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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55]아프리카 니제르: 전쟁 책임을 니제르에 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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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11-23 12:09 조회3,0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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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는 이번에는 민족통신 연재-55번째로 아프리카의 니제르에
대해 연구고찰한 내용을 다루면서 이 나라도 프랑스와 영국및 미국에 의해 장기간 시달려 왔고, 지금도
강대국들에 의해 간섭을 받고있는 처지이다. 그의 논문을 전재한다.[민족통신 편집실]


[연재-55] 아프리카 니제르

이라크 전쟁 책임도 니제르에 전가



-자원의 풍부 속 내전으로 빈곤과 굶주림에 신음하는 니제르
이락전쟁의 원인을 니제르에게 뒤집어 씌우는 또 하나의 CIA 공작-


<##IMAGE##>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통킹만공격 자작극>에 의하여 시작됬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만천하에 분명히 밝혀졌다. 최근 한국의 천안함 폭파사건도 미국이 저지른 자작극이라는 비밀이 숨길 수 없는 사실로 또 다시 밝혀지고 있다.

미해군 소속 살보 다이버들이 설치한 기뢰의 작동으로 인하여 천안함이 폭파되였다고 워싱턴 DC의 탐사 보도 기자 웨인 매드션은 폭로를 했으며 또한 미국의 인터넷 신문들은 미국의 음모설을 대대적으로 보도 했다.

뿐만 아니라 쿠바의 카스트로는 미국이 천안함을 폭파시킨 이유와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그의 심층분석으로 밝혔다. 1) 일본에 새로 등장한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끄는 연합정부는 반미와 중도좌파의 경향이 강하다. 2) 유키오가 이끄는 연합정부는 일본의 오키나와에 있는 미국기지를 옮기려는 계획을 강행하려 하고 있었다. 3) 미국은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하여 일본안에 위기의식을 불러이르킬 음모를 고안해 냈다. 이 음모가 바로 천안함 폭파사건인 것이다.

위의 세가지 이유 때문에 미국은 조국반도에서 북한당국이 천안함을 폭파시켰다고 조작하고 허위선전을 했다. 일본에서 <반북반공> 여론를 이르키는데 있어서 일단 성공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하여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은 퇴진됬고 미국은 일본에서 친미세력이 재집권하게 된것을 대환영을 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이명박 정권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데 대한 불안감을 해결하기 위하여 천안함 폭파사건을 교묘하게 활용했다.

미국이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을 퇴진시키고 일본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를 그대로 존속시키는데는 일단 성공했다. 또한 한국에서 이명박 정권을 옹호해 주는데 있어서도 역시 효과를 보았다고 미국은 만족해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은 천안함 폭파 자작극으로 인하여 얻은것 이상으로 잃은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1) 미국의 동맹국들이 절대로 미국의 해명을 곧이 듣지 않고 미국의 자작극으로 인식하고 있다. 2)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거짓행동에 대하여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 북한은 미국이 꾸민 자작극에 대하여 유유히 대처했으며 이에대한 반응이 전세계에서 돋보이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작극으로 다른 나라의 혁명을 무참하게 무너뜨리고 그 나라에 친서방 독재정권을 세운다. 그리고 그 독제정권을 옹호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또 다른 자작극을 이르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 로 미국이 베트남전을 이르키기 위하여 <통킹만 폭격> 자작극 이였으며 또 한국의 <천안함 폭파>도 자작극이였다. 필자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니제르에서도 미국 과 영국은 이락전쟁을 이르켰으며, 사담 훗세인 대통령을 살해하기 위하여 모략과 사기극을 꾸민 것과 꼭 같은 사기극을 또 꾸미고 있다.

