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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선우학원 박사 추모식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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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5-05-24 16:20 조회9,639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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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김백호 /손세영 편집위원]   해외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선구자이며 원로 학자이신 선우학원 박사 추모식이 523()오후 2,  West LA United Methodist, 1913 Purdue Ave.에서    유가족, 친지, 사회단체 회원들과  통일원로 양은식 박사 부부 현준기 선생 전순태 선생 윤길상 목사 부부 김현환 박사 부부  백승배 목사 육재규 선생 부부들과  다수의 젊은 애국 통일운동 일꾼등300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게리.오바(Gary Oba) 목사 집례로 거행되었다.  [민족통신 편집실]



 [미주] 고 선우학원 박사 추모식

 

-로스엔젤레스에서 거행-

 

 

 

집례자의 추모인사로 시작된 추모식은   손녀 레슬리 선우 (Lesley Sunoo Wong)  성서 Isaiah 42:1-4  Luke 4:16-21 낭독과 손자들 데이빗 선우(David Sunoo), 그랜트 선우(Grant Sunoo) 할아버지와 함께보낸 지난일들,   아들 Jan Sunoo 아버지를 회상하는 시간  윤길상 목사의 말씀  큰아들 Cooke Sunoo  참석한분들께 감사의인사가 있은후   끝으로  고인의 모습을(사진) 마지막 보내며 유가족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교회 식당에서 참석자들은 오찬을 나누며 고인을 회상 했다

 

선우학원 박사는 1918 22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수산리에서 출생  일본 도교 아오야마학원 대학신학부수료 캘리포니아 패사디나 대학 학사 워신턴주립대학 석사 체코슬로바키아 국립대학 박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 위싱톤 주립대학 교수 연세대학(서울)강사 서울 대한공론사 주필 미주리주 중앙감리교대학및 뉴욕시립대학 교수등을 지나며  해외( 미국)에서 1938 이후근 80여년간  우리 민족수난의 역사를 함께 살아오며 한국의 민주화와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선구자로 원로 학자로 일생을 걸어왔다.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미국 정부와 FBI에서 일본어 번역 등의 일을 하고 CIA 전신인 육군 정보부(OSS) 응모해 훈련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우리 독립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기네 이권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 뿐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후  미국이 결코 우리의 우방국가가 아니라 우리의 독립을 방해하는 분단의 주모자라는 판단을하고 미국에 대한 생각은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선우학원 박사는  해외에서우리 동포들이 겪는 차별과  어려움속에서도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선의용대 미주 후원회 활동을 통해 김규식 박사(조선민족혁명당) 독립자금을 지원했다.


그리고 1960 4·19 혁명후  한국에 돌아가서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했고 대한공론사  주필로 있을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공보부 장관 자리를 제안 받기도 했다.

1973, 김대중 납치 사건이 벌어졌을 선우학원 박사는 임창영 박사, 이승만 목사, 김성만 교수 등과 함께 김대중 구출운동에 적극 나섰다.  국제사면위원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국무부에도 연락 국무부에서 CIA 연락해서 김대중 씨를 바다에 던지려고 하는 것을 저지할수있었다.

선우학원 박사는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북과 대화를 처음시작 1981년에 비엔나에서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측과 만나 북과  해외동포와의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화가 10 동안 해마다 계속되었다.

지난 1994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있을때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중재가 없었더라면 그대로 한반도가 불바다가 뻔했다.  그런데 카터 미국대통령이 방북을 결정하게 뒤에는 선우학원박사를 비롯한  재미동포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선우학원 박사는 “1989년과 1990 그리고 1992 김일성 주석을  3 만났고 해외에서 통일운동한 공로로 1990 조국 통일상을 평양에서 받았다.

선우학원 박사는 2005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면서 25 달러를 통일운동과 조국반도 평화운동에 노력하는 해외동포들을 장려하기 위해  "선우코리아평화재단" 설립하고 통일운동단체들을 후원 재정적으로 지원하고있다.

유가족:

부인, 신성려 Helen Sonia Shinn Sunoo, 2009 812 별세

아들과 자부 선우정민 Brenda

둘째 아들과 자부 선우정국 Elaine

3명의 손자녀와 2명의 증손자녀들이 있다.


