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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기 수필:『평양 간 송일국 배우가 미처 몰랐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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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injok 작성일07-03-23 00:00 조회8,3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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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종합]테레비죤 드라마 연속극 "주몽"은 남녘 사회 뿐만 아니라 해외동포사회, 특히 미주동포사회에도 파문을 일으켰다. 미주 엠비씨 방송사와 계약한 동포사회 테레비에서도 방영했지만 각 도시들에서 비데오가계를 운영하는 상점들에서 비데오를 빌려서 가정에서 본 동포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소식이다.

<##IMAGE##> 요즘에는 또 드라마 주몽의 배우들과 연출진들이 평양에 방문한 소식들이 뜨거운 화제로 미주동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들이 평양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는 소식도 회자하고 있지만 이들의 입을 통하여 이북사회가 우리 문화를 극진하게 사랑한다는 점과 특히 우리 민족의 정통성을 이어온 고구려에 대한 유적들을 귀중하게 간직하고 가꾸어 놓았다는 사실, 그리고 이북동포들이 고구려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점등이 재미동포들 사이에 대화소재들로 오르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21일자는 주몽역으로 나온 송일국의 소감을 이렇게 실었다. “송일국: 나도 깜짝 놀랐다. 나만 해도 드라마를 하기 전에는 주몽을 고구려를 세운 인물 정도로만 알았고 소서노 등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북한 사람들이 인물의 성격과 특징 등을 잘 알고 있어 아주 놀라웠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유적이 거의 없는데 여기엔 유적이 많아서 그런지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한편 남녘의 인터네트 매체 자주민보의 편집인이며 발행인인 이창기 대표는『평양 간 송일국배우가 미처 몰랐던 것』이라는 제목의 수필을 소개하며 북녘동포들이 고구려를 사랑하는 이유들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썼다. 자주민보 2007년 3월21일자 머리기사를 여기에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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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평양 간 송일국배우가 미처 몰랐던 것』

글:이 창기 대표(자주민보 발행인겸 편집인)


송일국 배우는 이렇게 평양 사람들이 고구려 역사에 대해 자세히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고 고백하면서 북녘에 유적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구려 유적은 서울의 아차산만 가도 적지 않게 있다. 물론 북한과 달리 아차산성의 고구려 유적이 무너지고 있고 온달샘물은 매말라버린 상태이기는 하지만 남녘 곳곳에도 고구려 유적이 없지 않다.

남녘 사람들이 고구려의 참된 역사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남녘의 정치계, 교육계, 학계, 언론계, 법조계 등이 친일, 친미 사대매국세력들이 지금까지도 속속들이 장악하고 조금이라도 우리 민중들에게 자주적인 기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사와 그런 운동을 차단하고 말살해왔기 때문이다.

사학법 개정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는 세력들이 바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후대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던 그 세력들이다.

이런 세력 중에 뉴라이트라는 신보수세력은 한 술 더 떠서 일본제국주의 침략으로 우리 민족이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다는 친일매국, 극사대주의적인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지난해 버젓이 공개하기까지 하였다가 국민들에게 몰매를 맞았었다.

이런 세력들은 당나라에 빌붙어 동족인 고구려를 공격한 신라의 김유신과 김춘추를 영웅시하고 있다.

<##IMAGE##> 그러나 고구려를 우리민족의 중심역사로 놓고 보면 이 김유신과 김춘추는 이완용 못지 않은 매국 역적인 것이다.

고구려사를 깊이 연구하면 필연적으로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니 친일파, 친미파로 이루어진 남녘의 사대매국적인 지배층이 역사교과서에 고구려의 역사를 제대로 담으려고 했겠는가.

그래도 80년 광주항쟁 이후 반미자주 운동이 일어나면서 자주와 통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진보적인 선각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주몽’과 같은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본다.


북녘동포들이 고구려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자세하게 잘 알고 있는 것은 비단 고구려 유적이 북녘에 많아서가 아니라 고구려 그 자주의 기상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한의 인민군을 괴뢰군이라고 배워왔다. 소련의 괴뢰 즉 꼭두각시 부대라는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붕괴 이후, 북은 결코 소련에 휘둘리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리고 지난해 핵시험으로 중국에게도 조금도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인 나라임이 분명해졌다. 북은 핵시험 20분 전에 중국에 통고했다. 이것은 중국에게 거의 통고를 안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언짢은 중국이 미국과 유엔제재를 결정하자 북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격해 와도 북은 끄덕도 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제재 소동에 정면으로 반격을 가하였다. 오히려 강대국 미국에게 꼼짝도 못하고 당하기만 한 쪽은 남녘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학시절에 이미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있었는데 어떻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으로 볼 수 있냐며 신라중심의 삼국통일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면서 우리 민족의 첫 통일국가는 고구려와 발해를 계승한 고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따라서 북의 역사가들은 우리 민족사의 정통국가는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조선으로 이어져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청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런 고구려사에 관심이 결국 학계와 북의 전 주민들의 관심으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에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온달장군과 같은 고구려 시대의 영웅들을 다룬 영화도 많이 만들어졌던 것이며 최근에는 북 김호성 작가 지은 소설 ‘주몽’도 나왔던 것이다.(아래 전문 공개)

