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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명 시평]《박정희 신드롬》제목으로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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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민족통신 작성일09-10-30 09:06 조회4,3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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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명주필(유에스 뉴스)은 박정희 군사독재자가 그의 오른팔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된
사건-30주년을 맞아 그를 미화시키는 일부 세력의 풍조를 <박정희 신드롬>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비판하는 글을 민족통신에 특별기고했다. 전문을 싣는다.[민족통신 편집실]

<##IMAGE##>
[이선명 시평]

《박정희 신드롬》제목으로 특별기고



박정희 신드롬


*글:이선명( 海里 USNews 주필)


<##IMAGE##> 우리의 민족사에 가장 암울했던 ‘광란”의 시대가 군사독재의 수괴 박정희가 현대의 아방궁인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벌인 주색파티 도중 당시 확산되던 부마(釜馬)사태를 “피를 흘려서라도 진압하라”고 지시하자 그의 무한 폭력통치에 전율을 느낀 심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를 처단한 돌발사태로 막을 내리고, 한 때 ‘서울의 봄’을 가져왔던 저 궁정동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0개 성상이 흘렀다. 이 10.26 사건은 독재자 박정희의 군사 파쇼체제에 조종(弔鐘)을 울린, 해방정국의 소용돌이에서 싹이 터 그 이후 면면히 이어온 우리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의 대장정에서도 으뜸이 되는 이정표(里程標)의 하나였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자의 타계(他界) 30주년을 맞아 근자에 그의 공과(功過)를 다룬 기사가 자주 실리고 있는 가 하면 극히 왜소(矮小)했던 그를 실물(實物)이상으로 우상(偶像)화 하는 허위 과장 주장들이 일부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어 경각심을 울린다.

마치 독일의 극우들에 의해 간헐적으로 선동되고 있는 세기적 학살자 아돌흐 히틀러의 찬양을 연상케 하는 이들 주장은 대체로 그가 소박한 인간이었고, 조국의 근대화와 경제성장에 기여한 지도자였다는 미화 포장(包裝)으로 오도(誤導)되고 있다. 이것은 이성적 분별력보다는 감성적 정(情)에 약한 한국 민중들을 겨냥한 함정(陷穽)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 그 것은 1961년 5월 16일 이른 새벽 미명, 일단의 군 장교들이 공수부대원들을 이끌고 한강을 도강(渡江)하여 무력으로 국가의 헌정(憲政)을 유린하고 국권(國權)을 찬탈한 정변(政變)이었다.

이로 인(因)해 불법적 삼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노린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를 축출한 4.19 혁명으로 성립된 민주당 정부의 노력으로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한 한국의 의회 민주주의와 통일성취의 위업이 그 실현 직전, 마치 일제의 모진 비바람에 스러진 한 송이 봉선화처럼 군화 발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이 5.16 쿠데타로 우리 조국의 민중들은 거의 30년 동안 불의와 부정, 그리고 불법과 폭력의 지배하에 야만의 비극적 역사의 어두운 터널에 갇혀 숨을 죽이며 길고 긴 인고(忍苦)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박정희의 철권정치는 그가 매일 주지유림(酒池肉林)의 밤을 지새던 궁정동 안가(安家)의 총성과 더불어 종언을 고했지만, 그가 남긴 군사파쇼 체제, 그리고 그의 제도적, 물리적, 그리고 인적 유산(遺産)은 오늘 조국이 겪고 있는 혼란 속에 투영되고 있다.

이 비극적 역사에 책임이 있는 정변의 수괴를 “그가 무척 소박했다”며 미화하는 기사가 연일 일부 언론을 장식하는 데 이 주장의 배후에 숨은 정체는 분명히 민중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개발경제’의 수혜자들인 일부 재벌과 그들이 지배하는 사이비 매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히틀러를 찬양하던 Spiegel, 알게마이너 차이퉁, Zeit 등 나치 치하의 독일의 대표적 선전 매체는 히틀러가 그의 젊은 애첩 에바 브라운과 함께 한적한 정원을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진을 자주 실었다. 당시 독일인들은 “히틀러는 퍽 매력적인 인간이다” 라고 믿었다. 이 대중조작은 기독교 국가인 독일 국민이6백만 유대인 학살에 동조하는 환각제의 효과를 냈다.

“박 대통령이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그의 비서 김정렴 씨의 주장을 실은 어는 일간지의 의도가 무엇인 지 궁금하다. 이 비서의 노회(老獪)한 노스탤지어와 그의 상전(上殿)이 타계한 안가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시바스리갈 위스키 병이 던지는 그 추상 같은 진실 사이에는 큰 괴리(乖離)가 있다. 그것은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의 종교적 사이비성(性)과 오늘 한반도 일부 지역을 풍미하고 있는 ‘박정희 교(敎)’의 유사성이 던지는 퍼즐과 맥락을 같이한다. 이것은 신라의 신화 처용가(處容歌)처럼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종의 주술(呪術)이다.