선우학원 박사 약력및 경력

1918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수산리 출생
1937
평양숭인상업학교 졸업
1937
동경 아오야마학원 신학부 입학
1938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대학 입학
1942
동교 졸업 캘리포니아 대학원 입학
1943
1949 워싱턴 대학원 석사학위 취득. 동교 철학박사 학위 수업
1943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동양언어학 강의
1949
워싱턴 주립대학 원동부 한국과 단임강사
1950
체코슬로바키아 국립대학 철학박사 학위 취득
1951
미국 캘리포이나 스탠포드대학원 연구생
1954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일간지 편집부 재정기자
1960
서울 연세대학교 철학부 강사 대한공론사 주필
1963
1990 센트럴 메소디스트대학 사회과학부 부장교수
1975
뉴욕시립대학 객원교수

영문도서 우리말 도서 25 저술,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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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우학원 박사 서거 조문]

 

선우학원선생의 유가족들에게

 

우리는 해외조국통일운동의 대원로였으며 재미동포전국련합회 고문이였던 선우학원박사선생이 별세하였다는 비보에 접하여 모두가 슬픔을 금치 못하며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우학원선생은 일제식민지강점시기 독립운동을 벌리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가셨고 광복후엔 민족분단을 종식하고 자주통일운동의 앞장에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일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온 열렬한 통일애국인사였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통일의 날을 보지못하고 비록 우리의 곁을 떠났으나 조국통일과 재미동포전국련합회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바친 고결한 생애와 애국의 넋은 해외동포들과 우리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입니다.

 

다시한번 선우학원선생의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주체104(2015) 5 14

 

 

선우학원선생의 유가족들에게

 

우리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뜨거운 통일의지를 안고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해오던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명예위원장인 선우학원선생이 서거하였다는 뜻밖의 소식에 접하여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선생은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시기 이역땅에서 살면서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애국활동에 혼신의 열정과 넋을 깡그리 바쳐왔습니다.

 

특히 선생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자주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언제나 앞장에서 투쟁해왔으며 6.15 기치밑에 해외동포들을 묶어세우고 해외통일애국력량을 확대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하기에 선생은 해내외 동포들속에서 조선독립운동의 열혈투사로, 조국통일운동의 선구자로 친근하게 불리우며 아낌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한생을 조국의 독립과 자주통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온 선생을 잃은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됩니다.

 

선생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으나 선생의 고결한 통일애국의 넋은 겨레의 가슴속에 길이 살아있을것이며 선생이 그처럼 바라던 조국통일은 위대한 태양의 빛발아래 반드시 성취되고야 말것입니다.

 

다시한번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주체104(2015) 5 14

 

 

선우학원박사선생의 유가족에게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였으며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였던 선우학원선생이 애석하게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우리는 고인의 유가족에 가장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선생은 일찌기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떠난 때로부터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 해외에서 살면서도 한시도 조국과 민족을 잊은적이 없었으며 조국의 광복과 통일, 민족의 완전한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생애를 바치였습니다.

 

선생은 해외의 여러 동포통일운동단체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진보단체들과 인사들속에서 헌신적인 실천과 해박한 지식, 적극적이고 선도적인 역할과 변함없는 원칙성, 그리고 소박하고도 인간적인 품성으로 높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선생의 한생은 조국과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와 통일을 위하여 바쳐진 애국과 헌신의 한생이였으며 해외통일운동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빛나는 한생이였습니다.

 

선생의 서거는 참으로 북과 , 해외 통일운동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로 됩니다.

 

선생은 그토록 념원하던 사랑하는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 곁을 떠났으나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친 선생의 고귀한 업적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우리들은 선생이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념원대로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여 화목하게 사는 통일의 날을 기어이 안아올것이며 사랑하는 조국땅우에 해와 찬란히 빛나는 존엄높고 부강한 통일강성대국을 반드시 일떠세우고야 말것입니다.

 

선생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유가족에 다시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엔주재 상임대표부

주체104(2015) 5 14

 

 

[추도 성명서]

찬란하게 백두산 위로 솟아오르는

태양의 빛발아래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미주통일애국열사 선우학원 고문 영전에 바치면서-

 

조국의 자주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위해 불꽃처럼 뜨겁게 살다가 가신 미주통일애국열사 선우학원 고문님의 서거 소식은 살아남은 자들이 이어나갈 조국통일과 민족번영을 위한 피끓는 투쟁심을 더욱 타오르게 합니다.

 

한생을 살아오면서 인자한 얼굴로 후배 동지들과 손을 따스하게 맞잡고 단호하게 조국 통일과 민족 번영을 위해 언제나 단결을 외쳤고 실천으로 미주 통일 투쟁의 역사를 개척하신 업적은 조국과 함께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미주지역에서 조국통일 투쟁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오신 증인이었으며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선우학원 고문님은 민족의 길은 통일이라면서 항상 주변의 후배동지들을 규합하고 단결이 통일이라며 강조하였던 말씀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미주지역에서 무한한 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내나라 내조국을 빛내기 위해 생을 아낌없이 바치신 불꽃같은 열정은 후배들이 계속 받아 안고 것입니다.