1. 이락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니제르에게 전가시킨 CIA의 공작


필자는 미국 최고의 정치뉴스레더지 Counter Punch가 폭로한 The Niger Uranium Deception (니제르 우라니움 사기, 11/9/2005) 기사를 분석함으로 미국의 사기극이 이락전의 시작과 어떻게 관련되였는가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911 쌍둥이 빌딩 폭파이후에 미국의 네오콘과 부시 대통령 행정부는 중동의 반미세력인 알 키에다를 소탕하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삼고 그 방법을 고안해 낸것이 바로 이락전의 개시였다. 하지만 이락전을 개시하려면 전쟁의 정당성을 먼저 찾아야만 했다. 이락전의 정당성을 찾기 위하여 이용한것이 바로 니제르를 이락전에 끌어 들인 <니제르 우라니움 사기극> 이였다.

지면상 제한으로 니제르 우라니움을 이락전에 관련시킨 사건발전을 연대순으로 간략하게 ㄱ.ㄴ.ㄷ 순으로 정리한다.

ㄱ. 2001년 2월 24일에 미극 국무장관 Colin Powell은 중동의 모든 정보들을 종합하여 이락은 핵에 관련된 어떻한 능력의 징조가 전혀 없으며 이웃 나라들에게도 전혀 위협이되지 못한다 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뉴욕의 쌍둥이 빌딩폭파 이후부터 모든 책임은 이락에 있다고 단정을 하고 그 증 거를 만들기 위하여 CIA는 조작극을 시작했다.

ㄴ. 2002년 초에 CIA 수장 Tenet는 유럽에서 영국 이태리등 여러 정보기관과 정치적 지도자들과 긴밀히 접촉하고 돌아와 니제르가 이락에게 우라니움을 대량으로 제공했다라고 발설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부통령 Cheney는 그의 참모들을 대동하고 CIA에서 극비로 10여차 방문하여 모의를 했다. 이락전쟁을 개전할 정당한 이유를 조작 하고 있었다. 2002년 2월 12일에 Cheney 부통령은 CIA의 허위 보고를 근거하여 이락은 우라니움 500톤을 니제르에서 제공받았다 라고 최종적 결론을 내렸다.

ㄷ. 하지만 2002년 2월 26일 미국은 보다 더 정확한 증거를 확인하기 위하여 특사로 Wilson을 니제르에 보냈다. 3월 5일에 니제르에서 돌아 온 Wilson은 CIA의 최종 결론은 허위이며 니제르가 이락에 우라니움을 제공한 아무 근거가 없다라고 2명의 CIA 고위요원에게 보고했다. Wilson의 보고를 뒷바침할 만한 여려 정황들이 계속하여 유럽등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ㄹ.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002년 7-8월경 여름철에 백악관에서 흘러 나오는 뉴스들은 매우 심상치 않은 기사들 뿐이였다. 이락은 대량살상무기를 임이 보유 하고 있으며, 핵무기 프로그램은 진전되고 있으며, 우라니움을 니제르에서 보급 받았다라고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었다. 7월 23일 영국의 불레어 총리도 백악관의 보도에 동의하고 있었다. 8월 26일에 Cheney는 성명을 발표하여 이락 이 핵무기를 소유하는 것은 시간문제하고 했다. Rice 국무장관도 이락전을 지지하여 CNN에서 회견을 했다.

ㅁ. 2002년 9월 12일에 부시 대통령은 만일 UN이 행동하지 않으면 미국은 단독으로 이락을 침공하겠다고 폭언을 했다. 9월 24일에 영국은 미국에 동조하면서 이락은 분명히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대량 획득한것이 확실하다고 발표하면서 영국의 침략근성을 그대로 들어냈다. 2002년의 한해가 질때까지 미국내 여론과 세계의 여론들은 양분되여 미국의 이락침공에 대하여 찬반으로 들끓코 있었다.

ㅂ. 2003년 1월에 백악관에서는 CIA와 부시행정부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시대통령 2003년 년두교설 국회연설문에 <니제르 우라니움 획득> 이라는 문구를 넣을것인가? 넣치 말것인가? 이와 같이 대립된 논쟁은 허무하게도 부시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2003년 3월 19일에 미국은 드디어 이락침공을 선포 했다. 이락 전쟁이 선포된후 전쟁은 7년 8개월이 지났다. 오늘에 이르러서 이락인 사망자 수는 1,421,937명이다. 그 외에 부상자들과 난민의 수는 수백만에 이르고 있다. 미국인의 사망자는6,400명이고 부상자는 32,930으로 나타났다.

