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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리아 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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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6-20 20:52 조회4,1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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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역대 정권 담당자들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친서방 국가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코리아 전쟁의
원인을 왜곡하여 정권안보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왜곡된 내용을 사실처럼
선전하며 악용하여 왔다. 이 같은 움직임이 요즘에 와서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이후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천안함>사건의 그 진실이 왜곡되는가 하면 60년전에
일어난 6.25전쟁 배경에 대한 해석들도 또 다시 반북 정서에 과녁을 맞추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민족통신>은 "코리아 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라는 제목의 기획연재를 통하여 과거 우리들이 들어 온 일상적
이야기들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폭로하여 다시는 조국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계몽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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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코리아 전쟁: 그 진실을 벗긴다①



*정리: 민족통신 공동


남한 역대 정권 담당자들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친서방 국가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코리아 전쟁의 원인을 왜곡하여 정권안보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왜곡된 내용을 사실처럼 선전하며 악용하여 왔다. 이 같은 움직임이 요즘에 와서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IMAGE##> 이명박 정부가 들어 선 이후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천안함>사건의 그 진실이 왜곡되는가 하면 60년전에 일어난 6.25전쟁 배경에 대한 해석들도 또 다시 반북 정서에 과녁을 맞추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남녘 관변단체들과 해외동포사회 어용단체들은 전쟁이 발생한지 60년 주년이 되었다고 온갖 행사들을 벌이면서 그 진상규명에 대해 사실을 말하지는 않고 아직도 그 원인과 배경을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 언론들과 해 내외 보수진영에서는 그 배경을 오로지 ‘북의 침략’으로 해석해 왔으나 그것은 진실과 거리가 먼 것으로 밝혀져 왔다.

양심적인 해 내외 학자들은 “코리아 전쟁은 북침이나 남침보다 더 더러운 반칙이 있었다”고 지적하며 이 전쟁의 진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 보수진영의 주장과는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마치도 이라크에 대량살상 무기(WMD)가 있어 침략한 것처럼 선전해 왔으나 사실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확연히 밝혀진 바 있다. 심지어는 일본의 ≪교도통신≫ 1975년 8월 25일자에서도 “코리아 전쟁은 사실상 남으로부터의 도발로써 시작 되었다”고 회고할 정도이다. 요즘의 이명박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자세를 두고 하는 이야기와 흡사하다.

코리아 전쟁을 보는 관점도 미국정부와 이를 추종하는 남한의 역대 집권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미국의 양심적인 학자들이나 정의감을 가진 종군기자들이나 중국인이 보는 관점이 아주 다른 점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남한의 양심적인 학자들과 해외동포 학자들이 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학자 부르스 커밍스가 쓴 ‘코리아 전쟁의 기원(The Origin of Korean War)’을 비롯하여 미국의 종군기자 아이 에프 스톤의 ‘코리아 전쟁의 숨겨진 역사(The Hidden Story of Korean War), ‘중국인이 본 한국전쟁’(윤영무 번역), 한길사가 펴낸 ‘1950년대의 인식’, 풀빛 출판사가 펴낸 ‘한국민중사 II’, 자주민보가 펴낸 이도영 박사의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쏴라’, 그리고 인터네트 상에 올린 코리아 전쟁의 자료 등의 내용들은 남한과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남침설>과는 다른 입장들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일방적인 견해만을 펴고 있는 관변 입장보다는 양심적이고 객관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학자들과 종군기자의 견해에 입장을 함께 한다는 사실을 여기에 밝히면서 코리아 전쟁의 배경을 벗겨 보려고 한다.

미 국무차관보 존 디. 히카슨의 폭로


미 국무차관보 존 D. 히카슨의 폭로에 의하면 코리아 전쟁은 사전 시나리오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언론들과 이승만 정권은 사실과는 다르게 북의 남침으로 선전하면서 남과 북의 관계를 적대관계로 홍보하는데 열을 올려 왔을 뿐만 아니라 조국반도를 영구 분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코리아 전쟁을 왜곡하여 왔던 것이다. 이들은 이 밖에도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밝히지 않고 허위와 거짓으로 코리아 해방 전후 사를 기록해 왔다.