 

미주지역 동포들뿐만 아니라 남북해외 통일애국 인사들의 귀감이 되었던 선우학원 고문님의 불꽃같은 삶은 통일조국으로 나아가는 자랑스러운 영상과 함께 겨레의 자랑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미주통일애국열사 선우학원 고문님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남북이 하나되어 그토록 바라던 통일된 세상에서 백두산 위로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태양의 빛발아래 영원하길 기원합니다.

 

2015 5 14

재미동포전국연합회 성원 일동

 

 

애국열사 선우학원 박사님 영전에 바치면서

 

우리 민족의 애국자이신 당년 97세에 타계하신 선우학원님 영전에 삼가 추모의 뜻을 표합니다.

 

90 여생 오직 조국의 건국, 통일,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신 애국열사 선우박사님께 감사와 애도의 뜻을 보냅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일하신 공적은 그의 제자/후배를 통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일생을 그의 진보적 사상으로 일관시킨 결단성 우리 후배들이 자랑스럽게 발전시켜야 것입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선생께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하며 먼저가신 사모님 모든 동료와 영원히 잠드시기를 빕니다.

 

그의 영원한 영생과 평화를 빌면서,

 

2015 5 14

함성국 목사 올림

 

 

조국 통일운동의 선구자 선우학원 박사 영전에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며

행동하지 않는 종교는 아편이라고

그렇게도

분명하게 주장하고

확실하게 한평생을 행동하신

피맺힌 당부를 남기시고

당신은 우리 해외 동포 곁을 불쑥 떠나셨습니다.

 

평양에서, 동경에서 그리고 미국에서

지성의 젊음과 애국의 정열로 불태운

당신은

조국의 해방이며

민족의 통일이며

민중의 자유입니다

 

민족화해와

통일의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고

넘어지고 깨어지고 모략에 흘리면서도

오뚝이처럼 97 평생을 어제와 오늘

3 강산 남과 북에 가득

민족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존경이며 통일의 희망

오늘 훌쩍 떠나가신

선우학원 박사님

당신은 민족의 심장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선각자이시며

그리고 해외 통일운동의 선구자이십니다.

 

일제식민지 36

미제식민지 70

외세의 회오리바람에 미움과 증오뿐인

절벽의 세월 속에서

우리의 것이 아닌

좌익과 우익의 풍파 파열 속에서

선우학원 박사님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민족주의 정의와 실천만을 주장하여

우리민족끼리의 평행선을 실천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1938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해외에서 민족의 수난의 걸으며

황성옛터에 구름 조국의 하늘 바라보면서

망국의 서러움에 울분을 토해내는

젊은 유학생 선우학원

 

분단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지구의 방방곡곡에서

마냥 청춘처럼

행동하는 양심으로 절망을 모르는

우리 해외 동포 모두에게

동지이며 선생님

그의 민족애의 피맺힌 소망을

우리에게 맡겨 놓고 님은 떠나갔습니다.

 

2015 봄의 끝자락 5 13일에

홀연히 떠나가신

선우학원 박사님이여

시대의 선구자여

시대의 양심이여

외세가 아직도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피비린내 진동하던 야만의 시대를

 

그는

독재와 폭력 정권을 이겨내는 정신으로

부드럽고 따듯한 인간미의 힘으로

우리 모두에게

성공과 희망의 씨앗

조국통일의 씨앗을

뿌려 놓고 가셨습니다.

 

2015 5 14

뉴욕에서 유태영

 

 

 

해외 통일애국열사 선우학원박사님 영전에 바칩니다

 

해외 통일운동의 개척자이시며 미주통일운동의 중심으로 8천만 겨레의 조국통일 신심으로

자리하셨던 선우학원박사님의 영면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남측 조국의 겨레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우학원빅사님께서는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출세와 명예를 뒤로하고 조국의 자주화와 민주화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며 애국 애족 애민의 가시밭길을 걸어오셨습니다.

 

선우학원박사님께서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털어 재단을 설립, 통일운동단체가 올바른 길을 가도록 초석을 다져주셨으며 통일운동의 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선우학원박사님의 뜻에 따라 미국과 해외통일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조국통일의 날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우학원 박사님의 노력은 조국통일이라는 결실의 열매로 나타나고 있는데 선우학원 박사님은 정작 결실을 맛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시니 원통할 따름입니다.

