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 연구원
문재인 정부가 7월 17일 군사당국자회담과 적십자회담을 동시에 제안했다. 정치군사회담과 인도주의 문제 회담을 동시에 제안함으로써 남측과 북측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군사 당국 회담을 7월 21일 개최하자고 함으로써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부터 군사적 적대행위를 중단하자고 했던 베를린 평화 구상을 구체화하려는 적극적인 의사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특히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위한 남북 군사당국회담은 지난 해 북측이 7차 당대회에서 언급했던 것이기도 하다.
북측이 회담 제안을 수용할 것이냐를 놓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그런데 북측의 수용 여부와 무관하게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을 발표하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오직 평화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자신감이 묻어나는 문장이다. 그런 자신감은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평가에 기초한다. 하기는 ‘막가파 트럼프’로부터 “한반도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한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으니 자신감을 가질 만도 하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한반도 평화 구상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함께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워싱턴에서 시작되고 베를린에서 결론을 내린 문재인의 한반도 평화 구상은 ‘오직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 데서 중요한 몇 가지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는 한반도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가.
한미 정상 공동성명과 베를린 평화 구상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가 그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는 그 형식과 내용이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차이는 이내 사라져버렸다.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G20 회의를 다녀와서”라는 서울경제 특별기고문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단어가 ‘한반도 비핵화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결국 초점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이라는 단어에 맞춰진다. 귀에 익숙하다. 부시 정부가 2003년 6자회담을 시작할 때 북핵 문제 해결 방안으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주장하면서 숱하게 들어봤던 문구이다. 문제는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로도 알려져 있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이라는 용어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채택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미국의 CVID 주장 철회에 있었다는 것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정부가 부시 정부의 CVID 요구를 철회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문재인 대통령 혹은 그 참모들이 모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같은 사실을 알고서도 CVID를 통한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둘째, 북측의 핵포기는 한반도 평화의 절대 조건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평화 구상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한반도 비핵화는 국제사회의 일치된 요구이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절대 조건”이라고까지 강조했다. 과연 북측이 핵을 포기하면 한반도 평화는 완성되는가. 북측이 핵무기를 추구하기 전까지 한반도가 평화상태였다면 그 말은 일말의 진실성을 갖는다고도 볼 수 있겠다. 북측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으면 핵무기를 제작할 목적으로 플루토늄을 확보하기 시작했다고 의심을 받았던 1990년대 초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측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전이었던 1980년대에도 한반도는 평화상태가 아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이 강조했던 것처럼 북측의 핵개발은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이다. 물론 김대중 정부 시절에 비해 북측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고도화시키고 있으며 최근 ICBM까지 발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 적대 관계에서 출발한 한반도 위기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북측의 핵무기 고도화 역시 북미 적대 관계의 산물이라는 사실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북측의 핵포기가 한반도 평화의 절대적 조건이라면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철회 역시 한반도 평화의 절대적 조건이다. 북측의 핵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면 한미 양국의 핵우산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협한다.
셋째, 한일 군사 협력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이 북측의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함으로써 안보 영역에서 일본과의 협력을 공식화하였다.
그 맥락에서 두 개의 언론 보도가 주목된다. 하나는 “한일 국방장관이 직접 통화할 수 있는 핫라인을 올 가을 개설하기로 합의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북측의 ICBM 관련하여 “한일간에 충분한 정보를 주고 받고 있다”는 이철희 민주당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의 인터뷰 발언이다.
일본 언론에서 언급한 한국의 국방부장관은 한민구이다. 따라서 송영무 국방부장관 체제가 등장하면 한일 국방부장관의 핫라인 구축은 재논의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철희 민주당 의원의 인터뷰는 여당인 민주당에서 이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 같은 우려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청문회에서부터 제기되었던 것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명확히 발언했다. 그러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서는 주무 부처인 국방부 송영무 장관 후보 청문회에서는 질문도, 답변도 나오지 않았다.
민주당은 2016년 11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박근혜 정부 하의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 “국정운영 자격도 없는 대통령에 의한 졸속•매국 협상”이라고 맹비난했다. ‘국정운영의 자격이 있는 대통령’이 등장해서일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재협상의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서는 정부도, 여당도 일언반구 없다. 주어진 현실로 인정하려는 듯하다.
미국과 일본이 강조하는 한미일 군사 협력은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여 추진하는 것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일 삼국 군사 협력을 합의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인정하는 순간 한국의 국방안보 정책은 미일 동맹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오직 한반도의 평화. 이 구상과 목표에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CVID를 강조할 경우 한반도 핵문제는 도리어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북미 적대관계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의 핵개발은 적대관계의 산물임을 상기하자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역시 북한과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고 압박하자는 미국의 정책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을 주어진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베를린에서 발표된 문재인 한반도 평화구상이 이 같은 내용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추진될 경우 한반도는 문재인 대통령이 바람과는 반대로 ‘오직 평화’가 아니라 ‘오직 대결’의 공간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