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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내가 본 베트남의 자본주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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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6-01-14 05:43 조회13,372회 댓글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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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동포 림원섭 선생이 최근 베트남을 여행하고 돌아와 쓴 여행기를 민족통신 게시판에 올렸다. 그의 글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이후 자본주의 경제를  받아 들임으로써 초래한 모순들과 비리현상에 대해서는 몹시 못마땅한 생각들을 피력하는 필자의 여행기를 여기에 소개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여행기]내가 본 배트남의 자본주의 파도! 



*글: 다물흙, 림원섭(스웨덴 동포)

rimwonsup.jpg
[사진]필자 림원섭
 



본인은 4348(2015)년12월23일날 부푼 꿈을 가득히 안고 통일된 대 월남의 수도 혁명의 중심지 하노이 (Hanoi)를 향하여 40년만에 17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도 별로 피곤을 못느끼고 갔다. 

왜 월남은 내가 1966년초에서 1975년3월까지 남쪽 월남 쾅나이, 다낭, 싸이콘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던 정든 곳이기 때문이였다. 이번 방문은 자그마한 초등학교에 내가 창시한 옳그(武道) ’물흙길’ 세미차 가게 되였다. 미안하다. 이번에는 그리운 옛 나의 태권도 제자들을 찾지 못했다. 

하노이 국제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한 택시를 타고 아직은 훤한 날씨라 시내를 거쳐 약 1시간반 되는 거리 하노이(Hanoi)와 하이풍(Hai Phong) 도시들의 중간에 위치한 흥엔(Hungen)이라는 시골, 소도시를 가면서 느끼는 것은 고개를 자우뚱 거듭 자우뚱 – 성공한 혁명의 나라의 수도는 아니였다. 

그 비교를 여기 북유럽과 서울과 평양을 비교하면서 가는 내 눈이였다. 그것은 오토바이, 승용차, 버스, 니어카들의 혼잡한 것과 양 도로가에서 물건들을 파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고 또 교통 법규를 지키는 것들을 보고 또 맑지 않은 공기로 부터 느껴지는 것은 내가 40년 전에 호지명 (싸이콩)시와 하나도 다른게 없었다. 나무나도 놀랍게도 꼭 같았다.  

Anh 수양딸집에 도착 저녘 식사를 온가족 나 포함 9명이 삥둘여 발꼬고 앉아 식사중 수양딸 아버지 (68세)전에 물리학 고등학교 선생 출신의 첫 질문은 전에 남쪽 월남에서 8년 동안 살으셨다는데 오늘 오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고 또 얼마나 발전을 했는가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준비라도 한 자처럼 즉시 대답은 하나도 발전된 것을 못보았다고 정직히 본대로 느낀대로 말을 해준 것은 전에 내가 있었던 싸이곤과 똑 같았다라고 답을 하니 고층 건물들이 많이 있지 않냐고 말을 하신다. 그래서 본인은 고층 건물들을 보고하는 말이 아니고 서민들의 생활상을 보고 말한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후 조용해졌다.  

평균 이틀에 한번씩 버스를 타고 하노이를 다니면서 변두리도 보며 그 변두리 작은 냇가들이 모두 다 죽었고 또 흥엔(Hungen) 이 도시의 중간을 흐르는 강은 안전히 죽었고 그리고 수양딸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꽁무니에 타고 이,  저곳을 다니는데 사방팔방에 빠나나 나무가 많고 각종 과일 나무들에 열매는 다 주렁주렁 열였으며 밭들에는 옥수수와, 감자, 양배추와 호박 넝쿨들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또 담장 밑들에 혹은 쓰레기장들 주변에 큰 건물인 이모집 정원 구석에도 어디에서나 자라고 있는  ’고구마’ 줄기들을 볼 수가 있고 ’토란’들이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게 여기 저기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 나라의 아열대 지방으로 물과 토지는 3모작까지 할 수가 있는데 하면서 - 이 나라는 분명이 농업국가로 참 부자인데  왜, 가난할까? 매우 궁금했다. 
  
왜놈들이 망하여 점령자 미제에게 한국을 식민지로 인수인계를 한 것처럼 프랑스가 베트남 혁명군들에 의해서 망하면서 미제에게 식민지 인수인계하는 과정에서 미함대 거짓 조작 폭파로 월남 전쟁이 시작된 것 즉 하이풍(Hai Phong), 일명 통킹만 대 항구도시에도 갔다. 

거기에는 수양딸 남편되는 집이 있어 인사차 가자고 해서 갔다.  그 수양딸 시아버지는 67세로 미국과 북월남과 전쟁시 해군 장교로 복무한 자로 역시 수양딸 아버지와 질문이 같았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내 답은 제2의 호지명이 절대로 필요한 때가 왔다고 답을 주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역시 이분도 그후 조용해졌다. 

월남 전지역에 한국, 일본 공장들이 많고 특히 호지명시에는 한국인들이 1백만 정도가 산다고 하고 하노이와 하이풍에는 약 5만이 산다고 하며 이 하노이에만 평양식당을 빼고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식당들이 약 200여게중 등록된 식당들은 150개라 한다. 여러 식당들을 다니며 하이풍 불고기집에서도 먹어보지만 모두 다 본인의 어머님 음식 맛이 아니였다.  