 

특히 100세는 무난할 것이라고 만큼 건강하셨던 박사님이 갑자기 영면하심에 유족들은

얼마나 놀랍고 슬프시겠습니까 황망함과 슬픔에 잠겨 계실 유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저희 자주시보 홍번대표를 비롯한 모든 성원들은 선우학원박사님의 조국통일 유지를

받들어나갈 것을 결의하며 선우학원박사님이 조국통일의 날에 부활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15515

자주시보 홍번 대표

성원일동

 

 

해외통일운동의 거목이신 선우학원 박사님 영전에  바칩니다.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는 해외 통일운동의 거목이신 선우학원 박사님의 서거에 깊은 애도를 드리며 고인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2015 5 15

재도이췰란트동포협력회 일동

 

 

Dear Dr. Sunwoo Hakwon

 

I am emotionally ambivalent at the news about the passing away of Dr. Sunwoo Hakwon, my mentor; deeply saddened since I believe that his demise is a great loss for all of us in the Progressive movement, but, on the other hand, jubilant since he has finally started on a happy excursion in the expanse of the Constellations like Le Petit Prince, or the Little Price, concocted by my favorite French writer ‎Antoine de Saint-Exupéry.

 

He was a fine gentleman, a model of the Asian aristocracy, though he had condescended to walk with the camaraderie among the Masses in the grassroots, and I had a fond memory of having compared him to Jawaharlal Nehru, the paramount Indian statesman who called for a third world canon in the era of a bipolar ideological clash of the world.

 

Dr. Sunwoo was indeed a paragon, an epitome, and a political thinker, a monumental luminary standing tall and firm, in the long span of our National Struggles for Enlightenment, Independence, Progress toward Democracy and the Long March to a United Korea.

 

I am deeply indebted to him for his support, moral and financial, in the early days of my settlement in the U.S. after an extended period of exile in Europe, particularly for the publication of 나성논단, the L.A. Review.

 

He will live in our heart forever and ever.

 

May 15, 2015

 

Harry “Truman” Lee

이선명

 

 

존경하는 우리들의 선생님, 선우학원 박사님,

 

백승배(재미동포전국연합회 부회장, 재미범민련 의장)

 

지금 앞에 선생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신 아내 헬렌 소니아 사모님의 웃는 모습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우연찮게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발견된 소니아 여사 추모예배 발행한 순서지입니다.

 

사모님이 떠나신 6년이 가까워 오는 선생님은 홀연히, 아니 의연하게 임종을 맞으시고 우리 곁을 떠나시는군요.

 

아직도 정신이 또렷하셨는데. 마지막 순건까지 정세를 정확하게 궤뚫고 계시고 평가하시어 우리 모두에게 귀한 지침을 주셨었는데.

 

아직도 우리 곁에 계신 것만으로 힘과 격려였는데.

 

아직도 깊고, 넓고 높고 해박한 지식과, 명석한 지혜로 오늘의 세계를 진단하시고, 명료하게 가야할 길을 제시해 주시는 등대요 이정표이셨는데.

 

아직도 분단되어 미완의 광복 70년을 맞는 우리의 두고온 조국을 위하여 선생님이 하실 일은 산적해 있는데.

 

아직도 우리의 두고온 남녘 조국은 제발로 서지 못하고 사대주의에 목매어 끌려가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의 두고온 북녘 조국은 무릎꿇고 살지 않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고 당당히 제국의 힘과 맞서고 있는데.

 

아직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이 바로 서기 위해선 선생님의 편견없는 분별력과 지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오늘인데.

 

아직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선 선생님의 깊은 역사와 정치적 식견이 절실히 필요한데.

 

아직도 재미동포연합회는 조국이 하나되는 날까지 선생님의 지도와 협조가 절실히 요구되는데...

 

97 3개월, 결코 짧은 세월은 아니지요.

결코 헛된 삶이 아니셨지요.

그래도 우리 곁에 계속 남아계셨더라면

통일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시고 기쁘게 눈을 감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없습니다.

 

분단 역사의 생생한 목격자이셨던 연로하신 선배 선생님들이 우리 곁을 떠나실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메어집니다.

 

우리의 영원한 선생님, 선우 박사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야하는 , 선생님이 걸어가신 삶의 귀한 발자취는 선생님이 떠나셨어도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정의롭게 살아라.

평화를 위해 살아라.

나누는 삶을 살아라.

비겁하지 말고 용감하게 살아라.

편견없이 살아라.

두려움을 떨치고 조국을 위해 진실을 말하며 살아라.

분단된 조국의 하나됨을 위하여 살아라.

