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12신]인도적 지원에 힘쓰는 신영순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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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4-02-26 09:17 조회35,999회 댓글1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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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북녘동포사회 신체장애인을 돕는 재미동포, 신영순 여사(67)의 사랑실천을 보며 감동한다. 이번 광명설절에도 신영순 여사는 중국 심양공항에서 산떠미같은 짐짝들을 가지고 고려민항에 오른다. 마치도 그의 혈육을 찾아 북을 방문하는 밝은 모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평양=12신]인도적 지원에 힘쓰는 신영순 여사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북녘동포사회 신체장애인을 돕는 재미동포, 신영순 여사(67)의 사랑실천을 보며 감동한다.
이번 광명설절에도 신영순 여사는 중국 심양공항에서 산떠미같은 짐짝들을 가지고 고려민항에 오른다. 마치도 그의 혈육을 찾아 북을 방문하는 밝은 모습이다.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환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는 2012년 8월 북조선이 최초로 참가한 제14회 런던장애인 올림픽 북녘선수단과 동행하며 장애인 선수단원들을 돕는가 하면 북녘신체장애인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갖고 윌체워를 비롯하여 그들이 필요한 물건 등을 지원해 주기 위해 미주동포사회를 포함하여 남녘동포들에게도 다가가 동족을 돕는 인도적 지원사업에 앞장서 왔다.
그는 누구일까?
신영순 여사는 1946년 8월6일 서울태생이다. 숭의여고에서 공부하며 졸업후에는 패션을 전공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목회상담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인 선교사이며 목사(아더 킨슬러)와 1968년 11월 결혼했다. 알고보니 그의 미국인 남편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의 시아버지 되는 미국인 목사가 1928년부터 1941년까지 평양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기간 그의 남편을 낳았다고 한다.
슬하에는 2남1녀가 있고, 그 아래 손자와 손녀 2명이 있다고 한다. 큰아들은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이고, 작은 아들은 책임주임이라고 한다.
신영순 여사가 북녘사회를 대상으로 인도적 지원사업에 종사하게 된 계기는 1998년 5월께 북조선을 위해 인도적 지원사업을 해온 ‘유진 벨’ 재단 인맥과 인연이 되면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후 2004년 ‘등대복지회’를 만들어 지원사업을 해 오다가 2006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녘선수들과 만나 그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했고, 2010년 중국 광조우에서 열린 아시아대회에 참가한 성원들과 인연이 되어 조선장애자 협회를 지원하는 일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북녘에 빵공장을 지어 지원하는 사업, 장애인들에게 악기를 구해 지원하는 사업, ‘푸른나무’와 같은 비영리단체를 통해 북을 돕는 사업등을 펼쳐 왔다. 그의 본성이 누구를 돕지 않으면 견딜수 없는 타고난 성격이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듣게된다.
그는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거주하지만 그 동안 한국에 많이 머물면서 인도적 지원사업을 펼치면서 남녘동포들과 해외동포들을 대상으로 북녘돕기 인도적 지원사업에 매진해 온 인물이다.
그는 국내외를 다니면서 가장 안타까운 일은 북녘동포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건전한 사회를 이루고 있는데 밖에서는 “다 굶어죽는다”느니 뭐니 하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여서 “저들이 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적이 많았다고 고백한다.
신영순 여사는 심성이 고와서인지 감동적인 일이 있으면 눈시울도 잘 적신다. 비전향장기수 선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적도 보였고, 북녘동포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며 굳세게 살아 온 기적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눈시울을 적시곤 했다.
기자는 볼때마다 밝은 웃음을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신영순 선생은 정말 사랑의 전도사’라고 부르고 싶다.
*신영순 여사의 연락처:
이멜은 kinsler@mac.com , 전화연락처:미국 425-412-0522 혹은 425-354-3018
*관련보도 자료:
[평양=11신]북녘경제방향 어디로 가나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economy&wr_id=2127
[평양=10신] 북녘 민족악기 수요 폭증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715
[평양=9신]비전향장기수 선생들 자택방문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706
[평양=8신]광명성절 기간 이모저모(2) |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701
[평양=7신]광명성절 행사들 중 이모저모(1)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700
[평양=6신]재일동포 공연 감동, 그 자체였다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695
[평양=5신]서거한지도자도 하늘처럼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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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4신]북지도자,”기어이 통일성취”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694
[평양=3신]광명성절 행사들 본격 진행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693
[평양=2신]경공업과 생필품에 몰두하는 북부조국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691
[평양-1신]광명성절 맞아 해외동포들 방문
http://www.minjok.com/bbs/board.php?bo_table=tongil&wr_id=4689
댓글목록
람후님의 댓글
람후 작성일
북한 인권 영화 국내 네티즌 관람 평가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NetizenPoint.do?movieId=76870&t__nil_upper_mini=netizenGradeImg
창무님의 댓글
창무 작성일
굶주림보다 더 큰 목마름
http://www.cgntv.net/#/tv/15540/586/1172/vlist.cgn?pageNo=5&pageSize=5
무신론자님의 댓글
무신론자 작성일
위의 동영상은 기독교를 내세워 북의 영상을 폄훼시키며 동시에 사실아닌 왜곡정보를
그럴듯하게 선전하는 데이비드 라는 동포목사(?)의 입을 통해 북을 깔아뭉개는 내용이다.