여기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만났다. 이 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40년 되도록 여기 월남은 단 1당 제도라고 하면서 언론이 통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자연히 부패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나는 이들 공산주의자들인데  왜, 부패되였을까 하고 매우 궁금하였다. 그 문제는 통일된 베트콩 혁명 정부가 자본주의를 받은 것부터 시작되였다. 

왜 그랬을까?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가? 
전쟁은 잘했는데 경제, 금융, 정치는 잘못한것이였던가!? 

4302(1969)년 09월02일날 호지명(Ho Chi Minh) 주석이 사망하고 다음 정권을 이은자는 2014년에 103세로 사망한 호지명의 동지 유명한Vo Nguyen Giap장군에 의해서 침략자 미제를 20년만에 물리치고 민족통일을 시킨자다 . 또 3대째 정권은 이여받은 자는 Nguyen Van Linh 행정관리 출신이라고 한다. 

베트콩 혁명정부가 3백만의 희생을 내고 1975년3월에 탱크를 몰고 싸이콘 복판 대통령 궁을 점령하고 민족통일을 시켰으나 12년이 흐른 후 1987년도까지는 버텼으나 나라 경제는 파탄되여 모든 백성들이 헐벗을 정도로 전 백성들이 너무도 가난하여  어쩔 수가 없이 자본주의를 받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말은 베트콩 민족통일 혁명 정치는 실패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후 오늘까지 29년째 자본주의는 홍수처럼 몰려와 약 1시간 반거리 하이풍과 흥엔까지 오는데도 약 1000m 간격으로 가라오케 (Karaoke)라는 노래방들이 줄비해 있고 폭행, 도둑, 강도, 강간, 어린이 납치들이 도를 넘고 생산하는 곳에서 일을 하지않고 몸을 팔아 사는 자들도 하늘 높은지 모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선택받은 지형적은 장점으로 유명한 해수욕장 다낭, 붕따우, 씨암섬 관광 사업으로 외화벌이에 치중하고 있는 듯도 하다.  또 큰 공장들은 남나라 사람들이 와서 생산등을 하는가? 나라의 주체와 자주는 얼마나 지켜지나를 물어보지 아니할 수가 없다. 

다시 반정부 단체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단체가, 진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단체가 생겨야 하는 것은 농업국가에서 농업정책을 펴는 옳바른 정치가 탄생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생각해 진다. 

주체 농법으로 성공한 북조선,  공산주의는 쌀이라고 한 김일성 주석님의 말씀을 절절히 기억케하며, 인공위성, 각종 핵무기, 대륙간, 잠수함 탄도 미사일들과 거창한 수소폭탄까지 가진 북조선 대 정치, 군사, 예술, 교육, 청년 강국의 혁명과 월남 혁명 정부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가 없다.    

끝으로 여행자들을 달달 복는 각나라 공항들과 특히 런던과 홍콩을 거처 하노이를 가고 오면서 홍콩 공항에서 검사원들에게 새로산 치약과 손톱깟는 가위를 뺏앗겼고 오면서는 런던 공한 검사원들에게는 머리깜는 썀프를 빼았겼다. 

화가 나서 영국 검사원에게 말했다 썀퓨도 뺐았는 니들을 난 이해를 못한다고 해주니 내 얼굴을 멀정히 처다만 본다. 
죄없는 이 자들에게 욕을 냅다 해주고 싶은 맘은 없었다. 

4349(2016)년01월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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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선군조선님의 댓글

선군조선 작성일

통일에는 성공했으나, 혁명에서는 실패한 결과입니다.
북조선은 아직 미제로 인해 통일을 이루지 못했으나, 혁명은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는 중인 것이고요.
베트남인들은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쿠바의 예도 크게 신통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역시 조선의 지도자들과 인민들이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해방둥이님의 댓글

해방둥이 작성일

제가 항상 생각하고 느껴왔던 것을 임 선생님께서 명쾌하게 말씀해주시는 군요, 동지이자

인생 선배님이시고 진정한 애국자의 말씀을 들으니
 힘이 솟구칩니다, 평양에서 훗날 뵙고 싶네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만세!












선생님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위 댓글들을 달아주신 선생님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호지명 주석님의 박물관도 전쟁 박물관도 가 보았다.
신기할 정도로 자료들이 너무 너무도 부족했다.
내 눈에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했다.

베트남이 낳 천재 호지명 주석의 사진들이 학교 각 교실마다 걸여있고
TV 방송 뉴스가 나올 때도 보여주는 호아저씨 얼굴이지만 -
국가, 사회, 교육, 심리, 철학적으로 매우 부족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1982년도 봄에 내가 가서 보고 매우 흡족했던 묘향산 국제 박물관과 감히 비교도 할 수가 없었다.
아 - 우리민족을 똑소리나게 살리고 있는 북조선 만 만세!
또 만 만세!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저도 예전에 베트남 두번이나 다녀왔는뎅~!!!! 다물흙선생님, 잘다녀오셨는지요?

무등님의 댓글

무등 작성일

림원섭 선생님의 기사를 읽고 나도 한 번  베트남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듭니다.

다물흙님의 댓글

다물흙 작성일

항불. 항일. 반미 투쟁에서 혁혁히 공을 세운
월남이 낳 천재 호아저씨와 전쟁 박물관을 가서보니 너무도 자료가 초라했습니다.
그 초라한 박물관들이 그나마 40년을 버틸까 걱정이되였다.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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