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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79] 1845년에 영국이 세운 “기독교 통가왕국”은 166년간 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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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1-11-01 19:42 조회1,92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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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는 79번째 나라로 “사모아”“통가”“투발루” 세 나라가
폴리네시아 지역에 속한 섬 나라들이다. 이 글에서 통가와 투발루 두 개의 섬 나라에 대하여 살펴 본다.
통가와 투발루도 역시 사모아 처럼 영국을 비롯하여 서구 강대국들의 침략적 지배에 의하여 시달리는
비극적인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통가의 정식 국명은 <통가왕국, Kingdom of Tonga>이다. 통가왕국은
166년 동안의 장구한 왕국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특이한 나라이다. 하지만 통가왕국의 국토는 코리아 반도의
1/30에 불과한 748km2이며 인구는 약 11만명이 있다". 그의 79번째 연재기획을 소개한다. [민족통신 편집실]


[연재-79] 1845년 영국이세운“기독교 통가왕국" 166년간 건재

지구온난화의 재앙으로 치닫는

서구 문명의 첫 피해국 “투발루"


*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IMAGE##>대양주(Oceania)를 세 지역으로 구분한다. 1) 멜라네시아 2) 미크르네시아 3) 폴리네시아로 구분한다.

세번째 지역인 폴리네시아 (Polynesia)를 지리적으로 말하면 1000개 이상의 섬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하지만 인종학적이며 문화권으로 구분하면 폴리네시아에는 세개의 독립국 섬 나라들이 있다.

“사모아”“통가”“투발루” 세 나라가 폴리네시아 지역에 속한 섬 나라들이다. 이 글에서 통가와 투발루 두 개의 섬 나라에 대하여 살펴 본다. 통가와 투발루도 역시 사모아 처럼 영국을 비롯하여 서구 강대국들의 침략적 지배에 의하여 시달리
는 비극적인 기나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통가의 정식 국명은 <통가왕국, Kingdom of Tonga>이다. 통가왕국은 166년 동안의 장구한 왕국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특이한 나라이다. 하지만 통가왕국의 국토는 코리아 반도의 1/30에 불과한 748km2이며 인구는 약 11만명이 있다.

통가왕국은 170개의 섬으로 구성되여 있으며 사람이 거주하는 섬은 36개 섬 뿐이다. 이 36개 섬들을 크게 3개 제도구역으로 나누어 행정구역으로 구분한다.

1 바바우 제도구역 2) 하파이 제도구역 3) 통가타푸 제도구역으로 구분 한다.

통가타푸 제도구역에 통가왕국의 수도 누쿠알로파가 있는데 수도의 인구는 6만 5천명이다. 통가왕국의 바바우 제도구역에는 세계의 모든 요트맨들이 동경하는 순항향로가 있으며 천혜의 아름다운 항구로 유명하다.

통가왕국에는 태평양 열대 우림에서 분화구로 생성된 호수들과 화산이 있어 유명하며 해저의 절벽 아래로 abseiling를 하는 곳으로도 명소로 알려져 있다.

1.통가의 간추린 고대 역사


통가의 고대역사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런데 BC 3500년경에 사람들이 통가섬에 살고 있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동위원소, 핵종연구방법으로 밝혀진것은 최소 BC 1100경에 분명히 지금의 통가 제도에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민담의 역사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태초에 탕갈로아 라는 태양 여신이 어떤 세력에 의하여 잉태하여 사람을 출산 했는데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통가의 조상들이 되여 태고로 부터 통가 섬에서 나라를 건설하여 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AD 950년경에 통가 제도를 통치하고 있던 최초의 잉카인, Ingkain왕도 분명히 통가의 시조 여신의 후예라고 오늘의 통가인들의 전설은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곽학이 밝히는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통가인, Polynesian들은 분명히 아시아에서 이동해 온 사람들이 분명하며 심지어이 아시아인들은 하와이나 미주 대륙을 경유해서 통가 섬들에 정착했다고 까지 주장하는 학설도 있다. 이와 같은 학설은 통가 섬 사람들이 “단고두마”를 재배하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로 인하여 인정된다.

통가의 고대왕조가 처음 건설된 것은 AD 950년 경이었다. 투이통가 1세가 세운 통가 고대왕조는 중앙 태평양 전역에 넓리 알려진 왕국으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고 한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14-15세기에 중앙 태평양의 섬나라들간에 전쟁과 내란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는데 통가의 고대왕조에서도 전쟁과 내란이 계속됬다.

