 국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시작되었지만, 미국은 중립을 선언하며 유럽에 대한 무역에 집중한 채, 사태를 관망하였습니다.

“미국외교사”에 따르면, 전쟁초기에 미국은 오히려 영국과 사이가 틀어질 뻔 했다고 합니다. 전쟁 초기, 미국은 유럽 모든 국가로의 상품수송과 금융거래에 관심이 있었지만 영국이 독일의 해상을 봉쇄하고 교역을 금지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교역은 독일보다 영국과 프랑스가 훨씬 많았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미국의 중립무역은 독일에게 불리해져 갔습니다. 미국은 1915년 후반부터는 연합국 진영에 탄약도 수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은 1917년 2월부터 무제한 잠수함 공격을 재개하였습니다. 윌슨 행정부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 4년간 지속되었지만, 미국이 참전한 시기는 1917년부터입니다. 미국은 전쟁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채,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면서 막대한 재부를 쌓아올렸습니다. 1차 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산업생산능력은 영국을 앞질렀으며, 20세기 초반에는 전 유럽대륙에 맞먹을 만큼의 생산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또 다시 본토에 포탄 한 발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력이 완전히 파괴된 유럽대륙을 맞이합니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은 영국을 꺾고 세계 자본주의 진영의 유일패권국으로 등장하였으며 군사패권, 경제패권과 더불어 정치사회문화적 패권을 구축하였습니다.

 

 

4)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의 전쟁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 세계가 전쟁으로 빠져든 이 비극적인 전쟁에서 미국은 홀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렸고 그를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세계 자본주의 진영을 좌우하고 있으며 자본의 논리를 관철시키는데 가장 앞장서고 있습니다. 미국은 2차 대전으로 붕괴 직전에 다다른 유럽 자본주의 국가들을 막대한 채권과 원조로 되살렸으며 반면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해방운동과 자립경제 건설 시도를 집요하게 방해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히틀러가 유럽대륙을 휩쓸던 전쟁 초기에, 미국은 적극개입하지 않으면서 무기만 열심히 팔았습니다. 그러자 일본이 1941년 12월에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단행하였고, 이후 연합군 진영이 확고히 유리해지자 미국은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미국이 유럽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하지만, 당시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독일-소련 전쟁의 동부전선은 외면하였습니다. 미국은 독일이 아직 막강하던 1942년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전차전을 도와주는 정도였습니다. 1943년에는 이탈리아에 상륙해 무솔리니와 싸웠으며,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본격적으로 퇴각하던 1944년에야 노르망디에 상륙하며 서부전선을 구축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은 전체 군사력의 70% 이상을 소련과의 전쟁에 집중시켰습니다. 

 

 

히틀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습니다.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까지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은 50만명의 독일군 정예병을 비롯한 대략 85만명의 히틀러측 군대가 궤멸 당했습니다. 1944년에 반격을 가한 스탈린의 바그라티온 작전은 45만명의 독일군 사상자를 내고 25만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이 전투에서 스탈린은 나치의 중앙집단군을 붕괴시켰습니다.

 

태평양전쟁도 주 무대는 과달카날, 이오지마 등의 태평양 섬이 아니라 중-일전쟁 이후 내전상태에 빠져든 중국대륙이었습니다. 미국은 태평양의 섬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지만 일본군의 정예병력이라던 100만 관동군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상황에서도 중국 만주에 주둔하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주된 역할은 독일과 일본을 격퇴시키는 것 보다 오히려 연합국 측에 군수물자를 판매,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1940)한 뒤 유일하게 독일-이탈리아 연합군대에 맞서게 된 영국은 막대한 군수물자를 미국에서 빌려오는 방법으로 해결하였습니다. 미국은 이를 통해 커다란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경제적으로 영국자본을 완전히 꺾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2차 대전 기간 동안 모든 참전국들은 국토가 폐허가 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지만 유독 미국만큼은 본토에 포탄 한 발 떨어지는 피해도 입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생산을 이끌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기지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1950년대의 미국은 전 세계 재화의 40% 이상을 독점적으로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한 자본의 축적과 생산의 독점. 이것은 미국이 전후 세계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장악하게 된 두 기둥이었습니다.

 

 

5) 전쟁으로 세계를 접수한 미국자본

 

미국이 영국을 밀어내고 자본주의 진영의 종주국에 등극하는 과정을 살펴봅시다.

