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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69년 뒤에 다시 읽는 7.27 명령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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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산 기자 작성일22-07-31 16:55 조회40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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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69년 뒤에 다시 읽는 7.27 명령서


한호석(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69년 뒤에 다시 읽는 7.27 명령서

2. 그들은 중과부적의 험로를 헤치며 싸웠다

3. 목숨을 잃었지만,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것 얻었다

4. 그들은 69년 만에 다가오는 결정적 시기에 대비한다

1. 69년 뒤에 다시 읽는 7.27 명령서

북에서 7월 27일은 정전일이 아니라 전승절이다. 전승절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승리를 기념하고 경축하는 국가적 명절이다. 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일부터 전쟁승리를 경축하기 시작하여 올해 69번째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전례 없이 성대하게 진행된 올해 전승절 행사의 공식명칭은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였다.

돌이켜보면,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된 정전협정에 의해 그어진 군사분계선이 전쟁 이전에 존재했던 38선과 유사하게 남과 북을 갈라놓았으므로, 정전은 무승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북은 정전이 무승부가 아니라, 북의 승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해마다 평양에서 성대한 전승절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전쟁승리에 대한 북의 확신이 정전 이후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1953년 7월 27일 정전 당일에 국가적 차원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그날 김일성 수상(당시 직책)은 북의 전쟁승리를 내외에 선포한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축하한다’라는 제목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제470호를 하달하였다.

김일성 수상은 7.27 명령서에서 정전이 무승부가 아니라 북의 전쟁승리라는 사실을 명백히 천명하였다. 7.27 명령서에는 “미제무력침략자들과 그 주구 리승만괴뢰도당을 반대하는 조선인민의 정의의 조국해방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정전협정이 조인된 이 사실은 미제무력침략자들과 그 주구 리승만괴뢰도당의 군사적 및 정치도덕적 패배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었고, 북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늘 21시 우리 조국의 민주수도 평양에서 124문의 포로써 일제사격으로 각각 24발의 축포를 쏠 것”이라는 명령이 적시되었다.

7.27 명령서에서 김일성 수상이 정전은 무승부가 아니라 북의 승리라고 천명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7.27 명령서에 의하면,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전쟁은 미국의 북침전쟁이었다. 북의 남침설을 믿는 사람은 그 전쟁을 미국의 북침전쟁으로 보는 북의 인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역사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1948년 9월 1일 경기도 개성 인근에 있는 려현에서 소규모로 시작된 38선 무력충돌은 1949년에 더욱 증대되다가 급기야 1950년 6월 25일 내전양상으로 확대, 격화되었다. 미국은 북침전쟁계획을 미리 세워놓고 남측 국방군(당시 명칭)을 대북공격에 동원하여 38선 무력충돌을 계속 격화시키면서 북침기회를 노리다가 38선 무력충돌이 내전양상으로 확대, 격화되자 지체 없이 북침전쟁을 도발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1950년 6월 26일 오전 11시 공군 전투기 9대를 동원하여 개성을 공습하면서 북침전쟁을 도발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2022년 7월 21일 나의 페이스북 계정에 실린 ‘역사와 현실이 말해주는 피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논증한 바 있다.

