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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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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6.15남북공동선언 12주년 기념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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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2-06-16 08:09 조회2,0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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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민족통신 종합]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12주년을 맞아 미주 로스앤젤레스 원불교교당에서
기념식 및 이활웅 선생 초청 통일강연회가 열렸다. 6.15 미서부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이활웅 선생과 박상준 위원장, 김용현 직전 위원장, 이선주 목사 내외, 은호기 선생, 조경미 선생, 정찬렬
선생, 김현환 목사 내외 등 6.15 미서부위원회 성원들이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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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6.15남북공동선언 12주년 기념식 열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 12주년을 맞아 미주 로스앤젤레스 원불교교당에서 6월 15일 저녁 7시에 기념식 및 이활웅 선생 초청 통일강연회가 열렸다. 6.15 미서부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날 기념식에는 이활웅 선생과 박상준 위원장, 김용현 직전 위원장, 이선주 목사 내외, 은호기 선생, 조경미 선생, 정찬렬 선생, 김현환 목사 내외 등 6.15 미서부위원회 성원들이 참석하였다.

민족통일을 위해 먼저 가신 분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1부 기념식은 이태선 선생의 6.15 공동선언문 낭독에 이어 정신화 목사의 6.15 공동선언 12주년 남측위원회 연대사 낭독이 있었다.

박상준 6.15 미서부워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분단 50년간의 불신과 대결의 고리를 끊고 화해와 협력, 평화와 통일로 가는 새로운 장을 연 6.15 남북공동선언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부정당하면서 남북교류와 협력이 중단되고 군사적 충돌까지 벌어지게 되었다며, 이명박 정부에 대해 6.15 공동선언을 부정하며 남북간의 평화를 해치고 대결을 추구하는, 북측을 향한 적대적인 태도와 정책들을 멈추기를 촉구하였다.

김용현 직전 위원장의 축사에 이어 참가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다같이 부르는 것으로 1부 기념식을 마치고 이활웅 선생 초청 통일강연회가 2부 순서로 진행되었다. 이활웅 선생의 강연원고를 게재한다.


6.15 공동선언도 “종북”인가?



1. 주저앉은 6.15 공동선언



<##IMAGE##>오늘 우리는 6.15 공동선언 1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2년 전 남쪽의 김대중 대통령과 북쪽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 끝에 발표한 이 선언은 그때 이미 반세기를 넘긴 남북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평화통일을 향한 화해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를 다짐하는 획기적인 문서였습니다. 그래서 남과 북과 해외의 우리 민족성원 모두 가 이 선언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외국 사람들도 한결같이 참 잘된 일이라고 격찬했습니다.

다만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남한의 보수층에서는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과의 대결관계를 지양하고 화해협력을 도모하는 인사들과 그들의 활동을 “종북”으로 몰아붙이고 배격하고 있으니, 그들에게는 “6.15 공동선언”도 아마 “공동선언”이 아니라 “종북선언”으로 보일 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종(從)”은 약자나 하위자가 강자나 상위자를 따라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니, 같은 동족인 남과 북이 어리석고 소모적인 대결관계를 이제 그만 지양하고 대등한 입장에서 호혜적인 관계를 설정하자는 노력을 “종북”이라 부르는 것은 악의적이거나 몰상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을 밀어내고 대신 들어앉아 주인행세 하는 미국이란 외세를 상전으로 모시고 떠받드는 그들의 자세야 말로 “종미”, 혹은 굴종한다는 뜻에서 “굴미(屈美)”라 부르고, 그들을 굴미사대주의자(屈美事大主義者)로 분류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극히 유감스러운 것은 12년이 지난 지금 6.15 공동선언이 그들의 방해로 인해 맥없이 주저앉은 상태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선언의 제 3항, 4항, 5항에 규정한 이산가족 상호방문, 경제적 교류협력 그리고 당국 간 대화는 한동안 그런대로 실시되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전면 중단상태에 있습니다. 더욱이 그 공동선언의 생명이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1항과 2항에서 규정한,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그리고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한 합의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진전도 보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우선 6.15선언이 발표됐을 때 그 문서에 직접 서명한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가 불과 2년 반 밖에 남지 않아, 그 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한 초석을 단단히 다져놓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김 대통령의 후임으로 2003년 초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선 핵포기 후 대북지원”을 천명하고 곧 이어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하는 등, 공동선언 실천에 대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5월말에 가서야 전임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의지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결국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가, 임기 말이 박두한 2007년 10월에 가서야 평양으로 김정일 위원장을 찾아가 정상회담을 갖고 10.4 동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10.4 공동선언은 통일, 군사, 평화, 경제, 문화, 인도, 외교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매우 전향적이며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훌륭한 합의문서였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실시된 대선에서 굴미사대의 기수 이명박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남북관계의 전반에 걸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어지게 되었습니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는 “비핵, 개방, 3000”이었습니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내에 국민소득 3000불이 되도록 도와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한마디로 이 대통령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그간 여러 차례의 남북 대화와 북핵 6자회담을 거쳐 남북 간 뿐 아니라 주변관련국 상호간에도 이미 합의돼 있는 여러 기본원칙들을 통째로 무시하면서 곁따라 북의 자존심까지 확 긁어놓고 말았습니다. 북한체제의 붕괴가 임박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믿은 이대통령은 그 후에도 수시로 북한의 체제와 지도층과 인민을 헐뜯고 능멸하는 언동을 계속했으며 이에 대해 북에서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욕설로 받아 넘기고 있어, 이러다간 6.15 선언 실천은 고사하고 자칫 남북 간의 무력충돌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염려도 되는 것이 작금의 상황입니다.