사실 주몽이건, 연개소문이건, 대조영이건 고구려의 자주의 기상을 대변하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 같이 현재 북한의 주장과 똑같다.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와 같은 강대국에 빌붙어 당장의 편안함과 권력의 안일을 탐하지 말고 어렵고 힘들더라도 강철검을 만들고 군대를 강화하고 전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아 당당히 맞받아 싸워야 민족의 존엄을 지키고 궁극적인 민족의 번영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언론보도를 보면 고난의 행군 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한 동포들은 미국에게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베트남이나 중국 못지않게 미국의 경제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지만 한발 물러서면 두발 세발 물러서게 되고 결국에는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국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자력갱생의 구호를 들고 군사를 앞세우는 선군정치로 미국에 맞받아 싸웠다고 한다.

이런 북을 보며 일부 남녘 사람들은 주민의 배를 곯게 하는 정치는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북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의 정신과 북한의 정신은 같다는 것이다. 즉 고구려의 기상과 북의 기상은 맥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며 고구려는 당나라에 결국 무너졌지만 북은 지금 미국을 거의 다 제압했다는 것이다.

진실은 이러하다.

고구려를 칭찬하는 것은 결국 북을 칭찬하는 것으로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대사의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 땅의 주요 요직과 권력을 다 장악하고 있는 사대매국세력들은 바로 이점 때문에 고구려의 진면목이 남녘 동포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철저히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과 달리 자주적이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그 민족이 강대국의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면 결코 존엄을 지킬 수도 없으며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자주성이 강하다. 이제는 남녘 동포들의 고구려에 대한 탐구를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과 함께 중국의 대국주의자들이 우리의 고구려사를 왜곡하려고 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고구려사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은 더는 미룰 수 없는 민족사적 과제가 되었다.

하루빨리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어 강대국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힌 자랑스런 우리민족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북이 주장한 내용을 남녘에서 똑같이 주장한다고 친북의 딱지를 붙이고 국가보안법으로 처형하는 반민족적, 반인륜적인 광풍부터 이제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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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보도 자료]

“고구려는 우리민족 정통성의 핵심”
북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논문 발표… 중국 주장 “궤변”


자주민보(http://www.jajuminbo.net) 김영준 기자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북 김일성종합대학 김은택(역사학부 강좌장) 박사가 얼마 전 고구려가 우리 민족역사임을 강조하는 논문 ‘고구려는 중세 우리 민족사의 기본흐름을 주도한 나라’를 발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 21일자에 실린 이 논문에서 김은택 박사는 “우리 민족의 첫 국가인 고조선을 계승한 고구려가 삼국의 성립과 발전에서 선도적이며 중심적인 역할을 놀았으며(했으며) 그 이후 력사발전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중세민족사의 기본흐름을 주도한 나라로 될 수 있었다”며 고구려 역사가 우리 민족사임을 분명히 했을 뿐 아니라 중세민족사를 주도한 나라임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논문에서 우리 나라 중세민족사의 흐름을 주도한 나라를 밝히는 것은 “지난 시기 제국주의어용사가들과 현시기 일부 대국주의사가들에 의하여 고구려력사가 혹심하게 외(왜)곡말살되고 있는 조건에서 매우 절실한 요구로 제기되고 있다”며 중국의 고구려 역사왜곡을 겨냥했음을 밝혔다.

고구려,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 계승

논문은 고구려가 우리 나라 중세민족사의 기본흐름을 주도한 나라로 되는 근거로 첫째 고구려가 고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직접 계승했다는 점, 둘째 삼국시기 우리 민족사가 고구려를 중심으로 발전했다는 점, 셋째 고구려 이후 역사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우리 민족국가전통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 등을 꼽았다.

<##IMAGE##> 먼저 논문은 “고구려는 우선 우리 나라 력사상 첫 고대국가이며 대표적인 나라인 고조선의 전통과 문화를 직접 계승”하였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우선 “고조선은 우리 나라 노예소유자국가성립과 발전, 존재기간 그리고 조선민족의 형성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하였”다며 고조선을 “우리 나라 고대시기를 대표하는 나라”라고 지적한 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넘어가던 B.C. 3세기 초부터 A.D. 1세기 사이에 “고구려가 고조선전통과 문화를 계승하였”다고 주장했다.