돌이켜보면, 북침전쟁계획을 수립한 장본인도 미국이었고, 그 계획에 따라 북침전쟁을 도발하고 지휘한 장본인도 미국이었고, 북침전쟁을 위한 무장장비와 전시물자를 공급한 장본인도 미국이었고, 마지막에 가서 정전협정을 체결한 장본인도 미국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계획하고, 전쟁을 도발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정전에 참가한 장본인이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그 전쟁이 미국의 북침전쟁이었으며, 한국군은 미국의 북침전쟁에 조력자로 동원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2) 7.27 명령서에 의하면, 미국이 북침전쟁을 도발한 목적은 다음과 같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인민에게 일제식민지노예의 멍에 대신에 자기들의 노예의 멍에를 들씌우고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며 나아가서 중국과 쏘련을 반대하는 전쟁의 근거지로 만들려고 하였지만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이 인용문에 의하면, 미국이 추구한 두 가지 전쟁목적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것과 “중국과 쏘련을 반대하는 전쟁의 근거지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조선은 북조선이 아니라 남북조선을 의미한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1950년 당시 미국이 도발한 북침전쟁의 목적은 북조선을 점령하여 조선혁명을 좌절시키고, 곧바로 만주(동북3성)를 침공하여 중국혁명을 좌절시키고, 그로써 소련의 동아시아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1950년 당시 미국의 북침개념은 북조선 점령과 만주 침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나는 2022년 7월 28일 나의 페이스북 계정에 실린 ‘미국의 두 가지 야욕을 좌절시킨 정전협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당시 미국의 북침전쟁목적이 북조선 점령과 만주 침공이었다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당시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1884~1972)이 한반도 분할점령과 만주 지배를 건의한 ‘웨드마이어 보고서(Wedemeyer Report)’에 기초하여 새로운 중국정책을 수립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당시 미국 원동군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가 북조선을 점령하고 만주를 침공하는 북침전쟁계획을 실행에 옮기려고 했다는 사실도 지적했으며, 트루먼의 후임자인 드와잇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1890~1969)가 부산 공군기지(1950년 당시 부산에 공군기지가 있었음)에 은밀히 반입해놓은 핵폭탄을 투하할 핵공격대상지역으로 중국 만주와 소련 연해주를 지목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그러나 1950년 북침전쟁에 참전한 미국군 장병들은 자기들이 왜 다른 나라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원래 제국주의자들은 침략전쟁의 목적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하고 숨기기 때문에 1950년 북침전쟁에 끌려나온 미국군 장병들은 전쟁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1950년 12월 23일 경기도 양주군 덕정에서 군용차를 타고 가다가 조선인민군 공병부대가 설치한 도로매설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현장에서 폭사한 월튼 워커(Walton H. Walker, 1889~1950)의 뒤를 이어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릿지웨이(Matthew B. Ridgway, 1895~1993)는 자신의 부임소감을 피력하면서 “우리가 똥냄새 풍기는 이 나라를 왜 지켜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떠들어댔다. 미국군 야전사령관마저 전쟁목적을 알지 못했으니, 그 휘하의 장병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처럼 참담한 전황에 처한 미국은 전의를 차츰 잃어갔고, 급기야 1951년 7월 1일 정전협상을 제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전의박약증에 걸린 까닭은, 외신보도를 인용한 <부산일보> 191년 5월 8일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1951년 4월 27일을 기준으로 미국군 사상자가 62,799명으로 폭증하면서 패전의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외신보도를 인용한 <민주신보> 1951년 7월 1일 보도에 의하면, 당시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참전동맹국인 영국의 수상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R. Attlee, 1883~1967)를 워싱턴으로 불러 정전문제를 협의했고, 1951년 6월 29일 야전사령관 매튜 릿지웨이에게 “정전교섭을 지령하였다”고 한다. 트루먼으로부터 정전교섭지령을 받은 릿지웨이는 1951년 6월 30일 라디오방송을 통해 북에 정전교섭을 제의했다.

1951년 7월 12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1951년 7월 10일 오전 11시 조선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은 조선인민군이 포위한 개성에서 1시간 30분 동안 제1차 정전회담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정전회담은 2년 동안 협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문에 조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1953년 7월 24일 야전사령관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가 미국군 합참본부에 보낸 정전협정 조인절차 및 방침에 관한 보고서에 의하면, 정전협정 조인식에는 양측에서 공식참관인을 100명씩 참석시킬 수 있고, 취재기자를 포함하여 양측에서 700명까지 참석시킬 수 있지만, “한국 대표들은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측 대표와 미국측 대표는 판문점에 임시로 건설된 목조건물에서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7분 정전협정문에 조인했다.