이런 상황속에서 통가왕조는 유럽인 탐험가들을 처음 대면하게 됬다. 1616년에 네덜란드의 탐험가 Willem Schouten이 처음 통가에 상륙한 이후부터 수없이 많은 유럽인들이 경쟁적으로 통가의 고대왕조에 들어 왔다.

1700년대에 들어서서 많은 영국인들이 통가에 왔다. 특히 유명한 영국 해군의 James Cook의 상육은 특별한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1773년에 영국인 James Cook에 대한 전설적 이야기는 통가에서 뿐만 아니라 남태평양에 있는 많은 섬 나라들의 피침략 역사에도 넓리 기록되여 있다.

1793년에는 스페인의 해군 Malaspina가 통가에 관심을 가지고 상륙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통가의 고대왕조 역사에 있어서 가장 특기할 역사적 기록은 1797년에 영국 London 선교회의 선교사들이 통가왕조국에서 선교활동을 대대적으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1822년에는 영국의 웨슬레 감리교단의 선교사들이 통가에서 보다 더 대대적인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1845년에 영국의 선교사들은 <통가왕조>의 길고 긴 895년간의 역사를 전격적으로 변혁시키고 <통가왕조>의 국가 체제를 근본적으로 말살시켰으며 통가의 정치적 개혁을 주도하는 주동적 역할을 감행하고 있었다.

영국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선교를 빙자하여 <통가왕조>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영국인들의 구미에 맞는 <통가왕국>을 새로 건설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영국의 선교사들이 어떤 방법으로 <통가왕조>를 붕괴시키고 또 어떤 수단으로 새로운 <통가왕국>을 전격적으로 건설하여 성공을 했는가?

영국 선교사들이 취한 선교의 수단과 방법의 그 과정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ㄱ) 1831년에 영국 선교사들은 통가의 왕족중에서 총명하고 현대적 감각이 특이한 젊은이 Tu’i Kanokupolu를 접근하여 그를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는데 일단 크게 성공했다. 그다음 선교방법으로 영국 선교사들은 Tu’I Kanokupolu에게 세레 (영세)를 주고 세레명을 부여하여 라고 하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러 주었다.

ㄴ) 1845년에 조지 투포우는 총명한 통가왕족의 젊은이로서 용맹성과 웅변술이 탁월하며 정략적 판단력이 명확한 인물인것을 확인하고 영국 선교사들는 조지 투포우를 설득(사실은 매수)시켜 구세대 <통가왕조>를 끝장내고 새시대 <통가 왕국>을 새로 건설할 것을 공동으로 결의했다.

ㄷ) 1875년에 영국 선교사 Shirly W. Baker의 전적인 도음과 지시에 따라서 통가의 새로운 <통가 왕국>을 건설하고 선포함과 동시에 <통가 왕국>의 헌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새로 제정한 헌법에 기초하여 군주제 <통가왕조>의 페지를 선포하고 새로운 <통가 왕국>을 창건한다고 정식으로 선포했다.

이것은 영국 선교사들과 조지 투포우가 합동하여 이르킨 고대적 쿠테타 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AD 950년에 최초로 창건된 <잉카인 왕조, Ingkain>는 895년만에 완전히 페지되고 통가에서 말살되고 말았다. 그리고 영국을 종주국으로 삼음과 동시에 현대적 제국주의 체제하에서 군주제 <통가 왕국>이 새로 창건됬던 것이다.

하지만 AD 950년에 창건된 옛 <잉카인 왕조, Ingkain>의 핏줄이 아주 끊어진 것은 결코 아니였다. 다만 쿠테타로 인하여 구시대의 정치체제와 왕조의 형태만 변화하여 영국식 왕정체제로 변경한것 뿐이였다.

<통가왕조>의 핏줄을 그대로 이어 받은 조지 투포우는 <조지 투포우1세>라고 하는 새로운 명칭으로 1875년에 영국이 세운 <통가 왕국>의 초대 왕으로서 왕위에 오르게 됬던 것이다.

통가 왕국의 초대 왕으로 등장한 조지 투포우 1세는 독립국의 왕으로 1888년에 독일과 미국등 그 당시 강대국들과 각각 국교를 맺었다.