사람답게 살기 위해 편견없는 눈으로,

넓고 깊고 높은 이상을 추구하며 살지만

우리가 서있는 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살아라.

죽는 ,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라.

 

이런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들리는 합니다.

 

선생님, 훌륭하셨습니다.

아리랑, 슬픈 가락으로 점철된 역사와 삶의 현장 속에서도

꿋꿋하게 고비 고비 고개를 넘어 초지를 잃지 않으셨고

사람다운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삶을 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내 소니아 여사와 더불어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남아 있는 후진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십시오.

 

통일염원 70 5 16

백승배 올림

 

 

존경하는 선우학원 박사님에게

 

조국의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의 험난한 가시밭길을 지나 떠나시는 길은 아름다운 꽃길을 걸어서 빛나는 광명의 하늘나라 천국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끝까지 후배들에게 조국사랑의 큰 가르침을 남기셨습니다.

님의 큰 뜻 이룰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존경하는 선우학원 박사님 안녕히 가십시오.

 

김정현 드림

 

 

선우학원 박사님의 명복을 빌며

 

선우학원 박사님이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정말 가슴 아픕니다. 미주통일운동에 앞장섰던 귀하신 분으로 우리의 귀감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육신의 짐을 훌훌 털고 혼이 되어 저 먼 나라로 날아 가버렸습니다. 비록 몸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지만, 그분의 뜻과 영혼은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선우학원 박사님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조명지 드림

 

 

선우학원 박사님 영전에

 

95년 판문점에서 열렸던 조국해방 50돐 기념모임에서 김일성주석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 대해 지지 연설하시던 선우박사님의 정열적인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 뒤 가까이에서 뵙지는 못했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꾸준히 써오신 기고문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합니다.

 

선우학원 박사님. 부디 편한 잠드시기 바랍니다.

 

이준무 드림

 

 

존경하는 선우 학원 박사님 영전에 드립니다.

 

한없이 순결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조선에 97년 전 탄생하시어 끊이지 않는 외세의 침입과 전쟁으로 아픔을 겪는 민족, 외세에 의한 분단된 조국의 통일과 민족자주와 화해를 위해 한 세기 가까운 생을 사시면서 선우 학원 박사님은 우리 민족을 위해 아름다운 생의 자국자국을 남기셨습니다.

 

선우 학원 박사님의 조국통일에 바치신 사상과 정신 우리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그렇게도 바라던 민족통일을 못보고 가시어 가슴이 너무나 아픕니다.

 

하지만 선우 박사님 평생을 바쳐오신 조국통일 위업을 이루기 위해 저희들 더욱 열심히 살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가족들께 위로와 평안을 빕니다.

 

  숙 올림

 

 

 

선우학원 고문님의 영전에

 

 

한생을 조국을 위해 바치신 미주통일운동의 원로 선우학원 박사님을 잃은 동포들의 슬픔이 너무 큽니다. 선우 박사님은 생전에 미주동포들의 모범이셨고 저희 동포연합 성원들의 자랑이셨습니다. 그토록 조국통일을 바라셨는데 통일을 못 보고 가시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두 달 전까지만 하여도 제가 박사님을 뵈러 가면 박사님은 언제나 집필과 강연을 준비하시고 계셨습니다. 쓰신 원고를 받아드는 저는 100세를 바라보는 높은 연세에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고심하며 글쓰시는 박사님의 모습에 놀라움과 존경심으로 마음이 뿌듯하였습니다.

 

박사님은 언제나 절제된 생활이 몸에 배인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방문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 박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이렇게 나라를 위하는 고상한 생각을 하고 살면 박사님처럼 멋있게 나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병상 옆에서  “박사님의 뜻을 이어 통일운동 잘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방문자의 말을 들으시고 박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박사님은 힘이 거의 쇠진된 생의 끝날들에도 조국통일을 말하면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통일운동하는 후대를 늘 사랑하시고 격려해주시고 염려해주시던 선우학원 박사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습니다. 저도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시다 가신 박사님의 뒤를 이어 조국통일을 맞는 날까지 열심히 일하며 살겠습니다.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영순 올림

 

 

선우학원 박사님의 영전에

 

조국의 독립과 통일 과 평화를 위하여 일평생 헌신 하신 Korea 의 아들, 통일 된 그 날 강대국에 지배와 억압에서 자유를 찾아 Free Independent United Korea 에서 Korea 만만세 를 웨칠 날을 기다리시던 선구자, 선우학원 선생님의 발자국 마다 에는 Korea 의 눈물이 흐름니다.그 눈물의 발자욱 과 함께 수 많은 후세들은 평화 와 통일 된 코리아를 향하여 행진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하늘에 또하나의 코리아의 별이 되어 비최이소서. 기리기리 선우학원 박사님 의 명복을 빕니다.

