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무기는 빠르고 무차별적이고, 크고
비동기적이고, 강하다.
하지만 군용기나 항공모함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가진 군사강국과 전쟁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정설교 화백 | |
▲ 항공모함은 지나치게 컴퓨터에 의존한다.
장교들은 지휘소의 모니터를 보고 현실과 동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수행한다.© 정설교 화백 | |
▲ 조명록, 클린턴 회동
1994년 6월 전쟁직전까지 갔던 북미대결에서
만약에 북이 핵과 미사일이 없다면
클린턴은 북을 공격하였을 것이고
북미 대화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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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닉슨과 마오쩌둥의 회동
중국의 핵과 미사일이 없었다면
닉슨은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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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개발역사를 보면 미국이 가장먼저 핵무기를 만들었고 미국은 지루하던 태평양 전쟁을 단 두발의 핵무기로 일본의 항복을 받고 침략국가도 아닌 한반도를 분할했다. <해제된 미국의 기밀문서에는 미국이 한반도를 분할했다. 미 국무성 미국의 대외관계 1945년 7권> 미국은 한국의 민족세력과 양민들을 좌익으로 제거하고 친일 우익들의 친미국가로 만들어 한미 FTA, 사드 등 불평등, 불이익을 강요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소련도 1949년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를 만들고 수소폭탄에서 미국을 앞서나갔다.
소련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핵실험에 성공하며 핵무기를 만들었지만 핵무기가 없는 중국은 강대국반열에 오르지 못하고 국제무대에서 무시당하였다.
중국의 핵개발은 초기에 인원, 장비 원료에 소련의 원조에 의존했다. 하지만 1960대 이후 중소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은 기존장비를 이용하고 자력갱생의 원칙을 내세워 핵개발을 서두르게 되었다.
1960년 1월 5일 중국은 소련제 로켓 R-2를 모방하여 둥펑1호를 시험발사 성공이후 지속적으로 둥펑 미사일을 개발하여 왔다. 이러한 노력으로 1964년 6월 29일 사거리 1.050Km에 성공을 하고 같은 해 10월 16일 신지앙 성 루오뿌포에서 2만톤급 원폭에 성공하며 1967년 6월 17일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했고 그 이후 중국은 무려 39회나 수소폭탄을 시험하였다.
중국은 핵무기 투사범위를 신장시키는 운반체성능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여 1970년 4월 24일 창정 1호 로켓에17.3 Kg의 인공위성<똥팡홍1호>를 탑재하여 지구궤도에 진입시키며 중국은 미국과 소련과 견줄만한 강대국으로 인정되었다. 중국은 전략핵무기로 지구상 어디고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하여 이를 중국인들은 양탄일성이라고 중국의 과학기술을 극찬하며 미소의 핵독점 시대는 22년 만에 끝났고 미국- 소련- 중국 삼각체제를 완성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하고 국제적인 위신이 크게 추락한 미국은 1972년 중국에 손을 내밀었다. 미국이 적대국인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은 소련의 팽창주의를 견제할 전략적인 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했다면 미국은 중국에 손을 내밀 이유가 없었을 것이며 중국은 아무리 덩치가 커도 약소국에 머물렀을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핵무기는 1970년대에 이미 개발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핵무기 2발을 은밀하게 남아프라카공화국에 수출을 제의 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이를 수락하여 미국에게 알렸고 그 무기가 진짜 핵무기로 미국을 놀라게 하였다.
1989년 9월 프랑스 위성 스팟은 북한 영변에서 핵시설을 촬영하여 미국에 제공하였고 이에 미국은 북핵폐기로 대화를 이어오다 1994년 6월 16일 미국은 북한의 영변핵시설을 폭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전쟁 시뮬레이션에서 미국이 패배하는 것으로 결론짓자 카터를 대통령특사로 북에 보내 북과 대화를 열었다. 1995년 1월 미국은 북한에 중유 5만 톤을 보냈고 줄다리기를 계속하며 그래도 북미 대화는 이어졌다.
1984년 4월 북한은 스커드 미사일발사 성공하며 5월 다시 성공하였고 1998년 8월 31일12시 7분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에서 북한은 자체기술로 광명성 1호<남 대포동1호> 위성 발사에 성공하였다. 이로서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게 되었으며 미국은 북한과 제재와 압박속에서도 대화를 서두르게 되었다.
2000년 6.15공동성명과 2000년 10월 11일 클린턴 조명록회동, 올브라이트 조명록회동, 2000년 10월 23일 올브라이트 북한방문 김정일 위원장- 올브라이트 회동, 2005년 김정일 위원장 핵무기 보유 시인, 2006년 7월 5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 7발 발사 미국의 충격 극대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중국, 러시아도 제재에 동참하자 2006년 10월 3일 북한 핵실험 발표 등 강경하게 미국과 맞서며 10월 15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북한을 지구상 9번째 핵보유국으로 보도했다. 2006~ 2007년 10.4 선언이 있기 까지는 힘의 논리 국제사회에서 북미대화와 남북화해는 북한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능력과 무관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맞춰진 북의 화성 14호 성공으로 미국의 뉴욕타임스은 북과 대화를 트럼프 행정부에 주문했다. 핵무기와 이를 신속하고 은밀하게 운반하여 세계 어느 곳이고 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북한에게 미국은 세계패권국이라 하지만 자국이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려면 대화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하는 건 북미평화협정이다. 핵무기는 상대의 무기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핵전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 핵무기에 방어 수단이 없다. 이에 미국이 핵 강대국 북한에게 전쟁을 선택한다는 건 미국의 의회와 국민들도 당연하게 반대할 것이다. 또한 북미전쟁은 지구가 빠개질 수 있는 인류의 자멸의 길이 아닐 수 없는 게 수소폭탄은 히로시마 원폭의 1000배의 위력라고 하지만 이는 본질적으로 수소폭탄의 위력은 끝이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