하지만 1900년에 통가 조지 투포우 1세의 왕정국가는 영국의 강요에 따라서 영국의 보호령이 되고 말았다. 영국의 보호령이 됨으로 인하여 통가의 정식 국가대표는 영국의 여왕이 됬다.

1970년에 이르기까지 통가의 <조지 투포우 1세>때 시작된 통가 왕국은 여전히 아직도 영국의 보호령이라는 수치스러운 꼬리표를 그대로 달고 있어야만 했다.

1970년에 영국의 보호령 이라는 수치스러운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 버렸지만 또 이번에는 <영국연방국 Commonwealth>의 회원국 이라고 하는 위치로 변경 됬다. 그러다가 1999년 9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통가 왕국>으로 UN의 회원국이 됬다.
그러니까 통가 왕국은 영국의 보호령으로 독립을 선포한지 99년만에 국가의 공식 명칭인 <통가 왕국, Kingdom of Tonga>으로 UN의 회원국이 됬던 것이다.

통가 왕국의 역대 왕들의 명단을 소개한다.

1대: 조지 투포우 1세 1845-1893.
2대: 조지 투포우 2세 1893-1918.
3대: 조지 투포우 3세 1918-1965 (여왕)
4대: 조지 투포우 4세 1965-2006
5대: 조지 투포우 5세 2008년 8월- 현재

2.통가 왕국의 오늘의 현황과 전망


<통가 왕국>은 창건이래 영국의 보호령으로 쿠테타의 기록이 없는 왕들의 군주 통치하에서 절대로 변화를 모르는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통가 왕국의 사회적 구조의 내면을 드려다 보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순들로 가득차 있다.

통가 왕국의 전통적 사화구조는 1) 왕가 2) 귀족 3) 마타푸레, 왕족과 귀족의 후손들 4) 평민으로 4개의 사회적 구조가 불변의 전통으로 엣날 부터 오늘 까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국가의 국토는 정부, 왕, 귀족 및 귀족의 자손들의 소유일 뿐 평민 대중은 원천적으로 토지의 소유권이 전혀 없는 나라이다.

총리와 각료도 국왕이 임명하고 10여명의 각료와 장관들도 왕이 임명하고 일단 임명을 받으면 종신제이다. 통가 왕국에는 단 2명의 도지사가 있는데 도지사도 역시 국왕이 임명한다. 통가 왕국에서 평민이 정부에 참정할 수 있는 기회는 완전히 봉쇠되여 있다.

통가 왕국에서 남자가 16세에 이르면 나라와 귀족들의 토지를 제한된 한도 내에서 차용할 수 있으며 차용에 대한 보상은 현물로 공납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구조로 인하여 통가 왕국에서 민중의 개인적 자유라는 것은 상상도 할수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한한것은 어느 한 여행자가 통가 왕국에서 목격한 경험담을 통하여 통가 왕국의 사람들의 삶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경험담의 일부를 소개한다.

<일요일이 되자, 온 마을에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알고 보니 통가는 그리스도교 국가이며 98%가 기독교인들이다. 국기도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색을 띄고 있다. 이 작은 섬에 거대한 교회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주일은 거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

<놀라운 것은 특별한 성가대가 없이 교회안의 모든 사람들이 찬송을 하는데 찬송의 수준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성악가 뺨치는 수준의 실력가들이 교회 마다 200명쭘 되는데 여러 교회를 두루 돌아다녔는데..그중 한 교회는 저녁 예배를 드리기 전 거의 2시간 가량 계속해서 찬송을 했는데 그 아름다운 찬송 노래 소리가 마칠 때까지 떠날 수가 없었다>

통가 왕국을 창건한 조지 투포우 1세가 통가 왕국을 창건한 근본 동기는 영국인 선교사의 세레 (영세)를 받은 후부터 라고 전해 지고 있는 것처럼 통가 왕국은 온통 기독교로 온 나라가 채색 되여져 있다.

1874년에 제작된 통가 왕국의 “군주의 노래”가 오늘 통가 왕국의 “애국가”로 불러지고 있다. 통가 왕국의 “애국가”의 가사를 소개한다.

오, 가장 전능하신 주여, 그대는 우리의 주 이시옵니다. 그대는 기둥이며
통가를 향한 사랑 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내려다 보소서. 지금 그리하고
있나이다. 그리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길, 또한 투포우(왕)를 구하시라는
말씀이나이다.


