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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엘살바도르: 반제 자주노선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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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9-11-13 23:01 조회4,5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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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남미의 조그만 한 나라, 엘살바돌(엘살바도르)이 걸어온 길도 가시밭 길이었지만 이제 이 나라는 반제 자주노선을
추켜 든 입장이 되었다.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 통치로 317 년, 미국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온 이른바
<친미군사독재정권>으로 168년의 세월을 보냈다.그러나 지금은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이 민선으로 당선되어
사회주의 정권을 지향하고 있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기획]엘살바돌: 반제 자주노선 지향


317년간 식민통치, 168년간 친미군사독재정권 종식




*글:유태영 박사(민족통신 상임논설위원)


<##IMAGE##> 남미의 조그만 한 나라, 엘살바돌(엘살바도르)이 걸어온 길도 가시밭 길이었지만 이제 이 나라는 반제 자주노선을 추켜 든 입장이 되었다. 강대국에 의한 식민지 통치로 317 년의 세월을 보냈고, 독립은 하였지만 그것도 미국의 정책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온 이른바 <친미군사독재정권>으로 168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 때문에 엘살바도르 민중이 얼마나 고초를 겪어 왔겠는가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2009년 3월 15일 대선의 승리로 인하여 엘살바도르의 역사상 처음으로 민선 대통령이 된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은 민선으로 된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정권을 지향하고 있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입장과 위치가 남미지역에서 크게 축소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 도전에 직면 하고 있는 미국은 중남미에서 과테말라, 니카라과 그리고 온두라스 등 인접 국가들에 이어 가장 작은 나라인 엘살바돌 마져 좌파정권으로 돌아서고 있어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이 정치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엘살바돌이 지나 온 가시밭 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제국주의에 의하여 지원 받아 온 <우파군사독재정권>이 168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세계 침략의 최악의 학정이 자행되었다. 이 나라는 미국에 완전히 종속된 정책에 의하여 군사독재정권들이 권력을 독차지해 왔다. 그것이 장장 168년 동안의 세월이었다.

하지만 1932년에 <파라분도 마르티>가 이끄는 민중봉기로 인하여 엘살바돌에 처음으로 <중미사화당>이 창설되었다. <중미사회당>이 창설되는 획기적인 계 기로 인하여 그때 30,000명이 살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때 그 비극의 씨앗은 그 후부터 58년 동안 줄기차게 게릴라전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1980년에 드디어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 FMLN>이 창설되었다.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은 창립후 29년 동안 강력한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군부독재정권 타도를 위하여 투쟁을 계속하였다.

1990년에 국제연합(UN)의 중재에 의하여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엘살바돌의 정치적 조직으로서의 <야당>으로 등장했다. 야당으로 등장한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은 군사독재정권과 당당히 맞서서 싸우면서 정치개혁을 주도했다.

엘살바돌의 정세변화에 대하여 불안을 느낀 그 때 당시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행정부는 엘살바돌 군부독재정권에게 엄청난 돈을 지원하였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군사정권은 반정부 민중을 탄압하여 75,000명을 살해하였다. 또 이로 인하여 300,000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야당으로 등장한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은 미국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친미군사독재정권과 맞서서 끝까지 싸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력은 18년 동안의 투쟁으로 기득권 권력층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좌파세력의 총집결에 의하여 드디어 선거승리를 통하여 2009년 3월 15일에 좌파정권의 최후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중남미의 마지막 보루인 제일 작은 나라 엘살바돌에 과테말라, 니카라과 그리고 온두라스 등 접경한 이웃나라들과 함께 손잡는 또 하나의 좌파정권이 창건되었다. 중남미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와 같은 정세 변화는 날이 갈수록 미국의 고민이다.

1. 엘살바돌의 간추린 역사.

BC 2,000년 경으로 추산되는 올멕문화의 유물인 석조 두상이 발견됬으며 또 계단식 피라미드가 발견되어 이 지역에 올멕과 마야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이곳에 활화산의 분화로 원시인들이 흩어졌으나 남은 자들의 여러 부족들은 수 세기 동안 여러 왕조들을 이루어 옥수수를 기반으로 한 농경과 수학과 천문학 등을 포함한 다양한 도시 문명을 이루어 고대 마야 문명권 시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1524년에 이 지역에 처음 도착한 스페인 알바라도 장군은 <구세주에게 감사한다>라는 뜻으로 <엘살바돌>이라고 이 지역의 명칭을 명명했다. 엘살바돌이라는 말은 에스파냐 어로 <구세주> 라는 뜻으로 기독교적인 지명으로 시작 되었다.

