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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교전국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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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5-10-05 18:29 조회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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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교전국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한호석 정세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25-10-06

<차례>

1. 조선의 평화통일정책을 회고함

2. 2000년 이후 25년의 정치상황을 회고함

3. 한국의 중도우익정부를 적으로 규정한 조선

4.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은 성립될 수 없다

5. 조선의 새로운 국시와 새로운 국가정책

6. 조선이 주적관을 바꾼 이유

7. 교전국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1. 조선의 평화통일정책을 회고함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조선이 추진했던 평화통일정책의 목표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었고,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는 연방제 통일이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 당과 정부와 인민은 흘러온 력사의 장구한 기간 언제나 동족, 동포라는 관점에서 대범한 포용력과 꾸준한 인내력, 성의 있는 노력을 기울이며 대한민국것들과 조국통일의 대의를 허심탄회하게 론하기도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는데, 허심탄회하게 논한 조국통일의 대의는 자주적 평화통일과 연방제 통일방안을 의미한다.

지난 시기 조선이 채택한 연방제 통일방안에서 선결적인 문제는 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것이었다. 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어야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수 있다. 한국에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조선은 한국의 자주적 민주정부와 정치 협상을 통해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시 조선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는 것은 연방제 통일을 실현하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경로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려면,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려는 정치 강령을 가진 진보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은 중도좌파정당을 의미한다. 중도좌파성향의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한국의 종미우익정부가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이를테면, 1956년 11월 10일 서울에서 창당된 진보당은 이승만 종미우익정부의 악랄한 탄압을 받고 1958년 2월 25일에 강제 해산되었고, 1959년 7월 31일 진보당 당수 조봉암(1899~1959)은 서대문형무소 교수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태는 종미우익정부의 탄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진보정당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런 불행한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은 조선은 좀 더 현실적인 가능성을 찾아야 했다. 조선은 자주적 민주정부와 종미우익정부의 중간지대에 있는 중도우익정부가 수립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국에 중도우익정부가 수립되면, 조선은 한국의 중도우익정부를 정치 협상으로 견인해 연방제 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박정희 정권 같이 민족적 양심도 없고, 자신도 없는 정권으로는 절대로 통일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집권하면 진실한 통일을 즉각 단행하겠다”라는 공개 발언이 들려온 것이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1970년대 초반 박정희 종미우익정부의 탄압을 피해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던 김대중(1924~2009)이었다. 그는 1973년 3월 21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하꼬네(箱根町)에 모인 재일동포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남북 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교류를 적극적으로 실천해 서로가 가진 오해와 불신을 깨끗이 씻고 동포애와 신뢰를 회복해서 완전통일의 기초를 만들자”라고 역설했다. 김대중은 자신의 평화통일 구상을 3단계 통일론으로 체계화했다. 그런 김대중이 1998년 2월 25일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김대중의 집권은 중도우익정부에 대한 조선의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기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2000년 6월 15일 평양에 나타난 김대중은 1970년 초에 평화통일을 역설하던 김대중이 아니었다. 6.15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연방제 통일방안을 합의하기 위해 오랜 시간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했지만, 그는 끝내 거부했다. 6.15남북정상회담은 평화통일의 희망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되었지만, 조선은 김대중 중도우익정부가 조선의 체제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햇볕정책’에만 몰두하고 조국통일 의지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했다.

2. 2000년 이후 25년의 정치상황을 회고함

김대중 중도우익정부에 실망한 조선의 시야에 불현듯 희망의 작은 싹이 보였다. 2000년 1월 30일에 창당된 민주노동당이 차츰 당세를 확장하더니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당비례 득표율 13.03%를 획득하고 의석을 10석이나 차지한 것이다.

김대중 중도우익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가운데 조선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는 대신 전민족통일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였다. 정부,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참가한 전민족통일회의가 성사되면,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전민족통일회의가 성사되기 전에 우선 남북해외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참가하는 새로운 통일운동체가 결성되었다. 2005년 2월 4일 금강산에서 남북해외 정당 및 민간통일운동단체 대표자들이 모여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를 결성했고, 2005년 6월 15일 평양에서 남북해외 정당 및 민간통일운동단체 대표자들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민족통일대축전이 성대히 진행되었다. 이것은 전민족통일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적 준비사업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차츰 확대해 나가는 가운데, 남북해외 민간통일운동단체들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되자 조선은 한국 정부와의 정치 협상에 무관심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노무현 중도우익정부 말기에 가까스로 성사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조선은 노무현 중도우익정부에 기대를 걸지 않았고,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지 않았다.