1953년 7월 29일 <동아일보> 보도에 의하면, 서부전선에 주둔하는 미국군 해병사단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7월 27일 밤 10시 후방으로 철수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단의 참모장교는 미국군 해병대가 자기 진지를 스스로 파괴하고 후방으로 철수하는 것은 오직 전진만을 알고 있었던 미국군 해병대의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전쟁 3년 동안 미국은 부산 공군기지에 핵폭탄을 반입했고, 1조212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전쟁비용을 지출했으며, 연인원 297만명 병력과 방대한 무장장비를 전선으로 들이밀었다. 윁남전쟁에서 하루 평균 전사자는 11명이었는데, 1950년 북침전쟁에서 하루 평균 전사자는 30명에 이를 정도로 상상을 초월한 격전이 벌어졌다. 북침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전쟁 초기 작전통제권을 장악, 행사했던 원동군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1951년 5월 3일 연방의회 청문회에서 “이처럼 잔혹한 전쟁은 내게 처음이다. 수많은 시체를 보았을 때, 나는 그만 토하고 말았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맥아더가 “미국이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참담한 손실을 입었다”고 탄식한 것처럼, 실제로 미국은 사망 54,246명, 부상 128,650명, 실종 7,564명, 포로 7,190명을 기록한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고 패했다. 2022년 7월 27일 미국 워싱턴에 건립된 ‘추모의 벽’에는 1950년 북침전쟁 전사자 43,808명의 이름이 새겨졌는데, 그것은 실전 중에 전사한 전투원들의 이름만 새긴 것이다. 비전투원 미국인 사망자, 사고로 죽은 미국인, 전투 중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가 정전 직후 죽은 미국인을 포함하여 사망자 10,438명을 합산하면, 사망자 총수는 54,246명으로 늘어난다.

북침전쟁의 마지막 야전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정전협정을 체결한 마크 클라크는 “미국 역사에 승리 없는 전쟁이라는 말은 없다. 그러나 미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승리 없는 정전에 조인했다”고 실토했다.

미국은 북조선 점령과 만주 침공을 목표로 내걸고 침략전쟁을 도발했으나, 결국 3년 만에 패배의 쓴잔을 들이키고 뒤로 물러섰다. 북조선을 점령하고 만주를 침공하려던 미국의 제국주의적 야욕은 정전으로 파탄되었다. 그러므로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정전은 무승부가 아니라 “미제의 침략전쟁으로부터 조국을 수호하고 미제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파탄시킨 위대한 승리”로 보일 것이다.

2. 그들은 중과부적의 험로를 헤치며 싸웠다

7.27 명령서에 의하면, 전쟁 3년 동안 “조선인민군 장병들은 불굴의 견인성을 발휘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함으로써 미제국주의자들의 <기술만능>과 <불패성>에 대한 신화를 산산이 깨뜨려버렸으며 그들로 하여금 정전협정에 조인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것은, 조선인민군의 영웅적 투쟁이 전쟁을 승리에로 이끌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조선인민군이 영웅적으로 투쟁하지 못하고 그냥 평범하게 투쟁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1950년 6월 당시 정규군으로 편제된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던 조선인민군은 병력수와 무장장비에서 미국군에 대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약소했다. 1950년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총병력은 93,498명밖에 되지 않았고, 미국군 총병력은 1,459,462명이나 되었다. 전쟁 3년 동안 조선인민군은 극도로 불리한 중과부적의 험로를 헤치며 싸워야 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이 자기보다 무려 16배나 많은 150만 대군에 맞서 피의 결사전을 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0년 당시 쌍방의 군사력을 구체적으로 대비해보자.

1950년 당시 조선인민군 육군 병력은 12,200명밖에 되지 않았고, 미국 육군 병력은 630,000명이나 되었다. 미국 육군은 1950년 북침전쟁을 도발한 이후 6개월 동안 총 1,326대의 전차를 한반도 전선에 들이밀었는데, 조선인민군 육군이 보유한 땅크는 40대밖에 되지 않았다. (남측 언론매체들은 전쟁 초기 조선인민군이 땅크 242대를 보유했다고 보도했지만, 그것은 오보다.) 조선인민군 육군은 자기보다 33배나 많은 땅크를 앞세우고 덤벼든 엄청난 강적에 맞서 목숨을 건 혈전을 벌여야 했다.

