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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둘째아들 장호준목사: “아버지 장준하 사망 전화 죽기전에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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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8-15 20:04 조회3,13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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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한겨레신문 인터네트판 15일자는 장준하선생 장남 장호권(63)선생과
대담한 내용을 대서특필로 다뤘다. 민족통신은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3남 장호준목사와
전화대담을 통해 그의 부친 사망에 대해 알아보았다.장준하선생은 민족지도자로서, 그리고 민족언론인으로서서
활약하다가 박정희폭정시대인 1975년 8월17일 등산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세인들의 소문은 이른바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미주]둘째아들 장호준목사:


“아버지 장준하 사망 전화 죽기전에 받았다”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노길남 편집인]한겨레신문 인터네트판 15일자는 장준하선생 장남 장호권(63)선생과 대담한 내용을 대서특필로 다뤘다. 민족통신은 이와 때를 같이하여 미주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3남 장호준목사(53)와 전화대담을 통해 그의 부친 사망에 대해 알아보았다.

<##IMAGE##> 장준하선생은 민족지도자로서, 그리고 민족언론인으로서서 활약하다가 박정희폭정시대인 1975년 8월17일 등산하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세인들의 소문은 이른바 의문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장준하선생의 3남2녀중 3남인 장호준목사(미국 커네티커트 거주)는 15일 민족통신과 가진 전화대담을 통해 “누군가 모르는 40대의 목소리를 가진 인물이 그날(1975.8.17) 오후 한시 좀 안되는 시간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께서 경기도 포천시 약사봉 계곡 절벽에서 등산하다가 추락해 돌아가셨다고 전하여 현장에 달려갔었다”고 회고한다.

장목사는 장준하선생의 시신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때 현장에서 숨진 아버지는 추락사라는 말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고 하면서 입은 등산복도 멀쩡했고, 몸에 상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돌이켜 보면서 그 순간부터 가족들은 추락사라고 알려준 전화는 거짓이었고, 그리고 수사관들이 작성한 사망시간도 3시라고 그랬는데 장목사가 전화를 받은 시간이 그보다 두시간 전이었다고 말하면서 추락사 목격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증언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시체를 엠뷰란스에 모시고 올 때도 옷들도 깨끗했고, 몸에 상처도 없었으나 차를 타고오는 과정에 오른쪽 귀에서 피가 나왔고 그 뒷부분에 어떤 흉기로 맞은 자죽이 머리카락 안으로 함몰된 부분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설명한다.

한겨레신문과 형되는 장호권선생과 대담한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대부분 집안식구들 내부에서 30여년 동안 이야기해 왔었던 내용들이고 귀띔해 준다.

사건 37년만에 장준하선생의 주검문제가 재조명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자체는 타살임이 분명하다고 단언하면서 37년이 흘러간 이 시점에 아버지의 주검은 그 사건의 이러저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보다는 한국 정치사가 안고 온 부조리의 역사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오늘을 사는 우리 해내외동포들이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발언하면서 우리 민족사에서 차지하는 아버지 같은 분들의 위상이 제대로 조명되어 우리 역사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

<##IMAGE##> 장호준목사는 이어 “우리 아버지 같은 분들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지위와 역할을 했으면 그 때문에 왜 죽어야 했고, 그리고 부조리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 가를 제대로 조명되어야 우리 역사가 발전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군사정권의 집권자의 딸인 박근혜씨가 새누리당 대선후보로 나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이점에 대해서 한마디 바란다고 질문하자 그는 대뜸 아버지는 생전에 “그 누구도 대통령이 될수 있다고 보지만 박정희만큼은 안된다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하는 한편 박근혜의 대선출마에 대해서도 “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박근혜도 안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저없이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박근혜씨도 자숙하는 자세로 조용히 있어야 할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장호준목사는 2010년 10월 민족통신 특파원들과 그의 거주지 커네티커트에서 특별대담을 한바 있다. 그 때 질문한 내용중 일부를 여기에도 소개한다.