2. 민족 내부적 요인



6.15 선언이 주저앉게 된 것은 첫째로 우리가 지난 67년간에 걸친 남북 상호간의 철저한 대결관계를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 상호간의 대결관계의 원천은 사실은 이조시대에 싹트고 왜정시대에 뿌리내린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간의 갈등에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왕조에는 왕실과 사대부 또는 양반이라는 지배계급이 있어서 정치를 전담했습니다. 그리고 중인, 상인 및 천민이라는 피지배계급이 있었는데 이들은 전혀 정치에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정치를 전담한 이조의 지배계급 나으리들은 명나라나 청나라에 대한 충실한 사대외교만으로 나라의 안보는 확고하다고 믿었는지, 임진, 정유의 왜란과 정묘, 병자의 호란을 겪고 나서도 외침에 대비한 국방태세를 확립하지 않은 채 오로지 공허한 예론과 당쟁에만 영일이 없었습니다. 18세기말부터 동양에 출몰하기 시작한 서양인들이 19세기중엽에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제압하고 일본과 한국에도 내도하여 병인양요나 신미양요로 소란을 피웠는데도 안보불감증에 걸린 이씨왕조의 지배층 인사들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동안 서양의 기술과 제도를 잽싸게 배우고 본 딴 일본이 중국과 아라사를 물리치고 한반도를 집어삼키려고 노골적으로 덤벼드는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10년 일본에게 망국의 화를 당하게 되는데, 놀라운 것은 이토록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나라가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데도, 그 과정에서 정부차원의 조직적인 무력항쟁의 실적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그나마 얼마 안 되는 정부의 군사력이 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그 무렵 전국 각처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민간차원의 항일의병운동을 진압하는 일본군에 협력했다하니, 참으로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위 한일합방조약의 내용을 보면 한국의 황제는 자신과 황족과 귀족 및 그 후예들의 신분과 세비의 보장, 그리고 친일인사들의 공직임용약속을 받고, 그 대가로 자기나라의 땅과 백성을 일본에게 완전히 그리고 영구히 넘겨준다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게 나라는 빼앗겼지만 한국의 황제와 황족과 귀족 및 그 후예들과 친일 인사들은 그 후 일본통치하에서 굴욕적이나마 안락한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모든 일반백성들은 일본의 혹독한 식민통치하에 노예가 되는 수모와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즉 이조말의 지배계급 인사들은 일본으로부터 자신들의 신체와 재산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피지배계급에 속하는 자기 백성들을 일본에 노예로 팔아넘긴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해방되는 그날까지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그렇게 된 것이 잘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왕실과 사대부 즉 지배계급의 인사들은 이렇듯 일본에 항거하지 않고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약속받는 대가로 피지배계급인 일반 백성들을 일본에 팔아넘긴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사람들이었는데, 그들로 인해 노예로 떨어지는 피해를 입은 일반 백성들은 용감하게도 일본에 대한 무력항쟁을 시도했습니다. 즉 민간인들의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이 항일의병운동은 전국적 규모로 조직화된 것이 아니고 각 지방의 이곳저곳에서 빈약한 장비로 자발적으로 일어난 무력이었기 때문에 근대식 무기로 훈련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일본군을 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점차로 소탕되어 북쪽으로 몰리다가 두만강 압록강 건너로 넘어가 마침내는 만주지방에서의 조직적인 항일무장투쟁세력으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한편 국내에는 비군사적 수단으로 항일운동을 하던 세력도 있어서 1919년 거족적인 3.1운동으로 일제를 심히 당황하게 하기도 했으나, 그 후 그 지도자들 중에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친일로 전향한 분들도 있었으며 또 많은 분들이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로 