1950년 당시 미국 해군은 항공모함 31척과 전투함선 약 1,200척을 보유했고, 잠수함 32척을 한반도 전선에 출동시켰다. 그에 비해, 조선인민군 해군은 항공모함이나 잠수함을 생각하지 못했고, 소형 어뢰정과 소형 경비정 30척밖에 보유하지 못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해군이 자기의 약소한 무장력으로는 싸울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초강적에 맞서 목숨을 건 결사전을 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1950년 당시 미국 공군은 전투기 6종, 폭격기 2종, 정찰기 8종, 수송기 5종, 훈련기 1종을 실전에 배치했다. 원동군총사령관 맥아더 휘하에 있는 각종 작전기만 해도 1,172대나 되었다. 그에 비해 당시 조선인민군 공군이 보유한 작전기는 136대밖에 되지 않았다. 전쟁 3년 동안 미국 공군은 38선 이남 각지에 공군기지 57개소를 건설해놓고, 3년에 걸쳐 각종 작전기들을 1,040,708회나 출격시킨 대규모 폭격과 공습으로 남과 북의 동포 282,000여 명을 무참히 살육했다. 이것은 조선인민군 공군이 자기의 약소한 무장력으로는 싸울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초강적에 맞서 목숨을 건 결사전을 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전쟁 당시 병력수와 무장장비를 비교하면 조선인민군은 너무 약해서 150만 대군을 상대조차 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조선인민군이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예상한 서방의 군사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기적’이 일어났다. 조선인민군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전쟁에서 93,000명의 소군이 150만명의 대군을 꺾고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조선인민군의 기적적인 승리는, 소군이 대군을 이길 수 없다는 세계전쟁사의 오랜 공식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조선인민군이 말 그대로 영웅적으로 투쟁하여 미국군을 이겼다는 해명 이외에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주목되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이 전혀 알지 못했던 무서운 저력, 다시 말해서 미국군 전쟁지휘부의 저급한 두뇌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엄청난 저력이 조선인민군에게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을 기적적인 승리로 이끌어준 영웅적 투쟁은 바로 그런 저력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들 속에 내재된 엄청난 저력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보자.

전선에서 포성이 울리기 시작한지 하루가 지난 1950년 6월 26일 기관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는 적진 화구에 몸을 던져 돌격로를 열어놓고 전사한 첫 전시영웅은 조선인민군 장태화 전투원이었다. 전선에서 포성이 멎기 열흘 앞둔 1953년 7월 17일 기관총이 미친 듯이 불을 뿜는 적진 화구에 몸을 던져 돌격로를 열어놓고 전사한 마지막 전시영웅은 조선인민군 김병모 전투원이었다. 전쟁 3년 동안 북에서는 공화국영웅과 로력영웅 617명이 배출되었다. 그 중에서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적진 화구에 몸을 던져 돌격로를 열어놓고 전사한 육탄영웅과 수류탄 묶음을 가슴에 품고 다가오는 적 땅크에 돌진하여 자폭한 육탄영웅은 모두 38명이다. 전쟁 3년 동안 특출한 전공을 세워 훈장과 표창을 받은 전시수훈자는 81만여 명이고, 특출한 전공을 세워 근위칭호를 수여받은 전투부대는 18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조선인민군이 전쟁 3년 동안 평범한 투쟁이 아니라 영웅적인 투쟁을 벌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3. 목숨을 잃었지만,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것 얻었다

전쟁 3년 동안 조선인민군이 발휘한 무비의 용감성과 영웅적 투쟁정신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격전으로 불타던 1211고지 가칠봉 앞 무명고지에서 최후의 순간을 앞둔 어느 인민군 소대장이 나무줄기에 새긴 글발이 그 물음에 답을 준다.

조국의 산과 들이여!

어머니의 땅, 사랑하는 곳이여!

내 붉은 피로써

이 진지를 지키노라

포연탄우에 찢겨나간 고지에 말없이 서 있는 나무에 새긴 이 글발은 그들이 어머니의 땅을 붉은 피로 지켜 싸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이 피로 지킨 어머니의 땅은 머릿속에 시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생활 속에 실체로 존재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땅이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그들이 어머니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46년 3월 5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김일성 위원장은 ‘토지개혁에 관한 법령’을 선포했다. 지주, 친일파민족반역자, 월남도주자들이 5정보 이상 소유했던 토지 1,066,246정보를 무상으로 몰수하여 착취와 빈궁 속에서 신음하는 소작농, 화전민, 빈농, 무토지농민들에게 무상으로 골고루 나눠주었다. 역사자료에 의하면, 당시 토지개혁으로 자기 땅을 몰수당한 가구는 405,603호였고, 자기 땅을 분배받은 가구는 724,522호였다. 토지개혁으로 분배한 땅은 당시 북조선 총경지면적의 52%에 해당되었다. 북조선에서 지주계급이 소유했던 토지의 80% 이상이 소작농, 화전민, 빈농에게 주어졌다.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혁명적 원칙에 의거한 토지개혁에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해 북조선 전역에 농촌위원회 12,001개가 조직되었고, 거기에 선진적인 농민 90,697명이 망라되었다. 바로 이 농민들이 토지개혁의 선봉대로 나섰고, 각계각층 군중 약 300만명이 토지개혁에 동참했다. 그로써 수백년 동안 농민을 착취해오던 지주계급은 완전히 사멸되었다. 한 뼘의 땅도 갖지 못해 지주에게 짓눌려 살면서 착취와 빈궁에 시달렸던 무토지 농민 44만가구가 땅을 받았다. 그들이 분배받은 토지는 경작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땅이었다.

