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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언론, 오늘부터 홍동근목사 관련 글 연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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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7-02-21 07:42 조회5,0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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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사회 인터네트 언론, <조선의 오늘>은 2월21일자에 재미동포 목사이며  통일운동에 참여해 오다가 평양방문 중 사망한 홍동근 목사에 대한 연재글, 《위인을 따르는 길에 통일이 있다》를 싣기 시작했다.홍동근 목사는 1926년 평북 피현출생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서울 영락교회 부목사로 일하던 중 한일굴욕외교 반대집회를 주도했다는이유로 쫒거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선한사마리안 교회를 맡아 보며 사역하다가 2001년 11월11일 김일성종합대학교를 방문하여 기독교윤리학을 강의하던중 현지에서 소천했다. 고인은 1984년 캘리포니아 대학 아시아협회서 인권상을 수상했고, 1988년 조선에서 조국통일상을 받았고, 2000년에 조선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바 있다.그는 통일신학회, 범민련 재미본부, 북미주통일협회,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민족통신 편집실] 



홍동근목사.jpg
[사진]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고 홍동근 목사 묘지


《위인을 따르는 길에 통일이 있다》(1)

 

민족우에 계급이 있을수 없고 애국우에 주의주장이 있을수 없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들의 민족관, 민족대단결철학이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민족의 근본리익을 중시하고 북남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기꺼이 손잡고 나아갈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는 애국애족의 마음을 안고 헌신한 사람이라면 주의주장과 리념의 차이를 초월하여 애국렬사로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그런 사람들가운데는 한때 조국을 버리고 반역의 길에 들어섰던 재미동포 홍동근선생도 있었다.

 

 

젊은 시절 홍동근선생은 출세와 성공의 기회, 행운을 바라며 고향을 떠나 남조선으로 가보았지만 생활은 그에게 위안을 줄수 없었다.


또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로스안젤스에서 교회를 창립하고 목사가 되여 자기처럼 외로운 사람들, 고향을 버린 사람들, 흩어진 가족들을 정신적으로 위안해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정신적공허감과 고독감, 심중의 압박감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그가 고향방문을 결심하게 된것은 주체70(1981)년이였다.


사실 고향방문신청을 하면서도 지난날 조국앞에 지은 죄때문에 우려가 컸지만 조국은 그를 너그러이 품어주었다.


그해 9월 꿈결에도 그립던 고향을 방문한 그는 사랑하는 어머니와 가족을 만나 뜻깊은 상봉을 하게 되였다.


대륙과 대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수십년이 지나서야 다시 찾아온 그에게 어머니조국은 지금껏 꿈속에서나 그려보던 귀중한것을 다 안겨주었다.


어머니는 고운 자식, 미운 자식 가리지 않는다는 말의 참뜻을 그는 조국방문의 나날 페부로 느꼈다.


후날 그는 조국에서 받은 충격을 자기가 집필한 도서에 이렇게 피력하였다.


《젊어서 내가 저주하고 떠나온 땅인데 지금 돌아와 어머님과 가족을 만나고 고향나라의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나는 이 나라가 재더미에서 일어날 때 한삽의 흙조차 뜬 일이 없다.…》


하기에 그는 어디간들 조국땅에 뿌리를 박고 방황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동포들에게 조국방문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고 통일을 위해 나설것을 열렬히 호소하였으며 고심분투하여 《미완의 귀향일기》(상, 하)라는 표제로 조국방문기를 썼다.


또한 자신이 직접 창립한 통일신학동지회, 북아메리카주협회사업도 철저히 조국의 통일성업에 이바지하는 립장에서 해나갔다.


어머니조국은 고향을 방문하고 돌아간 후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활동에 나선 홍동근선생을 공화국창건 40돐행사에 초청해주었으며 그로부터 한해가 지난 주체78(1989)년에는 평양에서 성대히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또다시 불러주었다.


주체78(1989)년 7월 8일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니게 된 홍동근선생은 너무나도 소박하고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수령님의 인자하신 인품, 평민적인 모습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날 조국통일에 대하여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는 그가 한생토록 간직하고 구현해야 할 고귀한 지침이였으며 배신으로 멍들고 불신으로 얼어붙었던 그의 가슴을 순간에 녹여내는 생명수와도 같은것이였다.


홍동근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접한 후부터 붓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고 통일애국의 길로 동포들을 힘차게 추동하였다.


그가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권과 2권을 보고 크게 감동되여 저술발표한 독후감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은 글을 써서 발표했다고, 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과분한 치하를 해주시였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3권과 4권을 보고 심장으로 절절히 노래한 독후감도 위인숭배의 결정체였다.


그후에도 그는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살것이라고, 이제 어디 가나 이 땅에 든든히 뿌리를 박고 허무하게 방황하지 않으리라 굳은 결심을 품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민족통일의 그날을 앞당기는 성업에 량심과 의리를 지키고 심신을 다 바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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