1940년, 전쟁수행 1년 만에 영국 국고의 금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이제 <무기대여법>을 통해 외상으로 무기를 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초기에 판매한 무기를 제외하고 무기대여법으로 미국이 영국에 빌려 준 무기만 따지더라도 당시 금액으로 3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쟁은 무려 6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군수산업이 발달한 미국이라 해도 이렇게 폭주하는 주문을 감당할 수는 없을 정도였습니다. 결국 일반생산시설에서도 군수품을 생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미국산업 전반에 걸쳐 일반화되었습니다. 일례로 IBM의 경우는 1940년 4600만 달러의 판매규모에서 전쟁덕분에 1945년에는 1억 4000만 달러로 수직상승하였습니다. 미국의 모든 생산설비의 총 가치는 1939년에서 1945년의 6년 사이에 400억 달러에서 660억 달러로 총 65%가량이 증가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은 총계 1600만 명에 달하던 군인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영국군’ 및 ‘소련군’ 등의 연합국 병사들까지 무장시키기 위하여 소총과 기관총 등의 각종 총기류 약 600만 정, 97800여대의 각종 항공기들, 10만 여대의 탱크 및 장갑차량, 항공모함 141척 및 구축함 349척 포함 약 7만 1000여척의 각종 함선들, 탄약류 약 410억 발 등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미국은 1850억 달러 이상을 전쟁물자 생산에 투자하게 되고, 이러한 수준으로 방위산업과 군비가 확대되기에 이르면서 1939년에 국민총생산의 1.5%에 불과하던 국방비 지출규모가 전쟁이 절정에 달하였던 1944년에는 국민총생산의 45%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1939년 당시 17%에 달하던 미국의 실업률은 1944년에는 1.2%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달할 1944년 7월, 미국은 브레튼 우즈에서 연합국 통화금융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협정에서 미국의 달러화는 국제통화의 지위가 부여되어 영국의 파운드화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금 1온스의 가격을 35달러에 고정시킨 것입니다.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정기적으로 자국 통화를 평가받게 하여 달러에 대한 가격 변동률을 1% 이내에서 유지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달러의 독점적 지배권을 보장한 것입니다. 브레튼 우즈 협정에서는 이와 동시에 국제통화기금(IMF)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출범도 합의하였습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는 달러의 통화운용에는 무한정의 자유를 주고 세계 모든 통화는 달러를 따라가도록 설정하여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 경제를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통화에 있어서의 불평등 조약입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세계 각국이 자기의 경제주권을 미국에 내어놓았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본토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유럽국가들은 이러한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 기초한 바 미국경제는 2차 세계대전 후에도 고속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세계 자본주의 시장을 석권하여 주요경제부문에서 독점적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건국 당시 인디언 토벌전쟁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미국은 끊임없는 전쟁으로 경쟁세력을 꺾어나갔으며 결국 1945년, 자본주의 진영의 군사 경제패권을 거머쥐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인디언을 소멸하고, 수백만 흑인노예를 부렸으며, 세계대전의 틈바구니에서 무기판매에 열중하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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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편집실님의 댓글

편집실 작성일

한국의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등이 유엔북인권서울사무소 개소에 맞춰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폐쇄를 촉구했다.
 
평화통일시민행동, 서울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은 23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서린동 '유엔 북인권사무소' 앞에서 사무소 개소를 반대했다.

기자회견문 전문을 게재한다
[기자회견문]
 
‘인권’을 대북압박과 적대정책 수단으로 악용하지 말라!
 
 
오늘(23일) 유엔 북한인권현장사무소가 개소식을 갖고 공식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북한인권현장사무소는 지난 2014년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보고서를 통해 제안한 것에 기초하여 올해 설치되었다. 당시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광범위한 ‘반인도범죄’가 자행되고 있다면서 서방식의 체제전환, 책임자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등과 더불어 북한의 ‘인권 침해 사안’들에 대한 책임규명을 돕는 조직 설치를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인권사무소 설치의 배경이 되었던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권고안은 노골적으로 체제 전환을 요구하고, 나아가 정책의 최고 책임자, 즉 북한 체제의 최고 지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는 것 등을 핵심적 해법으로 제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권고안과 질을 달리한다. 이는 사무소 설치가 실상 대북 체제 전환 압박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북한인권사무소가 노골적인 대북 체제 전환 압박의 일환으로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규탄의 뜻을 밝힌다.
 