1874년에 재작된 통가 왕국의 <애국가>인 <군주의 노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영국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가사 인것이 확실하다. 군주를 세워놓은 것이 영국이며 군주를 찬양하게 한것도 역시 영국이였다. 뿐만 아니라 1874년에 투포우 1세를 국왕으로 세운후 부터 투포우 5세에 이른 2011년 까지 137년 동안 통가 왕국이 건재하도록 이끌어 온 힘은 분명히 영국이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분명히 영국이 통가에 친영국 왕국을 세워 놓고 배후에서 기독교를 지배세력으로 삼고 그 영향력을 오늘 까지 행사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통가 왕국에서 종교의 자유는 말뿐이고 영국의 자유웨슬리안 교회가 통가의 입헌 군주와 함께 막강한 권세와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국이 누리고 있는 통가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 보이고 있다.

그것은 의외로 통가 왕국의 군인 44명을 이락크 전에 파병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통가 왕국은 280명의 군인들을 아프칸전에 파견 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것은 영국의 지배세력이 일부 점차적으로 미국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통가 왕국의 투포우 4세는 41년 동안 집권을 한 후에 체중이 200kg에 달해서 중병환자가 되여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 이것도 역시 미국식의 영향으로 인하여 풍요로운 방탕한 식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 된다.

뿐만 아니라 2008년 7월 29일에 투포우 5세가 국왕 대관식을 거행하여 왕위에올라 앉았는데, 투로우 5세는 58세의 총각으로 새 국왕으로 취임을 했다. 태평양의 조그마한 보수주의 섬나라 통가에서 총각 국왕이 탄생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종래의 보수주의적 전통에서 큰 변화의 징조라고 여겨진다.

투포우 5세는 호주와 영국에서 교육을 마치고 통가로 돌아와 정치보다는 경제와 사업에 치중하여 심지어 맥주회사에 이르기까지 통가의 주요산업에 깊숙이 관여하여 통가에서 변혁의 새바람을 몰고 왔다고 평가된다.

보다 더 놀라운 것은 투포우 5세는 통가 왕국의 전통을 깨고 최초의 평민 출신의<국무총리>를 천거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까지 반드시 왕족이나 귀족중 에서만 국무총리로 등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투포우 5세는 본인이 국무총리로 재직하고 있던 당시 2006년에 평민 출신인 세비레이를 자신의 후임자로 천거하여 전격적으로 변혁을 이르켰던 것이다.

평민 출신으로 통가 왕국의 첫번 국무총리가 된 세비레이 총리는 2007년 4월에 중국을 방문하여 호금도 주석의 국빈으로 인민대회당에서 영접을 받았다.

이자리 에서 호금도 주석은 중국과 통가 왕국과의 수교는 견고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베레이 통가 왕국의 총리는 중국이 제공한 통가에 대한 경제원조는 통가의 경제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 후 부터 통가 왕국의 국무총리는 임명제가 아니라 의회의 비밀투표로 선출하는 제도가 정착되여 계속 시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의 보호 밑에서 투포우 1세의 등장 이후 부터 170년 동안 끄떡 없이 기독교 풍토의 전통하에서 통가 왕국의 제 5세 까지 유지되여 왔다.

하지만 오늘에 이르러서 통가 왕국은 영국의 영향권에서 부터 서서히 밀려나 이제는 미국 제국주의적 통치권 하에 들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3. 통가 왕국에서 설치는 한국 기독교 선교사들의 허상


‘선교한국’의 깃발, 남태평양 그 많은 섬들 어디를 가던지 만나 볼수있다. 명칭과 대외적 명분이 선교이지 실상은 현지에서 한인교회를 가리켜서 선교지 라고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호주의 오크랜드에만 1백여개의 한인교회가 있다. 호주와 뉴지랜드 전체에 퍼져 있는 현지 한인교회의 수는 300교회 정도 될것으로 추측된다. 남태평양의 1000 여개의 섬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른바 ‘선교한국’에 대하여 필자는 너무 방대하여 정확한 통계를 파악할 수 없다.

그리하여 필자는 제한되 정보이기는 하지만 <통가 왕국>에서 ‘선교한국’의 깃발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교회의 선교의 허상을 보고 너무 실망되여 느낀바를 간추려서 적어 본다.

통가 왕국에서 약 10년간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Y 목사가 말하는 통가 기독교에 대하여 들어 보자.