-장호준목사는 1959년 2월7일 서울시 신촌에서 태어났다.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박정희의 탄압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 났다. 해서 신촌 집에 대한 기억은 별반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다.

그는 "쫓겨나서 여관에서 지내던 기억만이 조금 남아있고 서대문 평동에 있는 전세집에서 자랐습니다. 물론 그 때부터 시작해서 전세집 이사 전력이 시작 되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던 때는 상봉동 전세집에 살 때입니다. 신촌 집에서 쫓겨난 이후 약 십여년 조금 더 되는 사이에 대략 15번 정도 이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회상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장호준 목사는 어떻게 학교를 다녔을까?

장 목사는 이에 대해 "초등학교는 이대부국을 나왔습니다. 중학교는 청운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는 수도공고를 다니다가 중퇴 했습니다. 그리고는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중앙신학교에서 신학을 했습니다. 중앙신학교를 졸업하고 한신대학 신학과에서 2년간 학부 공부를 다시 했습니다. 그런 후 한국 기독교 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는 그 후 1988년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싱가폴에서 동남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을 대상으로 선교사 생활을 하다가 1994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교회일을 하다가 그것이 탐탁하지 않아 1999년 미국교단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미국에 와서 지난 10여년 동안 개척교회를 운영해 왔다고 설명한다.


-장 목사님 형제 자매들은?

3남 2녀입니다. 형 둘과 작은 누이는 한국에 살고 있고 개인 사업을 합니다. 큰 누이는 씨애틀에 살고있습니다.


-장 목사님 사모에 대해 한마디.

대학에서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자기 일에 완벽하게 충실한 사람입니다. 남편으로 인해 지금까지 늘 마음 고생을 하며 삽니다.

-자제분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딸 아이 하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와서 고등학교 2년과 대학을 미국에서 마쳤습니다. 콜롬비아 대학 다니다가 재미없다고 그만두더니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동아시아학 석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경제능력이 없다는 것을 어려서 깨우친 덕에 아버지에게 기대봐야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음을 알고, 고등학교 때부터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지금까지 혼자 벌어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장목사님 좋아하는 음악은?

특별히 어떤 음악을 정해 놓고 좋아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무 음악이나 들리는 것이 있으면 듣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음악을 듣기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는 않습니다. 음악 소리 보다는 바람 소리를 더 좋아합니다.


-장 목사님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

그저 기초 서적만 읽습니다. 해서 특별히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없습니다. 물론 아버님의 “돌베개”는 인상 깊은 책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이정표이며 특별히 돌베개 후기 맨 마지막 줄에 적으신 “이제 나는 살아서 50대 초반을 보내며 잠자리가 편치 않음을 괴로워 한다”라는 아버님의 말씀은 제 삶의 근간입니다.


-미국 생활 10년에 가장 마음아팠던 일 그리고 가장 기뻤던 일이 있다면?

미국 생활은 이제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1999년에 미국에 왔습니다. 글쎄, 별반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성격 덕에 어떤 것에 집착하지도 또는 무언가 목숨 걸고 이룩해야 하는 목표도 세우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사는 일에 뛰어 왔습니다.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리 깊이 가슴이 아프다거나 기쁘다거나 하는 것을 남겨 두지 않는 듯 합니다. 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이나 가장 기뻤던 일은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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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목사 연락문의:

Rev. Hojun Chang
First Korean UCC / Storrs Korean Church UCC
252 River Road
Willington CT 06279
860-487-3534 / 860-690-0472
www.storrskoreanchurch.org / revchang@fkuc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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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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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보자마자 ‘각본이다’ 생각 들었지만 공포감에 함구"-한겨레신문 장남 장호권선생과 특별대담

*민족통신과 커네티커트에서 특별대담(2012.10.30)—보도자료 여기를 짤각해 열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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