망명하여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국제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정치적 혹은 외교적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도 하였습니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한반도는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미,소 양군의 분할점령으로 38선 이 생겨, 소련군이 들어온 이북에서는 그 동안 중국, 만주지방에서 항일무력투쟁을 하던 세력을 중심으로 통치집단이 형성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고 친일세력은 완전히 거세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남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어, 그 동안 미국, 중국, 혹은 국내에서 정치적 외교적으로 광복운동을 하던 세력뿐 아니라 친일세력까지 끼어들어 장차 미군정으로부터 정권을 인수받기 위해 서로 경쟁관계에 들어갔는데, 결국 미국의 후원을 얻은 이승만이 민족반역을 저지른 친일세력과 손잡고 대한민국정부를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결국 그 후의 남한의 정치혼란과 남북 간 갈등관계의 불씨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1948년 8월과 9월에 서울과 평양에 각각 수립된 남북의 두 분단정부가 불과 2년도 못되어 1950년 6월에 시작한 한국전쟁을 단순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의, 혹은 민주체제와 독재체제 사이의 충돌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보다 깊이 들여다보면 그 전쟁은 40년 전 일본의 노예로 떨어져서 온갖 고초를 겪은 이조말의 피지배층과 그 자손들이, 그들을 그렇게 일본에 팔아먹은 대가로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했을 뿐 아니라 지금은 미국에 기대어 또 다시 세도를 부려보려는 옛 지배층과 그 후예들을 응징하기 위해서 일어난 전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6.25전쟁 전후를 통해 기승을 부리던 이승만을 내쫓은 4.19혁명도 독재를 타도한 민주혁명인 동시에, 일본이 물러가자 미국에 빌붙어 계속 지배계급으로 행세하려던 구 친일지배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지난날의 피지배계급이 들고일어난 정의로운 봉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했으며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만족화해와 통일을 향한 그들의 간절한 소망은 곧 일본 왕에게 충성혈서를 쓴 얼 쪽발이 박정희와 그의 일당이 이끄는 친일군부세력의 5.16 반란으로 유린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32년간 광주 대학살의 원흉 전두환과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의 암흑기를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이 고문, 투옥, 학살 등의 희생을 치른 후에야 겨우 민주정치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친일에서 굴미로 변신한 이들의 뿌리는 아직도 완전히 뽑히지 않고 남아있어서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반공을 구실로 외세에 굴종하면서 동족간의 화해를 거부하는 반민족세력으로 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6.15 공동선언을 오늘의 모습으로 좌절시킨 사연입니다.


3. 외부적 요인 - 미국



이제 6.15 공동선언을 좌초시킨 외부적 요인을 살펴보겠습니다. 6.15 공동선언의 모태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었습니다. 햇볕정책은 사람은 찬바람이 불면 불수록 옷을 더 두텁게 끼어 입지만 바람이 멎고 따뜻한 햇볕이 쪼이면 옷을 벗게 된다는 이치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지양하고 제반 협력관계를 증진시킴으로써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의 길을 터보자는 논리에 그 기초를 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햇볕정책을 못 마땅히 여기는 세력들은 햇볕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고 도발을 계속했다며 햇볕정책 실패론 혹은 무용론을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대한 남한으로부터의 바람은 멎었다 하더라도 미국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결코 멎지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서울에서 불어오는 바람보다 워싱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훨씬 센 강풍이요 광풍이었습니다.