<이 나라는 거의 99% 기독교 국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동네마다 교회가 하나 이상 있고 매일 새벽기도를 드리며 일 주일 내내 예배를 드리는 나라입니다.
주일이면 종일 예배를 드리고 술을 먹을 때도 기도하고 술을 마시며 공공 식당에서도 누구든지 일어나 기도를 하고 식사를 합니다. 주일은 일제히 영업행위를 할 수 없으며 주일날 계약하는 것은 법적으로 무효 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만큼 기독교 국가입니다>

<지구상에 아직까지 왕정 정치를 하는 나라는 이 나라 뿐입니다. 왕족 몇몇이 이나라 경제를 웅켜쥐고 있으며 귀족 10여명이 나머지 경제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지하자원이 없는 이 나라는 가난을 면할 길이 없읍니다. 투포우 4세 왕이 죽자 국민들이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폭동이 일어 났지만 중국인들이 상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상점들이 약탈과 방화로 손해를 본 것뿐 사회적 변화는 전혀없읍니다>

<한편 대부분의 통가인들은 거칠고, 거짓말 도둑질 나태하고 게으름등 너무나도 비복음적이며 비윤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가정중심의 기복신앙이고 사회생활면에서 전혀 비신앙적인 부패한 기독교 국가 입니다>

<2005년 그 때 당시에 통가에 있는 한인은 70여명인데 교회는 3군데 있고 목사는 4명이나 있었음으로 보기에 민망했고 여러가지 어려움이 많이 이었읍니다.
지금 본인이 목회를 하고 있는 임마누엘 한인교는 교인이 40명입니다>

<중국에서 온 조선족과 일본인 그리고 원양한인 가족들이 교인들이며 모두 생활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교회건물이 없이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읍니다>

<목회자의 생활 대책은 영어권 나라인 통가에서 “영어연수 조기유학” 알선으로 현재 30명이 한국 학생들이 통가에서 공부하고 있음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통가는 왕국임으로 교육은 무료이며 외국인 학생도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를 해 줍니다>

<초등학교로 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곳에서 “영어정복”이 가능하며“미국유학”의 길을 여는데 있어서 두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학부모들에게 통가마큼 매력적인 나라는 없음니다.>

<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가도 영어문제는 걱정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의 빠른 적응을 돕기 위하여 3개월정도 개인지도를 받도록 하고 있읍니다. 조기유학 비자를 받는데 3주가량 시간이 요합니다.>

<저도 한국의 교육환경에 갈등하면서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이곳 통가까지 오게 되였읍니다. 가난하고 작은 나라에서 세계를 향하여 발돋음할수 있는 기반을 다진다면 남들이 웃겠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 속에서 행해진다고 확신하고 통가에서 사역을 계속 하고 있읍니다. 자녀들의 통가 조기유학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열락을 바랍니다.>

위의 Y 목사가 전하는 통가 역사와 통가 기독교에 대한 글을 읽고 영국의 선교정책에 대하여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분노와 허탈감을 금치 못하는 것은 한국 기독교가 선전하고 있는 “선교한국”의 허상과 그 음페와 외곡에 더욱 더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2010년 1월 현재 한국의 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있는 수는 22,130명이라고 한다. 이 엄청난 한국 해의 선교사의 수는 한국 교회가 세계에서 제 2의 선교사 파송국으로 알려지게 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앞으로 10-15년후에 10만명의 선교사를 전 세게에 파송하게 될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선교사들을 배출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늘 한국에는 60개의 교단이 있으며 180-200개의 신학교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신학교들이 경쟁적으로 신학교 졸업생과 목사를 배출하고 있다. 이와같이 과잉 배출로 인하여 선교사 10만명 파송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좁은 남한 땅에서 해외로 탈출하고 싶은 기회와 욕망을 선교사라고 하는 빙자와 미명하에서 탈출의 기회로 이용되고 있는 면도 숨길 수 없는 실상이라 하겠다.

통가 왕국이 세계 제일 기독교국 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가 왕국은 최악의 군주적 왕국으로 퇴보된 후진국으로 잔존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도 통가 왕국 처럼 유명한 기독교 국으로 세계 제 2의 선교사를 배출하는 나라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도 통가처럼 최악의 비 기독교적인 보수주의 나라가 되여 친미 종속국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시민연합 (CCA)은 극우파 보수주의 연합체로 나경원 후보를 지지하는 3가지 조건을 e-mail 로 발송하여 선거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1) 한국의 100여개 미션스쿨들의 좌경화를 막아야 한다.
2) 서울시의 좌경화를 막기 위해 나경원을 당선시켜야 한다.
3) 국가보안법을 지키기 위해 한나라당의 후보자 나경원이 서울시장이 되야한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를 바로 앞두고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는 박원순 후보를 가리켜 “사탄 마귀”라고 설교하면서 친미보수만이 한국의 살길 이라고 했다.