전민족통일회의를 성사시키려는 조선의 전략적 준비사업도 한계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한국의 중도우익정부가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전민족통일회의에서 통일정부 수립 문제를 합의해야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데, 통일정부 수립의 책임자인 정부가 외면하고 민간통일운동단체들끼리만 추진하는 통일운동은 전민족통일회의를 성사시킬 수 없는 결정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2001년부터 매년 한 차례씩 진행되어온 민족통일축전은 2007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6.15민족통일대축전’을 끝으로 영구히 중단되었다.

거기에 더해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2013년 2월 25일에 출범한 박근혜 종미우익정부는 2013년 11월 5일 국무회의에서 민주노동당의 후신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기로 결정했고,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박근혜 종미우익정부가 통합진보당을 강제 해산한 것은, 견고한 우익 양당 체제가 고착된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13년 통합진보당 지지율은 2%, 2020년 민중당 지지율은 1%, 2025년 진보당 지지율은 1%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지율 1~2%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국의 진보정당이 지지율이 80%를 넘어선 우익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고 집권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의 정치 지형만 그런 게 아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을 총괄하면, 종미우익정당과 중도우익정당이 번갈아가면서 교차 집권을 반복하는 우익 양당 체계가 고착되었고, 중도좌파정당의 집권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3. 한국의 중도우익정부를 적으로 규정한 조선

진보 정당의 집권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의 대남 전략은 한 방향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조국통일대전’으로 한국의 종미우익정부를 무너뜨리면,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대남 전략이었다. 한국에서 자주적 민주정부가 수립되면, 조선은 자주적 민주정부와 정치 협상을 벌여 통일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것은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을 결합시킨 전략이었다. 조선은 이전에 사용한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개념 대신에 ‘조국통일대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무력통일과 평화통일의 결합을 강조했다.




조선은 ‘조국통일대전’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2014년 12월 말 김정은 총비서는 2015년을 ‘조국통일대전 준비 완성의 해’로 선포하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2015년 8월 4일부터 21일까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8월 위기사태’가 발생했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험이 조성되었다. 조선인민군은 ‘조국통일대전’을 수행하기 위한 전투준비태세에 돌입했다. 2020년 1월 19일 일본 ‘아사히신붕’ 보도에 의하면, 당시 점령군 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Vincent K. Brooks)는 2017년 가을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제국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2017년 1월 20일에 집권한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는 조선을 압박해 비핵화를 추진해보려고 무모하게 시도하다가 벽에 부딪히자, 방향을 바꿔 조선의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조미정상회담을 추진하였다. 그렇게 되어 2018년 6월 12일, 2019년 2월 27일, 2019년 6월 30일에 조미정상회담이 연속 성사되었다.

조미정상회담이 연속적으로 진행된 상황은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영영 재개되지 않을 것 같았던 남북정상회담 재개를 촉진시켰다.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재개되었다.