북한을 향해 미국에서 불어오는 광풍은 여러 가지 형태로 지난 62년 동안 집요하게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고 핵공격가능 대상국으로 지명하고 또 유엔을 위시한 모든 국제기구와 국제사회의 전반에 걸쳐서 정치적 외교적으로 철저히 고립시키고 있습니다. 또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돈도 꿀 수 없고 기술도 배울 수 없고 장사도 할 수 없도록 철저히 봉쇄하기 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경제와 민생은 벌써 오랫동안 매우 힘들고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향한 가장 매서운 미국발 광풍은 주한미군의 존재입니다. 미군은 6.25전쟁 3년 동안 연일 폭우처럼 쏟아 부은 폭격으로 250만 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북한 주민을 살해하고 북한 땅을 구석기시대와 같은 황폐한 상태가 되도록 파괴해 버렸습니다. 그 후 휴전은 됐다지만 미국은 평화협정체결을 거부하면서 그 군대를 여전히 남한 땅에 두고 그 총부리를 계속 북한의 심장부를 향해 겨누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한군대와 더불어 수시로 위협적인 전쟁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미국에서 불어오는 광풍이 여전한데 남한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잠시 멎었다 해서 북한이 당장 옷을 벗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12년 전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대화에서 주한미군 문제가 논의됐을 때 주한미군은 한반도의 장기적 안보를 위해서 통일 후에도 계속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김위원장을 설득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것은 김 대통령께서 매우 잘못하신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때 미군의 참전으로 남한이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출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전 참전목적이 꼭 남한의 공산화를 막는 데에만 극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미국은 대소, 대중견제를 포함한 전 세계전략의 견지에서, 북한 수뇌부의 남침계획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막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유도했으며, 남침이 시작되자 미리 짜놓은 계획에 따라 유엔결의를 얻어 한국전에 참전하고 북한 전역을 박살냈던 것입니다. 물론 중국의 개입으로 미국의 계획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한미방위조약으로 한반도에 주한미군이 무기한 주둔할 구실과 권리를 얻어냄으로써 소기의 목적은 실질적으로 달성되었던 것입니다.

미국은 동북아지역의 패권확립을 위해서 주한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원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어려운 재정형편 때문에 국방비를 대폭 감축한다면서도 미국은 남한을 포함한 아시아지역의 미군병력은 오히려 증강할 것이라 하며, 또한 최근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최소한 50%인상할 것을 한국정부에 요청했다는 것도 그런 맥락에 따른 것입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국이 통일돼서는 안 되며 남북 간에 항상 무력충돌가능성을 포함한 긴장상태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의 지도층 상호간의 적대의식의 증대와 이에 따른 긴장상태의 고조는 미국의 국가이익의 견지에서 안성맞춤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명박 정부를 두둔해주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은 또한 북한의 인권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으며 남한의 반북진영은 이에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9.11테러를 맞은 후 그에 관련된 용의자들을 국적을 불문하고 여러 나라에서 잡아들여 관타나모에 격리 수용하고 심한 고문을 가하며 취조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미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에게는 인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이런 일을 정당화하는 미국의 공식 입장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 인권문제를 크게 떠들어대는데 이것은 매우 모순된 일입니다. 한낱 비정부 테러조직으로 부터 미국이 받는 안보위협이 아무리 큰 들, 북한 같은 작은 나라가 미국 같은 세계최강국으로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끊임없이 받고 있는 안보위협 만큼 크겠습니까? 미국인들은 주한미군을 철수하기 전에는, 그리고 남한사람들은 주한미군을 내보내기 전에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시비할 자격이 없습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방관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남한이나 북한 인권상황을 시비하자면 먼저 대북위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최근 자기 동족인 북한과의 화해를 모색하는 일을 “종북”이라 규탄하는 남한의 “꼴통보수”들을 보면서 미국의 고위정책입안자들은 속으로는 골육상쟁을 일삼는 못난 놈들이라고 비웃으면서도 그러나 미국을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입니다. 6.15 공동성명이 좌절된 배후에는 미국의 이러한 고도로 전략적인 차원의 비협조와 훼방이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4. 맺는 말 - 미군은 내보내고 남북은 화해해야



