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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으로 본 세상에 절망한 문수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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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6-06 20:41 조회2,8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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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은 지난 5월 31일 "4대강사업 폐기하라" 외치며 소신공양하신 문수 스님의 초재가 있는 날입니다. 4일 치러진 스님의 다비식장의 그 온기가 채 식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는 이제 영정으로만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그런 오늘 다시 스님을 추모해 봅니다. 사실 기자는 처음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을 듣고는 그동안 4대강사업 저지의 행보에서 한국 불교가 보여준 적지 않은 실망감 때문에 속으로 "성질 급한 중이 하나 죽었구나"하며 반신반의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4일 다비식장에서 들었던 지인들의 이야기는 저의 그런 의심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의 지인들의 말씀을 토대로 문수스님의 진면목을 돌아보고 스님을 진심으로 추모해봅니다. - 기자말

3년간 매일 한 끼만, 바깥출입 않고 수행만 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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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님 없심더. 정말 그런 스님 없어예. 절간에 그런 스님들만 있으면 우리나라가 불국토가 될 낍니더. 그런 스님이 저렇게 가버리시다니…."

4일 문수 스님 영결식장에 만난 최일연(64) 보살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대구에 산다는 최씨는 3년 전부터 지보사를 찾아 공양간 살림을 맡아오고 있다 했다. 그는 문수 스님과 비슷한 시기에 지보사엘 왔다면서 스님과의 일화를 울먹이며 들려주었다.

"스님은 일체 바깥출입을 않았습니더. 그래서 이 절에 아무리 오래 다닌 신도들도 스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어예. 스님은 일체 문을 잘 여는 법도 없고,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꿈적도 않으시고, 누가 가서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으시고 일체 말씀이 없었습니더.

"스님은 누구한테도 폐 끼치지 않으려고 했어예. 아무도 만나지도 않고, 밥도 저녁 한 끼만 딱 잡수셨어예. 그리고 그 공양도 제가 문밖에 놓아두는 것 외에는 일체 받질 않으셨습니더. 그것도 꼭 제 음성을 두세 번 확인한 후에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하고는 자리를 비키면 그제서야 들여 가서 잡숫고, 정말로 누구에게도 폐 끼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셨어예. 그리고 언제나 가보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실 뿐 말이 없었지예. 그런 스님 없심니더. 정말 그런 스님 없어예.

이 절에서 스님과 말을 나누는 사람은 견월 스님과 지뿐입니더. 견월 스님은 문수 스님보다도 나이도 많지만은 스님을 정말 깍듯이 모셨심니더. 정말 깍듯이 스님을 모셨지예. 그래서 견월 스님이 정말 많이 놀랐습니더. 처음엔 그 사실이 믿기질 않아서 저 산으로 저 들로 문수 스님을 얼마나 찾아 다닜다꼬예. 견월 스님이 정말로 많이 놀랐어예. 견월 스님께 아무런 언질도 낌새도 주지 않고 가셔서, 스님을 그리 깍듯이 모신다고 모신 견월 스님 입장에선 자신이 잘못 모셔서 그리 되신 줄 알고, 죄인이 된 듯이 정말 슬퍼하셨어예."

조중동으로 본 세상에 절망한 문수 스님

"그리고 스님께 신문 같은 것은 누가 들여놓아 주냐"는 질문에 그는 "그래예, 스님은 신문 보는 것을 그리 좋아하셨어예, 그래도 부러 신문을 사다 달라는 말씀은 절대 않으셨는데, 제가 대구 나갔다 오면서 한번씩 신문을 사가지고 들여 놓아주고, 대부분은 견월 스님이 군위 읍내 나갔다가 사서 들여 놓아 주지예"라고 말했다.

그런데 스님의 방을 확인해보니 방에 놓여 있는 신문은 의외로 대부분 "조중동"이었다. 이에 대해서 <경향신문> 최슬기 기자는 "견월 스님이 정치의식은 거의 없는 분이고, 군위 읍내에 들어오는 신문이라곤 조중동밖에 없으니, 견월 스님이 읍내에서 그런 신문만 들여놓아 준 것"이라 했다.

이에 대해 최 기자는 문수 스님의 절친한 도반인 관행 스님의 말을 들려주었는데, 그 말씀이 재미있고 한편 생각거리를 남긴다. 관행 스님이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한다.

"만약 문수가 <한겨레>나 <경향>을 봤더라면 저리 가지 않았을 끼라. 조중동에서 보이는 4대강 관련 기사를 보면 아무도 4대강을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없었으니, 문수가 그리 작심을 한 것이제."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그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았다. 대구 같은 대도시에서도 <한겨레>와 <경향>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군위 같은 시골에서 그런 신문은 거의 구경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경상도 시골지역이 더욱 보수적 성향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중동 외에도 다른 신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점이다.

