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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아들 전화받고 기뻐하는 전화심 여사<br><br>남편과 6.15선언 10돌 기념음악회 준비 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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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10-05-08 13:09 조회4,49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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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반핵반전평화 시위를 취재할 목적으로 뉴욕에 머무는 동안 여러분을
만나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뉴욕의 우륵교향악단 이준무 단장과 그의 부인 전화심 여사를
만났을 때 이들 부부는 6.15선언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아들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대담]아들 전화받고 기뻐하는 전화심 여사

남편과 6.15선언 10돌 기념음악회 준비 한창



[뉴욕=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 반핵반전평화 시위를 취재할 목적으로 뉴욕에 머무는 동안 여러분을 만나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뉴욕의 우륵교향악단 이준무 단장과 그의 부인 전화심 여사를 만났을 때 이들 부부는 6.15선언 10주년 기념음악회를 준비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던 중 아들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IMAGE##> “우리 아들 훈(Danniel)이가 프린스톤 대학에서 정치철학박사 최종논문 심사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말하는 전화심 여사는 무척 밝은 표정이다. 지난 5월3일 아들로부터 이런 소식을 받았다고 부인이 말하자 아버지 이준무 선생은 전화를 걸어 아들에게 축하한다고 전한다. 이들 부부는 또 31살 된 아들이 작년에 결혼도 했지만 이번에 최종 논문이 통과되어 이달 하순에 박사학위를 받고 이것 때문에 9월부터 콜럼비아 대학에 조교수로 일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면서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뭔가 이들 부부의 얼굴에는 묘한 표정이 깃들어 있다.

자제분이 몇이냐고 묻자 “둘이었다”고 대답하면서 그 순간에는 다시 어두운 표정을 보인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다는 것 같이 쓰라린 추억은 없는 것 같다. 이들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서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연다. 두 아들 중 한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들려 준다.

전화심 여사는 “1999년 4월 19일 그 애의 나이 25살인데 의과대학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고 눈을 감았어요”라고 답한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듯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이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그러면서 어느 한 교회 교인들의 이야기를 되돌이키며 울컥 화를 낸다. 그 교인들이 뭐라고 말한 줄 아세요 라고 반문하며 “애비가 북한에 들락거려서 하나님이 아이에게 천벌을 주었다”고 말 한 교인들의 악담 때문에 그 화가 지금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 반공 반북에 젖어 있는 보수층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통일인사들의 가슴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번에 박사학위를 받게 되는 아들 말고 다른 아들은 13살에 백혈병으로 진단이 내려져 고등학교까지 병세에 따라 불규칙한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했는데 전화심 여사는 “우리 부부가 그 아들을 구해 보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하늘은 끝내 부모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해 버렸어요. 뉴욕대학에서 음악이론도 전공했지만 자기 생각이 있어 의과대학 예과를 이수했는데 결국 25살에 세상을 먼저 갔어요.”라고 슬픈 추억을 더듬는다.

이들 부부는 처음에 이런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하여 대담시간을 갖는 것을 선뜻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을 간신히 설득시켜 대담에 성공했다. 남들이 보면 마치도 아들 자랑하는 것 같아 오해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우리처럼 자식들 잘 길러낸 부모들이 대다수인데 이런 문제로 대담하는 것이 약간 부끄럽다는 뜻으로 이해되었다.

기자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들 부부의 답변을 듣고 싶었다.


1. 아들의 정치철학박사 논문이 최종적으로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IMAGE##> [답변] 어느 집이나 자식들이 자랑스러울 것입니다. 나도 그런 부모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사실 이런 인터뷰를 공개적으로 하는 자체가 좀 쑥스럽고 우리 정서와는 사뭇 차이가 있어 망 서려 지네요. 어느 부모 치고 자기 자식 훌륭하게 기르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특히 통일운동권 인사들의 자제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 잘 길렀는데 이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인터뷰까지 해야 할지 망 서리기도 하였지만 <민족통신>에서 뉴욕까지 와서 부탁하는 바람에 마음이 약해져 억지로 응하게 된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2.학위 논문은 뭘로 하였습니까?

[답변] 민법과 민권에 관한 논문인데 우리 아들이 논문 제목이 뭐냐고 물어 보니까 다음과 같이 이메일로 보내왔어요. The title of my dissertation was, "Civil Law and Civil Sovereignty: Popular Sovereignty, Roman Law, and the Civilian Foundations of the Constitutional State in Early Modern Political Thought."


3.이번에 박사논문 최종합격 통지를 받은 아드님의 학교배경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변]1979년 뉴저지에서 출생해 모리스 놀 고등학교(Morris Knoll High School)를 나와 콜럼비아(Columbia University)에서 학사, 영국 옥스포드 대학(Oxford University)에서 석사(Master),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와 프린스턴 대학원( Princeton University)에서 박사(PH.D) 학위 논문이 최종 통과되어 이번 달에 학위를 수여받게 됩니다.


4. 부모의 평소 교육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답변]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었습니다.


5.혹시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아드님과 주고 받은 대화 중에 흥미 있는 에피소드라도 있다면?