스페인 인들은 이 지역에 도착하자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목화농사를 비롯한 각종 농업의 경작지를 개간하여 <인디고 농장> 을 발전시켰다.

1,700년대에 들어 서서 엘살바돌의 토지는 유럽의 앨리트 14개의 대 가문들에 의하여 완전히 소유되고 지배를 받았으며 인디오 토착민들과 아프리카에서 수입 된 흑인 노예들은 농장의 농노가 되여 백인들의 부를 위하여 희생되었다.

오늘 엘살바돌에는 옛날 14개의 엘리트 대 가문이 250개 가문으로 번창하여 농업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에 손을 뻗고 있어 엘살바도르의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전체 인구에 2%에 불과하지만 상류층을 형성하여 8%의 중산층을 지배하고 있다.

스페인은 이 지역에 과테말라 총독부를 창설하여 총독의 지배를 받도록 했다.
1811년부터 과테말라 총독부를 대항하여 <마티아스 델가도>가 주동하여 인디오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1812년에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으로 인하여 패전국이 되여 스페인은 남미에서 침략국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위상이 추락됨을 기회로 삼아 1821년에 엘살바도르를 비롯하여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니카라과 사이에 연합이 형성되어 <중앙아메리카연방국>으로 독립을 선포했다.
1841년에 <중앙아메리카연방국>이 해체되면서 엘살바돌은 주권 독립국가로 창건되었다. 식민통치에서 독립을 성취하기는 했지만 엘살바돌은 커피가 유일한 경제의 핵심이었는데 전체 인구의 2%만이 커피로부터 획득하는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엘살바돌의 사회, 경제적 불공정이 장기화됨에 따라 사회적 변화를 갈망하는 빈민층의 항거운동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변화를 위한 최초의 대중적 움직임은 1929년에 주식시장의 파동과 커피 가격의 폭락에 의하여 시발이 되었다.

1932년 1월에 <아우구스틴 파라분도 마르티>는 <중미 사회당>을 창건하고 농민과 천대받는 인디언의 봉기를 일으켜 독재군부와 싸움을 시작했다. 엘살바돌 군부는 봉기에 가담한 여하를 막론하고 인디언으로 보이는 사람은 무조건 살해하고 또 봉기를 지원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다 사살했다. 이때 살해당한 수는 30,000명에 이르렀다.

<중미 사회당>을 창건하고 봉기를 주도한 <아우구스틴 파라분도 마르티>는 군부에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1980년에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으로 부활하여 되살아 났다.
그리고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은 2009년 3월 15일에 드디어 엘살바도르에서 좌파정권 창출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아우구스틴 파라분도 마르티>가 민중봉기를 주도하여 총살을 당한지 77년 후에 거두어 드린 민중의 승리이었다.

2. 엘살바돌 군부독재가 저지른 비극

엘살바도르의 비극적 현대사는 미국이 지원하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엘살바도르의 비극적 군사정권의 최악의 독재자는 1931년에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49세의 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 대통령이었다.

마르티네스는 1931년 3월에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9개월 후인 12월에 쿠테타를 일으켜 대통령을 살해하고 국회를 해산하고 엘살바도르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서 대통령이 되었다.

마르티네스 대통령은 진실한 카톨릭교 신자로서 죽은자의 부활을 믿는 보수주의적 신앙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생명을 동물의 생명보다 더 경시하여 사람을 죽이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신앙이 아니라 악마적 괴변이었다.
<동물은 부활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줄일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죽은 후에 부활이 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해도 큰 문제가 될 수 없다>

마르티너스 대통령은 1932년에 민중봉기의 선두자 파라분도 마르티를 처형했고 또 곧이어 농민 봉기를 일으킨 원주민 지도자 펠리시아노를 살해했다. 뿐만 아니라 폭동진압이라는 구실로 위수령을 선포하여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마구 죽였는데 그때 학살당한 수는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마르테니스 대통령은 이념적인 공세를 펼치면서 공산주의의 배경을 선전할 뿐 시신들이 길가와 농장에서 부패하여 전염병이 나돌아도 모르는 척 했다. 그는 국가의 경제의 중요성이나 인간 생명의 보호보다는 자기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더 중요시 했다.

엘살바도르에 버려진 시체로 인하여 전염병이 돌고 있는데 대통령은 방역에는 생각이 없고, 전국의 가로등을 모두 빨간색 색종이로 감싸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는 빨간색 가로등 불빛이 전염병 확산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 했다.