통가 왕국에서 친영 보수 왕정에 대하여 무비판적인 통가 교회들이 굴종과 부패와 타락으로 비복음화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통가에서 명분상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김홍도 목사와 동질의 목사들이며 또한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의 추종자들이 대다수 이다.

그러니 통가에서 이른바 선교사역을 한다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통가 왕정의 독재와 비복음적인것으로 변질되 기독교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이나 판단이 없다.

통가에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은 오직 현지에 있는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심지어 중국의 조선족들만을 상대하여 한국식 보수주의로 일관된 사역을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 선교사들이 1990년대 초에 조선반도에서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못본척하도록 선교정책을 세우고 우리 민족에게 현세를 포기하고 체념하여 오직 내세 천국지향적인 신앙만을 가지도록 강조하였던 미국의 옛 선교방법을 오늘 통가에서 한국 목사들이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소의 섬나라, 죽음이 차오르는 투발루에 대하여


투발루 섬 나라는 로마 바티칸 시티 보다 약간 큰 나라로서 세계에서 4번째로 작은 나라이다. 9개 섬들을 모두 합한 면적은 26km2 이며 인구는 11.000명이다. 9개의 섬중의 1개 섬은 무인도 이다.

투발루 섬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568년에 스페인의 항해자 였다. 하지만 투 발루 섬에 처음 상육한 사람은 1819년에 영국인 Ellis 였다. 1862년에 영국인 선교사 W. Murray 목사가 최초로 기독교를 투발루 섬에 전파했다.

그후1876년에 영국 London 선교회에 소속된 교회를 각 섬마다 순회하여 세웠다.

투발루의 각 섬마다 교회가 설립된 후에 1892년에 투발루 섬들은 영국의 보호령이 됬으며 1978년에는 투발루 섬들이 영국 식민지가 됬다. 투발루에서 선교사들과 교회 설립이 영국의 보호령과 식민지로 만드는데 선봉적 역할을 하고 있었다.

24시간 태양 빛이 게속 비치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광활한 영토를 확보하는데 있어서 투발루 작은 섬들도 영국에게는 중요한 섬들이 되고 있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후 1960-1970년대에 있어서 세게의 모든 군소 약소국가들이 독립을 쟁취하는 시기였다.

투발루 섬 나라도 1978년 독립을 했다. 투발루는 영국의 보호령이 된후 부터 86
년만에 투발루의 9개 섬들을 하나로 통일시켜 <투발루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다.

하지만 투발루는 말로만 독립국이고 실제로는 영국의 군주제도 밑에서 영국 여왕이 투발루 국가의 수반이 되고 있다. 영국 여왕이 임명한 국무총리가 투발루 공화국을 자치정부 라는 미명하에서 통치하고 있다. 투발루 정부에 법원이 있지만 최고 법원은 영국 London에 있다.

그런데 오늘 투발루 주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인류역사 최초로 환경위기에 처해 있으며 국가적으로 전체 국민이 난민이 되고있다. 투발루 국토의 제일 높은 곳이 바다의해수면에서 3.7m 뿐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문명의 부산물인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투발루 바다의 해수면이 3.48m에까지 상승했다. 투발루 산의 최고로 높은 지점까지 겨우 22cm 단 한뼘 차이에 바다 물이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투발루의 죽음이 차오르는 해수면 상승에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서구문명국들의 무제한적 산업개발로 인하여 북극에 있는 빙산이 녹아 내리고 있는 것이 문제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하여 바다의 평균 해수면이 1 년간에 1.8mm 상승한다고 과학자들은 발표했다. 하지만 투발루의 경우는 매년 해수면이 5mm 상승하여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투발루는 머지않아 ”국토포기”선언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2004년의 국제 에너지기구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1 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9.73t이 된다고 발표했다. 호주는 17.53t 이라고 했다. 이에 반하여 투바루는 0.46t에 불과 하다고 했다.