그런데 문재인 종미우익정부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문재인 종미우익정부는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보유국인 조선과 전쟁을 하려면 전쟁이 임박했을 때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면서 2017년 당시 국방부장관 송영무의 명령으로 ‘공세적 신작전계획’을 작성했고, 2017년 12월 1일에는 1,0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된 참수부대(제13특수임무여단)를 조직했다. 이처럼 문재인은 ‘공세적 신작전계획’에 따라 한국군 참수부대를 평양에 침투시켜 조선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북침전쟁을 2주 만에 끝내겠다는 전쟁 음모를 꾸미더니 2018년 9월 18일에는 평양에 나타나 시치미를 뚝 떼고 ‘평화’를 역설했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조선은 한국의 중도우익정부를 적으로 규정하였다. 그래서 2020년 6월 16일 조선은 문재인 종미우익정부가 235억 원의 예산을 지출해 개성공단에 세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버렸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중도우익정부가 출범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재명 중도우익정부가 이전 종미우익정부들과 마찬가지로 ‘흡수통일 야망’에 집착한다고 질타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5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흡수통일》 야망에 있어서는 (이재명 정부가) 오히려 반공화국정책을 국시로 정하였던 이전의 악질 《보수》정권들을 무색케 할 정도입니다. (이재명 정부는) 앞에서는 《남북관계를 기필코 복원》하기 위해 《인내심을 가지고 차곡차곡 신뢰의 탑을 쌓아나가겠다》고 떠들고 뒤에 돌아앉아서는 상대에 대한 핵선제타격을 노린 핵작전연습, 다령역 합동군사연습 같은 침략적인 전쟁시연을 확대 강화하며 대결의 장벽을 더 높이 쌓고 있습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5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근 80년에 이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치렬한 대결사와 현실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한국의 태생적 야망은 변한 적이 없고 또 절대로 변할 수도 없으며 적은 역시 적이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라고 언명하였다.

4. 통일정책과 통일운동은 성립될 수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에 즈음한 국방성 축하방문 연설에서 “우리는 동족이라는 수사적 표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화국 정권의 붕괴를 꾀하고 흡수통일을 꿈꾸는 한국 괴뢰들과의 형식상의 대화나 협력 따위에 힘써야 했던 비현실적인 질곡을 주동적으로 털어버리였”다고 말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5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우리는 한국과 마주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체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라고 단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적대국과 통일을 론한다는 것은 완전한 집착과 집념의 표현일 뿐이며 그렇게 고집한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와 한국이 어떻게 통일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숙적인 두 개 국가가 통일된 사례가 세계사에 있었습니까. 어느 하나가 없어지지 않으면 안 될 통일을 우리가 왜 하겠습니까.”

조선이 ‘남조선’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면,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들은 성립될 수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우리 공화국의 민족력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완전히 제거해버려야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조선이 ‘남조선’을 적대국으로 규정하면, 통일과 화해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대립과 분쟁만 남게 되고, 동족은 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적을 ‘괴뢰족속’이라고 불렀다.

지난 시기 통일 정책과 통일운동은 한 나라 안에서 상호 적대하는 동족이 두 개로 분열된 정치적 실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조선과 한국이 적대적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국가 관계에 있기 때문에 통일 정책이나 통일운동은 성립될 수 없다. 원래 통일은 한 나라 안에서 적대하는 동족들이 화해하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과업인데, 이제는 한 나라가 아니라 두 나라로 갈라섰고, 동족이 아니라 적으로 변했으므로 통일 정책도 성립될 수 없고 통일운동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5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우리는 정치, 국방을 외세에 맡긴 나라와 통일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미국화된 반신불수의 기형체, 식민지 속국이며 철저히 이질화된 타국입니다”라고 지적하였다.

5. 조선의 새로운 국시와 새로운 국가정책

한 나라 안에서 상호 적대하는 동족이 무력을 사용해 무력통일을 실현하는 경우도 있고, 화해와 협상으로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윁남에서 무력통일이 실현되었다. ‘윁남공화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국가 행세를 하던 쯔엉반민 종미우익정권이 1975년 4월 30일 내전에서 패해 항복을 선언했고, 윁남민주공화국과 남부윁남민족해방전선이 실현한 통일은 전형적인 무력통일이었다. 또한 중국에서 머지않아 무력통일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국가 행세를 하는 대만의 종미우익정권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무력통일을 실현하려고 한다.

그러나 조선은 다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0월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축하방문 연설에서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였다. 이 발언은 조선이 평화통일 정책만 폐기한 것이 아니라 무력통일 정책도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 총비서가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을 적대국으로 규정한 이후, 조선에서 무력통일정책이 폐기되고 새로운 정책이 수립된 것이다.