최 기자가 말한 문수 스님의 절친한 도반인 관행 스님은 문수 스님 소신공양 소식에 너무 놀라 갑자기 통풍이 와서 다리를 절게 되었다 했다. 실지로 영결식장에서 본 관행 스님은 다리를 절고 있었고, 스님은 영결식이 진행되는 도중 슬그머니 대웅전으로 들어가더니 부처님 앞에서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기도를 드렸다. 그 모습에서 스님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간직한 문수 스님

한편 이날 다비식장에선 유족들과도 대화를 잠시 나눌 수 있었는데, 문수 스님의 조카는 "가족들은 크게 동요치는 않았고, 그저 많이 놀랐을 뿐이었다"라며 "삼촌의 유지는 가족들도 잘 공감하고 있다, 조카로서 삼촌의 뜻을 잘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집안은 모두 작은 교회를 다니는 평범한 기독교 집안이고, 삼촌만 출가를 해서 불교"라며 "가족들과는 크게 마찰도 없었고, 어렸을 때 이후로 잘 보지도 못했다"고 덧붙였다.

신분을 묻지 못한 다른 한 유족은 스님의 성품이 어땠냐는 질문에 "부드러우면서도 강직한 사람"이라 했고, 어떻게 부드러우면서 강직할 수 있냐는 우문에 "부드러움 속에 강직함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현답을 했다.

실제로 최일연 보살이나, 견월 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님은 정말 겸손하고 부드럽고, 남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하는 자존심이 강한 분이었던 것 같다. 그런 분이기에 우리 대지에 그리고 이 나라에 일어나는 작금의 현실에 견딜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다.

다비식장의 연화대의 불꽃이 잦아들 무렵 "성불하신 스님께 꼭 존경의 절을 올려야 된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108배를 올린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제영(54) 총무도 스님과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100년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스님을 외롭게 보낼 수 없다"

그는 "스님이 대산사에 주지로 계실 때 한 번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수 스님은 호안(虎顔)이었다 카이. 청도 대산사가 거의 산꼭대기 부근에 있는데, 거 보통 기개가 아니면 그 절에 있을 수 없다 카이. 한눈에 봐도 기개가 대단한 분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카이. 내가 20년 이상 된 (환경운동) 활동가인데, 스님은 저를 대신해서 죽었심더. 저를 대신해 죽은 것이나 다름 없심더. 몸에 불을 붙일 때의 그 심정을 생각해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심더. 마지막 가시는 스님께 절이라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심더. 중생을 위해 몸을 던지신 스님의 뜻을 국민들이 너무 모르는 것 같심더. 그는 안중근 의사와 마찬가지로 이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롭게 가시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저라도 108배를 올리면서 스님께 용서를 빌고 싶었심더."

다비식에 참석한 한 보살은 "100년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스님이 가시게 되어 너무 안타깝다"며 발을 구르며 스님의 부재를 안타까워했다.

그렇다. 이렇게 가까운 지인들로부터 들어본 문수 스님은 보통 비범한 승려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철저히 참선과 수행에 임하는 선승이었고, 그는 어쩌면 이미 열반에 든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 불교, 대오각성하고 문수스님의 유지 받들길

스님이 수행하던 단출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두어 평 남짓한 그 공간에 들어찬 것이라곤 옷장 하나에 평소 세상과 소통을 하던 신문뭉치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그는 그곳에서 문밖 출입도 않고 항상 가부좌를 틀고는 면벽 수행을 해온 것이다. 3년간 그렇게 수행정진하다가 홀연히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친 것이다.

그렇다. 스님은 저 4대강사업에 신음하는 강과 그 안에 깃든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켜 달라고, 살려달라면서 부처님께 자신의 몸을 바치면서 간곡히 청한 것이다. 이미 죽임을 당한 수많은 생명들을 지켜주지 못한, 그 불살생의 계훈을 실천하지 못한 불자들의 죄를 대신해서 소신공양하신 것이다.

그래서다. 불자들이 일어나서 저 4대강에서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 저 수많은 생명들을 보듬어 안으며 불살생의 계훈을 이제부터라도 지켜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은 말이다. 제발 문수선사가 땅을 치고 통곡했듯 4대강의 뭇생명들을 불자들이 저버리지 말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그래서 저 뜨거운 불심으로 문수스님의 유지인 바 4대강의 뭇생명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을 지켜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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