<##IMAGE##> [답변]글쎄요.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엄마는 모든 것을 절약하고 아빠가 벌어오는 돈으로 네 형과 너에게 한 푼의 빚도 남겨주지 않았다. 다른 집 부모들처럼 돈도 좀 쓰면서 즐기고 학비는 은행 빚을 얻어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먹이고, 입히고,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고, 여행 보내고 하는 이런 모든 것을 절약하고 또 절약하여 계획해 왔다. 너는 이점을 어떻게 생각 하느냐? 훈이는 좋다고 말하면서 우리 부모에게 아주 감사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나는 우리 아이에게 이것이 바로 네가 싫어하는 사회주의의 기초인 거라고 설명해 주면서 <무료교육>의 사회주의 개념을 간접적으로 이해시켜 주었어요. 학교에서는 자본부의가 뭔가만을 강조하지 사회주의가 뭐고 자본주의와 차이점이 뭐라는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훈이에게도 정치학 박사가 되려면 적어도 자본주의는 물론이지만 사회주의가 뭔가도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게 정상적인 학자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가정에서 사회주의를 하면 되는데 왜 나라가 사회주의 하면 안 된다는 거냐고 따져 묻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라가 부모를 대신해 모든 일을 해줄 수 있다면 사회주의에서는 정부가 부모와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하면서 무조건 사회주의가 나쁘다는 식으로 교육시키는 미국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이가 학교 주임교수에게 나하고 주고 받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한 모양입니다. 그 주임교수가 하는 말이 “너는 특별한 부모를 가져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그 교수가 나를 학교에 불러 강의시간에 엄마의 교육철학을 설명해 달라고 두 번씩이나 부탁했는데 저는 그걸 사양했어요. 이 때문인지 우리 아들은 그 후 자본주의와 함께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혼자 공부하는 눈치였습니다.


6.자제분이 결혼 전에 함께 살 때에 부모님과 아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답변]우리는 학교에서 하는 공부 이외에는 음악학교에서 첼로와 관현악 지휘를 공부하게 했습니다. 학원은 한번도 보낸 적이 없습니다. 가끔 아들녀석은 왜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공부하라는 소리를 안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8살부터 제형이 아파서 12년간을 항상 병원에 응급으로 왔다 갔다 하느라고 둘째는 돌볼 겨를이 없었고 어떻게 자랐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돌이켜 보면 미안하기도 합니다. 그저 어떻게라도 큰 애를 살려볼까하고 우리부부는 날마다 큰아이 뒷바라지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해서 둘째 아들에겐 미안한 생각이 많습니다.

7.두 분이 모두 한국 민주화 운동, 조국통일 운동에 함께 참여하셨는데 그 계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답변]그 사이도 혼자 생각은 많았지만 80년 초 <광주항쟁>을 지켜 보면서 어느날 로스엔젤레스에서 우연히 이북의 예술영화 <월미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심적인 파문이 아주 컸었습니다. 이 무렵에 남편이 남녘에서 망명 온 윤한봉씨가 조직한 <한겨레운동연합>에 가입 하면서 민족문제를 학습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그때부터 각종 민주운동 집회에 같이 참석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고, 남편이 조국통일 운동에 가담하면서 남북통일만이 우리 민족이 살길이라는 역사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8.조국통일 운동을 해 오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있다면?

[답변]1989년 5월로 기억되는데 남편이 주관하는 <남북가곡의 밤>이 시작되어 뉴욕에서 2회 공연하여 2천여 명을 동원했고, 그 이후 이어서 뉴저지, 워싱턴 디씨, 시카고, 샌후란시스코, 로스엔젤레스, 카나다 토론토 등 미주전역 대도시와 카나다에서 동포들의 뜨거운 지지와 성원 속에 13회 공연에 성공한 것이 가장 기쁜 일로 추억됩니다. 그 때 연인원 만여 명이 동원되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음악을 통한 통일운동, 즉 이북 바로 알기 위한 운동의 일환도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획기적인 통일 문화운동을 성공적으로 하는데 일조를 하였다는 것과 현재도 우륵교향악단 메니저로 남편의 예술활동을 돕고 있는 것이 큰 보람으로 생각됩니다.


9.조국통일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마음 아픈 일이 있다면?

[답변]통일이 다가 오고 있는 시점에서 애써오신 선배선생님들이 연로해 지시고 윤이상 선생님이나 차상달 선생님, 임창영 선생님, 홍동근 목사님 같은 선배 원로들께서 한 분 두 분이 타계하셔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리고 통일운동을 같이 하면서 서로 협력하고 지원해 주어야 할 사람들끼리 반목하는 현상이 안타깝습니다.


10.우리 통일운동 하시는 분들에게 자녀교육에 대해 권고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답변] 우리 통일운동 진영 부모들은 대부분 자녀들 교육을 잘 시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우리말과 영어를 같이 쓰는 이중언어 교육을 시키면 커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1.해외 통일운동하는 가정에 크고 작은 부부간의 문제들이 적지 않은 편인데 부부의 통일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은 ?

[답변] 이런저런 사정들이 있겠지만 부부가 먼저 동지가 되어 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편하는 일을 이해 못하고 또 부인이 조직활동에 참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례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부가 함께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부부는 그런 면에서는 문제가 없습니다.


12. 금년이 6.15선언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혹시 문화예술 행사 계획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답변] 우륵교향악단에서 10년째 해오는 6.15공동선언 10주년 경축공연을 6월10일 뉴욕에서 진행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지금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지은, 곽신국, 김하나, 김진 등 세계적으로 이름이 있고 국제 콩쿨 수상자들이 대거 출연할 계획이라서 기대가 큽니다. 세계명곡과 함께 이북의 교향곡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를 비롯하여 <사향가 바이올린협주곡> <비둘기야 높이 날아라> <다시 만납시다> 등 주옥 같은 명곡을 연주하며 우리민족끼리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이루려는 의지를 노래 할 것입니다.


바쁜 시간에 시간을 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축하전화 연락은:(201)888-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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