조선의 새로운 정책은 무엇인가? 조선은 새로운 정책의 명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는데,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새로운 정책의 기조에 대해 언급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그날 시정연설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조선 헌법에)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선이 수립한 새로운 정책의 기조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령역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점령, 평정, 수복, 편입을 통칭하여 정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정벌은 외부의 적과 싸워 적을 없앤다는 뜻이다. 무력통일과 정벌은 전쟁의 양상이 동일하지만, 전쟁의 성격은 다르다. 무력통일은 무력으로 통일하기 위해 동족과 싸우는 전쟁이고, 정벌은 주권과 안전을 침해한 외적과 싸우는 전쟁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헌법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조선의 새로운 정책은 “제1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규정된 한국을 무력으로 점령하고, 평정하고, 수복한 다음, 점령지를 조선 영토로 편입하려는 정책인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에 즈음한 국방성 축하방문 연설에서 “얼마 전 우리 당과 정부가 우리 민족의 분단사와 대결사를 총화짓고 한국 괴뢰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앞길이라는 뜻-옮긴이)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유사시 그것들의 령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국시는 국가정책의 기본방침을 뜻한다. 국시가 결정되면, 국가 정책이 수립된다. 한국을 정벌하고 편입시키는 국시를 채택한 조선은 그런 국시에 기초하여 새로운 국가 정책을 수립했다. 정벌과 편입은 국가병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조선의 새로운 국가 정책을 병합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어느 한 국가가 무력을 사용해 다른 국가를 강제로 병합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한 국가가 국가와 군대를 스스로 해체하고, 다른 국가에 자진해서 병합되는 경우도 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어느 한 국가가 무력을 사용해 다른 국가를 강제로 병합한 사례는 많지만, 어느 한 국가가 스스로를 해체하고 다른 국가에 자진해서 병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자진 병합의 희귀한 사례는 오스트리아와 도이췰란드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38년 3월 12일 나찌 군대는 오스트리아 인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국경을 넘어 오스트리아 수도 뷘(Wien)으로 행군했고, 오스트리아는 도이췰란드에 자진해서 병합되는 문제를 놓고 찬반의사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국민투표에서 자진 병합을 지지하는 표가 97%나 나오는 바람에 나찌 도이췰란드에 편입되었다. 또한 도이췰란드에서도 자진 병합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1990년 10월 3일 도이췰란드민주공화국이 국가와 군대를 자진 해체하고, 도이췰란드연방공화국에 편입된 것도 자진 병합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국가와 군대를 스스로 해체하고 조선에 자진 병합될 가능성은 0%이므로, 조선은 무력으로 한국을 점령, 평정하고 편입시키는 병합 정책을 수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이 새로운 병합 정책을 수립하면, 무력통일 정책에 제시된 ‘조국통일대전’이나 ‘남조선해방전쟁’이라는 개념은 모두 폐기되고, 한국을 점령, 평정하는 병합전쟁이라는 개념만 성립된다.

6. 조선이 주적관을 바꾼 이유

지난 시기 조선의 주적은 미제국이었다. 조선인민군은 “조선인민의 철천지 원쑤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는 전투구호를 들었다.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을 ‘미제침략군 밑에 있는 괴뢰군’이라고 비하하면서 우습게 본다. 한국군 특전사령관 출신 예비역 장성은 2025년 9월 27일 ‘연합뉴스’와 대담하면서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을 우습게 보는 다섯 가지 이유를 거론했다.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을 우습게 본다는 말은 한국군을 주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는 한국을 제1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중대한 정책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2월 8일 조선인민군 창건 76주년에 즈음한 국방성 축하방문 연설에서 그런 정책 전환은 “주권사수의지에 있어서나 군사기술력에 있어서 만반으로 준비된 우리 군대가 있었기에 내릴 수 있었던 중대 결단”이라고 밝혔다.