 

2015 5 15

이복신 배상

 

 

 

Dear Dr. Sunwoo Hakwon

 

At a snowy day in December 1983, he came and sat in the back of the a large auditorium

 

of the Central Methodist University where I delivered a lecture for the Missouri Conference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He invited us a young couple whom he never met before to his home for coffee. Mrs. Sunwoo Hakwon spread a generous assortment of cookies and coffee before us. The aroma of the coffee materialized their generous spirit of hospitality. Prof. Dr. Sunwoo Hakwon was warm and open with his compliment. His brief assessment of my presentation was an embodiment of perspicacious intellect and generous heart. Mrs. Sunwoo shared with us her knowledge of the early brides of the Hawaiian sugarcane field workers which awakened me to that piece of history which I was in complete ignorance at the time. He was a pioneer in that he brought a scholarship from the eastern "block" of the global political thoughts and left his intellectual footprints in that area. When I visited that part of the world in late 1990s I met a few political theorists who acknowledged his contributions. Korea could have become much richer in expanding horizon of the political wisdom and theories if it had embraced him when he was there. I always wondered about their sons, because Mrs. Sunwoo talked to us about her attempt to match-make for their marriage. That story is long and much amicable. Another day may await to share.

 

I still remember the day when we met them at their home on a December snowy day that whited the whole world.

 

May he rest in eternal peace and rise in triumphant glory!

 

May 15, 2015

 

Young H Chun 

 

 



 

노길남

 

선우학원 박사님, 이게 웬일입니까? 선생님을 방문하였을때 침대에서 쓸어져 혼신상태를 발견하고 콘도측에 연락하고 아드님 선우국에 연락하여 긴급구조 병원 카이저로 가셔서 잘되어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방북취재를 와서 오늘 병원퇴원하여 민족통신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100살 잔치를 멋있게 하자고 약속하셨는데 벌써 떠나시면 저희들은 어찌하여야 됩니까? 생애를 오로지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하여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바쳐오신 해외동포 가장 큰 어르신인데 선생님이 벌써 가셨다는데 저는 너무나 충격적이라  퇴원하는 기쁨도 순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선생님 정말로 생전에 사랑하여 주신 그 은혜와 은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친아버님처럼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이 떠나신 상황에서 방북취재는 허전하기만 합니다. 장례식에도 갈수 없는 사정이라 민족통신 성원들에게 부탁만 드리는 상태입니다.

선생님 북부조국은 부흥발전으로 비약하고 있고, 통일의 날도 멀지 않은 정세이어서 100살되시면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열차로 여행하자는 말씀도 드렸는데 먼저 가시다니 너무나 슬픔니다.

선생님, 얼마나 통일을 염원하며 갈망하여 오셨습니까?

그 한을 살아있는 저희들 모두가 힘을 합쳐 선생님의 평생소원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선생님 편히 쉬세요. 돌아가서 영혼이라도 만나 영전에, 그리고 묘지에서 인사 올리겠습니다.

선생님, 생전에 주신 그 사랑,   애민 애족 애국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한층 더 열심히 뛰고 또 뒤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서 뵈올때까지 안녕히 주무세요.

평양에서 막 퇴원하여 올리는 민족통신 대표
노길남 삼가 인사 올립니다.

2015 519일 오후3
평양호텔에서

 


선우학원선생님 유가족분들에게 드립니다

존경하는 선우학원박사님이 별세하셨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접하여 슬픔을 금할수 없습니다.유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1980년에 선우박사님을 일본에서 처음 만나뵙고 그후 선우박사님은 언제나  나의 존경하는 스승이시였습니다

선우박사님꼐서는 내가 발행 편집하는 잡지  통일평론에  좋은 글을 보내주시였을 뿐만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시고 격려하여 주시였습니다.최근에도 따뜻한 편지를 주시였는데 별세하셨다니 세상에 이런 무정한 일이 있겠습니까
추도식에 참석못하고 정말로 죄송합니다,용서하십시오
존경하는 스승 선우학원박사님의 영전에  일본에서 깊은 애도의 인사를 올립니다
선우학원 박사님부디 편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통일평론    최석룡드림 
tongilpyongron  choi songryong 
2015 518    일본 도꾜

 



추모사

고 선우학원 박사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조국을 강탈당한 망국의 시대에 오시어 식민지 조국의 참혹한 참상을 직접 보고 겪으신 지식인으로서 갈라진 조국의 하나 됨을 위하여, 분단민족의 비극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하여 한 생을 바쳐오신 조국통일운동의 선구자, 민족의 화해와 대단결의 증언자이신 선우학원 박사님께서 513일 애석하게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비통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양심에 따른 정의를 몸소 실천하시어 미주, 나아가 해외 동포운동사에 ‘시대의 거울’로 살아오신 사랑하는 아버지, 할아버지를 보내며 애통해 하는 유가족 분들의 슬픔과 자주평화통일의  한길을 걸어오신 존경하는 애국자를 영결하는 미주동포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함께 하는 애도의 인사를 올립니다.