정말 거짓목사이며 허위인물이며 ...통일사기꾼이라고 하면 딱이다.
그 배경이 국정원의 검은 돈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검은돈의 뒤에는 미제국주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이 동영상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줄 알 것이다.
진보목사님의 댓글
진보목사 작성일
민족통신 편집실에게...
위의 동영상은 악독한 세력의 선전물입니다.
가능하면 지워주세요.
목사, 예수를 내세워 사기치는 것입니다.
전도사님의 댓글
전도사 작성일
김길남이 쓴 일기장이라
정보원들이 조작한 문건으로 들었습니다.
한 탈북어린이가 교회를 돌아다니며
이 아동이 쓴 일기장에는
북한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인육을 먹었다고
그 어린이가 썼사고 합니다.
지하교회 이야기도 100% 사기입니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이야기가
이동영상에
그리고 그 책에 써놓았다는 군요.
하교님의 댓글
하교 작성일
한 어린 소녀가 겪었던 북한의 어린이 교도소
http://www.alaskakcc.com/php/board.php?board=board&page=10&command=body&no=1016
학동님의 댓글
학동 작성일
하나원에서 만난 할머니
오늘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3년 만에 한국에 오니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한국말로 잘 통하고 시스템도 척척 잘 돌아가고 특히 인터넷이 빨라 좋습니다.
부모님과 식사를 하고 동기 신부가 차를 태워주어서 방학동안 머물 숙소로 오는 중에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통일과 북방선교에 관심이 있는 신부님이라 한 번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하나원'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신부님께 한 봉사자가 고해성사를 보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고 하더랍니다. 보통은 봉사자 중에 가끔 고해를 보기도 해서, 봉사자가 원하는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탈북자 중 한 분이 고해를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한 할머니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연세가 여든 내외가 되어 보이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성호를 그으시면서 말씀도 못하시고 계속 우시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60년 만에 보는 고해성사였던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공산정권 하에서는 종교생활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종교 생활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톨릭 신자라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했습니다. 딸과 함께 탈북을 하였는데 그 숨 막히는 긴장을 뚫고 국경을 넘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도 모르게 성호를 그으셨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하는 것이 무슨 행동인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60년이 넘게 힘든 일이 있으면 남이 못 보도록 이불을 뒤집어쓰고 성호를 긋고 주님의 기도를 바쳤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동기 신부님은 하염없이 흐느끼는 할머니에게 계속해서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 그건 할머니 잘못 아니에요..."라고만 되풀이 해 주었다고 합니다. 평생 고해를 못하고 미사를 못 한 것이 어찌 할머니 탓이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평생 믿음을 지켜 오신 그 할머니 앞에 저를 비롯한 모든 현대의 신앙인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할머니는 60년 만에 하는 첫 미사와 영성체의 행복감에 젖어 미사 참례하시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신부님은, '우리는 왜 그런 첫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맞습니다. 저도 오늘 한국에 들어오면서 공항 표지판이 한글로 되어있고 안내방송이 한국말로 나오는 것 하나에서도 너무 행복해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첫 마음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렇게 먹고 싶은 음식도 한두 번 먹어보면 더 이상 땅기지가 않습니다.