ㅅ. 이락전과 관련하여 백악관, CIA, 국무성과 국방부등 내부에서의 도덕성이 무너지고 정보와 정치적 비밀들이 줄줄히 새여 나오고 있다. 니제르를 CIA의 요청으로 방믄했던 Wilson은 Cheney 부통령의 요구사항인 이락이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구입했다는 증거를 전혀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2003년 7월 6일 Wilson은 뉴욕타임스에 기고하여 진실을 밝혔지만 이락전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도덕성은 무너졌다. 부시 대통령과 행정부는 Wilson의 임무수행의 보고는 묵살해 버리고 오히려 조작된 CIA 보고와 영국이 제공해 주는 허위보고를 수용했다.

Wilson을 모략하기 위하여 CIA의 앞잡이 노박은 다음과 같은 글을 언론에 발표했다. 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Wilson은 남의 가정의 비밀에 속하는 문제를 언론에 공개했다고 법원에 고발을 했다. 재판은 3년이 흘러갔는데 그동안 Cheney 부통령의 전비서실장인 Luise Liby가 이 재판에 고의적으로 관련되여 재판방해 및 위증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희생양이 되었고 원심은 흐지부지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 재판은 또 하나의 사기극으로 끝나고 말었다.

니제르의 우라니움 문제와 깊숙히 관련된 이탈리아의 수상은 이탈리아의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사실에 있서서 이락이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을 정말로 획득했는지에 대하여 미국은 정확히 아는바가 전혀 없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이와같은 말은 미국이 건국이래 지난 250년동안 세계를 지배해 오며 얼마나 허위와 거짓을 일삼아 왔는지를 극명하게 입중해 줃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강대국 지배의 종말>을 예고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2. 자원의 풍부속에서 최고 빈곤의 나라 니제르의 간추린 역사



니제르는 고대로 부터 북족의 아랍세계의 베르베르족과 남쪽의 아프리카 여러 족들과 접촉하면서 여러 세기를 살아 오면서 북과남이 서로 대상교역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 지역에 뚜렷한 국가조직은 성립되지 않고 있다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이르러서 서쪽에 송가이 왕국과 남동쪽에 하우시족의 여러 왕국들이 설립됬다.

그후 16세기 말에서 18세기 초까지 동쪽에 보르누 왕국이 건설되였고 18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는 오늘 날의 나이제리아와 더불어 하우시족의 왕국에 속해 있으면서 광대한 이슬람 봉건국가를 이루고 있었다.

1805-30년에 영국인들에 의하여 나이저강이 처음 탐험되였고 1854-70년에는 독일인들이 오늘의 니제르 땅을 탐사했다. 1891년에 프랑스인들이 세네갈에서 동진하여 나이저강을 건너 니제르 땅에 이르렸고 프랑스인들의 보고를 받고 프랑스 정부는 1897년에 이지역에 프랑스군을 주둔시켜 영유권을 주장했다.

1906년에 영국과 프랑스는 상호협정을 맺고 저들의 마음대로 나이제리아와 니제르 사이에 국경선을 설정하여 두개의 나라로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니제르와 부르카니파소를 하나로 묶어 프랑스에 소속된 영토를 만들었다. 하지만부르카니파소는 1947년에 따로 떨어져나가 독립국이 됬다.

1960년 8월에 니제르는 프랑스에서 완전 독립국이되여 UN의 회원국이 됬다. 니제르는 면적이 1, 267,000km2 이며 미국 텍사스주의 약 2배정도이며 세계에서 22번째로 면적이 큰 나라이며 인구는 9,671,900명이다.

니제르는 독립국으로 1960년에 디오디 하마나가 초대대통령이 되여 3선 대통령으로 1974년 까지 집권을 했다. 디오디 하마나 대통령은 남쪽의 아프리카계의 기독교 세력과 프랑스의 배경으로 튼튼한 권력으로 통치를 했다.그러나 통치 기간에 극심한 가뭄과 북쪽의 이슬람 투아레그 족의 거센 반발로 항상 유혈출동등으로 인하여 고전을 면치못하고 있다가 1974년에 쿠테타로 결국 퇴진했다.