마르티네스 대통령은 견실한 카톨릭교 신자로서 환자에게 약을 주는 것 보다는 파란 유리병에 생수를 담아 양지바른 곳에 소중히 보관하면 만병통치 약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합리적인 사고방식과는 거리기 먼 미신적인 캐톨릭 신앙의 소유자 이었다.

마르티네스 대통령은 사람은 함부로 죽여도 죽은 후에 부활하기 때문에 큰 문제 가 아니지만 곤충과 동물은 죽으면 끝나기 때문에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라고 했다.

사실에 있어서 엘살바도르의 문제는 무서운 독재자 마르티네스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큰 문제는 엘살바도르 캐톨릭 교회의 대주교 알폰소 베요소 신부에게 있는 것이었다.
베요소 대주교는 1932년 마르티네스 대통령의 대학살사건을 군사적 대승리라고 극구 찬양을 하면서 대규모 감사미사를 집전 했다. 베요소 대주교는 그 후에 줄곧 마르티네스 대통령 독재자의 정치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베요소 대주교의 후임으로 계승한 루이스 대주교도 역시 정치적으로 마르테네스
대통령 독재정권과 유착되고 있었다. 그때 고위성직자들의 정치적 뒷거래 관행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카톨릭 교회에 광명성처럼 등장한 인물, 로메로 대주교가 있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타락한 교회에 저항했다. 그는 로마의 그레고리오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성직에 서품 되었는데 산살바도르 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로메로 대주교는 부패한 정치와 타락한 카톨릭 교회에 대하여 저항하면서, 가난한 사람들편에 서서 교회변혁과 민권운동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우익군부독재 정권은 로메로 대주교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그는 해방신학자 로서 엘살바도르 에서 뿐만 아니라 중앙아메리카 혁명의 상징적 존재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느날 미사집전 도중에 우익 군부의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이 사건이 후 엘살바도르의 마르티네스 대통령 에게도 비운의 날이 찾아 왔다. 미국의 압력에 의한 수출 사업의 마찰로 인하여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 민중은 전국적으로 파업이 일어나고 마르티네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데모는 계속되었다.

마르티네스 대통령은 1944년 5월 9일에 라디오방송을 통하여 13년 동안의 독재정권의 종지부를 찍는 사임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1966년에 자신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운전기사에 의하여 17군데나 칼에 찔려 비참하게 죽었다.

역사가들은 <마르티네스의 13년 동안의 군사독재정권은 그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결코 아니라 그를 계승하여 미국이 지원하는 우파군사독재정권의 독재는 1979년까지 50년 동안 더 지속되었다> 라고 평가 한다.

뿐만 아니라 뜻 깊은 역사적 관찰에 의하면 1980년 부터 1992년 까지 13년 동안 무차별적으로 죽고 죽이는 내전을 초래했다. 한마디로 미국이 지원하는 우익 군부정권은 오뚝이처럼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 났다가 잠시 다시 넘어 지면서 1931년 이래 2009년3월 15일까지 장장 78년을 지속했다

이와 같은 오랜 세월 동안의 민중항쟁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희생자는 얼마나 되는가? 엘살바도르 내전으로 사망한 수는 세계 분쟁사 기록에 의하면 사망자 10만 8천명이다. 그리고 난민은 150만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 이민 온 나라별 통계에 의하면 엘살바도르가 6위이고 한국은 7위로 기록 되여 있다.

그러면 도대체 아무리 작은 나라 엘살바돌 이라 할지라도 78년 동안 끄덕 없이 친미군사독재정권이 지속했다면 뭔가 숨어 있는 비결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음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내적으로 나약한 민중들의 기회주의적 기피심리와 포기심리가 독재정권을 오랜 동안 계속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둘째,국제적으로 미국의 반공주의적 지원과 비호가 군부에게 막강한 힘이 되여마음 놓고 민중을 탄압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주었다.

셋째, 카톨릭 교회가 군사독재정권과 합세하였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 카톨릭교 회 대주교들은 역대 독재정권을 비호하고 독재자들을 위하여 축복미사를 드리는 데 정성을 다했다.

엘살바도르 에서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지난 몇 세기동안 침략자들이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카톨릭 교회가 뒤에서 비호해주고 축복을 베풀어 준 덕택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이야기는 엘살바도르에 민주화의 시대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는 2008년도에 엘살바도르 우정국에서는 친미극우파 독재자 이었던 고에르난데스 마르티네스 독재자 대통령을 회상하는 기념우표를 발행하여 세인의 놀라움과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한국에서 고 박정희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박사모=박정희를 사모하는 모임>을 주장하는 꼴과 비슷하다. 아직도 중남미 곳곳에서는 친미사대주의적 망상이 그냥 그대로 살아 남아있는 듯 하다.