논문에 따르면 고조선은 B.C. 30세기 초에 성립해 단군조선(전조선), 후조선, 만조선 등 세 개의 왕조가 교체되면서 발전해왔으며 B.C. 12세기 이전에(단군조선 시기) 독자적인 노예제국가로 발전했다. 결국 단군조선시기부터 우리 민족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반도 대부분과 로하하류유역, 북류송화강 일대를 차지하고 한 주권 밑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는 과정에 핏줄과 언어, 문화의 공통성이 더욱 공고화되어 하나의 민족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 논문은 고구려가 “고조선의 령역과 주민들을 차지하여 그 계승국임을 명백히 하였”으며 또한 “고구려가 고조선의 계승국임은 정치, 경제, 문화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구려, 삼국의 통일적 발전과 자주성 수호에 결정적 역할

다음으로 논문은 “삼국시기 우리 민족사가 고구려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고구려가 “당시 우리 나라에서의 노예제붕괴와 봉건국가 확립에서 선도적 역할을 놀았고(했고), 민족의 통일적 발전과 자주성을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서 중심적이며 결정적 역할을 놀았다”고 강조했다.

논문은 고구려가 “구려와 부여, 진국의 붕괴와 이 지역에서의 봉건제도확립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백제봉건국가성립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백제의 성립으로 진국의 붕괴와 이 일대에서의 봉건관계의 장성 그리고 신라, 가야의 성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며 “고구려가 초기봉건국가들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또한 삼국시기 고구려가 “세 나라 사이의 정치, 경제에서 주도권을 틀어쥐고 그 중심에 서서 우리 민족의 통일적발전과 국토통일을 위한 투쟁을 주동적으로 벌려나갔다”며 그 실례로 고구려가 “5세기말∼6세기초에 삼국통일을 거의 완성단계에 올려 세워 남쪽으로 아산만과 동해안의 영일군청하계선(후에 삼척군)까지 진출해 당시 우리 나라 령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점을 들었다.

그리고 논문은 고구려가 “삼국시기 민족의 자주권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며 “고구려는 근 1000년 존재하는 기간 한, 위, 연, 수, 당 등 중국의 력대 봉건국가들의 수십 차에 걸치는 대규모적인 침공으로부터 민족의 자주권을 튼튼히 지켜냈”으며 “이 투쟁은 고구려 자체를 지켜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백제와 신라의 안전을 지켜줌으로써 우리 민족 전체를 보위하는데 이바지하였다”고 평가했다.

민족정통국가,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리조로 계승

세 번째로 논문은 고구려가 “고구려 이후 력사발전에 큰 영향을 주어 우리민족국가전통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 우리 나라에 공존한 발해와 후기신라(통일신라) 가운데 발해가 고구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았다며 ‘계승국’의 근거로 ▲발해가 고구려 옛주민들에 의해 고구려옛땅에 세워져 그 영토와 주민을 거의 차지한 점 ▲발해가 대내외적으로 자기를 고구려계승국이라고 선언하고 일본에서도 고구려국이라고 인정한 점 ▲고구려의 문화와 풍습을 이어받은 점 등을 꼽았다.

10세기 초에 성립된 고려 역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정한 점 ▲발해 왕세자 대광현을 맞아들여 사실상 발해왕조의 주권을 편입한 점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찾기 위해 노력한 점 등을 들어 “고려가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진 우리 민족국가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어받은 나라”이며 “고구려가 고려의 성립과 발전에 미친 영향과 떼여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논문은, 1392년에 세워진 리조(조선)는 “고려의 영토와 주민, 정치, 경제, 문화를 이은 나라”였으며 “따라서 우리 민족의 정통국가는 고조선-고구려-발해-고려-리조”라고 지적한 뒤 “이처럼 고구려는 단군조선을 계승하고 삼국시기력사를 주도하였으며 그 이후 발해-고려-리조로 이어지는 민족국가들의 전통과 기틀을 마련한 대강국이었다”고 강조했다.

“일부의 고구려사 왜곡은 민족말살책동의 연장”

한편 논문은 마지막에서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과 관련해 “이것은 지난 시기 일제어용사가들이 떠들던 우리 민족말살책동의 연장”이라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망동”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논문은 중국을 겨냥해 “현재 다른 나라의 일부 대국주의사가들은 고구려의 력사와 우리 민족국가의 전통과 지위를 말살하려고 갖은 책동을 다하고 있다”며 “그들은 고구려가 중국의 력대국가들의 지방정권, 소수민족국가라고 외(왜)곡함으로써 고구려중심의 우리 민족의 전통국가들을 다 부인하고 조선반도 남부지역에서만 우리 민족이 생활하고 발전하였다고 궤변을 늘여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논문은 “우리는 최근 일부 대국주의사가들이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 력사를 외(왜)곡하고 있는데 대하여 경각성을 높이고 이 부문 연구사업과 선전활동을 힘있게 벌려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고수하고 빛내여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작성일 자주민보 2004-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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