 

언제나 자애로운 인자함으로 격려와 용기를 주셨던 해외통일운동의 대부(代父)선우학원박사님! ‘선우평화재단’을 설립 인재들을 키워내신 선생님! ‘재미동포연합회’고문으로 못다 하신 통일과업 유가족들께서 이어가리라 확신하며 살아 있는 후학, 후배들이 선우학원 박사님의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존경하는 고 선우학원 박사님!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편히 영면하십시오!

 

 

2015 516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유럽지역본부

        



선우학원 선생님을 추모하며

 

선생님께서 갑작스럽게 떠나셨다는 소식에 접해 민족통일운동의 버팀목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안타깝고 슬픔이 앞섭니다.

선생님은 일찍이 이남의 민주화운동을 하시던 중에, 조국의 분단문제, 즉 통일 없이는 민주화가 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으로 통일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때 마침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나고 이를 계기로 남한에서 반미운동이 일어나면서 미국이 우리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다고 인식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반외세 반미운동과 함께 전개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시어 해외 친북인사 첫 세대 명단에 등록하시었습니다.

이와 함께 선생님께서는 통일은 남과 북이 함께하는 것이니 북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창하시고 솔선 북과 만남을 주선하시었습니다. 마침내 1981 11월 비엔나에서 제1회 북과 해외기독자간 대화를 성사시키시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을 방문하시어 김일성 주석과도 면담하시고 ‘미국에서 우리 통일운동은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친선, 평화를 주선하는 것’이라는 전향적인 통일운동의 방향을 접하시고 이를 관철하기 위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학자로, 신앙인으로, 민족통일운동의 선각자로 살아오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마침내 조국통일운동의 남북해외 3자연대 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결성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통일운동의 선각자로 통일 투쟁의 역사를 개척하시었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동지사랑 교훈을 마음에 담고 통일된 조국을 앞당기기 위하여 열심히 투쟁하겠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미국에서 통일운동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2006년에는 ‘선우평화재단’을 설립하시어 통일운동의 후대들을 지원하는 활동과 함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선우 선생님이시여,

이제 당신이 꿈꾸던 통일된 조국을 이룩하는 꿈, 외세의 간섭에서 벗어난 자립된 평화의 나라를 만들려던 꿈, 위대한 당신의 삶의 길을 따라 당신의 시대를 우리가 대신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선우 선생님이시여,

부디 편히 쉬십시오.

힘들었던 이승의 기억은 모두 버리시고 아름다웠던 기억만 간직하시고 부디 편히 쉬십시오.

선생님이시여, 통일된 조국에 부디 부활하소서.

 

2015 5 18

조국통일범민족연합 해외본부

 



선우학원 박사님 영전에

 

한평생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을 위해 온 몸을 바치신 선우학원 박사님의 서거는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일찍이 아버님을 3.1 만세운동에서 여이신 박사님은 어머님의 충언대로 일편단심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을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가슴 깊이 간직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살아생전 항일운동은 물론, 조국분단을 종식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모든 열정을 바치셨습니다.

 

또한 해외동포들과 북녘 동포와의 만남을 주선, 통일의 물꼬를 트시고, 해외동포들과 각 통일단체들과의 긴밀한 유대와 결속, 그리고 해외 역량 있는 정치인들에게까지 조국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인식시키는데 혼신의 열정을 쏟으셨습니다. 그뿐이랴, 사재를 터시어 통일을 위한 재단을 설립해 조국의 평화통일과 북미친선을 도모하셨습니다.

 

90여 성상 조국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고, 민족의 앞날을 위해 노심초사 하신 우리의 사랑하는 애국열사 선우학원 박사님의 공적과 애국심은 우리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이제 조국통일의 날을 끝내 보지 못하시고 홀연히 떠나가신 선우학원 박사님, 당신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산은 조국통일과 겨레 사랑입니다. 그러하여 남은 우리들은 이를 성취하기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조국의 험한 가시밭을 함께 걸어오신 선우학원 박사님, 이제 모든 고난과 아픔을 훨훨 털어 버리시고 이 꽃 피는 봄날 사랑하는 아내 소니아 곁으로 아지랑이에 풍겨 편안히 가소서.

