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미 교수: "내가 통일을 염원하게 된 이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9-04-15 09:42 조회6,833회 댓글1건관련링크
본문
*신은미 교수
<내가 통일을 염원하게 된 이유> 나는 기독교인으로 미국에서 마저도 주위 분들로 부터 ‘꼴통 아줌마’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내 종교적 신념을 아무리 다해 봐도 북한은 사랑할 수 없는 그런 나라였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목사이셨고 지금의 국가보안법을 강력히 밀어붙인 제헌국회의원으로서 이승만의 자유당이 몰락할 때까지 경북 포항에 지역구를 둔 당의 중진이었다. (후일 2015년 1월 나는 남한에서의 강연이 문제가 되어 바로 그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년간 입국금지와 함께 강제출국을 당했다.) 게다가 나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부대를 이끌고 압록강까지 진출한 육군장교였으며 나는 그러신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라났다. 7년 전 남편이 ‘북한은 한국국적의 사람들을 제외하곤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관광을 허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에서 발견하곤 휴가를 북한에서 보내자고 제의했을 때 나는 ‘당신 혼자 가시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무데서나 말을 막하는 남편이 ‘그러면 혼자 가겠다’고 말하는 걸 듣곤 혹시라도 남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까 싶어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따라 나섰다. 이 모든 이야기는 나의 첫 북한기행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2012, 도서출판 네잎클로바)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2011년 10월 북한에 첫 발을 내린 이후 지금까지 9차례 북한의 방방곡곡을 여행했다. 첫 여행 순간부터 북한은 내가 배워 알고 있던 그런 ‘무시무시한’ 나라가 아니었고, 많은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북녘의 동포들은 정신이 곧고 심성이 착하고 고운 아름다운 사람들이었다. 내가 통일을 염원하게 된 이유이다. (안아보고 싶어하는 내게 아이를 건네는 북녘의 애기엄마. - 2012년 4월 17일 평양 -) |
댓글목록
Nick님의 댓글
Nick 작성일
북녁이 좋으면 가서들 살아라!
Sh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