미국 정부의 비밀이 해제된 문서에서도 그러한 허위기록들이 밝혀져 왔다. 해방 직후 박헌영((북한정권에서 부수상 및 외상에 취임-1955년 ‘미제의 스파이’라는 죄목으로 처형됨))과 그의 직계인 이강국. 임화(작가) 등 남로당의 일부 핵심간부들이 주한 미군 방첩대(CIC)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미 정부측에 비밀해제를 요구, 공개된 미 육군 정보국 문서파일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돼 있던 ‘베어드 조사보고서’ 에서 그 진실을 찾아 낸바 있다.

1956년 미 육군 정보국 비밀자료에 따르면 이강국(초대 북한 외무성 부상)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비밀조직인 ‘JACK(한국공동활동위원회. Joint Activities Commission, Korea)’에 의해 고용됐던 것으로 나와 있다. 즉, 북조선에 의해 ‘미제 스파이’ 혐의로 53년 처형된 이강국은 실제로 미 첩보기관의 끄나풀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이 미국은 남로당원들을 탄압하고 일부는 포섭하여 간첩으로 월북시켜 북조선 수뇌부에 들여보내는데 성공하였다. 이와 같이 북조선을 정복하기 위한 치밀한 사전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1946년 5월 미군정은 당시 조선공산당을 제거하기 위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만들어냈다. 미군정은 자신들이 조작한 이 사건으로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고 이를 구실로 정당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배후로 지목하여 소련대사관도 폐쇄하였다. 또 신문을 비롯한 정기 간행물을 허가제로 바꾸어 좌익계열의 간행물들을 폐간시키고 좌익 활동을 금지시켰다. 이와 같이 미군정은 일제강점기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일제의 치욕스런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좌익들도 핍박을 무릅쓰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선봉에 섰고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목숨 걸고 싸웠는데 이들이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거나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역사가 조국반도 남단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1946년 대구 10.1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이 사건은 독립을 방해하는 미군정이 실시하려는 단독선거 및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전국적인 규모로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단선단정 반대를 위한 대중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우리민족의 염원과 배치되는 미군정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1947년 친일잔재청산을 위하여 남녘 과도입법의회는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미군정은 인준을 거부하였다. ‘반민족적 친일청산’이 시대정신이었던 해방 직후에 미군정은 친일경찰, 친일관료, 친일정치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대신 그들은 미군정에 충성을 받쳤다.

미군정은 절대다수 우리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짓밟고 전범 일제와 협력한 친일 매국노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더러운 관계를 맺은 것이다. 미군은 친일세력들이 남녘 민중들의 배척을 받고 있어 자신들이 보호하지 않으면 설 땅이 없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친일파를 고용하면 충견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들을 기용한 것이다. 또 친일세력이 남녘 민중과 원수지간 임으로 남녘 국민들을 억압해서 길들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렇게 미군은 항일애국지사들이 ‘매국노’라고 부르던 친일 앞잡이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미국의 분단정책을 반대하고 항거하는 우리나라 사람을 죽이도록 하였다. 미군은 해방자로서 우리 조국반도에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실대로 말한다면 침략자로 들어왔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다면 미군은 침략자이며 동시에 살인자였다.

일본을 대신해서 미국 자신이 우리나라를 다스릴 목적이었다. 즉, 미국의 목적은 우리에게 나라를 되찾아주어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지 않고 자신들의 지배권역을 대륙으로 넓히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한반도의 일본 식민지를 물려받아 자신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미군정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지배세력이었던 친일세력을 기용하였다. 미군정이 친일세력을 기용하면 공을 세워 통치자인 자신들로부터 확고한 지위를 부여 받아 배척 받고 있는 매국노의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항복한 후 중국에서 장개석은 미국의 지원 하에 국공 정전협정을 파기하고 160만 정규군을 동원하여 1946년 6월 해방구(解放區: 공산당 통치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장개석은 공산당 군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병력, 월등한 재정기반, 거기에 미국의 막대한 군사지원까지 받았음에도 결국 민심을 잃었기 때문에 모택동에게 패하고 말았다. 미국은 장개석을 이용하여 만주를 통치하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은 만주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일제의 만주 괴뢰국 건설을 주도한 기시 노부스케는 패전 이후 에이급 전범으로 구속됐으나 유일하게 풀려났다. 그의 ‘옥중일기’에는 ‘케넌 설계도’와 일치하는 한반도 재 지배 구상이 담겨 있다. 케넌이 작성한 이 ‘설계도’는 그가 본부장으로 있던 국무부 정책기획본부 제13호 파일 상자에 감춰져 있다가 1985년에 비밀이 해제되어 세상에 공개 되었다.