유엔인권이사회 회원국들은 모두가 인권상황을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어느 한 국가도 이 의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유엔의 인권결의안은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신장’이라는 수사에 걸맞는 공정성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유엔의 인권결의안은 전세계적으로 공정한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할 인권문제를 정치적 고려에 따라 편파적으로 적용하고 있으며 특히 강대국들의 인권유린 행위에는 철저히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유엔에서 북한 인권관련 이슈를 다루는 방법은 회원국 전체의 인권현실에 대한 공정한 평가, 그 의무에 대한 평등한 제기로서가 아니라 특정 국가에 대한 ‘망신주기식 접근법’에 기초하여 정권 붕괴, 체제 전환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미국 주도하의 침략 전쟁 등 광범위한 인권 파괴 현실에는 눈감은 채 특정 국가만을 골라 편파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물론, 인권침해의 근거로서 제시한 탈북자들의 증언내용과 관련해서도 최근 객관적 검증과 신뢰성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화’, ‘인권’을 명분으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고,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인권을 증진시킬 수 없다. 인권 실현을 위한 사회 질서나 체제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영역이지 외부의 개입으로 강요해서는 안 될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개입에 의한 체제 전복은 또 다른 인권침해, 주권침해이다.
 
체제 전복식 접근법이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된 이후 대북 압박과 적대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왔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최근 들어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 등에서 평화체제를 위한 협상안을 내놓는 대신 공공연하게 ‘인권’을 대북압박의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고 거론한 것은 북한 인권 문제를 쟁점화하는 저들의 불순한 의도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실례이다.
 
한반도에서는 분단과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구조로 인해 구성원 모두가 심각하게 생존권과 평화권을 위협받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핵문제 등 상호 안보위협 요소들을 제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며 냉전대결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협상은 외면한 채 북한인권사무소의 설치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적대적 주장들을 확대재생산하고 대북적대정책과 체제 전환 압박을 강화하게 된다면,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은 더욱 격화될 것이며, 이는 보다 심각한 인권 파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북한인권사무소를 등에 업고 전단살포나 기획탈북 등의 행태도 더욱 노골화되어 군사적 충돌 위기가 고조될 것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은 사무소 설치에 대해 ‘남북관계에 미치는 파국적 후과(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고, 이는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 불참 선언 등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통일부는 ‘국제기구 사무소 설치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광복 70년을 맞는 올해,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남북관계 개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마저 수포로 돌아가는 등, 그 후과는 결코 심상치 않다.
 
더 이상 ‘인권’을 대북압박과 적대정책의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
인권 실현 명분으로 체제 전복 꾀하는 북한인권사무소 설치를 즉각 철회하라!
한미 정부는 진정한 인권실현을 위해 화해협력, 평화체제 구축으로 즉각 나서라!
 
2015년 6월 23일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노동인권회관,민가협양심수후원회,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민주노동자전국회의,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회,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민주주의자주통일대학생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불교평화연대,사월혁명회,서울진보연대,우리민족연방제통일추진회의,예수살기,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사),전국빈민연합,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여성연대,조국통일범민족연합남측본부,통일광장,통일의길,평화재향군인회,평화통일시민행동,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진보연대,한국청년연대,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도대체 박근혜정권 뭘합니까?
큰 화를 입기전에 퇴진해야 한다는 주장 맞습니다.

미군이 1년여에 걸쳐 살아있는 탄저균을 다른 연구기관으로 보내는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했고, 미국의 9개 주는 물론, 주한미군 기지로도 탄저균 표본이 보내졌다고 하는데....

스티브 워런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5월 2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유타 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이 캘리포니아와 메릴랜드 등 9개 주로 옮겨졌다”고 발표했는데....

사고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1년 넘게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워런 대변인은 “탄저균 표본 1개는 한국 오산에 있는 주한미군의 합동위협인식연구소(TIRP)로 보내졌다”며
 “발송된 표본은 규정에 따라 파기됐다”고 밝혔다.

주한미군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오산 미군기지에 있는 응급격리시설에서 탄저균 표본을 폐기처분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유타 주의 군 연구소에서 부주의로 보내온 살아있는 탄저균 표본을 가지고
오산 미군기지의 ITRP에서 제독 실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22명이 훈련에 참여했고 감염자는 없었다는 설명이었다.