 

20155 23

 

카나다 코리안연합회

6.15공동선언실천 카나다지역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카나다지역본부


[조사]


뜨거웠던 5 날의 광주를 기리던 , 뜻밖에 선생님의 서거 소식을 접하였습니다.

조국사랑, 통일운동에 평생 꽃을 피우셨건만 선생님 가시는 길에 있게 도열하지 못하는 우리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 평생 바치신 노고를 우리 힘으로 삼아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 성원들은 유족들과 범민련 재미본부 전체 성원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선우학원 선생님의 삶이야말로 주체의 , 사상의 삶을 사셨다고 생각합니다.

나라 없는 민중의 삶이 어디 사람다운 삶이었겠습니까. 우리는 선생님께서 이미 일제 치하 때부터 조선독립을 당신의 독립이요 삶으로 여긴 고귀한 흔적을 결코 잊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선생님께서 일신의 영달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험난한 조국통일의 길에 기여한 빛나는 행적을 되돌아봅니다. 사상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은 정녕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참된 삶의 표본이셨습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선우학원 선생님께서 평생 통일애국의 길을 걸어오신 진정한 애국자의 삶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선우학원 선생님의 서거에 삼가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통일된 조국에서 영생하소서


2015
5 20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

 



조전

선우학원박사님의 유가족들에게

 

우리는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명예위원장이신 선우학원박사님께서 서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하 여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고인의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선우학원박사님께서는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통일을 위하여 한생을 바쳐 오셨으며 통일운동을 위해 자신 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온 열렬한 해외통일운동의 원로이시였습니다.

 

박사님께서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으나 조국통일과 애국애족을 위한 투쟁에 남긴 그 공적은 우리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며 선생께서 그처럼 바라시던 조국통일의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것입니다.

 

다시한번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6.15공동선언실천 중국지역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련합 재중조선인본부

2015515

 


고 선우학원 선생의 영전에 삼가 올립니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안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력적으로 활동하신 6.15공동선언실천 해외측위원회 명예위원장이신 선우학원선생님께서 우리의 곁을 떠나시였다는 뜻밖의 비보에 접하여 비통한 마음을 억누를 수 없으며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1970년대말로부터 시작된 민족통일심포지엄, 90년대 쿄에서 진행된 범민족대회 등을 통해 선우학원 선생님의 뜨거운 통일의지에 많은 재일동포들이 크게 고무되었습니다.

 

 최근에만도 언론을 통해 선우학원 선생님께서 97세 청년과 같다며, 오늘도 집필활동과 강연활동을 끊임없이 이신다고 소식을 들었기에 일본에 있는 동포들의 충격과 슬픔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우학원 선생님께서는 애석하게 서거하셨지만 한평생을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한 길에 바치신 공적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와 함께 길이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시한번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며 고인이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통일위업 성취를 위하여 더욱 매진하여 줄 것을 충심으로 바랍니다.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지역위원회

201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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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

선우학원 선생님 부디 편히잠드소서~!!!!

백두산님의 댓글

백두산 작성일

그렇게 정정하시든 박사님이 운명하신것 믿기지 않습니다.
박사님은 97세 이심에도 기억력이 대단하시고 돌아가시기 몇일전 까지
글을 쓰시며 분단된 우리조국은 통일되야한다는것 세상변화에 어떻게
우리들이 대처하며 살아야 한다는것등 수없이 많은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었습니다.

박사님은 이제 우리곁을 떠나셨지만 박사님의 그 숭고하신 가르침
잊지않고 분단된 조국통일위해 우리모두 더 힘뫃으겠습니다.

박사님
이제 편안히 쉬시길 바랍니다.

아구동님의 댓글

아구동 작성일

음식 들어가는 호수, 인공호흡 을 거절하시고
후손들에게 내가 죽거든 슬퍼하지 말라며
우리인간의 생명은 당연히 간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위엄있게 사시다 위엄있게 인생을 마치신 선우학원선생님께 한없는 존경을 표합니다
빨갱이 소리를 들으시면서도 그렇게 위대하게 사시다 가신 선생님의 생애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이제는 평온한 안식을 취하십시요.

목란꽃님의 댓글

목란꽃 작성일

선우학원 박사님과 같이  훌륭하신분을 전혀 몰르고 그동안 살았다는게 너무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 도데체 무엇을 알고 살아온 것인지... 통탄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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