조지 케넌 설계도


케넌 설계도란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의 입안자로 이름을 날린 2005년에 101살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외교관 조지 케넌(George Kennan)이 세운 계획으로서 한반도와 만주를 지배했던 일본에게 이 지역을 통치하도록 재 위임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만주와 한반도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욕심을 내어 1905년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대한 봉쇄를 실시하여 일본의 숨통을 조였고 수렁에 빠진 일본은 미국의 예상대로 진주만공격을 감행 하여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돌아가서 만주와 한반도를 일본에게 통치를 위임하고 미국은 그러한 일본본토를 직접 통치한다는 계획이 케넌 설계도이다. 이 케넌 설계도를 실행하기 위해서 미국은 대륙지배의 경력을 가진 핵심 인사를 확보하는 게 필요하였다,

진주만 기습공격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도조 히데키 이하 일곱 명의 A 급 전범이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된 것이 1948년 12월23일이었는데, 똑같이 에이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스가모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기시 노부스케는 처음부터 기소조차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조 등이 처형된 다음날 자유의 몸으로 옥문을 빠져 나와 당시 요시다 내각 관방장관으로 있던 친동생 사토 에이사쿠(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일본 총리)의 관저로 직행했다.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여 괴뢰 만주국을 창건한 것이 32년이었는데, 일본 상공성의 유능한 관료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기시 노부스케가 만주국의 산업차장으로 발탁되어 부임한 것은 그 4년 뒤인 36년이었다. 당시 소련은 10월 혁명 후 철강•시멘트•기계공업 등의 분야에서 경제력 내지 전쟁수행 능력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전시 경제체제’를 구축하는 임무를 띠고 부임한 것이 기시 노부스케 였다. 기시 노부스케는 닛산콘체른의 사장 아유카와 기스케를 만주로 불러들여 ‘만주 중공업개발회사’를 설립하는 한편, 당시 남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 총재로 있던 마쓰오카 요스케와 손잡고, ‘만주 3스케 로 불리던 작업 팀을 구성하여, 단시일 내에 경제발전을 위해 상당한 성과를 올렸던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가 상공성 차관으로 귀임한 것이 36년이었으므로 그의 만주시대는 그리 길었던 것은 아니나, 만주는 ‘내 작품’이었노라 고까지 호언할 정도로 그가 올린 성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였다.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한반도에서 만주에 이르는 일본의 구식민지를 일본의 재 지배에 맡겨야 한다는 ‘케넌 설계도’의 시각에서 본다면, 기시 노부스케는 미국으로서는 참으로 안성맞춤의 인물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의 요원이 패전 후 옥중의 기시 노부스케와 빈번한 접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기록에도 남아 있는 사실인데, 기시 노부스케는 벌써 그때부터 미국이 자기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고 있다는 사실과 무죄석방 뒤 미국과 조국 일본을 위해서 자신이 수행해야 할 임무가 무엇인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의 다음과 같은 ‘옥중일기’는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시 노부스케가 상공성 차관으로 귀임한 것이 36년이었으므로 그의 만주시대는 그리 길었던 것은 아니나, 만주는 ‘내 작품’이었노라 고까지 호언할 정도로 그가 올린 성과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였다.

이 글의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런 능력을 겸비한 인물은 바로 기시 노부스케 자신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도 남겨 놓았다.

‘동아시아 전체의 적화를 몰고 올 중국 공산군의 제패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달러와 무기원조로만 장개석을 돕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미국은 미국 자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모택동을 제압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 미국 자신의 군대라는 것은 주변국인 일본의 의용군 편성도 타당하다.(1948년 11월 4일)

미국이 A 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에 대해서 사면한 것은 케넌 설계도를 실행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항복을 받고도 일본 영토였던 만주를 차지하지 못한 상실감을 갖고 있던 미국에게는 기시 노부스케는 케넌 설계도를 현실화 시킬 인물이었다.