3.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의 나아갈 길

엘살바도르는 면적이 한반도의 10분의1정도의 크기로 매우 작은 나라이며 인구는 겨우 6,90만 명 정도 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회주의 게릴라전선이 1980년에 창건되어 29년 동안의 투쟁 끝에 드디어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집권여당으로 당당히 나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엘살바도르는 1841년에 주권국가로 독립된 이후 한번도 민주적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 FMLN> 이라는 명칭은 1932년에 <중미 사회당>을 창건하여 민중봉기를 선도하다 체포되어 처형을 당한 <파라분도 마르티> 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명칭이다.

또 놀라운 것은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 FMLN>이 출현하기 10년 전인 1971년에 엘살바도르에는 <무명의 게릴라> 집단이 이미 있었다고 알려져 왔다. 그리고 또 더욱 놀라운 것은 1970년대 초에 게릴라의 사령 관으로 활약한 지도자는 여성 사령관 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여성 사령관은 <니디아 디아스> 라는 여성이다.

FMLN 는 엘살바도르 전역에서 폭파와 습격과 인질 등을 감행하여 제도권 정권에 위협하여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행정부는 막대한 지원으로 군사정권을 옹호했으나 반정부 게릴라 활동을 금지시키기에 역부족이었다.

1990년 4월에 레이건 행정부는 국제연합(UN)을 내세워 FMLN과의 협상을 요구했다. 1992년 1월에 협상이 체결되어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FMLN>는 역사상 처음으로 엘살바도르 정권과 합의하여 상대방 야당으로 당당히 등장하게 되었다.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은 야당으로서 정치적 개혁과 사회적 변혁을 위하여 그 후부터 17년 동안 꾸준히 싸웠다. <무명 게릴라>의 여성 사령관으로 맹렬히 활약하던 니디아 디아스 여사는 엘살바도르 국회의 여성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녀는 2009년 3월 15일 선거의 승리로 여당이 된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먼저3월15일 승리는 지난 수 십년 동안 모든 민중들의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의 결 과라는 것을 밝히고 싶다. 과거 17년 동안 정치권 야당으로서 뭔가 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 완전히 종속된 정권으로서 어려움이 많았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 지고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급선무는 이 잘못된 제도를 뜯어 고치는 일이 급선무이다>


2009년 3월 15일 대선의 승리로 인하여 엘살바도르의 역사상 처음으로 민선 데통령이 된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에게 축하를 드린다.

푸네스 대통령이 승리한 민선정권의 출범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출범과 때를 같이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중남미 지역에서 아직도 좌파정권으로 교체되는데 있어서 갈 길이 먼 나라들이 있는데 <파라분도 마르티해방전선>의 역사적 승리는 그들 나라들에게 큰 격려가 되고 있다.

끝으로 세계 양심인들은 엘살바도르에 새로 등장한 촤파 정권의 지도자, 푸네스 대통령에게 꼭 몇 가지 바라고 있다.

첫째, 엘살바도르의 급선무는 우선 낙후된 경제 살리기 라고 모두 기대하고 있다.
아마도 미국의 국우세력들은 시급한 처방으로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와 공기업 민영화 촉진 등을 강요하면서 경제지원을 약속할 것이다.하지만 미국의 이와 같은 지원약속은 모처럼 성공한 푸네스 새 정권에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폭격 이라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둘째, 엘살바도르의 이번 승리는 게릴라전투가 아니라 <민선>에 의한 승리였다. 푸네스 대통령 자신도 게릴라 출신이 아니라 방송인 출신이다. 엘리트 중심의 권위적 정치에서 근본적으로 탈피하여 풀 뿌리 민중이 주도하는 민주주의로 반드시 성공하기 바란다.

셋째, 라틴아메리카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항거하는 사회적 위기의 폭발에 있다.

나는 세계 양심인들이 푸네스 대통령에게 바라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을 첨가하여 묻고 싶다.

멕시코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고 미국으로부터 너무 가깝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라틴아메리카 해방 신학자 로메로 대주교가 우익 세력에 의하여 피살된 근본적 사유가 무엇인가?

엘살바도르의 좌파 정권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장한 마우리시오 푸네스 대통령에 게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정답을 바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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