1974년에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세이니 쿤세는 1987년 사망할 때 까지 13 년동안 지독한 친서방 독재를 했다. 쿤세 대통령도 역시 북쪽의 이슬람 반정부 세력과 고전을 했으며 특히 리비아의 후원을 받고 있는 반정부 투쟁은 날이갈수록 심해져서 한때 타협으로 민간내각을 구성하는 모양새를 취하기 까지 했으나 실권을 놓치 않고 고전을 하다가 폭력정치가라는 독재자의 이름을 남기고 1987년에 사망했다.

특히 쿤세 대통령의 임기기간인 1970년대 초부터 니제르에서 우라니움이 처음 발견되여 프랑스는 이미 그때부 우라니움 광산을 만들고 독점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기면서 니제르를 세계의 최빈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쿤세 대통령은 13년의 집권기간에 프랑스에게 우라니움 독점권을 고스란히 넘겨주고 있었다.

1987년에 군사위원회 참모장 세이브가 국가수반으로 집권했고 1992년에는 민선으로 우수만 대통령이 집권을 했다. 하지만 1996년에 니제르는 또 다시 군사 쿠테타가 발생하여 마이나사라 장군이 군정으로 집권을 했으나 오래 가지못하고 1999년 4월에 암살로 쓰러졌다. 같은 해 11월에 마마두 탄자가 니제르의 제7대 대통령으로 집권을 시작했다.

마마두 탄자 대통령은 5년 임기를 마치고 2004년에 재선 되여 막강한 권력으로 국무총리를 비롯하여 26명의 장관들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제도를 채택하여독재정권의 기반을 튼튼히 했다. 마마두 탄자 대통령은 구종주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고 있었다.

오늘 니제르는 소규모의 육군과 공군이 있을 뿐인데 그나마 프랑스의 군사원조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니제르의 군인들은 프랑스에 가서 군사훈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 니제르에는 55명의 프랑스 군사전문가들이 체류하여 탄자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 주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니제르는 우라니움 매장량이 세계 5위이며 우라니움 외에도 귀중한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외국 자본들의 흥미를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니제르에 여행을 다녀온 서방인들의 기행문에 의하면 니제르는 아프리카에서 최빈국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최하의 빈국으로 알려져 있다.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고 마실 물을 길러 4-5마일을 걸어 가야만한다고 했다.

<세이브칠드런> 이라는 구제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니제르에는 기아로 당장 굶주린 아이들이 37만명이 있다고 한다. 니제르 정부도 현재 780만명이 식량난으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고 한다. UN도 니제르는 세계 182개 국가들 중에서 최빈국으로 182위라고 하는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300년둥안 종주국 노롯을 해 온 유럽의 강대국들은 오늘도 여전히 아프리카의 나라들에서 서방에 무조건 종속하는 친서방 정권을 유지는데 만족해 하고 있을뿐 그 정권이 자국의 인민들에게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미국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남미에서와 아프리카에서 반미정권만 들어서지 않는다면 어떤 독재자라도 친구로 삼고 그 독재자들이 안전하게 장기집권을 할 수 있도록 군부지원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3. 니제르의 쿠테타와 내전에 대하여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 공통적으로 쿠테타와 내전의 몸살이 유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특히 세계에서 최빈국의 나라인 니제르에서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는 쿠테타와 내전에 대하여 필자는 그 이유를 한번 깊이 살펴 보았다.

1974년에 발생한 쿠테타 부터 2010년 2월에 발생한 쿠테타는 4번째 쿠테타이다.내전과 쿠테타는 항상 연쇠반응으로 연결되고 있다. 니제르에서 생산되는 우라니움은 그 나라의 수출의 74%를 차지하는 하늘의 축복이다. 하지만 이 하늘의 축 복은 진정성이 전혀 없는 지도자들 때문에 오히려 부정부패를 조장하는 나라의 불행의 화근이 되고 있다.