미국에게 한국은 만주를 회복하는 디딤돌에 불과한 영역이었고 종착지가 아니었다.

미국은 한국국민과 좋은 유대를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가 있었지만 미국은 단지 한국만을 지배하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 중국대륙 그리고 세계제패의 원대한 야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한 충성도를 갖고 있는 친일파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더구나 친일파들은 중국대륙을 지배한 경험 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친일세력을 기용하였다.

1931년 9월 18일에 일본이 중국의 동북지방을 군사적으로 침략하고 이 지역을 ‘만주국’이라 하여 그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만주국은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에 세웠던 나라인데 자주권을 갖지 못하였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만주괴뢰국 이라고 부른다.)

1937년 7월 7일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켜 중국 전역을 침략하였다.

1937년 12월 국민정부의 수도 난징[南京]을 점령하여 시민 수십만을 살육하였다. 그 뒤 우한[武漢]을 공략하고 광둥[廣東]에서 산시[山西]에 이르는 남북 10개 성(省)과 주요 도시의 대부분을 점거하였다.

이렇게 일본이 팽창해 가고 있으므로 미국의 세계제패의 구상과 상치되었다.
따라서 1938년 미국의 루즈벨트는 비행기와 항공모함 부품, 고옥탄가의 항공 연료, 고철, 그리고 공작 기계들의 일본수출을 제한하는 대일경제정책을 엄격하게 시행하여 경제압박을 가하였다.

그리고 1941년 7월26 루즈벨트는 미국 내의 모든 일본인의 자산을 동결시켰고 일본으로의 석유수송을 차단하였다.

대동아 공영권(大東亞共營圈)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營圈)이란 일본을 중심으로 함께 번영할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범위를 가리키는 말로서 당시 일본이 아시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내건 정치 표어이다.

이 구호대로 동아시아를 일본이 차지하면 미국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의 목표는 세계제패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하나님을 믿고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쓰는 양심적인 국가인데 세계제패를 목표로 하는 나라라는 소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미국의 역사를 알면 누구나 수긍하게 된다. 미국의 역사는 살육의 역사 정복의 역사이다.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살육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정당성을 확립하였다.

청교도들의 피가 흐르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선택 받은 존재들"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들을 통해서 세계를 개종시키고 문명화시키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신념으로 미국은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며 쫓아냈고 멕시코로 부터 캘리포니아, 텍사스, 유타 등 서부 지역을 강탈해 버렸다.

1837년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인 존 어설리반은 자신의 나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미국은 세계를 미국의 민주주의로 문명화시키기 위해 계속 팽창 되어져야 하는 “명백한 운명”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1898년 미서전쟁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뿐 아니라 앞으로 미국 외교를 이해하는 데 가장 근본적인 사상적 밑받침이 되었다. 미국의 정치제도, 종교, 인종 등의 우월감은 그들의 종교적 선교 개념과 어울려 거의 모든 경우에 미국 외교의 근간이 되었다.

1917년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윌슨 대통령은 “세계민주주의의 안전을 위하여” 라는 이유를 들어 참전하였고, 2차 대전에도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같은 이유를 들어 참전하였다. 이런 “명백한 운명” 주의에는 숨길 수 없는 군수산업에 의한 경제적 이익과 인종 차별적 편견이 사려있음을 알아야 한다.

1915년 미국의 불황에 접어드는 듯 했으나 서방의 군수품 주문으로 군수산업이 활기를 띠고 번영하기 시작하였다. 전쟁으로 번영을 누리기 시작 했는데 독일의 잠수함 작전으로 군수품 수송에 차질을 빚자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였다.

민주주의와는 상관없이 군산복합체의 결정에 의한 것이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유와 미국이 여기에 뛰어든 이유는 모두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지 민주주의 운운 하는 것은 수식어에 불과한 것이다.

민족주의가 일어난 것도 경제적 배경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 승전국들은 패전국의 식민지를 나눠 가졌다. 그 후 패전국이 식민지를 되찾기 위한 2차 세계대전이 뒤를 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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