이조 말 망국의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피지배계급을 일본의 노예로 넘겨주고 그 대가로 저들의 안전을 보존했을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친일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민족반역의 죄악을 범하고도 반성하기는커녕 해방 후 굴미사대-반민주세력으로 변신하여 아직도 남한에서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그 뒤를 잇겠다는 새누리당이 바로 그들의 집단입니다. 그들은 이제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군사훈련에 일본까지 끌어들이려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통일의 염원도 없거니와 있다 하더라도 결단코 통일한국의 지도세력의 일원으로 참가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한에는 목숨을 걸고 이승만 굴미독재와 박정희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민주화의 기틀을 바로잡고 남북의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세력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세력이 바로 그들입니다.

한편 이조의 망국으로 일본의 노예로 떨어졌던 피지배계급은 만주와 중국에서 항일무력투쟁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힘썼으며 해방 후에는 미국과 대결하여 한반도 북반의 독립과 자존을 수호했습니다. 그런 견지에서 이들은 남한의 민주통일세력과 더불어 장차 통일조국을 구성할 주도세력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조국광복과 반미투쟁의 과정에서 지도이념으로 선택하고 신봉하던 공산주의는 이미 한 나라나 민족의 행복과 번영을 담보해 주는 이념으로서 실격되고 말았음을 인정하고, 중국에서 그랬듯이 필요한 변혁의 과정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바라는 조국의 평화통일은 이렇게 남북의 자주통일세력 상호간의 공동노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주한미군을 내보내지 않고는 순조로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이제 열흘 후면 6.25전쟁 발발 62년이 되며 따라서 주한미군이 들어 온지도 62년이 됩니다. 그러나 미군은 아직 안 나가고 있습니다. 1953년 7월 27일의 휴전협정은 3개월 내에 정치회담을 열어 외국군 철수문제를 논의결정하기로 규정했는데, 미국은 3개월이 되기도 전인 10월1일 주한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위한 방위조약을 한국과 체결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제네바 정치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한반도는 휴전으로 전투만 멎었지 전쟁은 아직 안 끝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남북의 분단과 이로 인한 우리민족의 불행은 주한미군의 존재로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우리가 한목소리로 나가달라고 외쳐도 쉽게 안 나갈 터인데 하물며 남한의 굴미사대주의자들처럼 우리가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할 터이니 제발 나가지 말고 계속 있어달라는 사람들도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안 나가려는 강대국 미국의 군대를 내보낼 수 있을까요? 제 생각으로는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우리가 요구하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맞바꾸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며 가능성 있는 방법일 것입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본질적으로 주한미군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자구책을 강구하기 위한 것임으로,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와 북한 핵무기의 완전 폐기를 동시적으로 실행하자는 주장은 국제적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남북의 지도자가 서울이나 평양에서 다시 정상회담을 갖고 6.15 공동선언을 재확인함과 아울러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주한미군철수 문제를 6자회담의 테두리 안에서 일괄타결하자고 제안하고, 남북의 국민들이 이를 지지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이유가 없으며 그렇게 되면 미국과 일본만이 끝끝내 반대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남북의 분단이 이미 67년이 됐습니다. 이제 분단이전의 우리민족의 모습, 즉 남북이 하나였던 시절의 우리민족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이 줄었으며 그 수는 매년 더 줄어갈 것입니다. 남에나 북에나 남북이 하나였던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는데 통일의 염원이 더 달아오를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더 늦기 전에 통일을 향한 민족대행진에 시동이 걸려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명박 정권을 둘러싼 굴미반통일 진영이 부당하게 “종북세력”으로 몰고 있는 민주통일세력과 북한의 자주통일세력이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통일조국을 창출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갈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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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보도자료 보기



한국 정부가 자칭 <자유민주주의>라고 선전하면서도 알권리를 차단해 왔습니다. 남측 당국은 한국에 거주하는 독자들이 이 보도 자료들을 볼수 없도록 인터네트 열람을 봉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통신>은 한국 독자들이 twitter 와 facebook을 통하여 이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주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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