투발루 작은 섬 나라는 바다 물속에 잠겨 사라지고 말 위기에 처해 있는데 대하여투발루는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이다. 투발루 섬 나라의 잔디밭에는 군데군데 바다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농장에도 땅 밑에서 바다 물 거품이 솟아 오르고 있으니 농작물이 견딜 수 없이 되고 만다.

이 작은 섬 나라 투발루 사람들의 길고 긴 아름다운 삶의 추억들이 이렇게 물속에 살아져 비참하게 없어지고 말것인가?

투발루의 이엘레마이 총리가 “기후변화”문제에 대하여 웨치는 소리는 단호하다.

<서구 문명의 강대국 사람들이 편안하게 차를 타고 여행하고, 외식하면서 유흥을 즐기고 있는 동안,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무런 책임도 없이 이렇게 지구 온난화의 자연재해로 인하여 난민으로 몰락해 가고 있다>

국토 면적 26km2 에불가한 남태평양의 작은섬 나라 투발루는 해수면상승으로 인하여 국토의 일부가 임이 잠겼고 15-20년 후에는 국토 전부가 완전히 수몰될것을 예상하고 있다.

투발루의 현재 상황은 식수 부족으로 이웃 나라들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바닷물을 식수화하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UN의 발표에 의하면 강력한 대책이 없는 한 지구온난화에 따른 해면 상승으로 인하여 투발루는 바다 속으로 완전히 가라 앉을 것이라고 몇년전에 예고 했다. 하지만 서구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 추구에만 몰두하여 UN의 경고에 대하여 마이동풍으로 여기고 있을 뿐 이였다.

오늘의 투발루에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는 자연의 재해로 인하여 난민이 되고 있는 11,000명의 투발루 사람들이 어디로 피난하여 정착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오직 뉴질랜드 정부 만이 40세 이하로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에게만 제한하여 뉴질랜드로 이민 오는것을 조건부로 받아 드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투발루 정부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난민을 받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 했다고 한다. 하지만 투발루 정부는 투발루 난민들이 이웃 나라에 이주하여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곳이라도 따뜻이 받아주는 곳을 원하고 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이번 79번째 연재로 남패평양의 통가와 투발루에 대한 글를 쓰고 있는데 코리아반도 남녁에서는 서울 시장 선거가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선거의 결과는 보수주의 집권당인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자를 물리치고 무소속의 박원순 후보자를 서울 시장으로 선택하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른바 30-40대들이 남녁땅에서 지각변동을 이르켰다.

롱가와 투발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혁을 코리아 남녁 서울에서 정정 당당 하게 역사적 변혁을 이르켰다.

통가와 투발루에서도 수백년 동안 뿌리 깊이 내린 침략적 기독교 정치 풍토에 대하여 지각변동의 운동이 일어 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가 통가에서 펄치고 있는 친미 보수주의적인 “선교한국”의 허상으로 인하여 통가 왕국에서 겨우 눈 뜨기 시작하는 변화와 개혁의 의지 마져 오히려 손상시키고 있음을 크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영국은 투발루에서 1800년대 부터 2011년 오늘까지 200여년 동안 보호령과 식민지 그리고 영국의 연방국으로 묶어 놓고 엘리자벧 여왕은 명목상 투발루의 국가수반이 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 투발루는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영국과 미국등 문명국들의 과학적 고도성장으로 인하여 첫번 피해국이 되고 있는 투발루 11.000명 국민들은 갈곳이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하여 북극의 빙하가 녹아 내려 투발루의 해면이 5mm씩 상승하여 이미 국토가 잠기고 있다. 투발루 공화국의 이엘레마 총리는”국토 포기선언”을 이미 발표했다. 문제는 11,000면 투발루 국민의 갈곳이 어디인가의 문제이다.

역사적으로 영토확장에 성공한 영국과 환태평양 제국주의 지배자로 등장한 미국은 응당 투발루의 11,000명의 갈곳 없는 국민에 대하여 전적으로 책임을 저야 한다.

영국이 미개한 투발루 사람들에게 기독교 선교를 통해서 개화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자부한다. 그렇다면 오늘 서구 문명국들이 이르킨 자연재해로 인하여 수몰의 위기에 처해 있는 투발루 난민들에 대하여 영국과 미국은 기독교 선교적 차원에서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지만 영국과 미국은 투발루 공화국 국무총리 이엘레마아 총리의 단호한 웨침과 탄원에 대하여 침묵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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