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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칼럼] 윤석열의 친일 매국과 미국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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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3-03-14 10:35 조회1,6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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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칼럼] 윤석열의 친일 매국과 미국 방문

[민족통신 편집실]


이재봉(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명예교수)



윤석열의 2023년 4월 미국 방문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박정희의 1965년 5월 미국 방문이다. 둘의 미국 국빈방문은 미국의 요구와 압력에 따른 굴욕적 친일외교에 대한 선물이다. 거의 60년 시차를 두고 어찌 그리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는지 기막히다.

윤 정권이 지난 2월 공개한 국방백서에 일본을 ‘가까운 이웃 국가’로 명시했다. 윤석열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이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파트너’로 변했다며 일본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3월 6일엔 일제 때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전범기업들이 배상하는 대신 한국 기업들이 위자료를 지급하는 해결방안을 발표했다. 다음날 윤석열의 4월 미국 국빈방문 일정이 보도됐다.


이를 전후해 세종시의 한 목사가 3.1절에 일장기를 아파트에 내걸고, 윤석열과 40년 지기라는 석동현 민주평통 사무처장은 “식민지배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고 강변하며, 김영환 충북지사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련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는 뉴스 등이 겹쳐졌다. 60여년 전 박정희 정권 때 생긴 일과 비슷하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미국은 1945년 소련과 연합해 일본을 폭격했다. 1947년부터 소련과 냉전을 시작하며, 1949년 유럽과 나토를 만들고, 1951년 일본과 안보조약을 맺었다. 친구가 적이 되고, 적이 친구가 된 것이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미일동맹에 한국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일협상을 중재하기 시작했다. 조선이 일본의 35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지 겨우 6년 지났을 때고, 한국전쟁 중이었다. 이승만이 거부했다. 미국이 1953년 이승만의 휴전협상 거부를 빌미로 그를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1960년 4월혁명 과정에서 물러나도록 압력을 가한 데는 한일협상도 거부하는 그의 반일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비밀 해제된 1960년대 미국 외교문서에 따르면, 1961년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미국은 1962년 한일협정을 “미국정부의 최고 관심사 가운데 하나”로 설정하고 한국과 일본을 거세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존슨 대통령이 두 나라 대사들을 부르기도 하고, 러스크 국무부장관이 일본 총리와 한국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다그쳤다.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앞장섰다. 박정희의 처조카이자 쿠데타 동지로, 미국 CIA를 본 따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한국정치를 쥐락펴락하던 사람이다. 1962년 일본에 건너가 외무상과 수상을 만나며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한일협정에 장애가 된다면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다. 한국 중앙정보부장의 독도 폭파 제안은 일본 외무상이 거절하고 미국 국무부장관이 지지했다. 1963년 일본과의 비밀협상이 알려지며 국내에서 반대운동이 시작되자, 그는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망언을 뱉었다.

1964년 일본과의 굴욕외교에 대한 야당과 대학생들의 반대시위가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서울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포고령을 발동해, 집회와 시위 금지, 언론과 출판의 사전검열, 대학의 무기 휴교, 영장 없는 압수.수색.체포, 계엄군법회의 설치 등의 조치를 내렸다. 시위는 군대에 진압당하고, 야당인사와 학생 수백 명이 구속됐다. 이른바 ‘6.3사태’다.

정권의 정통성 확보 및 유지를 위해 국민의 지지보다 미국의 승인과 지원을 더 중시했던 박정희는 1964년 9월부터 미국 방문을 추진했다. 미국은 이를 이용해 그를 압박했다. 방미 이전에 한일협정을 체결하라는 것이었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와 압력에 따라 박정희는 일본 정부에 합의문 작성을 서둘러줄 것을 촉구했다. 일본은 서두를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미국의 압력이 일본에서는 역효과를 낼 수 있으니, 한일협상을 “일본인들의 방식으로 일본인들의 페이스에 따라” 추진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미국에 반발하기도 했다. 일본은 늑장부리는데 한국은 박정희의 미국 국빈방문을 위해 서두르느라 한일협상을 굴욕과 졸속으로 매듭지었다. 독도 영유권, 위안부와 징용, 문화재 반환 같은 문제를 합의하지 못한 채, 일본은 ‘경제협력’ 또는 ‘독립축하’ 명목으로 3억 달러를 건네고 한국은 ‘피해보상’ 명목으로 그 돈을 받은 배경이다.

박정희는 1965년 5월 미국을 방문해 한일관계의 걸림돌인 독도를 폭파해 없앨 수 있다고 거듭 밝혔다. 미국의 환심을 얻기 위한 역사적 망언이었다. 존슨의 베트남 파병 부탁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선물로 쿠데타와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승인을 얻었다. 한미일 공조를 위해 일본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수교하라는 미국의 압력에 따른 굴욕외교의 대가였다.

윤석열의 2023년 4월 미국 방문엔 어떤 대가가 치러질까. 외교에서 공짜선물은 없다. 환대받는 국빈방문의 반대급부는 막대한 국익손실이다. 미국이 요구하는 건 급성장해온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기 위해, 일본과 군사협력을 증진해 한미일 군사공조를 강화하며 나토에도 동참하라는 것이다. 북한과의 종전 거부도 포함된다.

남한이 일본과 군사협력 증진하고 한미일 군사공조 강화하면 중국을 적으로 삼게 돼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나토에 힘 보태면 러시아까지 적으로 만들며 경제손실이 가중될 것이다. 아울러 동북아 신냉전을 심화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종전을 반대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멀어지고 북한의 대응은 격렬해지며 안보위기는 더 고조된다. 전쟁을 끝내며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멈추도록 이끌어야지, 종전을 반대하고 평화협정을 거부하며 북한에 ‘도발’하지 말라는 건 설득력이 전혀 없다.

미국과 일본에게 중국은 경쟁국이고 북한은 적대국이지만, 남한에게 중국은 제1 무역상대국이고 북한은 평화와 통일의 상대다. 35년간 식민통치했던 일본에 양보하고 매국해 받을 것은 중국과의 갈등과 안보위기요, 3년간 싸웠던 북한에 양보하며 협력해 얻을 수 있는 건 안정과 평화와 통일이다.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력, 세계 6위 정도의 군사력, 세계 최상위 수준의 기술력과 문화력을 지닌 남한이 언제까지 미국에 종속되고 일본에 굴복하며 중국과 북한을 적으로 삼아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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