박정희의 정변은 4.19혁명으로 50년 전 이룰 수 있었던 민족통일, 해방 이후 의회 민주주의에 가장 근접한 민주당 정부가 수립한 민중들의 균형분배에 근거한 경제정의, 경제개발 계획을 중단시켰고 총칼의 폭압에 의한 민중의 무한수탈과 무한착취를 강행하고, 극우 정치와 극우 언론의 등장을 조장했다. 이들의 영향으로 한국인들의 개인적 인격 훼손은 물론 교육과 문화, 심지어 종교까지도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불의에 편승하는 풍조를 조장하여 한 국가의 도적적 기반이 몰락했다.

일제의 군관으로서 일본의 천황을 위해 “사쿠라처럼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를 하고 독립운동을 하던 동포들을 학살하던 다카키 마사오가 대한민국의 육군 소장이 될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해방 이후 일제에 봉사하던 민족 반역자들을 대거 수용한 국방군 조직의 무원칙과 부정부패의 소치이며,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자신이 일소(一掃)를 쿠데타 공약으로 내세운 부정부패의 수혜자였다는 점이다. 이 같은 불의를 외면한 민중들은 결국 그들 주변에 “성경을 끼고 다니는” 강도들에 의해 무한 폭력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한 슬픈 자화상을 본다.

남북 극한대결, 야간 국회, 고문과 살인, 지역차별, 통행금지, 미행, 납치, 불법 체포, 인신구속, 휴교령이 박정희 체제의 통치수단이었고, 수많은 부녀자들이 청와대 지하실과 안가에서 벌인 성폭행의 피해자였다. 가공할 일은 군대, 중앙정보부, 경찰,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 등 한 나라의 모든 권력이 그가 자행한 불법, 부정, 불의의 강제집행 기관이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그의 치하에서 대한민국은 나라라는 국격(國格)을 상실했다.

이런 사실은 “그가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어느 일간지의 서민적 인간성의 부각으로 상쇄될 수 없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며, 요즘 그의 ‘공적’을 찬양하는 개인이나, 단체나 특히 언론은 이 불의의 공범이다.

이들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 농업국이었던 독일을 세계적 산업국가로 발전시킨 공헌을 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독일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없다. 인륜과 도덕을 짓밟고 불법과 불의, 그리고 부정에 기반한 통치는 히틀러나 아프리카의 이디 아민, 남미의 아우구스트 피노쳇트의 경우처럼 박정희의 개발독재 역시 경제발전에의 기여 혹은 근대화에의 기여 여부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일본 우익의 주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 받고 있지 않은가!

군사 쿠데타 파쇼세력에 결탁, 진실을 호도하고 외면해 온 비언론적 행태에 대한 대가로 치부(致富)해 온 한국의 제도권 언론이 조작한 ‘한강의 기적’ 신화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IMF 신탁통치는 박정희의 개발독재에서 자행된 민중의 수탈과 노동착취에 기초한 재벌경제의 물리적이고 또 도덕적인 몰락과 매판경제의 숙명이었다.

한국의 민중은 한국의 GNP가 세계 10위라고 자랑하는 정부의 위장 선전이 주입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부의 75퍼센트 쥐고 있는 몇몇 재벌들의 몫을 뺀 나머지 25퍼센트 만의 민중들의 몫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그 수준이 세계 후진국의 그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양심있는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들은 사실 개발독재의 경제정의 외면의 희생자였다. 바로 이 때문에 엊그제 발표된 영국의 ‘레가툼 번영지수’는 한국을 26위에 마크했다. 이것도 재벌의 몫 75퍼센트를 포함시킨 수치다. 개발독재에서 무한 착취를 당한 한국의 민중들은 이제 재벌경제의 노예가 된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재벌이 추진하는 건축 사업에 동원된 공권력이 영세민들을 철거시키는 과정에서 영세민들이 불에 타 죽는 비극이 발생했을 때 청와대와 집권당이 살인자들을 비호하고 나섰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이 세계 경제 대국이라고 하면서 영세민들이 살고 있는 집에 불을 질러 퇴거시킨 사건은 한국의 경제가 몇몇 재벌들의 매판경제에 예속화 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깨진 거울에 투사된 남한 경제의 현실이다.

오늘 우리의 조국에 저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슬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군사독재의 치하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인질(人質)하여 치부한 일부 매스미디어에 의한 대중 조작의 증거이고, 청산되어야 할 과거가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것 역시 이들 책임이다. 해방 후 자유당 시절 정치가 혼탁했을 때 일제의 하수인들과 그들의 주구(走狗)들, 그리고 무지몽매한 일부 계층이 일제시대를 그리워했던 풍조와 같다.

우리 민중들은 주체적으로 군사 파쇼체제의 상흔을 털고 동학혁명 이후 그 동안 장기간의 투쟁에서 성취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민족통일에의 접근, 그리고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새 역사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Editor.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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