저도 눈물을 흘려 본 경험을 생각해 보니 군대 들어갔을 때 몇 주 미사를 갈 수 없다가 가게 되어 눈물이 났던 적, 또 신학생 때 불만이 쌓여가서 한 이틀 굶어보고 영성체를 했더니 눈물이 났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땐 미사가 정말 은혜 자체였고 성체 하나로 온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서서히 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 첫 마음으로 산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오늘은 우리나라에 첫 사제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대축일입니다. 저는 김대건 신부님의 대축일을 맞이해서 그 분을 빌미로 사제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만약 북한에 단 한 명의 사제만 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해를 보고 미사를 하며 소원을 풀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김대건 신부님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사제가 된 분입니다. 물론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첫 방인 사제이셨지만 채 1년도 활동하시지 못하고 잡히시어 순교하시게 됩니다. 그 때 어떤 신자들은 평생 단 한 번 한국어로 고해성사를 받고 강론을 들었을 것입니다. 한 번 미사를 하기 위해서 부산에서부터 옹기장이 행세를 하며 목숨을 걸고 경기도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일 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이지만 한국에는 단 한명의 한국말을 쓰는 사제밖에 없었고 신자들에겐 그가 유일한 보물이었습니다. 그건 그분의 성품과는 별개였습니다. 한국말을 쓰는 사제라는 것 하나만으로 그분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신자들이 대신 목숨을 바치겠다고 달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그 할머니 이야기를 해 준 신부님은 사실 신자에게 멱살도 잡히며 모함도 당하는 등 여러 상처를 받은 분입니다. 물론 사제가 먼저 잘 해야 신자가 잘 해 줄 수 있다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신자들이 그 나라에 마지막 남은 사제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겨준다면 신자들의 마음을 보고라도 더 달라지려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사제에게 손을 댈 수 있는 정도로까지 사제라는 것이 하나의 보통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되었을까요?
아마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사제가 둘이 생기고 셋이 생기고 더 많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 첫 사제를 대하던 마음이 무뎌져버린 것이 아닐까요? 사제도 물론 첫 모델인 김대건 신부님을 본받아야겠지만 신자들도 우리나라에 단 한 분밖에 없었던 사제를 대하듯이 지금의 신부들을 대하려는 마음을 다시 가져야하지 않을까요?
유럽 교회의 퇴락이 어쩌면 프랑스 혁명 이후 사제들을 하나의 공무원이나 직장인처럼 여겨지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까요? 사제를 존중하지 않으면 하느님은 사제를 보내주시지 않으십니다. 선물은 고맙게 받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제의 품위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시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제가 비록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하더라도 미사 드리고 고해성사 드려주는 것만으로도 그런 사제를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사울은 하느님께서 사무엘을 시켜 기름을 부어 축성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입니다. 기름을 부어 축성했던 직책은 사제와 왕과 예언자였습니다. 기름은 성령님을 나타내고 하느님께서는 성령님을 부어 특별한 직무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으로부터 축성된 사울은 하느님께 죄를 범하게 되고 자신이 받았던 성령님을 잃게 됩니다. 그렇게 되니 마음이 불안하게 되고 다윗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한 번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었습니다. 사울이 자고 있을 때 다윗이 부하들과 그의 막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의 부하들은 사울을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느님께서 성별하여 뽑으신 왕을 어찌 인간이 손을 댈 수 있느냐?”며 다만 겉옷자락을 자르고 그의 창과 물통만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이젠 하느님도 사실 그에게서 떠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기름 부어 성별하신 왕이었기 때문에 옷자락을 자른 것만 가지고도 다윗은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나중에 사울의 군사 하나는 전쟁터에서 크게 상처를 입은 사울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사울이 상처를 크게 입어서 어차피 죽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이 적군에게 죽기를 원치 않았고 그 신하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왕이 될 다윗에게 조금은 아부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반응은 예상외였습니다. 비록 자신을 죽이려는 원수였을지라도 하느님께서 성별하신 사람이었는데 그에게 함부로 칼을 대었던 그 군사를 나무라고 즉시 칼로 쳐 죽였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다고 생각되는 사제더라도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축성한 몸이고 그 사제를 욕하거나 해를 가하는 일은 그 사람을 뽑아 거룩하게 축성하신 하느님께 대해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우리는 ‘독성죄’라 부릅니다. 큰 죄 중에 큰 죄입니다.
사제는 김대건 신부님의 온전한 순교정신을 본받아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신자들 차원에서도 사제를 마치 이 나라에 있는 유일한 사제인 것처럼 대할 줄 아는 마음을 갖는 것 또한 적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 전삼용 신부
http://www.ocatholic.com/bbs/zboard.php?id=study_08&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66
끼니님의 댓글
끼니 작성일
북 토끼풀 뜯어먹던 여자 꽃제비, 결국...
http://koreasantaclaus.tistory.com/812
쪽집개님의 댓글
쪽집개 작성일
댓글에 알바생들이 들어와 방해가 있군요.
IP 번호 확인하여
이들의 뒷조사 필요할 꺼 같네요.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저분의 딸이 뇌성마비인거 몰랐죠? 악질탈북자들 여기들어와서 욕설 함부로 하지마라! 엉?
멋진인생님의 댓글
멋진인생 작성일신영순이사장님의 북녘장애인들에 대한 사랑도 감동스럽지만 여기 대한미국 남녘의 힘없는 남녘장애인들도 도와주는것이 신영순이사장님이 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