위에 인용한 마지막 시의 구절처럼, 전쟁 3년 동안 조선인민군 병사들이 붉은 피로 지켰던 땅은 자기들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 어머니의 따스한 품이었다. 전쟁 3년 동안 무비의 용감성과 영웅적 투쟁정신을 발휘하여 싸운 조선인민군 병사들은 토지개혁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이전에 소작농, 화전민, 빈농 출신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자기 목숨과 바꾼 것은 어머니의 땅이었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조선인민군이 기적적으로 승리한 전승의 배경에 토지개혁의 승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토지개혁의 승리와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들의 전쟁은 어머니의 땅을 목숨 바쳐 지킨 결사전이었다.

북은 전쟁 3년 동안 수많은 목숨을 잃었지만, 목숨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을 얻었다. 전쟁 3년 동안 전선과 후방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싸운 치렬한 투쟁 속에서 일심단결의 기초가 축성된 것이다. 북의 표현을 빌리면, 수령과 당과 인민을 운명공동체로 결합시킨 일심단결의 기초는 북이 3년간의 전쟁에서 얻은,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 전쟁의 불길 속에서 축성된 일심단결의 기초 위에서 북은 전후 69년 동안 미국의 끊임없는 핵위협과 집요한 고립압살책동에 맞서 싸우며 더 큰 승리를 이룩할 수 있었다.

4. 그들은 69년 만에 다가오는 결정적 시기에 대비한다

124문의 포가 평양 하늘에 전승의 축포를 쏘아올렸던 그날로부터 어언 69년이 흘렀다. 2022년 7월 27일 평양의 밤하늘 아래서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김정은 총비서가 ‘조국해방전쟁 참전자들은 우리 공화국의 가장 영웅적인 세대이다’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연설에서 “더 이상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이 부리는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남조선<정권>과 군부깡패들이 군사적으로 우리와 맞서볼 궁리를 하고 그 어떤 특정한 군사적 수단과 방법에 의거하여 선제적으로 우리 군사력의 일부분을 무력화시키거나 마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천만에! 그러한 위험한 시도는 즉시 강력한 힘에 의해 응징될 것이며 윤석열<정권>과 그의 군대는 전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가장 엄중한 대남경고였다. 김정은 총비서가 강력한 힘으로 윤석열 정권과 한국군을 전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하는 순간,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에 참석한 군중 속에서 열렬한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김정은 총비서는 한미련합군이 오는 8월 22일부터 9월 1일까지 실시할 대규모 한미련합군사훈련을 앞두고 윤석열 정권과 한국군을 전멸시킬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이번에 실시될 한미련합군사훈련은 말이 군사훈련이지 실제로는 미국이 항모타격단이나 전략폭격기 편대를 동원한 가운데 선제타격연습과 참수작전연습을 벌여놓는 북침전쟁연습이다. 그처럼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벌여놓으면, 조선인민군은 아무런 대응행동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7월 27일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 연설에서 “적들의 위험한 군사적 기도들을 더욱 철저히 제압분쇄해야 할 혁명의 정세”를 지적하였다.

김정은 총비서는 그런 ‘혁명의 정세’에 북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미 언명한 바 있다. 북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2022년 6월 8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적투쟁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과 “대적투쟁의 전략전술적 방향”을 천명하였다고 한다. 김정은 총비서가 천명한 대적투쟁의 원칙 및 전략전술은 기밀사항이므로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한미련합군의 북침전쟁연습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예상할 수 있다.