니제르의 부정부패와 이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는 내란과 쿠테타에 대하여 극히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한 실례를 들어 설명을 시도해 본다. 니제르에서 1970년대부터 생산되는 우라니움은 국가 발전의 잠재력이 되고 있는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절망의 보화가 되고 있다.

니제르의 건국 초기에 군부가 정권을 잡고 있을때는 반란의 조짐만 보여도 관련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북쪽의 투아레그족의 반란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다른 부족들도 반란에 가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투아레그족의 반란의 이유가 무엇인가? 니제르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우라니움 생산국인데 그 우라니움이 생산되는 곳이 바로 북쪽 사막지대의 투아레그족이 옛날부터 살아 온 거주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우라니움이 니제르의 국가 경제의 전부라고 말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원의 이득은 투아레그족에게는 그림의떡이 될뿐이고 오히려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우라니움 독소에 의하여 발병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수가 날이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니제르의 역대 정권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모든 이권을 다 내주면서도 자국민 특히 그 지역에 살고 있는 투아레그족에게는 심한 오염과 질병을 줄뿐 아무 헤택을 받지 못하고 수십년을 살아 왔다.

투아레그족의 반란을 처음 이르킨 지도자는 마노 다약이었다. 하지만 1995년에 마노 다약은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반란은 내전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프랑스는 재빠르게 반란 구릅과 니제르 정부사이에 중재자로 등장했다. 양측의 <평화협정>은 잠정적으로 이루어 짐으로서 타 협이 진행됬다.

사망한 마노 다약의 계승자로 아갈리가 활약했다. 니제르의 계속된 쿠테타에 대하여 새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오히려 투아레그족에게는 압박이 더 가해지고 있었다. 이전에 양측이 맺은 <평화협정>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을 뿐이였다.

투아레그족의 새로운 지도자 아갈리는 비상한 각오로 <평화협정>보다는 앞으로 <무장투쟁>만이 정의를 위한 싸음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드디어 투아레그족은 <정의를 위한 니제르운동, MNJ>를 창설하고 이른바 투아레그 반군의 이름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니제르 반군은 정 부군의 병영을 습격했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반군의 무장투쟁에 가담하고 지원했다.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도 투아리그 반군을 지원했다.

그런데 니제르에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있었다. 1999년에 집권을 시작한 마마두탄자 대통령이 중공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니제르의 우라니움과 석유에 대한 개발에 동참하도록 허락했다. 프랑스에 새로운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지금까지 니제르의 우라니움과 석유의 독점을 누리고 있던 프랑스는 갑작이 화 가 났다. 화가난 프랑스는 마마두 탄자 대통령에게 투아레그 반군을 지원해 준다는 신호를 보인것이다. 이것은 니제르의 큰 이변이다.

리비아도 반군을 지원하고 프랑스도 반군을 지원한다고 말 하고 있으니 니제르의반군은 의기양양해 짐으로 정부군을 대량 사살하고 납치하는 전과를 올리고 있다. 이러다가 니제르가 국가적으로 양분되는것 아닌가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또 놀러운 것은 2010년 2월 18일에 니제르에서 또 다시 군사 쿠테타가 발생하여 미미두 탄자 대통령은 체포된 상태에 처해 있다. 그리고 쿠테타를 일으킨 군인들은 2011년 초에 선거를 통하여 새로운 정권을 창출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등 서방 나라들은 숨을 죽이고 서로 관망하고 있는 모양새가 보기에 매우 가소롭다.

이 글을 끝 맺으며



투아레그족의 본고장 땅에서 막대한 광물질을 획득하여 이득을 보고 있는 니제르의 역대 정권들이 그 돈으로 투아레그 본고장 민중들을 살해하기 위한 많은 무기 를 외국에서 구입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세계의 최빈국 니제르이다. 니제르에 또 다시 쿠테타로 새로 창설될 정권은 제발 굶어 죽어가고있는 수백만의 니제르 민중들을 위하여 강대국들의 눈치 보지 말고 우선 새 정권의 시선을 그들 민중들에게 돌리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끝. (11/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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