조선의 주적이 미제국에서 한국으로 바꾸면, 조선인민군의 군사전략과 작전계획도 그에 맞게 수정, 보충된다. 조선인민군의 주적이 미제국군에서 한국군으로 바뀌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의 공격은 한국군에 집중될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공격이 한국군에 집중된다고 해서, 미제국군을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선인민군은 주공 방향을 한국군에 집중시키면서 미제국군도 공격할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조선의 주적을 미제국에서 한국으로 전환시킨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미제국의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이 변경된 것에 대응하여 조선도 자기의 군사전략과 작전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미제국의 주적은 중국이다. 조선과 로씨야는 미제국의 적이지만, 주적은 아니다. 2022년 10월 25일 당시 미제국 국방부 대변인 패트릭 라이더(Patrick S. Ryder)는 국방부 출입기자단 앞에서 조선, 로씨야, 중국에서 동시에 위협이 발생할 경우 미제국은 “국가안보전략과 국방전략문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중국의 도전에 힘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미제국의 주적관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미제국이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함에 따라 미제국의 군사전략과 작전계획도 바뀌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미제국군의 주공 방향은 중국인민해방군에 집중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중국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전진 배치된 주한미제국군도 당연히 중국인민해방군을 공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중국인민해방군은 미제국군의 공격 징후가 나타나면, 중국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적부터 선제공격으로 제압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평택, 오산, 의정부, 전라북도 군산, 경상북도 대구에 있는 주한미제국군 공군기지들과 항공기지들이 중국인민해방군의 선제타격 목록에 올라있다. 2024년 3월 초 중국인민해방군 소속 훙(轟)-6K 신형 전략폭격기 16대가 주한미제국군 기지들의 좌표 위치를 서해상에 그대로 옮겨놓고 전술핵 폭격훈련을 진행한 것은, 중국인민해방군이 주한미제국군 공군기지들과 항공기지들을 선제타격 대상으로 정해놓았음을 보여준다. 훙-6K 신형 전략폭격기는 중국에서 ‘전쟁의 신(戰神)’이라고 부르는 가장 강력한 전략무기 체계다. 전시에 훙-6K 신형 전략폭격기들은 사거리가 길고, 비행 속도가 빠르며, 타격 정밀도가 높고, 미사일 방어망을 뚫고 들어가는 창젠(長劍)-10 순항미사일과 징레이(惊雷)-1 탄도미사일에 전술핵탄두를 장착해 공중에서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선제공격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제국군은 그런 미사일들을 막아낼 방어수단을 갖지 못했다. 이런 사정은 주한미제국군 군사기지들이 초토화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이런 전시 상황이 펼쳐지면, 조선인민군은 중국인민해방군의 선제타격으로 초토화된 주한미제국군 군사기지들을 또다시 타격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주공 방향이 한국군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7. 교전국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다

조선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시킨 이후,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가 항구적으로 고착되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남북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된 것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가 항구적으로 고착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는 항구적으로 고착될 수 없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북남관계가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완전한 두 교전국 관계라는 현실은 외세의 특등주구집단인 대한민국이 극악하고도 자멸적인 대결망동으로 써놓은 북과 남의 명백한 현 주소이며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면사포를 벗겨놓은 조선반도의 실상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위의 인용문에 나오는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는 개념에 고정되었지만, 정작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라는 개념이다. 교전국 관계라는 개념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금 조선인민군과 한국군은 교전 상태에 있지 않은데도, 김정은 총비서는 조한관계를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였다. 조한관계를 교전국 관계로 규정한 이유는, 조한관계가 어느 시각이라도 교전이 벌어질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5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외세와 야합한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반공화국 군사적 망동으로 하여 조선반도는 이제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항시적인 전쟁위험지역으로 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므로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관계라는 개념을 적대적인 두 국가 사이에서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2024년 5월 28일 국방과학원 축하방문 연설에서 “현재 우리 군대는 조선반도 유사시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저어하게 만들 수 있는 현실적인 군사력을 보유하였으며, 작전 초기에 한국 괴뢰군대의 기본 공격력과 하부구조, 지휘체계를 붕괴시킬 수 있는 압도적인 력량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이 발언에서 조선의 병합전쟁이 미제국의 무력개입을 억제함으로써 속전속결로 끝날 것임을 암시하였다. 미제국이 막아낼 수 없는 조선의 극초음속 미사일들이 서태평양에 주둔하는 미제국군을 조준하고, 미제국이 막아낼 수 없는 개별유도식 다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들이 미제국 본토의 전략거점들을 조준하는 조선의 강력한 핵억제력은, 조선의 병합전쟁이 미제국의 무력개입을 억제하고 속전속결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예고해준다. 세계 전쟁사를 보면 전쟁이 장기화된 사례가 많지만, 조선의 병합전쟁은 예외다. 병합전쟁은 72시간 만에 끝나는 전쟁이다. 교전국 관계가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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