북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가 천명한 대적투쟁의 원칙은 “강대강, 정면승부의 투쟁원칙”이라고 한다. 강대강의 투쟁원칙은 적대세력의 도발에 상응하는 대적투쟁을 벌인다는 뜻이다. 강대강의 대적투쟁원칙에 의하면, 미국이 이번 북침전쟁연습에 전략자산을 동원하는 경우 북도 그에 상응하는 전략자산으로 맞서는 것이다. 미국의 전략자산에 상응하는 북의 전략자산은 전략핵탄미사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북은 미국의 전략자산 출동에 대응하여 전략핵탄미사일 위력발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위력발사에 사용할 전략핵탄미사일은 여러 종류인데, 2022년 3월 24일에 시험발사된 화성포-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도 위력발사에 사용할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7월 27일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 연설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과의 그 어떤 군사적 충돌에도 대처할 철저한 준비가 되여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언합니다”라고 말했다.

정면승부의 대적투쟁원칙은 정면으로 격돌하여 승패를 결정짓는다는 뜻이다. 김정은 총비서가 언급한 정면승부의 대적투쟁원칙에 의하면, 한미련합군이 이번 북침전쟁연습 중에 도발적인 선제타격-참수작전연습을 감행하는 경우 조선인민군도 그에 상응하는 정면승부 대적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한미련합군의 선제타격-참수작전에 상응하는 조선인민군의 정면승부 대적투쟁은 김정은 총비서가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 연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윤석열 정권과 한국군을 일거에 전멸시킬 전술핵타격이다. 한미련합군의 선제타격-참수작전연습에 전술핵타격연습으로 대응하는 것이, 김정은 총비서가 언급한 정면승부 대적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의 언론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적투쟁의 전략전술적 방향도 천명하였다고 한다. 대적투쟁의 전략전술은 위에 서술한 전략핵탄미사일 위력발사의 효과와 전술핵타격연습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군사행동을 의미한다. 핵시험을 실시하고, 준전시상태에 돌입하는 강력한 군사행동이 그런 군사행동에 포함될 수 있다. 이를테면, 북부핵시험장에서 전술핵탄두 기폭시험을 실시하고, 조선인민군이 준전시상태에 돌입한 가운데 전략핵탄미사일 위력발사와 전술핵타격연습이 진행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오는 8월 22일 한미련합군이 도발적인 북침전쟁연습을 감행하여 북을 극도로 자극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준전시상태를 선포할 것이고, 그에 따라 조선인민군과 전체 인민이 전투동원태세에 돌입할 것이고, 윤석열 정권과 한국군을 일거에 전멸시킬 전술핵타격연습을 실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한편, 미국이 오는 8월 22일에 시작되는 한미련합군 북침전쟁연습에 전략자산을 동원하여 북을 극도로 자극하면, 김정은 총비서는 전술핵탄두 기폭시험과 전략핵탄미사일 위력발사를 명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매우 심각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그처럼 일촉즉발의 격돌상황이 조성된 가운데, 군사분계선이나 서해5도 해상에서 어떤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조선인민군 지휘부는 그런 우발적 충돌을 대북선제타격징후로 해석할 것이고,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김정은 총비서가 천명한 정면승부 대적투쟁원칙에 따라 지체 없이 선제적인 전술핵타격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은 대북선제타격징후를 드러낸 한미련합군에 선제적인 전술핵타격을 가해 그들을 일거에 제압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한미련합군의 대북선제공격은 공격여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절차가 꽤 복잡해서 상당한 준비시간이 걸리지만, 김정은 총비서의 유일적 지휘를 받는 조선인민군은 불시에 대남선제공격을 실행할 수 있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7월 27일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 연설에서 “지금 우리 무장력은 그 어떤 위기에도 대응할 철저한 준비가 되여있으며 우리 국가의 핵전쟁억제력 또한 절대적인 자기의 힘을 자기의 사명에 충실히, 정확히, 신속히 동원할 만전태세에 있습니다”라고 밝혔다.

북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한미련합군의 대북선제공격은 조선인민군이 올해로 69년째 정지된 조국해방전쟁을 완전히 결속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일 것이다. 북에서 말하는 조국해방전쟁은 ‘공화국 남반부’를 해방하는 전쟁, 곧 남조선해방전쟁을 의미한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7월 27일 ‘위대한 전승 69돐 기념행사’ 연설에서 “더 이상 윤석열과 그 군사깡패들이 부리는 추태와 객기를 가만히 앉아서 봐줄 수만은 없습니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남조선해방전쟁을 예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위에 서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2022년 8월 1일 현재 조선인민군은 오는 8월 22일부터 9월 1일까지 기간에 닥쳐올 남조선해방전쟁의 결정적 시기에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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