문제는 미국과 주한미군의 발표 이전까지 한국 정부는
 살아있는 탄저균이 들어온지도,
실험이 실시됐는지도,
폐기됐는지도 몰랐다는 점이다.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습니까?

그래놓고 한일 외교?
한미 외교?

나라 망치는 외교가 아닌가요?

ㅁ박근혜 하루 빨리 퇴진해야 합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이런사건에 대해 극단적으로 분노해야할 텔레비죤방송국은 오로지 북녘의 조선중앙텔레비죤 방송국밖에 없을겁니다~!!! 어디 KBS나 MBC, SBS, OBS, 채널A, TV조선, JTBC, MBN, 뉴스Y같은 개떨거지들이 널려있는 우리 대한미국 남녘의 텔레비죤방송국들이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절규와 가엾게 서있는 성노예소녀상에 대해서 위로해줄것같냐고요? 정답은? 아니죠~!!!! 이런텔레비죤통로들은요? 캔디캔디에 나온 이라이자 니일남매내지 라건가문이라고 보시면되요!!!! 그것도 아니면 테리우스의 이복형제자매들이고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저는 대한미국 남녘의 어느 텔레비죤통로나 일본의 어느 텔레비죤통로든 이들의 새빨간 원색적인 상업주의 거짓말행위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할겁니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김윤심방송원이 가라사대 일본군성노예사건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하며 울것이니라~!!!!

도올님의 댓글

도올 작성일

정신없는 사람들 많네...
박근혜정부의 실정도 많지만 북한이 여기에 비할손가?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한다면 김정은은 사형에 처해야 균형이 맞는거 아닌가?
당연히 남한 정부의 잘못에 대해서 매를 대듯이 제발 북한에 대해서도 진정어린 자세를 촉구한다..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도올님, 알고있으니까 제발 그입 좀 다무시죠?

유학생님의 댓글

유학생 작성일

한국전쟁은 남침도발이 절대 아닙니다. 지금까지 미국이 이라크  허위구실로  침략하듯이 북한침략으로 거짓선전애 왔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한 책에서도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어요. 

Bruce Cummings : The Origin of  Korean War  에서도 그리고  스톤의  한국전쟁의  감춘역사 번역판에서도 그사실을 증거해 줬어요. 

북한은 우리민족 정통성을 소유한 정치세력인데  왜  그 사실을 거짓말로 매도하지요 ?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멈니까?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요?

은하수님의 댓글

은하수 작성일

철천지 원수(일본)랑은 화해하자 하며,  혈연관계이고 동족인 북은 없애야할 적으로 물어뜯고 욕하는 사람 : * * * <- 누군지 다 아시죠?

은하수님의 댓글

은하수 작성일

탄저균들여와  국민안전 위협하는 나라는 동맹이라 하며, 민족의 안전을 위해 탄저균 유입을 규탄하는 반쪽의 동족은 욕하면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 : ***** <- 누군지 다 아시죠?

은하수님의 댓글

은하수 작성일

머리가 모자라던지, 아니면, 우리민족이 아니던가 둘중의 하나? 아무튼 우리전체에게 손해를 끼치고 해를 주는 사람들임에는 분명함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나는 개인적으로 국군참전용사들 절대로 말걸지 않을겁니다~!!!! 평화롭게 하자고해도 그 어르신들이 나보고 빨갱이 공산당집이라고 욕설질이나 해댈테니깐요~!!!

대학원생님의 댓글

대학원생 작성일

북침설, 남치설, 중간설이 있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그 배경은 이미 위에서 곽동기 박사께서 총괄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한국전쟁, 혹은 조선전쟁은  미국의 침략전쟁으로 규정됩니다.
그리고 북측으로서는 이것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합니다.  맞는 어휘입니다.
미국 제국주의자들이 자기 이권때문에 침략한 것이고 이것을 막기 위해  제국주의자들과 해방전쟁을 한 것이지요.

베리타스님의 댓글

베리타스 작성일

북침설, 남치설, 중간설이 있지만 이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IQ 18 의 주장

이태식님의 댓글

이태식 작성일

민족통신 6.25기획글이 좋네요.
국내외 그 어디에도 없는 자료들이
있어서 공부가 되어서 감사드려요.

친구가 소개하여 주어서 여기에 들어와 보니
일반 언론에서 말하지 않는 내용들이 많아서
역사공부가 많이 되어서 ...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리고 감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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