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테다" 맞섰던 장태완 장군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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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7-26 22:32 조회4,38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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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사태 때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신군부측에 맞서 쿠테타를 저지하려 했던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이 26일 저녁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1년 생인 고인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해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 중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
1971년 1월 장군으로 진급한 후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이후 그해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중심이 된 후배 군인들의 쿠테다를 진압하려다 실패했다.
신군부 진압에 실패한 후 보안사령부에 체포돼 서빙고분실에서 두 달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고 가택연금 및 강제예편을 당했다. 그가 이런 고초를 겪는 과정에서 충격으로 부친과 외동아들이 잇따라 세상을 뜨기도 했다.
고인은 1994년 최초 자유경선을 통한 재향군인회 회장으로 당선이 돼 6년간 재향군인회를 이끌었다.
2000년에는 민주당에 입당 해 16대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2년에는 노무현 대통령후보 보훈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12.12 당시 신군부에 맞선 그의 용기는 당시 군 작전통신 내용에 담긴 육성이 언론에 공개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유족으로 부인인 이병호씨와 딸 현리씨, 사위 박용찬(인터젠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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